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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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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此書 紆徐百折하여 而感慨嗚咽之氣 博大幽深之識 溢於言外하니 較之蘇長公所謝張公爲其父墓銘書 特勝이라
頓首載拜舍人先生하노라
去秋人還하여 蒙賜書及所譔先大父墓碑銘하여 反覆觀誦하니 感與慙幷이라
夫銘誌之著于世 義近於史 而亦有與史異者
蓋史之於善惡 無所不書로되
而銘者 蓋古之人有功德材行志義之美者 懼後世之不知 則必銘而見之
或納于廟하고 或存于墓하니 一也
苟其人之惡이면 則於銘乎何有리오 此其所以與史異也
其辭之作 所以使死者 無有所憾하고 生者 得致其嚴이라
而善人喜於見傳하니 則勇於自立이요 惡人無有所紀하니 則以媿而懼
至於通材達識 義烈節士 嘉言善狀하여 皆見於篇이면 則足爲後法이니
警勸之道 非近乎史 其將安近이리오
及世之衰 爲人之子孫者 一欲褒揚其親而不本乎理 故雖惡人이라도 皆務勒銘以誇後世
立言者 旣莫之拒而不爲하고 又以其子孫之所請也하여 書其惡焉이면 則人情之所不得이니 於是乎銘始不實이라
後之作銘者 當觀其人이니
苟託之非人이면 則書之非公與是 則不足以行世而傳後
故千百年來 公卿大夫至于里巷之士 莫不有銘이나 而傳者蓋少하니 其故非他
託之非人하고 書之非公與是故也
然則孰爲其人而能盡公與是歟
非畜道德而能文章者 無以爲也
蓋有道德者之於惡人 則不受而銘之하고 於衆人 則能辨焉이나
而人之行 有情善而迹非하고 有意奸而外淑하고 有善惡相懸而不可以實指하며 有實大於名하고 有名侈於實하니
猶之用人 非畜道德者 惡能辨之不惑하고 議之不徇이리오
不惑不徇이면 則公且是矣
而其辭之不工이면 則世猶不傳하니 於是又在其文章兼勝焉이라
故曰 非畜道德而能文章者 無以爲也
豈非然哉
然畜道德而能文章者 雖或竝世而有 亦或數十年或一二百年而有之하니 其傳之難如此하고 其遇之難又如此
若先生之道德文章 固所謂數百年而有者也
先祖之言行卓卓하고 幸遇而得銘하니 其公與是 其傳世行後無疑也
而世之學者 每觀傳記所書古人之事하고 至其所可感하여는 則往往䀌然不知涕之流落也어늘 況其子孫也哉 況鞏也哉리오
其追晞祖德而思所以傳之之繇하니 則知先生推一賜於鞏而及其三世
其感與報 宜若何而圖之리오
抑又思若鞏之淺薄滯拙 而先生進之하고 先祖之屯蹷否塞以死 而先生顯之하니
則世之魁閎豪傑不世出之士 其誰不願進於門하고 潛遁幽抑之士 其誰不有望於世리오 善誰不爲 而惡誰不愧以懼리오
爲人之父祖者 孰不欲敎其子孫이며 爲人之子孫者 孰不欲寵榮其父祖리오
此數美者 一歸於先生이라
旣拜賜之辱하고 且敢進其所以然이라
敢不承敎而加詳焉이리오 愧甚이라
不宣이라


06. 구양사인歐陽舍人께 부친 편지
이 편지는 완곡하고 변화가 많아 느낌에 겨워 목이 멘 기운과 넓고 크며 심오한 식견이 말 표면에 드러나니, 자기 아버지의 묘지명을 지어달라는 장공張公(장방평張方平)의 부탁을 거절한 소장공蘇長公(소식蘇軾)의 편지와 비교해볼 때 더 낫다.
저는 중서사인中書舍人 선생께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지난 가을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 편지와 지어주신 선대부先大父의 묘비명을 받고 반복하여 보고 읽노라니 고맙고 또 부끄러운 감정이 사무칩니다.
무릇 묘지명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 의의가 역사서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지만 역사서와 다른 점도 있습니다.
역사서는 사람들의 미덕과 악행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묘지명은 옛사람의 공적과 도덕, 재능과 품행, 지향志向절의節義 등 훌륭한 점을 후세가 알지 못할까 염려스러우면, 반드시 묘지명을 지어 그 이름이 후세에 드러나게 합니다.
그것을 혹 사당에 들여놓기도 하고 혹 묘지에 묻기도 하는데 그 목적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 묘지명 속에 찬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묘지명과 역사서가 서로 다른 부분입니다.
묘지명을 짓는 것은 죽은 이로 하여금 유감이 없게 하고, 그 묘지명을 짓는 자가 죽은 사람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선인善人은 자기의 사적이 후대에 전해갈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서 자기가 사람들이 따라 배울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분발하고, 악인惡人은 자기의 행위에 어떤 기록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널리 배워 재주가 많고 식견이 통달하거나 바르고 꼿꼿하며 절의를 지킨 사람들의 훌륭한 말과 사적에 대하여 모두 묘지명의 문장 속에 드러낸다면 후세 사람의 행동준칙이 될 것입니다.
경계하고 권면하는 묘지명의 작용이 역사서와 가깝지 않다면 장차 무엇과 가까울 수 있겠습니까.
사회의 풍기風紀가 무너진 때에 이르러 자손이 된 자들이 하나같이 그 죽은 조상을 선양하고자 하면서 사리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비록 악인이라 하더라도 모두 묘지명을 지어 후세에 과시하고자 합니다.
묘지명을 짓는 사람은 그들을 거절하여 짓지 못한다고 하지 못하고, 또 그 자손이 부탁한 것이기 때문에 악한 점을 쓰는 것은 인정상 할 수 없는 바이니, 이런 실정하에 묘지명이 비로소 진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후세에 묘지명을 짓는 사람은 마땅히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부탁을 받은 상대가 착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쓰는 묘지명 또한 공정하고 진실할 수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또한 당대에 전파되고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수백 년 동안 공경대부公卿大夫로부터 평범한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묘지명이 없는 이가 없지만 후세에 전해오는 것은 매우 적으니, 그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위탁해온 자가 적당한 인물이 아닌데다 기록한 묘지명이 공정하고 진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적합한 대상자이며 누가 묘지명을 능히 완전히 공정하고 진실하게 지을 수 있겠습니까?
높은 도덕을 구비하고 또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높은 도덕을 지닌 사람은 악인에 대해서는 부탁을 받아도 묘지명을 써주지 않을 것이고, 일반인에 대해서는 〈상대가 선인인지의 여부를〉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사람들의 표면으로 드러난 행동은 동기는 좋더라도 행적은 좋지 않은 경우가 있기도 하고, 혹은 속마음은 간사하면서도 외모는 선량한 경우가 있기도 하고, 선악의 차이가 현격하여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하며, 실제가 평판보다 크거나 평판이 실제보다 과장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조정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경우와 같으니, 도덕을 구비한 자가 아니면 어찌 사람의 수준을 구별할 적에 선입견에 빠져들지 않으며, 그들을 평가할 때 사심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입견에 빠져들지 않고 사심을 따르지도 않는다면 공정하고 진실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문장이 훌륭하지 않다면 세상에 전해지지 못할 것이니, 이 때문에 문제는 또 그 문장과 도덕이 과연 다 좋은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을 구비하고 문장에 뛰어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도덕을 구비하고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이 비록 혹은 당세에 있을 수 있으나, 혹은 수십 년이나 1, 2백 년 만에야 있을 수도 있으니, 그 문장이 후대에 전해지기 어렵기가 이와 같고 적합한 문장가를 만나기 어려운 것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선생의 도덕과 문장은 진실로 이른바 수백 년 만에 있을 수 있는 경우입니다.
선조先祖의 언행이 훌륭하고 다행히 선생을 만나 묘지명을 지었으니, 그 공정하고 진실하며 당대에 전파되고 후세에 길이 전해지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의 학자들이 전기傳記에 쓰인 옛사람의 사적을 보고 감동할 만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늘 슬퍼하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떨어지는데, 하물며 그 자손의 경우이겠으며 저의 경우이겠습니까.
조부의 덕을 추모하고 다시금 이 묘지명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는 원인을 생각해본 결과, 선생께서 이번에 이 한 번의 은혜를 끼쳐주신 일이 우리 가문의 조부와 부친, 손자 삼대三代에까지 두루 미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과연 어떻게 도모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또 생각건대, 저처럼 학문이 낮고 재주가 없는 사람을 선생께서 이끌어주시고, 제 조부께서 좌절을 당해 어렵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을 선생께서 드러내주셨습니다.
풍채와 도량이 비범하여 흔하지 않은 세상 선비는 그 누가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겠으며, 산림에 은둔하여 울울불락한 선비는 그 누가 세상에 희망을 가지지 않겠으며, 선인善人은 그 누가 선한 일을 하지 않겠으며, 악인惡人은 그 누가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럽고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와 조부 된 자는 그 누가 자손에게 선을 가르치려 하지 않겠으며, 자손 된 자는 그 누가 아버지와 조부를 영광스럽게 해드리려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난 효과는 그 공이 모두 선생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선생께서 내려주신 은혜를 받은 뒤에 또 제 마음으로 생각하는 점을 선생에게 아뢰었습니다.
선생께서 지적해주신 우리 가문의 세계世系 정황에 관하여는 제가 어찌 감히 가르침을 받아들여 더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매우 부끄럽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역주
역주1 寄歐陽舍人書 : 작자의 나이 29세 때인 慶曆 원년(1041)에 中書舍人으로 있던 歐陽脩에게 부친 편지이다. 이 글은 작자가 歐陽脩로부터 그의 조부 曾致堯의 묘지명을 얻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아울러 묘지명의 주인공과 그 글을 쓰는 사람이 모두 모범적인 인물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역주2 所諭世族之次 : 이보다 앞서 歐陽脩가 보내온 편지(〈與曾鞏論氏族書〉)에 “근대 사대부들이 자기 씨족에 대해 관직의 이동과 세대의 차례가 많이 잘못되고 있다. 처음 姓을 얻은 시조에 대해서도 진실되지 못한 경우가 있기도 하다.”라고 한 내용을 말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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