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按曾子固所論經術及典禮之大處 往往非韓柳歐所及見者
禮閣新儀三十篇 韋公肅撰이니之變禮
史館秘閣及臣書 皆三十篇이요 集賢院書 二十篇이니 以參相校讐하면 史館秘閣及臣書 多復重하여 其篇少者八이요 集賢院書獨具
然臣書 有目錄一篇하여 以考其次序하면 蓋此書本三十篇이니
則集賢院書 雖具 然其篇次亦亂이라
旣正其脫謬하고 因定著從目錄하여 而禮閣新儀三十篇復完하니라
夫禮者 其本在於養人之性이요 而其用在於言動視聽之間이라
使人之言動視聽 一於禮 則安有放其邪心而窮於外物哉
不放其邪心하고 不窮於外物이면 則禍亂可息하고 而財用可充하니 其立意微하고 其爲法遠矣
故設其器하고 制其物하며 爲其數하고 立其文하여 以待其有事者 皆人之起居出入 吉凶哀樂之具 所謂其用在乎言動視聽之間者也
然而古今之變不同하고 而俗之便習亦異하니 則法制度數 其久而不能無弊者 勢固然也
故爲禮者 其始莫不宜於當世 而其後多失而難遵 亦其理然也
失則必改制以求其當이라 故羲農以來 至於 禮未嘗同也니라
後世去三代 蓋千有餘歲 其所遭之變 所習之便不同 固已遠矣어늘
而議者不原聖人制作之方하여 乃謂設其器하고 制其物하며 爲其數하고 立其文하여 以待其有事하여 而爲其起居出入吉凶哀樂之具者 當一一以追先王之迹이니 然後 禮可得而興也라하니라
至其說之不可求하고 其制之不可考하여 或不宜於人하고 不合於用하여는 則寧至於漠然이언정 而不敢爲하여 使人之言動視聽之間으로 蕩然莫之爲節이요
至患夫爲罪者之不止하여는 則繁於爲法以禦之
故法至於不勝其繁하고 而犯者亦至於不勝其衆하니 豈不惑哉
蓋上世聖人 有爲耒耜者 或不爲宮室하고 爲舟車者 或不爲棺槨하니 豈其智不足爲哉
以謂人之所未病者 不必改也일새라
至於後聖하여는 有爲宮室者 不以土處爲不可變也하고 爲棺槨者 不以爲不可易也하니 豈好爲相反哉
以爲人之所旣病者 不可因也일새라
又至於後聖하여는 則有設而更采椽之質하고而易瓦棺之素하니 豈不能從儉哉
以謂人情之所好 能爲之節而不能變也
由是觀之컨대 古今之變不同하고 而俗之便習亦異하니 則亦屢變其法以宜之
何必一一以追先王之迹哉
其要 在於養民之性하고 防民之欲者 本末先後 能合乎先王之意而已 此制作之方也
之尙而薄酒之用 之先而庶羞之飽 一以爲貴本하고 一以爲親用하니
則知有聖人作而爲後世之禮者 必貴爼豆而今之器用不廢也하고而今之衣服不禁也리니
其推之皆然然後 其所改易更革 不至乎拂天下之勢하고 駭天下之情하여 而固已合乎先王之意矣
是以羲農以來 至於三代 禮未嘗同而制作之如此者 亦未嘗異也니라
後世 不知其如此하여 而或至於不敢爲하고 或爲之者 特出於其勢之不可得已
故苟簡而不能備하고 希濶而不常行하며
又不過用之於上而未有加之於民者也 故其禮本在於養人之性하고 而其用在於言動視聽之間者 歷千餘歲토록 民未嘗得接於耳目하니
況於服習而安之者乎
至其陷於罪戾하여는 則繁於爲法以禦之하니 其亦不仁也哉인저
此書所紀 雖其事已淺이나 然凡世之記禮者 亦皆有所本이요 而一時之得失具焉이라
이어든 況於一代之典籍哉
故其書不得不貴 因爲之定著하여 以俟夫論禮者考而擇焉하노라
王遵巖曰 此類文皆一一有法하여 無一字苟하니 觀文者 不可忽此라하니라
唐荊川曰 此文一意翻作兩段說하니라


01. 《예각신의禮閣新儀》에 관한 목록서
살펴보건대, 증자고曾子固경술經術전례典禮의 큰 것을 논한 부분은 종종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구양수歐陽脩도 미칠 수 없는 바가 있다.
예각신의禮閣新儀》 30편은 위공숙韋公肅이 지은 것으로 개원開元 연간 이후로부터 원화元和 연간까지의 변례變禮를 기록한 것이다.
사관史館비각秘閣 및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모두 30편으로 되어 있고 집현원集賢院에 소장되어 있는 책은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서로 참고하여 교열해보면 사관史館비각秘閣 및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중복이 많아 부족한 편이 8편이고 집현원集賢院의 책만 내용이 다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나의 책에 목록 한 편이 있어 이것을 가지고 그 차례를 고증해보면 이 책은 본래 30편이다.
집현원集賢院의 책이 그 편수는 비록 갖추어져 있으나 그 편차는 역시 어지럽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빠지고 잘못된 것을 교정한 후 이어서 목록에 따라 편집해서 《예각신의禮閣新儀》 30편이 다시 완성되었다.
라는 것은 그 근본 목적이 사람의 품성을 기르는 데에 있고, 그 적용이 말하고 움직이고 보고 듣는 사이에 있다.
만일 사람이 말하고 움직이고 보고 듣는 것을 한결같이 에 맞게 한다면, 어찌 간사한 마음을 함부로 부려 외물에 대한 욕심을 끝까지 추구하는 일이 있겠는가.
간사한 마음을 함부로 부리지 않아 외물에 대한 욕심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는다면, 화란禍亂이 종식될 수 있을 것이며 재화財貨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니, 이렇듯 그 뜻이 심오하고 그 법이 원대하다.
그러므로 기물器物을 제정하고 예의절차를 세워서 일에 대비하는 것인 는 모두 사람의 기거起居출입出入길흉吉凶애락哀樂의 도구이니, 앞서 말한 “그 적용이 말하고 움직이고 보고 듣는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금의 변화가 같지 않고 세속의 습속 또한 다르니, 그렇고 보면 법제法制, 도수度數가 오래되면 폐단이 없을 수 없는 것은 형세상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를 만든 것이 처음에는 모두 당시에 맞았으나 그 후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아져 그대로 따르기 어렵게 되는 것 역시 이치상 당연한 것이다.
맞지 않으면 반드시 법제를 고쳐서 시의에 적합하게 해야 하므로 복희伏羲신농神農 이래로 삼대三代에 이르기까지 가 일찍이 같았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후세와 삼대三代 사이의 시간차가 천여 년이니, 그동안 겪은 변화와 익숙한 습속의 차이가 진실로 이미 크다.
그런데도 의논하는 자들은 성인이 를 만든 취지를 따져보지 않고서 마침내 “기물을 제정하고 예의절차를 세워서 일에 대비하여 기거起居출입出入길흉吉凶애락哀樂의 도구로 삼는 것인 에는 일일이 선왕先王유법遺法을 적용해야 하니 그렇게 한 뒤에야 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하여 가 만들어진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고 그 제도를 상고할 수 없어, 혹 사람에게 맞지 않고 실용에 합당하지 않은 예법禮法에 있어서는 차라리 망연히 몰라 실행하지 못하는 데에 이를지언정, 감히 새로 제정하지는 않아서 사람들이 말하고 움직이고 보고 듣는 부분에 관한 예절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예법禮法을 어기는 죄인이 그치지 않는 문제에 있어서는 법을 많이 만들어서 막으려 한다.
그러므로 법은 이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해지고, 법을 범하는 사람의 숫자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상고시대 성인 가운데 쟁기와 보습은 만들었으나 궁실宮室은 만들지 않고, 배와 수레는 만들었으나 관곽棺槨은 만들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어찌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겠는가.
사람들이 문제 삼지 않는 것을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세 성인에 이르러서는 궁실宮室을 만든 자는 굴속에서 사는 것을 바꿀 수 없다 하지 않고, 관곽棺槨을 만든 자는 야장野葬하는 것을 바꿀 수 없다 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어찌 상반되게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겠는가.
사람들이 이미 문제 삼고 있는 것을 인습하여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후세 성인에 이르러서는 양관兩觀을 설치하여 떡갈나무 서까래의 질박함을 고치고 문재文梓를 만들어서 흙으로 만든 의 검소함과 바꾼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어찌 검소함을 따르지 못해서이겠는가.
인정人情에 좋아하는 것은 절제할 수는 있지만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보건대, 고금의 변화가 같지 않고 세속의 습속 또한 다르니 그렇다면 법 또한 자주 바꾸어 거기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찌 굳이 일일이 선왕先王유법遺法을 적용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 요점은 백성의 을 기르고 백성의 사욕을 막는 데에 있는지라 본말과 선후를 선왕先王의 뜻에 맞게 할 뿐이니, 이것이 제작制作방도方道이다.
그러므로 와준瓦樽을 숭상하면서 묽은 술을 쓰고 대갱大羹을 먼저 올리고서 여러 음식을 배불리 먹여, 한편으로 근본을 귀하게 여기고 한편으로 실용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성인이 세상에 나와서 후세의 를 만들 적에는 반드시 를 귀하게 여기되 지금의 기물을 폐지하지 않고, 을 우선시하되 지금의 의복을 금지하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미루어 적용하기를 모두 이렇게 한 뒤에야 그 개혁하고 고친 것들이 천하의 형세와 어긋나고 천하의 인정人情을 놀라게 하는 데에 이르지 않아서 진실로 선왕先王의 뜻에 맞게 된다.
이 때문에 복희伏羲신농神農 이래로 삼대三代에 이르기까지 가 일찍이 같았던 적이 없었고, 상황에 따라 를 만들기를 이와 같이 한 것 또한 달랐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후세엔 가 이와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혹 감히 새로 예법禮法을 제정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며, 혹 새로 만드는 경우는 다만 형세상 부득이하여 그런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구차하여 완비되지 못하고, 어쩌다 한 번 행할 뿐 보편적으로 행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또 다만 위에서만 행해지는 것에 불과하여 백성에게는 시행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근본 목적이 사람의 을 기르는 데에 있고 그 적용이 말하고 움직이고 보고 듣는 사이에 있는 를 천여 년이 지나도록 백성들이 이목으로 접해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익숙해져서 편안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백성이 예법을 어겨 죄를 짓는 문제에 있어서는 법을 복잡하게 많이 만들어서 막으려 하니, 이는 역시 인자하지 못한 일이다.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 내용이 평범한 것이기는 하나, 무릇 세상에 를 기록하는 자가 모두 근거로 삼을 만한 소지도 있고 한때의 득실도 모두 갖추어져 있다.
옛날에 공자孔子곡삭告朔에 대하여 그 남아 있는 를 아꼈는데 하물며 한 시대의 전적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 책을 편집하여 를 논하는 자들이 살펴서 취하기를 기다린다.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글은 모두 하나하나 법도가 있어 한 글자도 구차한 것이 없으니, 글을 감상하는 사람은 이 점을 소홀히 보아서는 안 된다.”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이 글은 하나의 뜻을 두 단락으로 만들어 설명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禮閣新儀目錄序 : 이 작품은 禮에 관해 작자의 견해를 제시한 일종의 禮論이다. 禮란 그것이 만들어진 그 당대에 적용하기에 맞도록 만들어진 것이므로, 비록 先王이 만든 것이라 하더라도 시대가 변하고 풍속이 달라지면 또 그에 맞게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한다는 變通觀을 제시하였다.
역주2 開元以後至元和 : 開元은 唐 玄宗의 연호(713~741)이고, 元和는 唐 憲宗의 연호(806~820)이다.
역주3 三代 : 성군이 이상적인 정치를 편 夏, 殷, 周시대를 말한다.
역주4 葛溝 : 葛은 시체를 칡으로 싸는 것이고, 溝는 시체를 구덩이에 던져 넣는 것으로, 野葬하는 것을 가리킨다.
역주5 兩觀 : 먼 곳의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궁궐 문밖 좌우에 건축한 누각이다.
역주6 文梓 : 무늬를 새겨 넣은 가래나무로 만든 棺이다.
역주7 瓦樽 : 瓦樽은 ‘瓦尊’이라고도 하는데, ‘元尊’, ‘玄尊’과 같은 뜻으로 제사 때에 술을 담는 제기이다.
역주8 大羹 : 太羹 혹은 ‘泰羹’ 이라고도 하는데, 고대의 제사 때에 올린 음식으로 간을 하지 않은 고깃국이다.
역주9 弁冕 : 弁과 冕은 모두 상고시대에 남자가 쓰던 모자의 일종으로, 예복을 입을 때 착용했던 것이다. 常禮에는 弁을, 吉禮에는 冕을 썼다.
역주10 昔孔子於告朔 愛其禮之存 : 告朔은 告朔禮를 말하는 것으로, 周代에는 천자가 매년 겨울에 다음해 12개월의 正朔을 제후에게 반포하면, 제후는 받아서 祖廟에 간직하였다가 매달 초하루가 되면 양을 제물로 바치고 사당에 고하여 이를 시행하였는데, 이를 告朔禮라 한다. 孔子 때에는 周나라가 쇠하여 이러한 예를 더 이상 시행하지 않은 채 다만 양을 바치는 관습만이 남아 있었다. 子貢이 이렇듯 의미 없이 양을 희생하는 예를 폐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이에 대해 孔子가 “賜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를 아끼노라.”라고 대답하였다. 이는 양을 바치는 관습이 남아 있으면 훗날 告朔禮를 기억해내어 다시 실행할 수 있으므로 양을 바치는 것을 그만두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論語 八佾》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