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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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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함께 나눈 裴子野와 욕심 많고 인색한 사람들
8. 함께 나눈 裴子野와 욕심 많고 인색한 사람들
飢寒不能自濟者, 皆收養之。
배자야裴子野는 먼 친척이나 옛 동료들 중에 생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이가 있으면, 모두 거두어서 먹여 살렸다.
家素, 時逢, 二石米爲薄粥, 僅得遍焉, 同之, 常無厭色。
〈그의〉 집도 본래 청빈淸貧하여 때때로 홍수나 가뭄을 만나면, 쌀 두 섬으로 묽은 죽을 쑤어야 근근이 다 돌아갈 수 있을 정도였지만, 자신도 똑같이 먹으면서 내내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有一領軍, 貪積已甚, 家童八百, 誓滿一千, 朝夕每人, 以十五錢爲, 遇有客旅,
지역에 영군領軍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재물 욕심이 너무 심해서 가동家僮이 800명이나 되는데도 천 명을 채우리라 맹세하고서는, 조석 끼니에 식구 한 사람당 식비를 15전으로 제한해놓아, 어쩌다 손님이 와도 더 이상은 대접할 수가 없었다.
, 其家産, 一屋, 弊衣數庫, 其餘財寶, 不可勝言。
뒤에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고 그의 가산을 〈몰수하기 위해〉 장부에 올리는데, 미투리가 집 한 채에 가득했고 낡은 옷가지가 몇 창고나 되었으며, 나머지 재산과 보물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南陽有人, 爲生, 性殊儉吝。
남양南陽에 어떤 사람은 생업을 꾸리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성격이 유별나게 아끼고 인색했다.
冬至後女壻謁之, 乃設一酒, 麞肉。
동지冬至가 지난 후 딸과 사위가 인사를 왔는데, 구리 그릇에 술 한 사발과 저민 노루고기 몇 점을 내놓았다.
壻恨其, 一擧盡之。
사위는 그 단촐하고 소홀함이 섭섭해서 한번에 먹어버렸다.
主人,
仰命益, 如此者再。
주인은 깜짝 놀라 우물쭈물하다가 더 가져오게 했는데, 이러기를 두 차례나 하였다.
退而責其女曰:
자리를 물리고서 그의 딸을 꾸짖으며 말했다.
好酒, 故汝常貧。”
“아무개 서방이 술을 좋아하니, 그래서 네가 늘 가난한 게로구나.”
及其死後, 諸子爭財, 兄遂殺弟。
그가 죽고 난 후 자식들이 재산을 다투다가, 결국엔 형이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역주
역주1 裴子野 : 南朝 梁나라 사람이다. 《南史》 〈裴松之傳〉에 “松之의 증손 子野는 字가 幾原으로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다. 부친의 상중에 늘 묘소에 가니 그 때문에 풀들이 말랐고, 흰 토끼와 흰 비둘기들이 있어 묘소 곁에서 길이 들었다. 외가와 내외종이 다들 가난해서, 받은 녹봉을 모두 〈생활비로〉 대어주니, 처자식이 늘 춥고 배고픔으로 고생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2 疎親故屬 : 먼 친척과 옛 동료이다. 屬은 屬僚이다.[역자]
역주3 淸貧 : 淸寒貧窮을 말한다. 《三國志》 〈魏書 華歆傳〉에 “華歆은 평소에 淸貧하여, 녹봉을 하사하면 그것으로 친척들을 구제하고 베풀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4 水旱 : 홍수와 가뭄이다.[역자]
역주5 躬自 : 몸소, 스스로, 직접의 뜻이다.[역자]
역주6 鄴下有一領軍 : 《晉書》 〈職官志〉에 “中領軍將軍은 魏나라의 관직인데, 文帝가 帝位를 계승하면서 처음으로 領軍將軍을 두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이것은 庫狄伏連을 일컬은 것이다. 《北齊書》 〈慕容儼傳〉에 “代郡 사람 庫狄伏連은 字가 仲山으로 鄭州刺史가 되었는데, 오로지 긁어모으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武平 연간에 宜都郡王에 봉해지고 領軍大將軍에 제수되었는데, 琅邪王 儼과 함께 〈당시 宰相이었던〉 和士開를 살해하여 사형을 당했다. 伏連의 집 식구는 백을 헤아렸는데 한여름 날에 창고의 쌀 두 되를 되질하여 밥을 하고 소금에 절인 채소도 주지 않아 늘 굶주린 기색이 있었다. 동짓날에 친척과 외가에서 인사를 하러 와 그의 아내가 콩비지를 내놓았더니, 伏連은 이 콩이 어디에서 난 것이냐고 물었다. 아내가 말에게 먹일 콩 중에서 나누어서 썼다고 하자, 伏連이 크게 화를 내며 말을 담당하는 사람과 말 먹이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 모두를 곤장으로 때려 벌을 주었다. 여러 해 하사받은 물건들을 별도의 창고에 보관하면서 侍婢 하나를 보내어 자물쇠만 전담하여 맡아보게 하였다. 늘 창고에 들어가 검열을 하고, 처자식들에게는 ‘이건 官物이니 써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그의 재산이〉 籍沒됨에 이르러, 모두 국고로 귀속되었다.”라 하였다. 《北史》에서는 “죽을 때는 낡아 헤진 잠방이 하나만 입고 있었는데, 쌓아둔 명주가 2만 필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李慈銘]
領軍은 北齊 때 황제를 호위하는 禁衛軍의 책임자에 해당하는 관직이다.[역자]
역주7 鄴下 : 鄴城을 뜻한다. 北齊는 이곳에 수도를 세웠는데, 지금의 河南省 臨漳縣에 있었다. 六朝人들은 다들 수도를 세운 곳을 일컬어 ‘某下’라고 하였는데, 예를 들면 洛下, 吳下, 鄴下 같은 것이 그것으로, 後代에 京師를 일컬어 都下라고 하는 것과 같다.[王利器]
역주8 肴膳 : 반찬, 요리, 여기서는 급식비를 뜻한다.[역자]
역주9 : 제한, 한도의 뜻이다.[역자]
역주10 更無以兼 : 抱經堂本에는 ‘更’이 ‘便’으로 되어 있다.[王利器]
더 이상 〈음식을〉 내놓을 방도가 없다. 즉 평소 이상으로 음식을 차릴 수 없다는 뜻으로, 손님대접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역자]
역주11 坐事 : 사건에 휩쓸려들다. 연좌되다.[역자]
역주12 伏法 : 형벌을 받아 죽다. 伏誅와 같다.[역자]
역주13 : 籍沒하다. 즉, 중죄인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그 목록을 장부에 기재하다.[역자]
역주14 麻鞋 : 삼으로 짚신처럼 삼은 신, 미투리의 뜻이다.[역자]
역주15 奧博 : 깊이 감추고 폭이 드넓다[幽隱而廣博]는 말이다. 《文選》에 수록된 陸士衡의 〈君子有所思行〉에서 “좋겠구나! 膏粱珍味 먹는 사람들은, 가업을 꾸려 깊고도 넓구나.”라 하였고, 李善 注에서 韋昭의 《漢書》 注를 인용하여 “生은 生業이다.”라 하였으며, 《廣雅》를 인용하여 “奧는 감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盧文弨]
李周翰의 注에서는 “생업을 꾸려나가는 것이 심오하고 또 광박하다는 말이다.”라 하였다.[王利器]
깊이 감춘 재산이 폭넓고 다양하다. 결국 재산이 많다는 뜻이다.[역자]
역주16 銅甌(구) : 甌는 술을 담는 그릇으로 본서 제8 〈勉學〉篇에도 “梁 元帝가 은 사발에 달콤한 山陰酒를 채워놓고[梁元帝以銀甌貯山陰甛酒]”라는 표현이 나온다.[王利器]
역주17 : 구
역주18 數臠(련)麞肉 : 몇 점의 노루고기. 臠은 저민 고기인데, 여기서는 저민 고기를 세는 단위로 사용되었다.[역자]
역주19 : 련
역주20 單率(솔) : 간단하고 소홀하다. 단촐하다.[역자]
역주21 : 솔
역주22 愕然 : 몹시 놀라는 모양이다.[역자]
역주23 俛(부)仰命益 : 우물쭈물하면서 〈술과 고기를〉 더 가져오라고 명하다. 여기서 俛仰은 상황에 맞추어 적당히 얼버무린다는 뜻이다.[역자]
역주24 : 부
역주25 某郎 : 六朝人들은 사위를 ‘郎’이라 불렀다. 《資治通鑑》 201의 胡三省 注에 “요즘 사람들도 여전히 사위를 ‘郞’으로 부른다.”라 하였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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