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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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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養生도 心身이 살고 난 다음에
2. 양생養生심신心身이 살고 난 다음에
夫養生者, 先須慮禍, 全身保性, 有此生然後養之, 勿徒養其無生也。
양생養生을 하는 사람은 먼저 를 조심하여 몸을 보전하고 생명을 지켜야 하나니, 당장 살아 있은 다음에야 양생을 할 것이며, 살아 있지 않는 것을 쓸데없이 양생하지 말라.
선표單豹는 몸 안을 양생하였지만 바깥을 잃었고, 장의張毅는 몸 바깥을 양생하였지만 안을 잃고 말았으니, 전현前賢들이 조심하라고 했던 사례들이다.
嵇康著《養生》之論, 而以受刑;:往世之所迷也。
혜강嵇康은 〈양생론養生論〉을 지었지만 남들에게 도도하게 굴다가 사형을 당했고, 석숭石崇단약丹藥 복용의 효험을 바랐지만 탐닉하다가 화를 당했으니, 지난 시대의 미혹한 일들이다.
역주
역주1 單豹養於內而喪外 張毅養於外而喪內 : 《莊子》 〈達生〉에서 “養生을 잘하는 이는 마치 양을 키우듯이 하는데, 뒤처지는 양을 보면 채찍질을 한다. 魯나라에 單豹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위굴에서 살며 물만 마시면서 사람들과 이득을 다투지 않아, 나이 일흔에도 여전히 아이와 같은 안색이었다. 불행히도 범을 만나, 굶주린 범이 잡아먹었다. 張毅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주렴을 드리운 권문세가의 집에 드나들지 않은 데가 없었으나, 나이 마흔에 內熱病으로 죽었다. 單豹는 자기 속을 養生했지만 범이 그 바깥을 먹어버렸고[豹養其內而虎食其外], 張毅는 자기 밖을 養生했지만 병이 그 안을 침범하였다.[毅養其外而病攻其內] 이 두 사람은 모두 그 뒤처진 부분을 채찍질하지 않은 사람들이다.”라고 했다.[趙曦明]
이 이야기는 《呂氏春秋》 〈必己〉에도 나온다.[盧文弨]
역주2 傲(오)物 : 남에게 도도하다. 오만하게 굴다.[역자]
역주3 石崇冀(기)服餌之徵 而以貪溺取禍 : 《文選》에 수록된 石季倫의 〈思歸引序〉에서 “또한 단약 복용과 호흡 조절[服食咽氣]을 즐겨하며 長生에 뜻을 두었고, 도도히[傲然] 구름을 넘나드는 뜻을 지녔다.”라 하였다.
《晉書》 〈石苞傳〉에서 “石苞의 막내아들 崇은 字가 季倫이다. 齊州에서 태어났으므로 어릴 적 이름을 齊奴라 했다. 젊어서부터 민첩하고 자애로우며 지모가 있었다. 재산이 많아서 아녀자들의 거처가 100畝나 되었는데, 다들 비단옷을 입고 금과 비취의 귀걸이를 했으며, 樂工들은 당시에 선발된 사람들이고, 요리는 水陸의 진미들을 다 갖추었다. 일찍이 王敦과 함께 太學에 들어가 顔回와 原憲의 초상화를 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말하기를 ‘만약 함께 孔子의 堂에 올랐다면, 어찌 다른 사람들과 꼭 차이가 있어야 했겠소?’라고 하였다. 王敦이 ‘다른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구려. 子夏라면 그대와 거의 비슷했겠지요.’라 하자, 石崇은 정색을 하면서 ‘선비라면 마땅히 몸과 명예를 다 훌륭하게 해야지, 어쩌다 궁색하게 옹기 창 뚫은 집에 사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라고 하였다. 石崇에게는 綠珠라는 기첩이 있었는데, 孫秀가 사람을 시켜 자기에게 달라고 하자 石崇은 기녀 수십 명을 내어 보이며 ‘마음대로 고르시오.’라 했다. 使者가 ‘본래 綠珠를 찾아 데려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라 하자, 石崇은 ‘내가 아끼는 여자이니 드릴 수가 없소.’라고 했다. 孫秀는 화를 내고서 결국 詔書를 고쳐서 石崇을 잡아들였다. 綠珠는 스스로 건물 아래로 투신하여 죽었다. 石崇의 모친과 형, 처자식들이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라 하였다.[盧文弨]
服餌는 服食 즉 丹藥을 복용하는 일을 말하고, 徵은 효험, 효과의 뜻으로 쓰였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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