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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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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後漢書》 〈明帝紀〉의 ‘小侯’
26. 《후한서後漢書》 〈명제기明帝紀〉의 ‘소후小侯
후한서後漢書》 〈명제기明帝紀〉에 “사성四姓소후小侯들을 위하여 학교學校를 세웠다.”는 구절이 있다.
按:桓帝, 又賜小侯帛, 是知皆外戚也。
생각건대, 환제桓帝관례冠禮를 행하고 또한 사성四姓양씨梁氏, 등씨鄧氏 등의 소후小侯들에게 비단을 하사下賜하였으므로, 이를 통해 그들 모두가 외척外戚임을 알 수 있다.
明帝時, 外戚有。謂之小侯者, 或以年小獲封, 故須立學耳。
명제明帝 때에 외척外戚으로 번씨樊氏, 곽씨郭氏, 음씨陰氏, 마씨馬氏가 있었는데 이들이 사성四姓이었다. 이들을 소후小侯라고 일컬은 것에 대해, 어떤 이는 어린 나이에 책봉冊封되었고 그래서 학교學校를 세워야 했을 뿐이라고 한다.
或以, 侯非列侯, 故曰小侯, 《禮》云:“。” 則其義也。
어떤 이는 시사후侍祠侯외제후猥諸侯, 조후朝侯신분身分이어서 라고는 하나 〈조회朝會서열序列을 지닌〉 열후列侯가 아니므로 소후小侯라고 했다 하는데, 《예기禮記》에서 “사방의 소후小侯들”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러한 뜻이다.
역주
역주1 漢明帝紀 爲四姓小侯立學 : 漢 앞에는 마땅히 後자가 있어야 한다.[趙曦明]
永平 9년에 보이는 구절이다.[盧文弨]
역주2 加元服 : 《後漢書》 〈安帝紀〉에 보이는 “永初 3년의 春正月 庚子日에 皇帝가 冠禮를 행하였다.”는 구절의 李賢 注에 의하면 “元服이란 冠禮를 말한다.” 하였다.[王利器]
加冠의 뜻으로, 곧 加冠禮를 가리킨다. 加冠禮란 男子가 20세에 冠禮를 행한다는 말로, 이 때문에 ‘관을 쓴다[加冠]’는 말은 만 20세, 곧 成年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冠禮는 宗廟에서 아버지가 주관하여 열리며, 이때 지정된 貴賓이 冠禮를 치르는 青年에게 관을 씌워준다.[역자]
역주3 四姓及梁鄧 : 《後漢書》 〈桓帝紀〉에 의하면 “建和 2년의 春正月 甲子日에 皇帝가 冠禮를 행하고 四姓과 梁氏, 鄧氏 등의 小侯와 諸夫人 이하에게 비단을 하사하되 각각 차등을 두었다.”고 하였다. 四姓은 아래 구절에 보이며, 梁氏와 鄧氏는 〈皇后紀〉에 의하면 “和熹 鄧皇后는 諱가 綏로 太傅 禹씨의 孫女이며, 아버지는 禹訓이니 護羌校尉의 직위에 있었다. 順烈 梁皇后는 諱가 妠(납)으로 大將軍 商씨의 딸이다.”라고 하였다.[盧文弨]
역주4 樊氏郭氏陰氏馬氏爲四姓 : 《後漢書》 〈樊宏傳〉에 의하면 “樊宏은 字가 靡卿으로 南陽郡 湖陽縣 사람이니 世祖의 장인이다.”라고 하였으며, 〈皇后紀〉에 의하면 “光武 郭皇后는 諱가 聖通으로 眞定郡 稾城 사람이니, 아버지가 郭昌으로 郡에 出仕하여 功曹 지위에 있었다. 光烈 陰皇后는 諱가 麗華로 南陽郡 新野縣 사람이니, 오빠 陰識이 將軍이 되었다. 明德 馬皇后는 伏波將軍 馬援의 작은 딸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5 侍祠 : 應劭의 《漢官典職》에는 ‘四姓의 侍祠侯’가 있다.[王利器]
諸侯王과 列侯가 때때로 사신을 수도로 보내 천자를 도와 제사를 모신다는 뜻이다. 혹은 그러한 諸侯王과 列侯, 곧 侍祠侯를 가리킨다. 지위가 九卿의 아래이다.[역자]
역주6 猥朝 : 猥諸侯와 朝侯이다. 猥諸侯는 帝王의 宗室近亲으로서 宿衛를 하거나 親公主의 子孫들로 〈돌아가신 諸侯의〉 분묘를 모시며 수도에 사는 이들인데 小國의 諸侯보다 지위가 낮다. 朝侯는 수도에 살며 봄가을마다 조회에 초대받는 이들로 지위는 三公의 아래이다.[역자]
역주7 庶方小侯 : 《禮記》 〈曲禮 下〉에 의하면 “사방의 小侯들은 天子의 나라에 들어오면 某人이라 불렸고, 天子의 나라 밖에서는 子라 불렸으며, 스스로 부를 때는 孤라 일컬었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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