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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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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손님을 맞이할 때
40. 손님을 맞이할 때
옛날 주공周公은 머리 한 번 감으면서 세 번이나 감던 머리털을 움켜쥐고, 밥 한 끼 먹으면서 세 번이나 입에 든 음식을 뱉어내고서 미천한 선비들을 맞이하여, 하루에 만난 사람이 일흔 명이 넘었다.
晉文公以沐辭豎頭須, 致有
문공文公은 머리를 감는다고 시종 두수頭須의 면회를 거절하였다가 생각이 뒤집혔다는 책망을 받았다.
, 古所貴也。
대문에서 손님을 멈추어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은 옛날에 중요하게 여긴 일이었다.
失敎之家,
無禮, 或以主君寢食嗔怒, 拒客未通, 江南深以爲恥。
교양 없는 집안은 문지기가 무례하여, 주인이 잠을 잔다느니 식사 중이라느니 화가 나 있다느니 하면서 손님을 막아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데, 강남江南에서는 〈이런 일을〉 몹시 부끄럽게 여긴다.
裴之禮, 號善爲士大夫, 有如此輩, 對賓杖之。
황문시랑黃門侍郞이었던 배지례裴之禮는 훌륭한 사대부로 알려졌는데, 만약 이런 무리가 있으면 손님 앞에서 매를 쳤다.
僮僕, 接於他人, , 辭色應對,
그래서 그 집 문지기와 동복僮僕들은 다른 사람들을 맞이할 때 행동거지와 자세, 응대하는 말투와 안색이 〈어느 하나〉 엄숙하고 공경스럽지 않은 데가 없었고, 주인을 대할 때와 차이가 없었다.
역주
역주1 周公一沐三握髮…一日所見七十餘人 : 《荀子》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문장만 조금 다르다. 《說苑》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趙曦明]
《荀子》 〈堯問〉과 《說苑》 〈尊賢〉, 《尙書大傳》에는 선비들을 만났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머리털을 움켜쥐고 먹던 음식을 뱉었다는 이야기는 《史記》 〈魯世家〉에 나온다.[盧文弨]
《韓詩外傳》 8과 《說苑》 〈尊賢〉에서는 “가난한 동네 초가집[窮巷白屋]에 사는 미천한 선비를 먼저 만나본 것이 마흔아홉 사람이었다.”라 하였고, 《金樓子》 〈說蕃〉에서는 “周公은 아침에는 책 백 편을 읽고 저녁이면 선비 일흔 명을 만났다.”라고 하였다. 《呂氏春秋》 〈謹聽〉과 《淮南子》 〈氾論〉에는 “한 번 머리 감으면서 세 번 머리털을 움켜쥐고, 한 끼 밥을 먹으면서 세 번 먹던 음식을 뱉었다.”는 이야기가 夏禹의 것으로 되어 있다. 《黃氏日鈔》에서는 이것을 일종의 修辭로 간주하였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듯하다. 《漢書》 〈蕭望之傳〉에서는 “아마 周公이 成王을 도와서 吐哺握髮의 예를 행하고, 미천한 선비[白屋]를 불러들이는 뜻을 실천한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고, 顔師古는 注에서 “白屋은 하얀 지붕의 집을 말하는데, 띠를 덮은 것으로 천한 사람이 산다.”라고 했다.[王利器]
역주2 圖反之誚(초) : 《春秋左氏傳》 僖公 24년에서 “晉 文公이 되는 重耳가 公子로 있던 시절, 시종이던 頭須는 창고를 지키는 사람이었는데, 重耳가 국외로 도망을 가자 창고의 재물을 훔쳐내어 그것을 전부 써서 諸侯들에게 重耳를 도와 귀국시켜 주기를 구하였다. 그리하여 重耳가 晉나라로 돌아옴에 頭須가 면회를 요청하였다. 文公이 머리를 감고 있다고 하면서 면회를 사절하자, 頭須는 文公의 하인에게 말하기를 ‘머리를 감으면 〈머리를 수그리게 되므로〉 심장이 뒤집히고, 심장이 뒤집히면 생각하는 방식도 뒤바뀌는[圖反] 법이다. 그러니 내가 면회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라에 남아 있던 자는 公子를 위해 나라를 지킨 훌륭한 신하요, 임금을 따라 국외로 돌아다닌 자는 公子를 위해 말고삐를 잡고 고생한 자이므로, 어느 쪽이나 임금을 위한 훌륭한 신하들이거늘, 어째서 나라에 남아 있던 자만을 처벌하려 하는가? 나라의 임금이 나같이 천한 자도 원수로 생각한다면, 임금을 두려워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하인이 文公에게 보고하자, 文公은 급히 頭須를 면회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3 : 초
역주4 門不停賓 : 《晉書》 〈王渾傳〉에서 “王渾은 고향 떠난 나그네들을 위로하며 마음을 비우고 편안히 받아들이니 좌중에 빈자리가 없었고, 대문에서 손님을 멈추어 기다리게 하지 않으니[門不停賓], 江東의 선비들로서 기꺼이 그를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 하였다.[盧文弨]
대문에서 손님을 정지시켜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이다.[역자]
역주5 閽寺(혼시) : 《周易》 說卦에서 “艮卦는 문지기[閽寺]이다.”라 했다. 《文選》에 수록된 〈西都賦〉의 ‘환관 문지기[閹尹閽寺]’에 대한 張銑의 注에서 “閹寺는 모두 궁형을 받은 사람으로 궁궐의 문을 관장한다.”라 했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궁문을 지키는 사람을 칭한 것이다. 唐人들은 또 ‘閹侍’라고 쓰기도 했는데, 李商隱의 〈爲擧人上翰林蕭侍郎啓〉에서 “잠시 후 문지기[閽侍]를 통해서 당당하게 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6 閽寺 : 혼시
역주7 黃門侍郎 : 《隋書》 〈百官志〉에서 “門下省에 侍中給事와 黃門侍郞를 각 4인씩 둔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8 門生 : 《日知錄》 24에서 《南史》에 나오는 門生이 오늘날의 門下人이라 하였고, 徐湛之, 謝靈運, 顧協, 姚察 등의 傳을 인용하여 그것이 쓸모없고 천한 자리임을 입증하였다. 顔之推가 여기서 僮僕과 나란히 칭한 것 역시 같은 예이다.[李詳]
趙翼의 《陔餘叢考》 36에서 “唐 이후에야 비로소 座主니 門生이니 하는 칭호가 생겨났으므로, 六朝시대의 이른바 門生이란 門下生이 아니다. 그 당시 벼슬하던 사람들은 각기 사병[部曲]을 모으는 것이 허락되었는데 이를 일컬어 義從이라 하였고, 門下에서 직접 주인을 모시는 자를 일컬어 門生이라 하였는데, 오늘날의 문지기[門子]와 같은 부류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9 折旋俯仰 : 《禮記》 〈玉藻〉에서 “〈모퉁이를〉 꺾어 돌기[折還]를 법도에 맞게 한다.”라고 하였고, 鄭玄의 注에서 “돌아서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折旋’은 곧 ‘折還(절선)’이다.[王利器]
여기서는 문지기가 손님을 맞이할 때의 절도 있는 행동과 자세를 말한 것이다.[역자]
역주10 莫不肅敬 與主無別也 : 裴之禮가 빈객을 맞이한 예절은 지극하다고 할 만하니, 國士가 그 문하에서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黃叔琳]
《日知錄》 13에서 “《史記》에서 ‘鄭當時가 門下에 훈계하기를, 손님이 오면 귀천을 불문하고 문에 머물러 기다리는 이가 없게 하라고 하였다.’라고 한 것이나, 《後漢書》에서 ‘皇甫嵩은 허리를 굽혀 선비들에게 낮추었고, 문에는 머물러 기다리는 손님이 없었다.’라고 한 것, 그리고 《大戴禮記》의 武王의 〈門銘〉에서 ‘빈객은 공경스럽게 맞이할 것이니, 貴賤을 구분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 등을 보면, 이미 예전부터 있었던 얘기이다. 後漢 때 趙壹이 皇甫規에게, 高彪가 馬融에게, 한 번 뵙기를 청했다가 만나지 못하자 평생 만나지 않았다고 한 것을 보면, 士大夫 된 사람으로서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랴!”라고 한 것은, 바로 顔之推의 이 글을 끌어다 발전시켜 논한 것이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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