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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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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늙어서도 學問에 힘써야
9. 늙어서도 學問에 힘써야
人生小幼, 精神專利, 長成已後, 思慮散逸, 固須早敎, 勿失機也。
인생人生이란 어릴 때는 정신이 집중되고 예민하나 장성한 뒤로는 생각이 흩어져 달아나니, 참으로 일찌감치 가르쳐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만 한다.
吾七歲時, 誦, 至於今日, 十年一理, 猶不遺忘;二十之外, 所誦經書, 一月廢置, 便至荒蕪矣。
나는 일곱 살 때 〈영광전부靈光殿賦〉를 외웠는데 오늘날까지 10년에 한 번씩 정리할 뿐이건만 오히려 잊히지가 않으나, 스물이 넘어 외운 경서經書는 한 달만 덮어두어도 그만 다 잊어버리고 만다.
然人有, 失於, 猶當晩學, 不可自棄。
그럼에도 누군가 불우하여 소년기를 잃어버렸다면 오히려 늦게라도 배워야 할 것이니,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공자孔子께서는 “오십에 《주역周易》을 배우면, 큰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 此皆少學而至老不倦也。
조조曹操원유袁遺는 늙어서도 더욱 열심히 배웠으니, 이는 모두가 어려서부터 배우되 늙도록 게을리 하지 않은 예들이다.
, 名聞天下;, 以此遂登丞相;二十, 始受《孝經》、《論語》, 皆終成大儒:此竝早迷而晩寤也。
증자曾子는 나이 일흔에 비로소 배워서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으며, 순경荀卿은 나이가 쉰이 되고서 처음 유학을 떠났지만 오히려 대유학자가 되었으며, 공손홍公孫弘은 나이 마흔에 비로소 《춘추春秋》를 읽었으나 이 때문에 마침내 승상으로 등용되었으며, 주운朱雲 역시 마흔에 처음 《주역周易》과 《논어論語》를 읽기 시작하였고 황보밀皇甫謐은 나이 스물에 처음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교육받기 시작하였으나 모두 마침내 대유학자가 되었으니, 이들은 모두가 어려서는 방황하다가 뒤늦게야 깨달았다.
世人未學, 便稱, , 亦爲愚耳。
세상 사람들은 혼례婚禮관례冠禮를 치를 무렵〈의 젊은 시절〉에 미처 배우지 못하면 곧 늙어서 늦었다고 치부해버리니, 이 때문에 꾸물거리며 담만 마주보고 있다면 이 또한 어리석을 따름이다.
幼而學者, 如日出之光;老而學者, , 猶
어려서 배우는 것은 태양이 솟아오르며 빛을 비추는 것과 같고, 늙어서 배우는 것은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나, 그래도 눈을 감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없는 것보다는 낫다.
역주
역주1 靈光殿賦 : 《後漢書》 〈文苑傳〉에 “王逸의 아들 延壽는 字가 文考로 빼어난 재주가 있어 어릴 때 魯나라를 유람하며 〈靈光殿賦〉를 지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文選》에 보인다.[趙曦明]
역주2 坎壈(람) : 《楚辭》 〈九辯〉에 “곤궁해라[坎廩兮]! 가난한 선비가 직책도 잃어, 그 마음 편치 않으리.”라고 하였으니, 《五臣注文選》에 “坎壈이란 ‘곤궁하다[困窮]’는 뜻이다.”라고 하였다.[盧文弨]
역주3 : 람
역주4 盛年 : 少年期이다. 陶淵明의 〈雜詩〉의 한 구절 “盛年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리, 하루에 아침이 두 번 있기는 어려우니.”에서 盛年을 아침에 비유하고 있으므로 대개 人生의 初年을 가리킨다.[역자]
역주5 孔子云…可以無大過矣 : 《論語》 〈述而〉篇의 何晏(魏)의 《集解》에는 “《周易》은 사물의 도리를 궁구하고, 인간의 天性을 이해함으로써 命運에까지 미친 것이다. 나이 50이면 天命을 아는바 ‘知命’의 나이에 ‘至命’의 책을 읽은 것이니 이 때문에 큰 허물이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可以無大過也]”라고 하였으며, 朱熹의 《論語集註》에서는 “《周易》을 배우면 吉凶盛衰의 이치와 進退生死의 도리에 밝으니, 이 때문에 큰 허물이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라고도 하였다.[王利器]
역주6 魏武袁遺 老而彌篤 : 《魏志》 〈武帝紀〉의 주석에 “太祖(曹操)는 30여 년 군대를 이끄는 동안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낮이면 군사책략을 강론하고 밤이면 경전을 사색하였다. 높은 곳에 오르면 반드시 노래를 지었는데, 새로운 시를 지으면 이를 음악에 실어 모두 樂章으로 완성시켰다. 袁遺는 字가 伯業으로 袁紹의 從兄이며 長安令이었다. 河間의 張超가 일찍이 袁遺를 太尉 朱俊에게 천거하며 세상에 으뜸가는 미덕과 세상을 다스릴 기량을 지녔다고 찬양하였다. 曹操는 ‘나이 먹어서도 부지런히 배울 수 있는 이는 오직 나와 袁遺뿐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7 曾子七十乃學 : 《類說》에는 ‘七十’이 ‘十七’로 되어 있다. 黃叔琳에 의하면 “曾子는 孔子보다 46세나 어렸으니, 학문을 늦게 시작한 이가 아니므로, 당연히 다른 曾子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며, 孫志祖는 《讀書脞錄》 4에서 “盧文弨는 《淮南子》 〈說林〉篇에 근거하여 ‘呂望은 나이 七十에 비로소 책읽기를 배워 九十의 나이에 文王을 위해 太師가 되었다.’고 주석하면서 ‘曾子’는 ‘呂望’이 잘못 쓰인 것이 아닐까 하였으나, 대개 曾子는 孔子보다 46세가 적으면서도 孔子의 문하에 들어가 배웠으니 반드시 少年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七十’이 ‘十七’이 잘못 쓰인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典籍을 통하여 확실히 증거할 방법은 없다.”라고 하였다. 《大戴禮記》 〈保傅〉篇, 《白虎通》 〈辟雍〉篇, 《漢書》 〈食貨志〉, 《漢書》 〈藝文志〉 및 《說文解字》 〈敍〉에 의하면, 옛날에는 8세에 小學에 들어갔으므로 17세면 이미 과거를 치르기 시작하여 합격한 이들은 벼슬길에 입문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曾子는 17세에 비로소 배우기 시작하였으니, 8세와 비교하면 이미 9년이나 늦은 때이므로 晩學하였다고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王利器]
역주8 荀卿五十…猶爲碩儒 : 《史記》 〈孟荀列傳〉에 “荀卿은 趙나라 사람으로 나이가 50일 때 비로소 齊나라에 유학하러 왔다.”고 하며, 〈索隱〉에 “荀卿은 이름이 況이다. 卿이라 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그를 높여 卿이라 부른 것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9 公孫弘四十餘 方讀春秋 : 《漢書》 〈公孫弘傳〉에 “公孫弘은 甾川郡 薛縣 사람으로 나이 40세에 비로소 《春秋》와 百家의 學說을 배웠으며, 60세에 博士가 되었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0 朱雲亦四十 始學易論語 : 《漢書》 〈朱雲傳〉에 “朱雲은 字가 游로 魯나라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목숨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협객이었으나 나이 40에 전향하고서 博士 白子友에게 《周易》을 배웠으며, 또 將軍 蕭望之를 섬기며 《論語》를 전수받아 모두 그 학업을 전수받았으므로 당시 세상에서 그를 높이 떠받들었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1 皇甫謐(밀)二十…皆終成大儒 : 《晉書》 〈皇甫謐傳〉에 “皇甫謐은 字가 士安으로 安定郡 朝那縣 사람이다. 나이가 스물이 되도록 배우기를 좋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流浪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후일 叔母 任氏가 그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서야 感激하고는 마을 사람 席坦에게 배움을 구하여 부지런히 힘쓰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침내 典籍과 百家의 철학서들을 널리 종합하여 著述에 힘을 썼으니 스스로 玄晏先生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2 : 밀
역주13 婚冠 : 婚禮와 冠禮를 치를 무렵의 젊은 시절이다.[역자]
역주14 遲暮 : 〈離騷〉의 시구 “초목에 지는 잎을 생각하면, 고운 님 더디고 늦을까[遲暮] 근심일세.”에 대한 王逸의 주석에 의하면 “遲란 ‘늦다[晩]’의 뜻이다.” 하였다.[王利器]
역주15 因循 : 답습하다. 혹은 꾸물거리다. 지체하다.[역자]
역주16 面牆 : 《論語》 〈陽貨〉篇에 “사람이 되어 周南과 召南을 익히지 않는다면, 마치 ‘담을 향해[牆面]’ 선 것과 같으리!”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17 如秉燭夜行 : 《說苑》 〈建本〉篇에 “師曠이 말하기를 ‘어릴 때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태양이 그 빛을 드러내는 것과 같으며, 장성해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태양이 중천에서 빛나는 것과 같으며, 늙어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촛불로 밝히는[炳燭之明] 것과 같으니, 촛불로 밝히는 것이 어둠 속에서 길을 가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느냐’고 하였다.”라고 하였다.[盧文弨]
역주18 賢乎瞑目而無見者也 : 《抱朴子》 〈外篇 勗學〉篇에 “겨룰 이가 없을 만큼 뛰어난 재능으로 한창 시절에 변고가 생겨 비록 〈해가 떠오르는〉 暘谷에서 기회를 놓쳤을지라도 〈해가 지는〉 虞淵에서라도 이를 거두면, 그제야 비옥한 논밭은 늦게 파종하더라도 한 해가 다 가도록 황폐하게 버려진 것보다 나은 줄을 알 터이니 해와 촛불로 깨우쳐주는[日燭之喩] 말인즉, 이 말이 옳다.”고 하였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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