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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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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後漢書》 〈楊由傳〉의 ‘削柿’
29. 《후한서後漢書》 〈양유전楊由傳〉의 ‘삭폐削柿
《後漢書‧楊由傳》云:“。” 此是
후한서後漢書》 〈양유전楊由傳〉에 이르기를 “바람이 깎아낸 〈목찰木札의〉 지저깨비[]들을 날려 보냈다.[풍취삭폐風吹削肺]”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자는 목찰木札을 깎아낸 나뭇조각, 곧 지저깨비[]일 뿐이다.
古者, 書誤則削之, 故《左傳》云是也。或卽謂札爲削,
옛날에는 글자를 잘못 새기면 이것을 깎아내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글자를〉 깎아내고[] 〈목간을〉 내던져버린다.[삭이투지削而投之]”고 한 것이 이것이다. 혹은 목찰木札[]을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왕포王褒의 〈동약童約〉에서 “목판木版[]에다 글을 써 목간木簡[]을 대신한다.”고 하였으며, 소경蘇竟의 서신에서 “옛날 목간木簡[]을 엮는 재주를 연마하여”라고 한 것이 모두 그 증거이다.
《詩》云:“。” 毛《傳》云:“滸滸, 柿貌也。”
시경詩經》에 “나무를 베노니 지저깨비[호호滸滸] 떨어지네.”라고 한 구절이 있어, 《모시고훈전毛詩故訓傳》에서 “호호滸滸는 지저깨비[]가 떨어지는 모습”이라고 하였는데,
史家假借爲肝肺字, 俗本因是悉作脯腊之脯, 或爲反哺之哺。
사가史家들이 〈자를〉 간폐肝肺(간과 폐)의 자로 가차假借하여 쓰자, 세간의 판본들이 이로 인해 모두 포석脯腊(말린 고기)의 자를 쓰거나, 혹은 반포反哺(되먹이다)의 자를 쓰기도 한다.
學士因解云:“削哺, 是屛障之名。” 旣無證據, 亦爲妄矣!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풀이하기를 “삭포削哺란 가리개(병풍)의 이름”이라고 하지만, 이미 증거 댈 만한 것이 있을 리 없으니 또한 허황되다.
此是耳。
여기 〈양유전楊由傳〉의 구절은 풍세風勢를 보아 점을 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曰:“庶人風者, 拂地揚塵轉削。” 若是屛障, 何由可轉也?
풍각서風角書에 이르기를 “서인풍庶人風이란 땅을 스쳐 먼지를 날리게 하고 지저깨비를 뒹굴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만약 이것이 가리개라면 무슨 힘으로 뒹굴게 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風吹削肺(폐) : 《後漢書》 〈方術傳〉에 의하면 “楊由는 字가 哀侯로 成都郡 사람이다. 바람이 불자 지저깨비를 날려 보내므로[有風吹削哺] 太守가 그 일을 楊由에게 물었더니, 楊由가 대답하기를 ‘금방 어떤 사람이 과실을 바칠 터인데 그 색깔이 진한 황색을 띠겠습니다.’ 하였다. 이윽고 州郡의 屬官이 귤 몇 자루를 바쳤다.”고 하였다. 李賢의 注에 의하면 “哺(포)는 마땅히 肺(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趙曦明]
宋本 《後漢書》 〈方術傳〉에 보이는 李賢의 주석에 의하면 “哺는 마땅히 柿(폐)가 되어야 하며, 〈柿는〉 독음이 孚廢反(폐)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2 削札牘之柿(폐)耳 : 《說文解字》에 의하면 “柿는 木札의 껍질을 깎은 지저깨비이니, 木의 뜻을 좇고 聲符가 巿(발)이다.”라고 하였다.[盧文弨]
역주3 削而投之 : 《春秋左氏傳》 襄公 27년에 의하면 “〈宋나라의 子罕이〉 ‘〈左師는〉 거짓으로 제후를 속였으니 이보다 큰 죄가 없을 것입니다. 설사 대대적인 토벌은 못했다손 치더라도 한술 더 떠 상을 받기를 바라다니, 이보다 염치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平公은 左師에게 60개의 邑城을 상으로 하사한다고 썼던 글자를〉 깎아내고 〈목간을〉 내던져버렸고[削而投之], 左師 向戌은 邑城을 되돌려 내놓았다.”라고 하였다.[趙曦明]
글자를 깎아내고 木簡을 내던져버리다.[역자]
역주4 王褒童約 : 童은 宋本에는 僮으로 되어 있으나, 《說文解字》에 의하면 “童은 노예[奴]이며, 僮은 아이[幼]이다.”라고 하였으니, 俗本에 童으로 쓰인 것이 옳으므로 이를 좇았다.[盧文弨]
王褒의 賦 〈童約〉이다. 王褒는 字가 子淵으로 西漢시대의 文人이다. 蜀郡 資中縣 사람으로 生卒年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주로 漢 宣帝(B.C. 73~B.C. 49 在位)시기에 작품 활동을 한 유명한 辭賦家로 〈甘泉〉, 〈洞簫〉 등 16편의 賦가 있으며, 揚雄과 함께 ‘淵雲’이라 일컬어졌다. 〈童約〉은 〈僮約〉으로도 쓰이며 王褒가 神爵 3년(B.C. 59)에 四川의 煎上(곧 渝上)에 이르렀을 때 寡婦 楊舍의 집안에서 일어난 주인과 노예의 분쟁을 직접 목도하고, 이를 근거로 노예가 마땅히 종사해야 할 勞役과 그들에게 허락될 수 없는 待遇 등을 기록하고 있어 漢代 四川 지역사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역자]
역주5 書削代牘 : 《古文苑》 〈雜文〉에 보이는 章樵(宋)의 주석에 의하면 “削은 木版이다. 古人은 여기에 글을 쓰다 고치고 싶으면 깎아서 지웠으므로, 木版을 削이라 한 것이다. 牘은 木簡을 엮어 만들었다.”라고 하였다.[역자]
역주6 蘇竟書云 昔以摩硏編削之才 : 《後漢書》 〈蘇竟傳〉에 의하면 “蘇竟은 字가 伯況으로 扶風郡 平陵縣 사람이니, 建武 5년에 侍中을 제수받았으나 병으로 사임하였다. 처음에 延岑 정권의 護軍 鄧仲況이 군대를 거느리고 南陽郡 陰縣에 근거하여 도적이 되었는데, 劉歆의 조카 劉龔이 주모자였으므로 蘇竟이 〈與劉龔書〉를 써서 그를 曉喩하기를 ‘옛날 木簡을 엮는 재주를 연마하여 國師公 劉歆과 함께 일을 하고 조정에 드나들었다…….’라고 하였다.” 하였다.[趙曦明]
역주7 伐木滸滸 : 《詩經》 〈小雅 伐木〉편의 시구이며, 今本에는 滸滸가 許許로 되어 있다. 顔之推는 《毛詩故訓傳》을 좇아 ‘滸滸는 지저깨비[柿]의 모습이다.’라고 여겼다. 朱熹는 “許許는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는 소리이다.”라고 했으니, 이 경우 許許는 ‘어기영차’에 해당하는 의성어로 여겨진다.[역자]
역주8 風角占候 : 《後漢書》 〈郎顗傳〉의 주석에 의하면 “風角이란 四面八方의 바람을 살펴 吉凶을 점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9 風角書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風角要占》은 12권이다.”라고 하였는데, 나머지는 일일이 다 들 수가 없다.[趙曦明]
風角 관련 서적 일반을 뜻한다. 顔之推가 어떤 책에 근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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