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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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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此篇無它結搆 只是不爲佛殿所困窘 便是高處
慶曆八年四月 撫州萊園僧可栖 得州之人高慶王明饒傑相與率民錢爲殿於其院하여하고 以佛之像置其中하여 而來乞予文以爲記하니라
萊園有籍於하여 有地於城南五里 而草木生之하고 牛羊踐之하여 求屋室居人焉 無有也
可栖至則喜曰 是天下之廢地也 人不爭하니 吾得之以老 斯足矣라하고
遂以醫取資於人하여 而卽其處하여 立寢廬講堂重門齋庖之房 棲客之舍하고 而合其徒하여 入而居之
獨殿之役最大하여 自度其力不能爲하고 乃使慶明傑持簿하여 乞民間하고 有得輒記之하니
微細無不受하여 浸漸積累하여 期月而用以足하고 役以旣
自可栖之來居至於此 蓋十年矣
吾觀佛之徒 凡有所興作 其人皆用力也勤하고 刻意也專하여 不肯苟成하고 不求速效
故善以小致大하고 以難致易하여 而其所爲 無一不如其志者하니 豈獨其說足以動人哉리오
其中亦有智然也
若可棲之披攘經營 攟摭纖悉 忘十年之久하고 以及其志之成하니 其所以自致者 豈不近是哉
佛之法 固方重於天下로되 而其學者又善殖之如此어늘
至於世儒하여는 習聖人之道하여 旣自以爲至矣라가 及其任天下之事하여는 則未嘗有勤行之意 堅持之操
少長相與語曰 苟一時之利耳
安能必世百年하여 爲敎化之漸하여 而待遲久之功哉리오하여 相薰以此
故歷千餘載토록 雖有賢者作이라도 未可以得志於其間也니라
由是觀之컨대 反不及佛之學者遠矣
則彼之所以盛 不由此之所自守者衰歟
與之記 不獨以著其能이라 亦媿吾道之不行也已니라


10. 내원원萊園院불전佛殿에 쓴 기문
이 작품은 별다른 결합이나 배치는 없고 다만 불전佛殿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 훌륭한 점이다.
경력慶曆 8년 4월에 무주撫州 내원萊園의 승려 가서可栖무주撫州 사람인 고경高慶왕명王明요걸饒傑과 함께 백성들이 시주한 돈을 모아 내원원萊園院불전佛殿을 짓고 불전佛殿이 완성되자 불상佛像을 그 중앙에 안치한 다음 나에게 와서 기문을 지어줄 것을 청하였다.
처음에 내원萊園상서尙書에 사찰 이름이 등재되어 있고 그 장소가 남쪽 5리 지점에 있었으나 초목이 자라고 소와 양이 밟고 돌아다녀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서可栖가 그곳에 와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곳은 천하에 버려진 땅이라 사람들이 와서 다투지 않으니 내가 늙을 곳은 이곳이면 족하다.” 하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의술로써 사람들에게 자금을 취하여 그곳에 침실‧강당‧겹문‧재실‧주방과 빈객이 머무를 집을 만들고 그의 제자들과 그곳으로 들어가 거주하였다.
다만 불전佛殿을 건립하는 공정은 무엇보다 큰 일이므로 가서可栖는 자기의 능력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헤아리고, 마침내 고경高慶왕명王明요걸饒傑에게 장부를 가지고 민간에 나가서 도와줄 것을 청하여 받은 돈이 있으면 빠짐없이 기록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적은 돈도 모두 받은 결과 점차 누적되어 한 달 만에 비용이 충분하였고 공사가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가서可栖가 이곳에 와서 거주한 지가 지금 10년이 되었다.
내가 보건대,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슨 일을 할 때 모두 힘을 들이기를 부지런히 하고 고심하기를 전일하게 하면서 거칠게 일을 마무리하려 하지 않고 빠른 효과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크게 이루고,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기를 잘하여 그들이 하는 일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는 어찌 그들의 설교가 족히 사람을 움직일 만하여 그런 것일 뿐이겠는가.
그 속에 또 지혜가 있어 그런 것이다.
예컨대 가서可栖가 황폐한 땅을 다듬어 불전佛殿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소요되는 경비를 민간에서 한 푼 두 푼 정성껏 모아 10년이란 세월을 지루하게 여기지 않고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으니, 그가 스스로 노력하여 목적을 달성한 것이 어찌 지혜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불교의 학설이 사실 한창 천하에 중시되고 있다고는 하나 부처를 배우는 자가 또 이와 같이 경영을 잘하고 있다.
그런데 유자儒者의 경우는 성인聖人의 도리를 학습하여 으뜸이라고 자부하다가, 천하의 일을 맡게 되면 부지런히 실천하는 의지와 굳게 지키는 지조가 전혀 없다.
젊은이와 늙은이를 막론하고 서로 말하기를 “진실로 한때의 이익을 창출해내면 그뿐이다.
어찌 평생 동안 쉬지 않고 교화를 베풀어 먼 후일에 성과가 있기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하여, 서로간에 이와 같이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천여 년 동안 비록 뛰어난 인물이 나왔더라도 그 사이에서 뜻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보건대 유자儒者가 도리어 부처를 배우는 자들에게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불교가 흥성한 이유는 유자儒者들이 스스로 성인聖人의 도리를 지키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들에게 기문記文을 지어준 것은 그들의 재능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유자儒者가 세상에 행해지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자는 것이다.


역주
역주1 萊園院佛殿記 : 작자 30세 때인 慶曆 8년(1048) 4월에 쓴 작품이다. 撫州의 萊園院 佛殿을 신축하게 된 과정을 기술하는 기회를 통해 불교가 흥성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고, 아울러 불교도들이 어려운 역경 속에서 분발하고 의지를 굳게 지켜 태만하지 않는 정신과 儒者의 경우를 비교함으로써, 이를 통해 儒學을 다시 일으키고 싶은 의도를 드러내었다.
역주2 尙書 : 尙書省 禮部 산하에 있는 祠部의 별칭으로, 전국 각 州의 寺刹과 道觀의 이름을 등재한 문서를 관장한 관청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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