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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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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勉學했던 宦官의 殉節
16. 勉學했던 宦官의 殉節
齊有宦者, 本也。
이 무렵 안지추顔之推북제北齊황문시랑黃門侍郞의 지위에 있었다.[역자]
북제北齊전붕란田鵬鸞이란 환관이 있었는데 본래 만족蠻族이었다.
年十四五, 初爲
, 便知好學, 懷袖握書, 曉夕諷誦。
나이 열너덧에 처음 환관이 되자마자 곧 공부에 재미를 느껴 책을 끌어안은 채 움켜쥐고 밤낮 없이 외고 암송하였다.
所居卑末, 使彼苦辛, 時伺閒隙,
맡은 직급이 아주 낮아 시키는 일이 힘들고 괴로워도 한가한 틈을 살펴 사방을 두루 돌면서 묻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每至, 氣喘汗流, 問書之外, 不暇他語。
매번 문림관文林館에 들를 때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땀을 흘리곤 했는데 책에 대해 묻는 것 외에 다른 말은 할 겨를도 없었다.
及睹古人節義之事, 未嘗不感激久之。
옛사람들의 절조節操의리義理에 관한 일들을 보게 되면 일찍이 감격하여 오랫동안 음미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吾甚憐愛, 倍加
나는 그를 대단히 좋아하여 한층 더 이끌고 격려해주었다.
後被, 賜名敬宣, 位至
후일 그는 인정받고 예우를 받아 경선敬宣이란 이름도 하사받고 지위도 시중개부侍中開府에 이르렀다.
後主之奔, 遣其西出, 動靜, 爲周軍所獲。
북제의 후주後主청주靑州로 달아날 적에 그를 서쪽으로 내보내고 동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북주北周의 군사에게 붙잡혔다.
問齊主何在, 云:“已去, 計當出境。”
북제北齊군왕君王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속여서 말하기를 “일찌감치 떠났으니 국경을 벗어났으리라고 여겨진다.”고 하였다.
疑其不信, 歐捶服之, 每折一, 愈厲, 竟斷四體而卒。
북주北周의 군사가〉 이를 의심하고 믿지 않았으므로 그가 실토하도록 때렸는데, 사지四肢가 하나씩 잘릴 때마다 말씨와 안색이 더욱 준엄해지다가 끝내 사지四肢가 다 잘려서 죽었다.
蠻夷童丱, 猶能以學成忠,
만이蠻夷의 어린아이조차 오히려 배움을 통하여 충성忠誠을 이룰 수가 있었으니, 북제北齊장상將相들은 경선敬宣의 종만도 못하다.
역주
역주1 內參 : 곧 ‘太監’이다. 《資治通鑑》 172의 胡三省의 주석에 의하면 “內參이란 모든 환관을 일컫는 말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2 鵬鸞 : 《北齊書》나 《北史》 〈傅伏傳〉에 실린 이 글에는 어디에도 ‘鵬’자 밑에 ‘鸞’자가 없다.[王利器]
역주3 蠻人 : 당시 河南郡 境內에 거주하던 少數民族이다. 《水經注》 〈淮水〉에 “北魏의 太和 연간에 蠻族 田益宗이 성의를 다하였으므로 東豫州를 설치하며 그를 刺史로 삼았다.”고 하였다. 田鵬鸞은 대개 田益宗의 일족일 것이다.[王利器]
역주4 閽寺(혼시) : 宦官, 혹은 閽人과 寺人이다. 곧 궁중이나 부귀한 집의 문지기이다.[역자]
역주5 閽寺 : 혼시
역주6 周章 : 《楚辭》 〈九歌 雲中君〉에 보이는 “문득 즐겁게 노닐며 周遊한다.[周章]”는 구의 王逸 注에 의하면 “周章이란 周遊하다[周流]의 뜻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본서 제6 〈風操〉篇 37 주 4) 참조.[역자]
역주7 詢請 : 물어서 가르쳐주기를 청하다.[역자]
역주8 文林館 : 《北齊書》 〈文苑傳〉에 “後主가 儒學에 관심을 두었다. 武平(570~576) 3년에 祖珽이 文林館 세우기를 주청하자 다시 文學士를 불러들이고 그를 待詔文林館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생각건대 《北史》 〈齊本紀〉에 “後主는 武平 4년 2월 丙午日에 文林館을 설치하였다.”고 하였다.[王利器]
北齊의 後主 高緯(556~578)가 設立한 文人學士 위주의 機構이다. 規模가 성대하여 南北朝 後期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으며, 唐代의 史官들이 北朝의 史書를 편찬할 때도 곧잘 이곳을 언급하였다.[역자]
역주9 沈吟 : 胡三省의 《資治通鑑》 75의 주석에 “沈吟이란 망설이다[未決]의 뜻으로, 요즘 사람들도 여전히 이 말을 쓰고 있다.”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읊다[詠嘆]의 뜻이다.[王利器]
여기서는 되뇌이며 음미하는 것이다.[역자]
역주10 開獎 : 이끌고 격려하다. 혹은 당첨자를 발표하다.[역자]
역주11 賞遇 : 인정받고 예우받다.[역자]
역주12 侍中開府 : 《北齊書》나 《北史》에서는 모두 開府中侍中이라 일컬었다.[王利器]
《隋書》 〈百官志〉에 “中侍中省은 궐문의 출입을 관장하며, 中侍中은 두 사람을 둔다.”고 하였다.[趙曦明]
中侍中은 환관이 맡는다.[周法高]
역주13 靑州 : 後魏시대에는 樂安에 靑州를 설치하였으니 곧 지금의 山東省 廣饒縣 관할지역이며, 나중에는 東陽城으로 옮겨 다스렸으니, 곧 지금의 山東省 益都縣의 관할지역이 이곳이다.[王利器]
역주14 參伺 : 정찰하다. 엿보다.[역자]
역주15 紿 : 태
역주16 : ‘肢’와 뜻이 통한다.[王利器]
역주17 辭色 : 말씨와 〈그 말을 하는〉 기색이나 태도이다.[역자]
역주18 齊之將相 比敬宣之奴不若也 : 將相이란 開府儀同三司 賀拔伏恩과 封輔相, 慕容鍾葵 등 宿衛하던 近臣 30여 명을 일컬은 말이니 이들은 서쪽 北周의 진영으로 달아났으며, 穆提婆와 侍中 斛律孝卿은 모두 北周에 투항하였다. 高阿那肱은 北周의 군대를 불러들인 다음 北齊의 君主를 생포해서 데려오기로 약속하고, 누차 사람을 보내 賊軍이 멀리 있다고 알리며 달아나는 길을 멈추고 늦추게 하여 사로잡히게 유도하였다. 이 때문에 顔之推가 이처럼 분통해하는 말을 한 것이다.[盧文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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