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而彼自識其內也라 彼只見自家本來原無一物이라 故欲了當本性耳요 欲見本性이라 故將一切聲色臭味香法을 多爲丢去耳而非以徇內故也라
梁書六本紀
와 五十列傳
으로 合五十六篇
이니 唐貞觀三年
에 詔右散騎常侍
撰
하니라
思廉者
는 梁史官察之子
니 推其父意
하여 又頗采諸儒
等所記
하여 以成此書
라
臣等旣校正其文字하고 又集次爲目錄一篇하고 而敍之曰
佛最晩出하여 爲中國之患하니 而在梁爲尤甚이라 故不得而不論也니라
蓋佛之徒는 自以謂吾之所得者內라하여늘 而世之論佛者皆外也라 故不可絀이라
能致其知者는 察三才之道하고 辯萬物之理하여 小大精粗를 無不盡也니라
知至矣면 則在我者之足貴와 在彼者之不足玩을 未有不能明之者也라
有知之之明而不能好之는 未可也라 故加之誠心以好之하고 有好之之心而不能樂之는 未可也라 故加之至意以樂之하니
萬物之所不能累라 故吾之所以盡其性也니 能盡其性이면 則誠矣라
旣誠矣면 必充之하여 使可大焉하고 旣大矣면 必推之하여 使可化焉이라
能化矣면 則含智之民과 肖翹之物이 有待於我者 莫不由之以至其性하고 遂其宜하여 而吾之用與天地參矣니라
德如此其至也나 而應乎外者는 未嘗不與人同하니 此吾之道 所以爲天下之達道也라
故與之爲衣冠飮食과 冠昏喪祭之具하여 而由之以敎에 其爲君臣父子兄弟夫婦者 莫不一出乎人情하고 與之同其吉凶而防其憂患者 莫不一出乎人理라
與之處者 其具如此하고 使之化者 其德如彼하니 可不謂聖矣乎아
旣聖矣면 則無思也라 其至者 循理而已오 無爲也라 其動者 應物而已라
是以로 覆露乎萬物하고 鼓舞乎群衆하되 而未有能測之者也니 可不謂神矣乎아
夫得於內者는 未有不可行於外也니 有不可行於外者면 斯不得於內矣라
智足以知一偏이나 而不足以盡萬事之理하고 道足以爲一方이나 而不足以適天下之用은 此百家之所以兩失之也니
臣等故因梁之事하여 而爲著聖人之所以得과 及佛之所以失以傳之者는
注
唐荊川曰 通篇俱說聖人之內하여 而所以攻佛者는 不過數句라하니라
注
王遵巖曰
文字
는 雄健傑特
하여 亘古無倫矣
라 然說佛之失處
는 不能如是其稱
하고 吾道大旨
도 亦不能如是精也
라하니라
注
‘내內’자로 불가의 교리를 논한 것은 매우 옳지 않다.
대체로 불가는 본디, 우리 유가儒家의 도는 외면을 추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그 내면을 알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자기 몸에는 본디 아무것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본성本性을 알려고 한 것일 뿐이고, 본성本性을 알려고 하였기 때문에 소리, 빛깔, 냄새, 맛, 향 등 모든 외부의 것들을 대부분 떨쳐버리자는 것일 뿐이지 내면만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양서梁書》는 6편의 〈본기本紀〉와, 50편의 〈열전列傳〉으로 모두 56편인데, 당唐 정관貞觀 3년(629)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요사렴姚思廉이 편찬하였다.
요사렴姚思廉은 양梁나라 사관史官 요찰姚察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 뜻을 추구하여, 또 기타 유생들과 사오謝吳가 편찬한 기록을 많이 채집하여 이 책을 완성한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이 책의 문자를 교정한 다음, 또 이것을 모아 순차대로 배열하여 목록 1편을 만들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옛 성왕聖王의 도술道術이 희미하여 밝아지지 않은 뒤로 백가百家의 학술이 경쟁적으로 일어났다.
불교는 가장 늦게 출현하여 중국의 재해가 되었는데, 양梁나라 때 그 정도가 더욱 심하였으므로 이 점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불교도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깨달은 것은 내면의 마음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도, 불교를 논의하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것은 외부의 표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어찌 성인의 내면 마음을 볼 수 있겠는가.
《서경書經》에 “사고思考는 통달하도록 해야 한다. 사고가 통달해지면 곧 성스러워진다.” 하였다.
대체로 사고는 곧 지식을 구해 얻기 위한 것이다.
능히 지식을 구해 얻은 사람은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의 규율을 관찰하고 세상만물의 사리를 변별하여, 크거나 작거나 거칠거나 미세한 모든 이치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을 일러 궁리窮理라고 하는 것이니 이는 구하여 아는 극치이다.
구하여 안 것이 극치에 도달하게 되면 내가 확보한 지식은 충분히 진귀한 것이 되고, 다른 곳에 있는 지식은 거들떠볼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구하여 아는 능력은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좋아하는 감정을 갖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진심으로 좋아하는 단계가 요구되고, 구하여 아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있으면서도 그것을 즐거워하는 감정을 갖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 즐거워하는 단계가 요구되는 것이다.
능히 즐거움을 느낀다면 곧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외면으로부터 오는 세상만물이 어찌 나에게 피해를 끼치겠는가.
세상만물이 나에게 피해를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자기의 본성에 순응할 수 있는 것이니, 능히 자기의 본성에 순응하게 되면 곧 성誠에 도달하게 된다.
성誠이란 곧 이루어진 것으로 다른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는다.
이미 성誠한 뒤에는 반드시 그 범위를 확충하여 크게 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미 범위가 커진 뒤에는 반드시 그것을 더 확대하여 인심과 풍속이 변화되게 할 수 있다.
인심과 풍속을 능히 변화시키면 위로 지혜를 지닌 백성에서부터 아래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미세한 생물에 이르기까지, 나에게서 감화받기를 기다리는 것들이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본성을 보전하고 자기의 본분을 완수하지 않은 것들이 없어, 나의 작용이 천지와 함께 나란히 서서 셋이 될 것이다.
도덕은 이와 같이 성대한 것이지만 외면으로 드러난 것은 보통 사람과 같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곧 나의 도가 천하에 통행하는 도가 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천하를 위해 의관‧음식과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에 관한 방법을 설립하여, 모두 이것을 가지고 그들이 군신君臣‧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 등의 관계를 형성하되 하나같이 사람의 정서와 의리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게 하고, 그들이 길흉사를 함께하고 걱정과 환난을 방비할 적에도 하나같이 사람의 도리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머물러 살아갈 적에 편안하고 안정된 요소가 함께 모여 있고 위험하고 혼란한 요소가 제거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머물러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해준 장치가 이와 같고 그들이 풍속을 바꾸게 하는 덕이 그와 같으니, 성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면 어떤 의도적인 사고란 없고 오로지 이치를 따를 뿐이며, 어떤 의도적인 행위란 없고 행하는 것은 오로지 사물에 순응할 뿐이다.
이러므로 천지가 만물에게 은혜를 베풀고 백성이 즐겁게 살아가게 하되 자연에 일임하여 그 위대한 공을 측량할 수 없게 하니, 이것을 신묘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묘한 경지란 가장 오묘하고 또 정지하는 일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니, 이것이 곧 성인의 내면 마음이다.
불교의 설법에 과연 이것을 바꿀 만한 것이 있는가.
그런데 그들이 이것을 바꿀 부분을 찾으려다 보니 착오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내면의 마음으로부터 얻어진 것은 외면에 시행하지 못할 것이 없는 법이니, 외면에 시행하지 못할 것이 있다면 이는 내면의 마음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역경易經》에 “지혜는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덕은 천하를 구제한다. 그러므로 행하는 일이 착오가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성인이 내면과 외면이 다 완벽하다는 것이다.
지혜가 족히 어느 한쪽은 알지만 만사의 이치를 충분히 다 알지 못한다거나, 도술이 족히 한쪽 부분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천하 운용에 충분히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은 백가百家가 내면과 외면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도가 스스로 도를 마음에서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장차 한 시대의 잘잘못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우리들이 양대梁代의 역사사실을 통해 성인은 완벽하게 되고 불교는 잘못되게 된 까닭을 드러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군자가 불교를 거절하는 이유가 그들의 교리가 일체의 외물을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내면의 수양에 뜻을 둔 사람은 아마 성인의 도를 저들의 것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注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전편全篇이 다 성인의 내면 마음에 관해 설명하였다. 이 때문에 불교를 공격한 부분은 몇 구절에 지나지 않는다.”
注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원도原道〉의 문자는 웅장하고 걸출하여 고금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불교의 잘못된 점을 설파한 점은 이처럼 정확하게 하지 못하였고, 우리 유가儒家의 도에 대한 요지도 이처럼 정밀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