然不過用數之仂하니 則先王養財之意를 可知矣로이다
宋興
에 承五代之敝
나 相繼
하여 이라 故生齒旣庶
하고 而財用有餘
하니이다
景德은 戶七百三十萬에 墾田一百七十萬頃이요 皇祐는 戶一千九十萬에 墾田二百二十五萬頃이요 治平은 戶一千二百九十萬에 墾田四百三十萬頃이니이다
歲費亦一億萬以上
이니이다 景德
은 官一萬餘員
이요 皇祐
는 二萬餘員
이요 治平
은 幷
三千三百餘員
하여 總二萬四千員
이니이다
景德
은 六百萬
이요 皇祐
는 一千二百萬
이요 治平
은 一千三百萬
이니이다
以二者校之컨대 官之衆은 一倍於景德하고 郊之費도 亦一倍於景德하니이다
官之數不同如此
하니 則皇祐治平入官之門
이 多於景德也
며 하니 則皇祐治平用財之端
이 多於景德也
하니이다
誠詔有司按尋載籍하여 而講求其故하여 使官之數入者之多門을 可考而知하고 郊之費用財之多端을 可考而知니
然後에 各議其可罷者 罷之하고 可損者 損之하여 使天下之入을 如皇祐治平之盛하고 而天下之用官之數郊之費를 皆同於景德이면 二者所省者 蓋半矣리이다
則又以類而推之면 天下之費 有約於舊而浮於今者하고 有約於今而浮於舊者하리니
其浮者는 必求其所以浮之自而杜之하고 其約者는 必本其所以約之由而從之니如是而力行하여
以歲入一億萬以上計之하여 所省者 十之一이면 則歲有餘財一萬萬하리이다 馴致不已하여 至於所省者 十之三이면 則歲有餘財三萬萬이며
以三十年之通計之면 當有餘財九億萬하여 可以爲十五年之蓄이니 自古國家之富 未有及此也니이다
古者에 言九年之蓄者는 計每歲之入하여 存十之三耳니 蓋約而言之也니이다
今臣之所陳도 亦約而言之니 今其數不能盡同이나 然要其大致는 必不遠也리이다
今吾以全盛之勢로 用財有節하여 其所省者一則吾之一也요 其所省者二則吾之二也니
所造
를 未嘗用一奇巧
하며 嬪嬙左右掖庭之間
에 位號多闕
하여 躬履節儉
하여 爲天下先
하고
所以憂憫元元하여 更張庶事之意 誠至惻怛하여 格于上下하니 其於明法度以養天下之財도 又非陛下之所難也니이다
臣誠不自揆하고 敢獻其區區之愚하니 惟陛下裁擇하소서
신은 듣건대, 옛날에 “30년간의 평균비율로 국가의 예산을 짜 나라에 9년 동안 유지할 비축이 있도록 해야 한다.” 하고, 또 “예산을 짜는 일은 반드시 연말에 거행해야 한다.” 하였으니, 그 이유는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검소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제사입니다.
그런데도 1년 동안 지출하는 예산의 10분의 1을 초과하지 않았으니, 선왕先王들이 재력을 축적한 뜻을 알 만합니다.
대체로 예산지출이 절제가 있으면 천하가 가난하더라도 부유함을 쉽게 이뤄내는 법입니다.
한漢‧당唐 초기에는 천하의 재정이 항상 부족하였으나 한 문제漢 文帝와 당 태종唐 太宗이 예산을 지출할 때 절제가 있었기 때문에 공사公私가 풍요로웠으니, 이것이 이른바, 천하가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유함을 쉽게 이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예산지출이 절제가 없으면 천하가 비록 부유하더라도 가난을 또한 쉽게 불러오는 법입니다.
한漢‧당唐이 성황을 누릴 당시 천하의 재정이 항상 충분하였으나 한 무제漢 武帝와 당 명황唐 明皇(현종玄宗)이 능히 법도로 절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공사公私의 재정이 소진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천하가 비록 부유하더라도 가난을 또한 쉽게 불러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송宋나라가 일어날 적에 오대五代의 피폐한 끝을 이어받았으나 여섯 성군이 서로 뒤를 이어 백성의 부담을 줄여주고 생활을 안정시켰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고 재력이 넉넉해졌습니다.
한번 경덕景德‧황우皇祐‧치평治平 각 연간의 실태를 상호 비교해보겠습니다.
경덕景德 때 가구 수는 730만 호戶이고 경작 토지는 170만 경頃이며, 황우皇祐 때 가구 수는 1,090만 호戶이고 경작 토지는 225만 경頃이며, 치평治平 때 가구 수는 1,290만 호戶이고 경작 토지는 430만 경頃이었습니다.
국가의 세입은 황우皇祐‧치평治平 때 모두 1억만 이상이고 세출 또한 1억만 이상이었습니다.
관원은 경덕景德 때 1만여 원員이고 황우皇祐 때 2만여 원員이었으며 치평治平 때는 막직관幕職官과 주현관州縣官 3,300여 원員을 포함하여 총 2만 4,000원員이었습니다.
경덕景德 때는 교제郊祭에 들어가는 비용이 600만이고 황우皇祐 때는 1,200만이고 치평治平 때는 1,300만이었습니다.
둘로 대비하여 살펴보면, 후자가 관원이 많은 정도가 경덕景德 때보다 갑절이나 되고, 교제郊祭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경덕景德 때보다 갑절이나 많습니다.
관원수가 이와 같이 다른 이유는 황우皇祐‧치평治平 때 관원으로 들어오는 문이 경덕景德 때보다 많았고, 교제郊祭에 지출하는 예산이 이와 같이 다른 이유는 황우皇祐‧치평治平 때 재물을 쓰는 단서가 경덕景德 때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관련 자료를 찾아 살펴 그 까닭을 강구하여, 관원의 숫자와 관원으로 들어오는 문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게 하고, 교제郊祭에 들어가는 비용과 재물을 소비하는 단서가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각 항목에 따라 혁파할 만한 것은 혁파하고 줄일 만한 것은 줄여, 국가의 세입이 황우皇祐‧치평治平 때처럼 많게 하고 아울러 국가의 지출과 관원의 숫자와 교제郊祭의 비용이 모두 경덕景德 때와 같도록 한다면, 이 두 방법으로 줄인 규모가 대체로 〈현재 예산의〉 절반이나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 확대해나간다면, 국가의 소비가 과거에는 적었으나 오늘은 많은 경우가 있을 것이고, 오늘은 적지만 과거에는 많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소비가 과거보다〉 많은 것은 반드시 그 많게 된 근원을 찾아 막아버리고, 〈과거보다〉 적은 것은 반드시 그 적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알아내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강력히 추진하십시오.
세입을 1억만(1조) 이상으로 계산했을 때 지출을 줄인 것이 세입의 10분의 1이면 연간 남는 예산이 1만만(1천억)이 될 것이고, 차츰차츰 중단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줄인 지출이 세입의 10분의 3에 이르면 연간 남는 예산이 3만만(3천억)이 될 것입니다.
〈남는 예산을〉 30년간의 평균비율로 계산해보면 분명히 남는 예산이 9억만(9조)이 있어 국가가 15년 동안 유지될 만한 비축이 있는 셈이니, 예로부터 국가의 부유가 이런 수준에 미친 경우는 없었습니다.
상고 때 ‘9년 동안 유지할 비축’이라고 말한 것은 매년의 수입을 헤아려 그것의 10분의 3만 남긴 것으로 그저 어림잡아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지금 신이 개진한 수치도 어림잡아 말한 것으로 지금 그 수치가 사실과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큰 개요는 반드시 많이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 세상에 상황이 열악한 때에도 오히려 가난을 바꿔 부자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창 왕성한 형세를 기반으로 삼아 예산을 지출할 때 절제가 있게 하여 지출을 줄인 것이 예산의 〈10분의〉 1이면 이는 우리가 그 1을 얻어낸 것이고, 지출을 줄인 것이 〈10분의〉 2면 이는 우리가 그 2를 얻어낸 것입니다.
이전 세상에서는 어려웠지만 우리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논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온화하고 침착하며 소박하고 검소한 덕을 천성으로 타고나셨습니다.
그리하여 수레와 기물, 의복 등 상방尙方에서 만드는 것들을 하나라도 특이하고 정교한 것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여관女官이며 좌우 후궁後宮들도 정원수를 다 채우지 않는 등 몸소 절약과 검소를 실천하시어 천하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을 걱정하고 불쌍히 여겨 국정을 쇄신하는 뜻이 지극하고 애절하여 천지신명을 감동시키셨으니, 법도를 밝혀 천하의 재물을 축적하는 것도 폐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신은 진정 부족한 역량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감히 우매한 소견을 바치오니, 폐하께서 취사선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