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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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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其書之所纂 本微淺하고 而公序之亦難爲措注
故其旨不遠이라
晏元獻公 出東南하니
起童子하여 入秘閣讀書하여 遂贊名하니 命入爲翰林學士
眞宗特寵待之하여 每進見勞問하고 及所以任屬之者 群臣莫能及이라
皇太子就書學 公以選入侍러니 太子卽皇帝位하니 是爲仁宗이라
公遂管國樞要하여 任政事하여 位宰相이라
其在朝廷五十餘年 常以文學謀議爲任하니 所爲賦頌銘碑制詔冊命書奏議論之文 傳天下하고 尤長於詩하여 天下皆吟誦之
當眞宗之世하여 天下無事하여 方輯福應하여 推功德하여 修封禪하고 及后土山川老子諸祠하여 以報禮上下
左右前後之臣 非工儒學하여 妙於語言하고 能討論古今하여 潤色太平之業者 不能稱其位 公於是時 爲學者宗하니 天下慕其聲名이라
人見公應於外者之不窮하고 而不知公之得於內者何也
及得公所爲類要上中下秩總七十四篇凡若干門하니 皆公所手抄이라
迺知公於之言 之文章 至於之衆說 旁及九州之外荒忽詭變奇跡之序錄 皆披尋紬繹하여
而於三才萬物變化情僞 是非興壞之理 顯隱細鉅之委曲 莫不究盡
公之得於內者 在此也 公之所以光顯於世者有以哉인저
觀公之所自致者如此하면 則知士不素學而處從官大臣之列하여 備文儒道德之任 其能不餒且病乎
此公之書 所以爲可傳也
公之子知止 能守其家者也
以書屬予序하니 予與公仕不竝時 然皆臨川人이라 故爲之論次하여 以爲公書諸首하노라


11. 《유요類要》에 쓴 서문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본디 천근하여 서문序文을 쓸 때 또한 문장을 배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그 뜻이 깊지 않은 것이다.
안원헌晏元獻 동남東南 지방 출신이다.
동자童子일 때 발탁되어 비각秘閣에 들어가 독서하였고, 마침내 관리명단에 이름을 올려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었다.
진종眞宗이 특별히 그를 총애하고 우대하여 진현進見할 적마다 위문하였고, 그에게 임무를 맡기는 것은 다른 신하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황태자가 서법書法을 배우기 시작할 때 이 선발되어 입시入侍하였었는데, 태자가 황제에 즉위하니 그가 바로 인종仁宗이다.
그리하여 이 마침내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해서 정사政事를 맡아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 조정에 있던 50여 년 동안에 항상 문학文學모의謀議를 맡았는데, 그가 지은 , , , , , , , , , , , 등의 문장이 천하에 전파되었고, 특히 에 뛰어나서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를 읊었다.
진종眞宗 때에 천하가 별탈이 없음으로 인해 사방이 안정되어 상서祥瑞가 나타나자, 그 공덕功德을 찬양하기 위해 봉선封禪을 거행하고 아울러 토신土神, 산신山神, 하신河神노자老子의 여러 사당 등에 제사를 행하여 천지의 여러 신들에게 보답했다.
이때 주위의 신하들은 유학儒學을 전공하여 언어를 잘 구사하고, 고금古今을 토론하여 태평의 사업을 윤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지위에 걸맞게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였는데, 그때 학자學者종주宗主가 되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그의 명성을 흠모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적外的으로 대응하는 일이 무궁한 줄만 알고, 이 내면에 얻은 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후에 이 편집한 《유요類要, , 하질下秩 총 74편 약간 을 얻어 보았는데 이는 모두 이 손수 초록抄錄한 것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육예六藝, 태사太史, 백가百家의 말과 소인騷人, 묵객墨客의 문장, 심지어 지지地志, 족보族譜, 불로佛老, 방기方伎 등의 중설衆說구주九州만이蠻夷의 황당하고 이상하며 기이한 일을 기록한 것들까지 모두 손수 찾고 상세히 연구해서
삼재三才 만물이 변화하는 실정과, 시비是非흥패興敗의 이치와, 현은顯隱거세鉅細의 곡절을 빠짐없이 섭렵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내면에 얻은 것이 여기에 있었으니, 이 세상에 찬연히 드러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자득한 것이 이와 같음을 본다면, 평소에 학문하지 않은 선비가 시종관侍從官, 대신大臣의 반열에 처하여 문유文儒도덕道德의 임무를 맡았을 때 어찌 부족하고 근심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이것이 의 책이 세상에 전해질 만한 까닭이다.
의 아들 지지知止는 그 집안을 잘 지키는 자이다.
내게 편지를 보내어 서문을 부탁했는데, 내 비록 과 같은 시기에 벼슬하지는 않았으나 과 내가 모두 임천臨川 사람이므로 평론하여 의 책 첫머리에 서문을 쓴다.


역주
역주1 類要序 : 《類要》는 宋 仁宗 때 재상을 지낸 晏殊(991~1055)가 편집한 것이고, 이 서문은 晏殊 아들의 부탁에 따라 嘉祐 5년(1060)경에 쓴 것으로 보인다. 晏殊는 작자의 고향인 撫州 臨川 사람으로 자는 同叔, 시호는 元獻이다. 14세 때 江南按撫使 張知白에 의해 조정에 천거되어 進士 천여 명이 시험을 치르는 殿試에 참가하여 답을 쓰는 데 떨리는 기색이 없이 단번에 답안지를 완성하여 眞宗이 同進士出身의 자격을 부여하고 秘書省正字로 발탁하였다. 詞 작가로 유명하며 詩 작품이 1만 수이고 문집은 240권에 이른다.
역주2 六藝太史百家 : 六藝는 여기서는 《詩經》, 《書經》, 《禮記》, 《樂記》, 《周易》, 《春秋》를 말하고, 太史는 太史令 司馬遷이 《史記》를 지었으므로 《史記》 등의 역사서를 말하고, 百家는 諸子百家로 諸子의 서적을 말한다.
역주3 騷人墨客 : 시인과 문필객이란 뜻이다.
역주4 地志族譜佛老方伎 : 地志는 지리지이고, 族譜는 각 성씨의 보첩이고, 佛老는 불교와 도교이고, 方伎는 고대의 醫術, 卜術, 占星術, 觀相術을 말한다.
역주5 蠻夷 : 蠻은 남쪽 오랑캐이고 夷는 동쪽 오랑캐인데, 중국 변방의 소수 민족을 비하하는 호칭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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