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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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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름과 字
21. 이름과 字
옛날에는 이름으로 개인을 구분하고 로 덕을 나타내었는데, 이름은 돌아가시고 나면 피휘避諱하여 쓰지 않았지만 는 손자의 로 삼을 수 있었다.
공자孔子의 제자로서 〈공자孔子의〉 일을 기록한 이들은 다들 〈그를 인〉 중니仲尼라 불렀고, 여후呂后는 평민 시절에 일찍이 고조高祖로 불러서 라 한 적이 있고, 한대漢代원종爰種은 그의 숙부를 로 불러서 라 하였으며, 왕단王丹후패侯霸의 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후패侯霸로 불러서 군방君房이라 하였는데, 강남에서는 지금까지도 를 피휘하지 않는다.
하북河北사인士人들은 이를 전혀 따지지 않는데, 이름도 로 부르고 도 물론 로 부른다.
상서尙書였던 왕원경王元景 형제를 다들 명사라 하였지만 그의 부친 이름인 ‘’자와 인 ‘나한羅漢’을 모두 다 피휘하였으니, 그 나머지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역주
역주1 名以正體 字以表德 : 《演繁露》 續6에 인용된 《西京雜記》 4卷에서 “梁孝王의 아들 賈가 나이가 어렸을 때 竇太后가 억지로 그에게 冠을 씌워주려고 하자, 그는 거절하며 ‘禮에 스무 살에 冠禮를 행하고, 冠禮를 하고 나면 字를 짓고, 字로써 덕을 나타낸다고 하였는데, 어찌 억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했다.”라 하였다. 陸機는 《老學庵筆記》 2에서 “字는 그 사람의 덕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유학자들이 孔子를 일컬어 仲尼라 하는 것은 낮추어 부르는 말이 아니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2 名終則諱之 : 《春秋左氏傳》 桓公 6년에 “이름은 돌아가시고 나면 그것을 피휘하여 쓰지 않았다.”라 하였다.[盧文弨]
《禮記》 〈曲禮〉에서 말한 “哭을 끝내면 피휘한다.”에 해당한다.[王利器]
역주3 字乃可以爲孫氏 : 손자가 祖父의 字를 氏로 삼은 예로는, 無駭가 죽자 祖父의 字인 展을 氏로 삼게 했다는 기록이 《春秋左氏傳》 隱公 8년조에 나온다.[趙曦明]
역주4 仲尼 : 《論語》 〈子張〉에서 “仲尼는 헐뜯을 수가 없다.”라고 한 것이나, “仲尼는 해와 달이다.”라고 한 것이 그 예이다.[王利器]
孔子의 字이다.[역자]
역주5 呂后微時 嘗字高祖爲季 : 《史記》 〈高祖本紀〉에 “姓은 劉氏이고 字는 季이다. 秦始皇이 늘 말하기를 ‘동남쪽에 天子의 기운이 있다.’라고 하여 동쪽으로 巡狩하여 그 기운을 누르려 하였다. 高祖는 바로 그 낌새를 눈치채고 달아나서는, 芒山과 碭山 골짜기의 바위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呂后가 사람들과 함께 그를 찾으면 언제나 찾아내었다. 高祖가 이상히 여겨 물어보면, 呂后는 ‘季가 있는 곳 위에는 늘 雲氣가 있어, 그리로 가보면 언제나 季를 찾게 되지요.’라고 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6 至漢爰種 字其叔父曰絲 : 《漢書》 〈爰盎傳〉에 “爰盎은 字가 絲인데 吳의 재상으로 옮겨가게 되자, 그의 조카 爰種이 絲에게 말하기를 ‘吳王은 교만한 지 오래되었고 나라에 간악한 자도 많은데, 지금 絲는 모질게 다스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숙부께 글을 올려 알려주지 않으면, 날카로운 칼이 숙부를 찌를 것입니다. 남방은 卑濕하니, 絲는 날마다 술만 마시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吳王을 설득해서 모반만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벗어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7 王丹與侯霸子語 字霸爲君房 : 《後漢書》 〈王丹傳〉에 “王丹은 字가 仲回이고 京兆 下邽 사람이다.”라 하였다.[趙曦明]
侯霸의 호칭과 연관된 이야기는 本篇 10 주 1) 참조.[역자]
역주8 江南至今不諱字也…字固呼爲字 : 《愛日齋叢鈔》 1에 인용된 《續家訓》에 “魏나라 常林이 7세 때 아버지 친척이 찾아와 常林에게 묻기를 ‘伯先은 계시는가? 왜 인사를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伯先은 尙林 아버지의 字이다. 常林이 말하기를 ‘자식 앞에서 그 아버지를 字로 불렀으니, 무슨 인사가 있겠소!’라고 하였다. 庾翼(字가 稚恭)의 아들 爰客이 일찍이 孫盛을 방문하였는데, 孫盛의 아들 放을 보고서 묻기를 ‘安國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하자, 放이 대답하기를 ‘庾稚恭 댁에 계십니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放은 爰客이 자기 아버지를 字로 불렀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 역시 字로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侯昱은 王丹이 자신에게 자기 아버지를 字로 부른 것에 대해 꺼려하지는 않았다. 또 字를 손자의 氏로 쓸 수도 있었으니, 옛날에는 尊卑를 가리지 않는 일반적인 호칭이었을 것이다. 《春秋》에서 紀나라의 季姜이라고 썼는데, 아마 ‘季’라고 한 것은 字인 듯하다. 杜預는 ‘字를 쓰는 것은 父母의 존귀함을 더해주는 것이므로 字를 부름을 귀하게 여긴다.’라고 하였다. 자식이 아버지의 字를 피휘한다고 함은 그 자체를 피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앞에서 아버지를 字로 부르면 자식은 아버지는 자신이 존경하는 분이므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9 尙書王元景兄弟 : 《北齊書》 〈王昕傳〉에서 “王昕은 字가 元景이고 北海 劇 사람이다. 부친 王雲은 北魏에서 벼슬을 하며 명망이 있었다. 楊愔은 그의 德業을 중시하여 남들의 師表가 될 것으로 보고서, 銀靑光祿大夫 및 判祠部尙書事에 임명하였다. 동생 王晞는 字가 叔朗이고 小名은 沙彌이다. 武平 초에 大鴻臚로 전보되었다가 儀同三司에 임명되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10 其父名雲 字羅漢 : 《魏書》 〈王憲傳〉에서 “王憲의 아들이 嶷이고, 嶷의 아들이 雲이며 字가 羅漢이었다. 상당한 풍채를 지녔었는데 兗州刺史를 지내다가 부서에서 재물을 받은 혐의로 御史의 조사를 받았고 廷尉에게 넘겨졌으나 사면되었다. 죽고 나서 豫州刺史에 추증되고 諡號는 文昭라 하였다. 아들이 아홉 있었는데, 長子는 昕이고, 昕의 동생이 暉이며, 또 暉의 동생이 旰이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11 一皆諱之 : 본편 4에서 “‘雲’자를 휘하는 어떤 이가 ‘紛紜’을 ‘紛煙’이라 하였다.”라고 한 것이, 어쩌면 이것을 지칭한 것일지도 모른다.[郝懿行]
이름과 字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다 피휘하였다는 뜻이다.[역자]
역주12 其餘不足怪也 : 《賓退錄》 2에서 “또한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자손들이 차마 그 字를 부르지 못하였다는 것은 옛날에는 없던 일이다. 北齊의 王元景 형제가 그 아버지의 字를 피휘한 것을 顔之推가 나무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아버지가 쓴 편지를 읽지 못하고 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어머니가 쓰시던 잔으로 물을 마시지를 못하는데, 하물며 그 字를 부르는 일은 더 어렵지 않으랴? 인정으로 미루어보자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옛날에 祖父의 字로써 氏를 삼았다면 비록 한 글자라 하더라도 편안치 않았을 듯하다. 강남에서는 비록 字를 피휘하지 않는다고 하나, 자식 앞에서 그 아버지의 字를 부르는 것은 공손치 못한 일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續家訓》에 나온다.”라 하였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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