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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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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名譽慾이 지나쳐서
7. 명예욕名譽慾이 지나쳐서
예전에 수문영조修文令曹(문림관文林館)에 있을 때, 산동山東학사學士관중關中태사太史역법曆法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凡十餘人, 紛紜累歲,
모두 십여 명이 이러쿵저러쿵 여러 해 계속해서 다투자, 내사內史에서 의관議官수문영조修文令曹에다 평결을 해주도록 이첩해왔다.
吾執論曰:“大抵諸儒所爭, 爾。
나는 이 문제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였다. “대체로 여러 학자들이 다투는 것은 사분법四分法감분법減分法의 두 가지 역법曆法입니다.
歷象之要, 可以測之。今驗其, 則四分疏而減分密。
천체 운행의 요체는 해그림자로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그중 춘분春分추분秋分, 동지冬至하지夏至, 일식日蝕월식月蝕을 검증해볼 것 같으면, 사분법四分法은 소략하고 감분법減分法은 정밀합니다.
疏者則稱政令有寬猛, , 非算之失也;
소략한 사분법四分法을 주장하는 이들은, 정치와 법령이 너그럽고 엄격할 때가 있어서 〈해나 달의〉 운행이 남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하는 것이지, 계산의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密者則云日月有遲速, 以術求之, 預知其度, 無也。
정밀한 감분법減分法을 주장하는 이들은, 해와 달의 운행은 빠를 때도 있고 더딜 때도 있는데, 정확한 방식으로 계산을 해서 그 정도를 미리 예측해야지 길흉吉凶을 따지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用疏則, 用密則任數而
소략한 방식을 쓰면 이러한 〈길흉을 따지는〉 간사한 유언流言의 소지를 덮어두어 불신이 생겨나고, 정밀한 방식을 쓰면 숫자만 믿다가 경전經典과 어긋나게 됩니다.
且議官所知, 不能精於訟者, 以淺裁深, 安有肯服?
또한 의관議官이 아는 것은 송사訟事의 당사자보다 더 나을 수가 없으니, 얕은 지식을 가지고 전문적인 분야를 재단해서야 어찌 수긍하려 들겠습니까?
旣非所司, 。” 擧曹貴賤, 咸以爲然。
법령에 따라 맡은 사항도 아니고 하니, 부디 판결하지 말도록 합시다.” 부서에서는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다들 좋다고 했다.
有一禮官, 恥爲此讓, 苦欲, 强加
그런데 예관禮官 한 사람이 이렇게 반려하는 것이 창피했던지, 한사코 붙들고 머뭇거리면서 억지로 생각을 짜내려 하였다.
旣薄, 無以測量, 還復採訪訟人, 窺望長短, 朝夕聚議, 寒暑煩勞。
전반적인 지식이 박약한 데에다 직접 관측해볼 수도 없으니, 송사의 당사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아침저녁으로 모여 논의하며 추위와 더위 속에 고생하였다.
, 竟無, 怨誚滋生, 赧然而退, 終爲內史所迫:此好名之辱也。
봄이 가고 또 겨울이 왔지만 끝내 판결을 내리지 못하자, 원망과 비난이 쏟아져 얼굴을 붉히고 물러났는데 결국 내사內史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았다. 이는 명성名聲을 좋아하다 초래한 치욕이다.
역주
역주1 修文令曹 : 《北齊書》 〈顔之推傳〉에 “河淸 말에 文林館의 待詔가 되었고, 祖珽으로부터 크게 중시를 받아 文林館 일을 주관하여 맡게 되었다.”라고 하였다.[趙曦明]
文林館을 가리킨다.[역자]
역주2 山東學士與關中太史競歷 : 《隋書》 〈百官志〉에 “秘書省은 著作과 太史의 두 부서를 통괄하고, 太史에는 令과 丞을 각각 두 사람씩, 司歷 두 사람, 監候 네 사람을 두었다. 이곳의 歷, 天文, 漏刻, 視祲(침) 등에 각각 博士와 生員을 두었다.”라 하였다.[趙曦明]
競歷은 曆法에 대해 논쟁한다는 말이다. 이는 武平 7년에 董峻과 鄭元偉가 天保의 역법을 비판하는 주장을 한 것을 가리키는데, 《隋書》 〈律曆志 中〉에 나온다. 〈律曆志〉에서는 “논쟁이 결말나기 전에 결국 나라의 멸망이 이어졌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결국 더 보태지거나 빠진 것이 없었다.[竟無予奪]”라고 한 것과 부합한다. 顔之推는 “부서 전체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들 그렇다고 여겼다.[擧曹貴賤 咸以爲然]”라 했는데, 그렇다면 분명 北齊에서 修文令曹에 있을 때의 일이다.[王利器]
歷은 曆과 통용하는 글자이다.[역자]
역주3 內史牒付議官平之 : 《隋書》 〈百官志〉에서 “內史에는 令 두 사람과 侍郞 네 사람을 두었다.”라 했다.[趙曦明]
牒은 《說文解字》에서 “패[札]”라 했고, 《廣韻》에서는 “글 쓸 때 밑에 받치는 널조각[書版]”이라 하였다. 생각건대, 후세에는 관청에서 문서를 보내는 것을 일컬어 牒이라 한다. 平은 시비를 가린다는 말이다. 《後漢書》 〈霍諝(곽서)傳〉에서 “앞서 부드러운 가르침으로, 평결[平議]을 허락해주셨다.”라고 하였다.[盧文弨]
徐師曾의 《文體明辯》에서 公移의 조항에 대하여, “생각건대, 公移란 관리들이 서로 넘겨주는 글인데, 그 명칭들이 각기 달라서 公移로 포괄한 것이다. 唐代에 아래에서 위로 전달하는 것으로는 그 형식이 모두 여섯 가지 있었다.……여섯 번째를 牒이라 하였는데, 일정 등급 이상의 公文을 모두 牒이라 불렀다. 宋의 제도에서는 六部에서 서로 전달할 때 公牒을 사용하였다.……오늘날의 제도에는……관리들이 서로 전달하는 것을 牒이라 한다.……대체로 前代의 제도를 따르면서 거기에 덧붙이거나 뺀 것일 뿐이다.”라 하였다.[王利器]
內史에서 議官에 공문서를 이첩하여 평결을 요청하다. 여기서 議官은 修文令曹, 즉 文林館을 가리킨다.[역자]
역주4 四分幷減分兩家 : 《續漢書》 〈律歷志〉에서 “元和 2년, 太初曆에 天體의 운행이 더욱 멀어지는 문제가 있어서, 治歷인 編訴와 李梵 등을 불러서 그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로잡게 하고, 마침내 四分法을 고쳐서 시행하도록 詔書를 내려 堯曆에 맞추었다. 嘉平 4년(A.D. 175), 蒙公은 宗紺의 손자인 宗誠의 上書를 빌미로 宗紺의 방식을 받아들여 다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 宗誠의 방식은, 135개월에 23회의 日蝕을 기준으로 곱하고 나누어서 한 달을 정하며, 建康 이전은 41일을 빼고 建康 이후로는 35일을 빼는 것이었다.”라 하였다.[趙曦明]
建康은 漢 順帝의 年號로서 겨우 1년이었고, A.D. 144년에 해당한다.[王利器]
지구에서 볼 때 黃道를 운행하는 태양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주기, 즉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주기를 365.25일(실제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2422일)로 파악하고 이를 曆法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전국시대부터였다. 이를 四分曆法이라고 하는데, 이른바 堯曆, 顓頊曆, 夏曆, 殷曆, 周曆, 魯曆 등 六家의 曆法이 모두 여기에 속하며, 다들 전국시대에 나온 것이다. 秦始皇은 이들 중 天象과 가장 가까운 顓頊曆을 사용하였는데, 漢 武帝 때에 이르자 실제 天象 운행과의 오차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B.C. 104년에 새로 고안해낸 역법이 太初曆이다. 이것은 天象의 實測과 春秋 이래 사관들의 기록을 근거로 135개월 중에 23회의 日蝕이 있었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을 365.2502일로 산정한 것이다. 太初曆은 일식 등의 천문 현상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등 천문 분야에서 진보적인 성과였지만, 이는 四分曆法보다도 실제와의 오차가 더 커서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東漢 靈帝 嘉平 4년에 宗誠은 135개월에 23회의 일식을 근거로 하면서, 매년 매월 남는 시간을 빼버리는 방식을 주장했다. 하지만 宗誠은 해와 달이 운행하는 정확한 시간을 계산해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 그리고 朔望의 계산이 완전하지 못하였다. 宗誠이 고안한 曆算 방식이 바로 顔之推가 말하는 減分法이다.
이 이후로도 천문 분야의 발견과 발전은 부단히 지속되었는데, 漢末에 劉洪은 달의 운행 속도를 측정하였고, 魏 明帝(222~232) 때에는 楊偉가 黃道와 白道(달의 운행궤도)가 만나는 점이 매년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晉 成帝(330 전후) 때에는 虞喜가 歲差, 즉 동지점이 매년 뒤로 이동하여 약 70년 후에는 1도 옮겨간다는 사실을 발견해내었다. 南朝 劉宋 때에는 祖冲이 이러한 과학지식들을 바탕으로 보다 정확한 大明曆을 만들었는데, 이 曆法에서 1년의 길이는 현대과학에서 밝혀낸 것과 불과 50초의 차이밖에 나지 않고, 1달의 길이는 그 차이가 1초가 채 되지 않는 정확한 것이었다. 또 東魏와 北齊의 張子信은 태양의 운행이 빠르고 느릴 때가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張氏는 顔之推와 동시대인이다. ‘減分’을 주장한 이 일파는 어쩌면 당시 이러한 가장 선진적인 과학지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兪學詩‧徐懷]
四分曆法과 減分曆法의 두 가지 방식이다.[역자]
역주5 晷景(귀영) : 晷는 해그림자이다. 景은 옛 ‘影’자이다. 葛洪이 처음으로 ‘彡’을 덧붙였는데, 본서 제17 〈書證〉편에 자세히 나온다.[盧文弨]
《漢書》 〈天文志〉에서 “해에는 中道가 있고 달에는 九行이 있다. 中道란 黃道로서 光道라고도 한다. 光道가 북쪽으로 東井에 이르면 北極으로부터 가까워지고, 남쪽으로 牽牛에 이르면 北極으로부터 멀어지는데, 동쪽으로는 角에 서쪽으로는 婁에 이를 때 兩極으로부터 가운데가 된다. 夏至에 東井에 이르면 북쪽으로 극에 가까워지므로 그림자가 짧아지는데, 8자의 표지를 세우면 해그림자는 길이가 1자 5치 8푼이 된다. 동지에 牽牛에 이르면 극에서 멀어지니 그림자는 길어져서, 8자의 표지를 세우면 해그림자는 길이가 3자 1치 4푼이 된다. 이날 극으로부터 遠近의 차이가 해그림자의 長短을 만드는데, 극으로부터 원근은 알기 어려우므로 해그림자를 〈대신해서〉 가져다 쓴다. 해그림자란 해의 南北을 알기 위한 것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6 分至薄蝕 : 分至는 春分, 秋分, 夏至, 冬至를 말한다. 《漢書》 〈天文志〉에 “해와 달이 어두워지며 먹어 들어간다.[日月薄食]”라 하였고, 注에서 “해와 달이 빛이 없는 것을 薄이라 하는데, 京房의 《易傳》에서는 ‘해와 달이 적황색이 되는 것이 薄이다.’라 하였다. 어떤 이는 ‘엇갈리지 않고 食이 되는 것을 薄이라 한다.’라 하였으며, 韋昭는 ‘氣가 가서 핍박하는 것이 薄이고, 먹어 들어가는 것이 食이다.’라 했다.” 하였다. 蝕과 食은 통용된다.[王利器]
여기서 薄은 개기일식과 개기월식을, 蝕은 부분일식과 부분월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역자]
역주7 運行致盈縮 : 盈縮은 남음과 모자람[贏縮]을 말하는 것이다. 《漢書》 〈天文志〉에서 “歲星이 제자리를 넘어서서 앞으로 나오는 것을 남는다[贏]고 하고, 제자리에서 물러서 있는 것을 모자란다[縮]고 한다.”라 하였다. 王先謙의 補注에서는 《占經》에 인용된 《七曜》를 재인용하여, “제자리를 넘어서 앞으로 나오는데, 그것이 있던 별자리 이상으로 한 자리, 두 자리, 세 자리를 넘어가는 것을 남는다[贏]고 하고, 그 자리 이하 한 자리, 두 자리, 세 자리 이상 물러서 있는 것을 모자란다[縮]고 한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8 災祥 : 災祥은 재앙과 祥瑞로움, 즉 吉凶을 말한다. 여기서는 어떤 천문현상을 놓고 吉凶의 징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流言의 소지를 뜻한다.[역자]
역주9 藏姦而不信 : 간사한 모략이 생길 소지를 덮어두다가 불신이 생겨난다. 여기서 姦은 정확하지 못한 曆法으로 인해 생긴 예측하지 못한 천문현상을 두고, 吉凶의 징조라는 流言을 만들어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모략 따위를 뜻한다. 따라서 藏姦은 이러한 모략이 생겨날 소지를 없애지 않고 그냥 덮어둔다는 말이다.[역자]
역주10 違經 : 經典과 어긋나다. 정밀한 減分法에 의한 曆法이, 전통적인 四分曆法을 바탕으로 한 儒家의 經典과 어긋난다는 말이다.[역자]
역주11 格令 : 律令과 같다. 《新唐書》 〈藝文志 刑法類〉에서 “《麟趾格》 4권은 文襄帝 때에 지은 것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12 幸勿當也 : 《史記》 〈張釋之傳〉에서 “廷尉는 한 사람이 귀인의 행차를 방해한 것에 해당하므로 벌금형에 처할 것[當罰金]을 상주하였다.”라 하였고, 《索隱》에서 崔浩의 말을 인용하여, “當은 그 죄를 처분한다는 말이다.”라 하였는데, 바로 이 ‘當’자의 뜻이다.[林思進]
幸은 ‘바라다, 희망하다’, 當은 ‘처리하다, 처분하다’는 뜻으로, 시비를 판단한다는 말이다.[역자]
역주13 留連 : 놓고서 떠나지 못하고 오래 머무르다.[역자]
역주14 考覈(핵) : 곰곰이 생각하여 밝혀내다.[역자]
역주15 機杼(저) : 가슴속에 담고 있는 일의 전말을 말한다.[盧文弨]
본서 제10 〈名實〉편에서 “그가 쓴 글들 중에는, 직접 짜낸 게[機杼] 아닌 것들이 많다고 의심을 하였다.”라 하였고, 《魏書》 〈祖瑩傳〉에서는 “祖瑩은 늘 남들에게 말하기를 ‘문장이란 모름지기 機杼에서 뽑아져 나오면 반드시 一家의 風骨을 이루어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남들과 함께 살 수가 있겠소?’라 했다.” 하였다. 비유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이 또한 六朝人들이 늘 쓰는 표현이다.[王利器]
역주16 背春涉冬 : 《文選》의 〈上林賦〉에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지낸다.[背秋涉冬]”라 하였고, 〈閑居賦〉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지낸다.[背冬涉春]”라 하였으며, 〈七發〉에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지낸다.[背秋涉冬]”라 하였는데, 句法이 이와 같다. 《春秋穀梁傳》 襄公 27년의 疏에서 徐邈의 말을 인용하여 “涉은 지낸다[歷]는 뜻이다.”라고 했다. 背春涉冬이란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봄이 가고 겨울이 왔다는 뜻과 같다.[王利器]
역주17 予奪 : 주는 것과 빼앗는 것, 여기서는 是非를 가리다, 즉 판결하다는 뜻이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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