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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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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學問의 實用性
10. 學問의 實用性
學之興廢, 隨世輕重。
학문學問의 번성하고 쇠퇴함은 세태世態추이推移에 따른다.
漢時賢俊, 皆以一經弘聖人之道, 上明天時, 下人事, 用此致卿相者多矣。
나라 때는 재능이나 덕행이 빼어난 이들이 모두 〈저마다〉 한 가지 경전經典으로 성인聖人의 도리를 〈세상에〉 넓혀가느라, 위로는 천시天時를 밝히고 아래로는 인사人事를 두루 갖추었으니, 이것으로 구경九卿재상宰相의 지위에 오른 이들이 많았다.
已來不, 空守章句, 但誦師言, 施之世務, 殆無一可。
말세의 풍속이 이미 도래하고서는 다시는 이와 같지 못하여, 〈구두句讀의 형식에 치중된〉 장구학章句學만을 헛되이 지키고 그저 스승의 말을 암송이나 할 뿐이니, 세상의 일에 이를 시행하려도 거의 한 가지도 쓰일 것이 없다.
故士大夫子弟, 皆以爲貴, 不肯
그러므로 사대부의 자제들도 모두가 널리 섭렵하기를 귀하게 여기고 한 가지 경전에만 통달한 유생儒生이 되려 들지는 않는 것이다.
梁朝皇孫以下, 之年, 必先入學, 觀其志尙, 已後, , 略無者。
나라 왕조王朝 때에는 황손皇孫 이하 귀족자제는 아직 어릴 때에 반드시 먼저 학교에 들어가게 하고 그 지향하고 숭상하는 바를 살폈으나, 출사出仕한 후 문관으로 임용되기만 하면 학업을 마저 마치는 이가 없었다.
冠冕爲此者, 則有等, 兼通文史, 不徒講說也。
관원들 가운데서 이를 행하였던 이들로는 곧 하윤何胤, 유환劉瓛, 명산빈明山賓, 주사周捨, 주이朱异, 주홍정周弘正, 하침賀琛, 하혁賀革, 소자정蕭子政, 유도劉縚 등이 있었으니, 문장文章사서史書에 아울러 능통하되 그저 강설講說만을 일삼던 이들은 아니었다.
洛陽亦聞, 鄴下又見:此四儒者, 雖好經術, 亦以才博擅名。
낙양洛陽에서는 최호崔浩, 장위張偉, 유방劉芳의 명성이 역시 자자하였고, 업하鄴下에서도 형자재邢子才가 눈에 띠었으니, 이 네 명의 유학자는 비록 경학經學을 좋아하였으나 재능과 박식함으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如此諸賢, 故爲上品, 以外率多田野閒人, 音辭鄙陋, 風操蚩拙, 相與, 無所堪能, 問一言輒酬數百, , 或無
이와 같은 여러 현인賢人들은 그래서 최상의 수준이나, 그들 이외에는 대부분이 들판의 한가한 사람으로 말씨가 비루하고 행실도 저속하여 함께 더불면 한갓 고집스럽기만 할 뿐 능히 감당할 만한 일은 없으니, 한 가지를 물어보면 번번이 수백 마디를 대답하나 그 취지를 힐문하면 더러 요지가 없곤 하였다.
鄴下諺云:“博士買驢, 三紙, 未有驢字。”
업하鄴下의 속담에 이르기를 “박사博士가 당나귀를 사면 계약서가 석 장인데도 당나귀 ‘’자는 없다.”고 하였다.
使汝以此爲師, 令人氣塞。
만약 너희들이 이런 이를 스승으로 삼는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막히게 할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면 봉록俸祿은 그 안에 있다.”고 하셨다.
今勤無益之事, 恐非業也。
지금 무익한 일에다 힘을 쏟아붓고 있다면, 〈이는〉 아마도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닐 것이다.
夫聖人之書, 所以設敎, 但經文, 粗通注義, 常使言行有得, 亦足爲人, 何必卽須兩紙?
무릇 성인의 책이란 그것으로 가르침을 베풀려는 것이니, 그저 경문經文을 통달하고 숙련하며 주석된 의미를 대략 꿰뚫어 언제든 언행言行에 도움이 되게 한다면 이 또한 사람 구실하기에 충분한 것인데, 〈《효경孝經》의 제1장이 시작되는 첫 구절〉 ‘중니거仲尼居’에 어찌 굳이 두 쪽에나 걸칠 만큼 주석을 달아 풀이해놓아야 했을까?
, 亦復何在?
중니仲尼가 거처하신 곳이〉 한거閒居하던 곳이었든, 강습講習하던 곳이었든 이 또한 어디에 있는가?
以此得勝, 寧有益乎?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다 한들 어찌 〈언행이나 살아가는 데에〉 보탬이 있겠는가?
光陰可惜,
시간은 아까운 것이어서 유수流水에 비유한다.
當博覽, 以濟功業, 必能兼美, 焉。
마땅히 요체要諦를 널리 살펴야만 공업功業을 이룩할 터이니, 반드시 양자를 아울러 갖춘다면 내가 그것에 대해 흠잡을 일이 없을 것이다.
역주
역주1 : 賅와 같은 뜻이다. 두루 갖추다.[역자]
역주2 末俗 : 《漢書》 〈朱博傳〉에 “지금은 末世의 風俗이 낳는 폐해로 말미암아, 政事는 더욱 번거로워지고, 宰相의 재목은 고인에 미치지 못하고, 丞相은 혼자서 三公의 일을 도맡고 있다.”고 했던바 ‘末俗’이란 ‘末世의 風俗’을 가리킨다.[王利器]
역주3 復爾 : 이와 같다[如此]는 뜻이다. 본서 제6 〈風操〉篇 23 주 1) 참조.[역자]
역주4 博涉 : 본서에도 〈涉務〉篇이 있는바 ‘涉’자의 뜻이 같다. 《漢書》 〈賈山傳〉에 보이는 “書籍과 서찰을 涉獵하였다.”는 구절에 대하여 顔師古는 “마치 강을 건너고 짐승을 사냥하듯 함을 말한 것이니, 치밀하게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桂馥의 《札樸》 3에 “漢代에는 책이 적어서 學者들도 모두 한 가지에 집중하고 전념할 수가 있었으나 晉‧宋 연간 이래로 四部의 서적들만 천만 권을 헤아리게 되자 마침내 涉獵하는 〈풍토의〉 학문이 생기게 되었다.”고 하였다.[王利器]
역주5 專儒 : 《論衡》 〈超奇〉篇에 “그러므로 무릇 한 가지에 치중하여 경전을 설명할 수가 있는 이를 ‘儒生’이라 하며, 고금을 널리 살펴본 이를 ‘通人’이라 하며, 전해진 책들을 채집, 발췌하여 上書를 올리거나 奏記 같은 공문을 올리는 사람을 ‘文人’이라 하며, 정채로운 사고를 글로 써내며 篇과 章을 엮어내는 사람을 ‘鴻儒’라고 한다.”고 하였다. 顔之推가 말하는 ‘專儒’란 곧 王充이 말하는 ‘儒生’을 가리키는바, 단지 한 가지 경전만을 풀이할 줄 알 뿐이어서 ‘鴻儒’의 무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므로 ‘專儒’라 한 것이다.[王利器]
한 가지 경전에만 통달한 儒生이다.[역자]
역주6 總丱(관) : 《詩經》 〈齊風 甫田〉에 보이는 “귀엽고도 예뻐라! 총각머리 한 아이들.[總角丱兮]”이라는 구의 《毛傳》에 “總角은 다팔머리를 양쪽으로 모아 묶은 것이며 ‘丱’은 ‘아이[幼稚]’의 뜻이다.”라고 하였다.[盧文弨]
總角머리를 한 아이이다.[역자]
역주7 : 관
역주8 出身 : 出仕하여 君王에게 獻身함을 가리킨다.[王利器]
역주9 便從文史 : 《漢書》 〈東方朔傳〉에 “3년이면 ‘文章과 史書[文史]’를 넉넉히 응용하였다.”고 하였으니 ‘史’란 ‘史書’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文章’과 ‘三史’를 함께 일컬어 말한 것이다. 舊本에서 ‘吏’로 된 것은 잘못이다.[盧文弨]
唐晏의 《憫庵隨筆》 上에는 “盧文弨가 교정한 《顔氏家訓》은 가장 善本이라 일컬을 만하나, 여전히 부족한 곳이 있는바, 예컨대 ‘出仕한 이후 문관[文吏]으로 임용된다.’는 〈勉學〉篇의 구절은, 梁代 王朝의 貴游子弟들 가운데 학문을 지향하지 않는 이가 많으므로 ‘아직 어릴 때에 반드시 먼저 학교에 들어가게 하고’, ‘出仕한 후 문관[文吏]으로 임용되기만 하면 학업을 마저 마치는 이가 조금도 없었다.’ 하였으니 그 문장의 의미가 몹시 분명한데도 盧文弨는 이를 ‘文章과 史書[文史]’라고 고치고 《漢書》 〈東方朔傳〉의 ‘文史足用’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주석하였으니, 본래의 의미를 놓쳐버린 것이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唐晏의 주장이 옳으니 이 문장은 마땅히 다른 여러 판본을 좇아 ‘곧 文職의 관리로 종속되기만 하면[便從文吏]’으로 쓰는 것이 옳다.[王利器]
여기서는 唐晏과 王利器의 주장을 좇아 ‘文史’를 ‘文吏’로 교정하여 번역하였다.[역자]
역주10 卒業 : 《三國志》 〈魏書 牽招傳〉에 “나이 열 살쯤에 같은 縣의 樂隱을 좇아 학문을 배웠다. 나중에 樂隱이 車騎將軍 겸 何苗長史가 되자 牽招도 그를 따라가 학업을 마저 마쳤다.[卒業]”고 하였다.[王利器]
학업을 마저 마치다.[역자]
역주11 何胤 : 《梁書》 〈處士傳〉에 “何胤은 字가 子季로 何點의 아우이다. 沛國의 劉瓛을 사사하며 《周易》, 《禮記》, 《毛詩》를 배웠고, 鍾山의 定林寺로 들어가 佛經을 받아들였는데 그가 공부한 것 모두에 정통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若邪山 雲門寺에 거주하였으니 세상사람들은 何點을 大山, 子季를 小山 혹은 東山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2 劉瓛(환) : 沛郡 사람으로 《南史》 〈劉瓛傳〉이 있으며 劉璡의 형이다. 본서 제3 〈兄弟〉篇의 5 주 3) 참조.[역자]
역주13 : 환
역주14 明山賓 : 《梁書》 〈明山賓傳〉에 “明山賓은 字가 孝若으로, 平原郡 鬲縣 사람이었다. 7세에 玄理를 말할 줄 알았고 13세에 經傳에 널리 통하여, 梁나라 臺建 연간에 五經博士를 설치하자 최초로 선발되었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5 周捨 : 《梁書》 〈周捨傳〉에 “周捨는 字가 昇逸로 汝南郡 安成縣 사람이다. 博學하여 다방면에 능통하였으며 특히 義理에 밝았다. 高祖가 즉위하여 재능이 남다른 선비를 널리 구하자 范雲이 그를 高祖에게 말하여 尙書祠部郞을 제수받았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6 朱异 : 《梁書》 〈朱异傳〉에 “朱异는 字가 彦和로 吳郡 錢唐 사람이다. 五經을 두루 연구하되 특히 《禮記》와 《周易》에 밝았고 文章과 史書를 涉獵하였다. 雜藝에도 함께 능통하여 바둑, 장기, 서예, 주판에 모두 뛰어났다. 조칙을 내려 재능이 남다른 선비를 널리 구하자 明山賓이 表를 올려 그를 추천하므로 高祖가 불러 만나보고서 《孝經》과 《周易》의 義理를 설명케 하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朱异는 실로 남다르다.’ 하였다. 周捨가 죽자 朱异가 중요한 전략을 도맡았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7 周弘正 : 《陳書》 〈周弘正傳〉에 “周思行(思行은 周弘正의 字)은 汝南郡 安成縣 사람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아우 弘讓, 弘直과 함께 叔父 周捨에게 길러졌다. 10세에 《老子》와 《周易》에 통하였으며 梁나라 때 자수성가하여 太學博士가 되었으며 여러 차례 직위를 옮겨 國子博士가 되었다. 당시 城 서쪽에 士林館을 세우고 弘正이 그곳에 거주하며 강론하고 교수하자 이를 들으려고 온 朝野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8 賀琛 : 《梁書》 〈賀琛傳〉에 “賀琛은 字가 國寶로 會稽郡 山陰縣 사람이다. 伯父 賀瑒이 그에게 儒家經書의 學業을 전수하자 한 번 듣기만 하면 義理에 통하였다. 특히 《周禮》, 《儀禮》, 《禮記》의 三禮에 정통하였으며 通事舍人이 되었다가 여러 차례 직위를 옮겼는데 禮儀에 관련된 업무는 모두 참여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9 賀革 : 《梁書》 〈儒林傳〉에 “賀瑒의 아들 革은 字가 文明으로 젊어서부터 三禮에 능통하였으며, 자라면서 《孝經》, 《論語》, 《毛詩》, 《春秋左氏傳》을 두루 연구하였다. 湘東王이 州에 學館을 설치하고 革으로 하여금 儒林祭酒를 맡기고 三禮를 강론하게 하자 荊‧楚의 世族들로서 이를 듣는 이들이 몹시 많았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20 蕭子政 : 《隋書》 〈經籍志〉의 “《周易義疏》 14권, 《繫辭義疏》 3권, 《古今篆隷雜字體》 1권이 있다.”는 구절에 “梁나라 都官尙書 蕭子政이 지은 것이다.”라고 주석이 되어 있다.[趙曦明]
역주21 劉縚(도) : 《顔氏家訓》 제6 〈風操〉篇에도 그가 언급되어 있다.[趙曦明]
역주22 : 도
역주23 崔浩 : 《魏書》 〈崔浩傳〉에 “崔浩는 字가 伯淵으로, 淸河縣 사람이다. 젊어서 文學을 좋아하고, 經典과 史書를 널리 읽었으며 日月星辰의 天象과 陰陽을 토론한 百家의 言說을 두루 망라하지 못한 바가 없었다. 義理를 깊이 탐구함에 있어 당시 아무도 따를 사람이 없었다. 太宗이 陰陽術數를 좋아하다가 崔浩가 설명하는 《周易》과 《尙書》 〈洪範〉의 통치법과 五行을 듣자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24 張偉 : 《魏書》 〈儒林傳〉에 “張偉는 字가 仲業으로, 어릴 때의 이름이 翠螭였으며, 太原郡 中都縣 사람이었다. 모든 經典을 남김없이 배우고 고향에서 이를 강론하며 교수하였으므로 그에게서 학업을 전수받는 사람이 항상 수백 명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25 劉芳 : 《魏書》 〈劉芳傳〉에 “劉芳은 字가 伯文으로 彭城 사람이다. 총명함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고전에 대한 뜻이 돈독하여 낮에는 筆耕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밤에는 그 책을 읽고 외우느라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中書侍郞이 되고서 皇太子에게 經典을 강의하였고, 太子庶子로 옮겼으며 員外散騎常侍를 겸하였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26 邢子才 : 《北齊書》 〈邢邵傳〉에 “邢邵는 字가 子才로 河間郡 鄚縣 사람이다. 나이 열 살에 글을 지을 수 있었으며, …일찍이 장맛비가 내릴 때 《漢書》를 읽는데 닷새 만에 전편을 대략 기억하였고, 다시 술을 마시곤 희롱삼아 經史를 넓게 찾아본다고 5행을 동시에 읽어 내리는데 한 번 훑어보고는 즉시 옮겨 적어도 놓치는 글자가 없었다. 문장이 典雅하고 아름다웠는데, 내용도 풍성하고 글 짓는 속도도 빨라 나이 채 스물이 안 되어 世族들 사이에서 이름을 드날렸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27 專固 : ‘독단적이고 완고하다.[王利器]
역주28 : 요구하다. 힐문하다.[역자]
역주29 指歸 : 嚴君平에게는 저서 《老子道德指歸》가 있고, 王僧虔의 〈戒子書〉에서는 “너희들은 그 제목도 채 살펴보지 않고 그 취지[指歸]도 아직 분간하지 못한 채 종일토록 자기를 속이고 남도 속이지만 남들은 너희들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郭璞은 《爾雅》 〈序〉에서 “무릇 《爾雅》는 그것으로 古語를 풀이하려는 취지[指歸]를 꿰뚫은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취지, 의향, 중심사상’의 뜻이다.[역자]
역주30 要會 : ‘要旨, 주된 취지’의 뜻이다.[역자]
역주31 書券 : 陸游의 〈讀書詩〉에 보이는 “文辭에 능한 博士 나귀 계약서를 쓰고[書驢券], 參軍 직위 맡아놓고 〈王徽之는 세상일을 초탈한 듯〉 馬曹라 하는구나.”라는 시구는 이에 근거한 것이다.[盧文弨]
계약서를 쓰다.[역자]
역주32 學也祿在其中矣 : 《論語》 〈衛靈公〉篇의 글이다.[王利器]
역주33 明練 : 본서의 제11 〈涉務〉篇에서도 “風俗에 통달하고 익숙하다.[明練]”고 하였다.[王利器]
역주34 仲尼居 : 《孝經》의 제1장 요지를 처음 밝히며 시작되는 첫 구절이다.[王利器]
역주35 疏義 : 經文의 注釋이다. 注는 經文을 설명한 것이며, 疏는 注의 의미를 부연한 것으로, 六朝시대에는 義疏之學이 자못 성행한 적 있다.[王利器]
역주36 燕寢講堂 : 燕寢이란 閒居하는 곳이며, 講堂이란 講習하는 곳이니, 이는 《孝經》의 해설가들이 〈앞에도 든바, 제1장의 첫 구절 ‘仲尼居’의〉 ‘居’자에 대한 理解가 서로 다르므로, 저마다 내세운 한 가지씩 주장〈을 대비시켜 놓은 것〉이다.[王利器]
역주37 譬諸逝水 : 《金樓子》 〈立言〉篇에 “치닫는 세월은 멈출 수가 없고 흐르는 강물[逝川]은 홀연히 사라져, 짧은 시간조차 寶玉이니 寸陰도 아낄 만하구나.”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38 機要 : 關鍵, 要領, 要諦의 뜻이다.[역자]
역주39 吾無閒(간)焉 : 《論語》 〈泰伯〉篇에 “禹에 대해서는 내가 트집잡을 것이 없다.[吾無閒然]”고 하였다. 《資治通鑑》 120의 이 구절 ‘吾無閒然’에 대하여, 胡三省은 “呂大臨이 ‘그 흠을 잡을 만한 틈이 없다.[無閒隙]’는 뜻이다.”라고 주석하였으며, 謝顯道에 의하면 ‘내가 그것을 따질 수가 없을 것이다.[我無得而議之]’라고 말한 것과 같다.”고도 하였다.[王利器]
역주40 : 간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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