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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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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虙’자
19. ‘’자
云:“。” 亦云:“虙, 今伏。”
장읍張揖은 “이란 지금의 복희씨伏羲氏이다.”라고 하였으며, 맹강孟康 역시 《한서고문주漢書古文注》에서 “은 지금의 자이다.”라고 하였다.
云:“伏羲或謂之宓羲。” 按諸經史緯候, 遂無宓羲之號。
그러나 황보밀皇甫謐은 “복희伏羲는 혹간 복희宓羲라고도 한다.”고 하나, 경서經書사서史書위서緯書점서占書를 모두 살펴보건대 복희宓羲라는 호칭은 어디에도 없다.
虙字從虍, 宓字從宀, 下俱爲必, 末世傳寫, 遂誤以虙爲宓,
자는 ‘부수部首를 따르고 자는 ‘부수部首를 따르되, 그 밑에는 모두 자를 쓴 것으로 후대後代에 옮겨 쓰면서 마침내 자를 으로 잘못 쓴 것이나,
而《帝王世紀》因誤更立名耳。
황보밀皇甫謐은〉 《제왕세기帝王世紀》에서 이를 좇아 잘못 이름을 바꿔 쓴 것이다.
何以驗之? , 卽虙羲之後, 俗字亦爲宓,
이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공자孔子의 제자 복자천虙子賤이라는 이는 선보單父 땅의 읍재邑宰를 역임한 이로, 바로 복희씨虙羲氏후예後裔였으나, 속자俗字로는 으로도 쓰며, 혹은 다시 자를 더하여 〈로 쓰기도〉 하였다.
今兗州永昌郡城, 舊單父地也, 東門有子賤碑, 漢世所立, 乃曰:“, 卽子賤之後。”
지금의 연주兗州 영창군永昌郡이 옛날 선보單父유적지遺蹟地이다. 동문東門자천비子賤碑가 있는데, 나라 때에 세워진 것으로, “제남濟南복생伏生은 바로 자천子賤후예後裔이다.”라고 쓰여 있다.
是知虙之與伏, 古來通字, , 較可知矣。
이것으로 과 고래로 통용되는 글자였으며, 잘못하여 이라 여겼던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張揖 : 《漢書》 〈序例〉에 의하면 “張揖은 字가 稚讓으로 淸河 사람이다. 혹은 河間 사람이라고도 하며, 魏나라 때의 太中博士이다.”라고 하였다. 張揖의 著作으로는 《舊唐書》 〈經籍志〉와 《新唐書》 〈藝文志〉에 실린 것으로서, 《廣雅》 4권, 《埤蒼》 3권, 《三蒼訓詁》 3권, 《雜字》 1권, 《古文字訓》 3권이 있다.[王利器]
역주2 虙(복) 今伏羲氏也 : 《廣韻》 〈五質〉韻에 의하면 “宓(밀)은 독음이 美畢切(밀)이다.”라 하고, 다시 〈一屋〉韻에 의하면 “虙은 독음이 房六切(복)로 옛적 虙犧를 일컫던 자이다. 《說文解字》에서는 ‘범의 모습이다.[虎貌]’라고 하였으며 또 姓으로도 쓰이니, 虙子賤이란 이름이 이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두 글자는 전혀 다른 자이다. 다시 생각건대, 《佩觿》 上의 “不齊를 宓賤이라 이른다.”는 구절의 原注에서 李涪의 주장을 인용하며 “생각건대, 不齊는 姓이 虙이어서 ‘調伏시킨다’고 할 때의 伏과 독음이 같으므로, 이를 宓이라 쓴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으니, 顔之推의 설명과 맥락을 같이한다.[王利器]
역주3 孟康漢書古文注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梁나라 때 《漢書孟康音》 9권이 있었다.”고 하였다.[趙曦明]
嚴式誨에 의하면 “생각건대, ‘古文’ 2자는 아마 ‘亦云’ 2자 밑에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周法高]
역주4 皇甫謐 : 《晉書》 〈皇甫謐傳〉에 의하면 “皇甫謐은 字가 士安으로, 아명은 靜이며 安定郡 朝那縣 사람이다.……그가 지은 詩賦, 誄頌이나 論難의 글이 몹시 많으며, 또 《帝王世紀》의 年歷과, 《高士傳》, 《逸士傳》, 《列女傳》 등의 傳記와, 《玄晏春秋》 등을 편찬하였는데 모두 세상에서 중시되었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5 孔子弟子虙子賤爲單父(선보)宰 :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의하면 “宓不齊는 字가 子賤으로 孔子보다 30세가 어렸으니, 孔子는 ‘子賤은 君子로구나! 魯나라에 君子가 없었다면, 그가 어디서 그런 덕을 배웠겠느냐!’고 하였다. 子賤이 單父의 재상이 되어 孔子에게 복명하기를 ‘이 나라에는 저보다 현명한 이가 다섯 분이나 있어 저에게 백성들을 다스릴 방도를 가르쳐주십니다.’라고 하자, 孔子가 ‘안타깝구나! 不齊가 다스리는 나라가 작은 것이. 다스릴 나라가 컸다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6 或復加山 : 곧 密자를 가리킨다. 이는 虙씨가 俗字로 宓씨로 쓰이는 書寫 습관의 폐해를 지적한 구절이다. 《廣韻》에 의하면 宓은 원래 독음이 美筆切(밀) 혹은 彌畢切(밀)로 비밀스럽다[密]나 조용하다[默]의 뜻이다. 사람의 성으로는 독음이 方六切(복)로 읽히기도 하나 《廣韻》에는 아직 수용되지 못한 독음으로, 顔之推는 虙씨를 俗字로 宓(복)씨라고 쓰자 이를 읽는 사람들은 당시에 통용되는 宓(밀)의 독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어 심지어는 密씨인가라고 여기게까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역자]
역주7 濟南伏生 : 《漢書》 〈儒林傳〉에 의하면 “伏生은 濟南郡 사람으로 예전에 秦의 博士였다. 孝文帝 때에 《尙書》를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는데, 당시 伏生은 나이가 90여 세로 늙어서 다닐 수 없자 太常에 조칙을 내려 掌故 晁錯로 하여금 전수를 받으러 가게 하여 28篇을 얻었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8 誤以爲宓 : 《楚辭辯證》에 의하면 “虙妃는 宓妃로도 쓰인다.……《集韻》에서는 ‘虙은 伏과 같은 자이니 虙犧氏의 뜻이며 姓으로도 쓰인다. 宓(밀)은 密과 같은 자이며, 이 또한 姓으로도 쓰이나 항간에서 〈姓으로 쓰인 것을〉 密자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하였다.[王利器]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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