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曆八年四月에 撫州萊園僧可栖 得州之人高慶王明饒傑相與率民錢爲殿於其院하여 成하고 以佛之像置其中하여 而來乞予文以爲記하니라
初
에 萊園有籍於
하여 有地於城南五里
나 而草木生之
하고 牛羊踐之
하여 求屋室居人焉
에 無有也
라
可栖至則喜曰 是天下之廢地也라 人不爭하니 吾得之以老는 斯足矣라하고
遂以醫取資於人하여 而卽其處하여 立寢廬講堂重門齋庖之房과 棲客之舍하고 而合其徒하여 入而居之라
獨殿之役最大하여 自度其力不能爲하고 乃使慶明傑持簿하여 乞民間하고 有得輒記之하니
微細無不受하여 浸漸積累하여 期月而用以足하고 役以旣라
吾觀佛之徒는 凡有所興作에 其人皆用力也勤하고 刻意也專하여 不肯苟成하고 不求速效라
故善以小致大하고 以難致易하여 而其所爲 無一不如其志者하니 豈獨其說足以動人哉리오
若可棲之披攘經營과 攟摭纖悉이 忘十年之久하고 以及其志之成하니 其所以自致者 豈不近是哉아
噫라 佛之法 固方重於天下로되 而其學者又善殖之如此어늘
至於世儒하여는 習聖人之道하여 旣自以爲至矣라가 及其任天下之事하여는 則未嘗有勤行之意와 堅持之操라
安能必世百年하여 爲敎化之漸하여 而待遲久之功哉리오하여 相薰以此라
故歷千餘載토록 雖有賢者作이라도 未可以得志於其間也니라
注
與之記는 不獨以著其能이라 亦媿吾道之不行也已니라
注
이 작품은 별다른 결합이나 배치는 없고 다만 불전佛殿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 훌륭한 점이다.
경력慶曆 8년 4월에 무주撫州 내원萊園의 승려 가서可栖가 무주撫州 사람인 고경高慶‧왕명王明‧요걸饒傑과 함께 백성들이 시주한 돈을 모아 내원원萊園院에 불전佛殿을 짓고 불전佛殿이 완성되자 불상佛像을 그 중앙에 안치한 다음 나에게 와서 기문을 지어줄 것을 청하였다.
처음에 내원萊園은 상서尙書에 사찰 이름이 등재되어 있고 그 장소가 성城 남쪽 5리 지점에 있었으나 초목이 자라고 소와 양이 밟고 돌아다녀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서可栖가 그곳에 와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곳은 천하에 버려진 땅이라 사람들이 와서 다투지 않으니 내가 늙을 곳은 이곳이면 족하다.” 하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의술로써 사람들에게 자금을 취하여 그곳에 침실‧강당‧겹문‧재실‧주방과 빈객이 머무를 집을 만들고 그의 제자들과 그곳으로 들어가 거주하였다.
다만 불전佛殿을 건립하는 공정은 무엇보다 큰 일이므로 가서可栖는 자기의 능력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헤아리고, 마침내 고경高慶‧왕명王明‧요걸饒傑에게 장부를 가지고 민간에 나가서 도와줄 것을 청하여 받은 돈이 있으면 빠짐없이 기록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적은 돈도 모두 받은 결과 점차 누적되어 한 달 만에 비용이 충분하였고 공사가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가서可栖가 이곳에 와서 거주한 지가 지금 10년이 되었다.
내가 보건대,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슨 일을 할 때 모두 힘을 들이기를 부지런히 하고 고심하기를 전일하게 하면서 거칠게 일을 마무리하려 하지 않고 빠른 효과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크게 이루고,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기를 잘하여 그들이 하는 일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는 어찌 그들의 설교가 족히 사람을 움직일 만하여 그런 것일 뿐이겠는가.
예컨대 가서可栖가 황폐한 땅을 다듬어 불전佛殿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소요되는 경비를 민간에서 한 푼 두 푼 정성껏 모아 10년이란 세월을 지루하게 여기지 않고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으니, 그가 스스로 노력하여 목적을 달성한 것이 어찌 지혜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불교의 학설이 사실 한창 천하에 중시되고 있다고는 하나 부처를 배우는 자가 또 이와 같이 경영을 잘하고 있다.
그런데 유자儒者의 경우는 성인聖人의 도리를 학습하여 으뜸이라고 자부하다가, 천하의 일을 맡게 되면 부지런히 실천하는 의지와 굳게 지키는 지조가 전혀 없다.
젊은이와 늙은이를 막론하고 서로 말하기를 “진실로 한때의 이익을 창출해내면 그뿐이다.
어찌 평생 동안 쉬지 않고 교화를 베풀어 먼 후일에 성과가 있기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하여, 서로간에 이와 같이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천여 년 동안 비록 뛰어난 인물이 나왔더라도 그 사이에서 뜻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注
이로 보건대 유자儒者가 도리어 부처를 배우는 자들에게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불교가 흥성한 이유는 유자儒者들이 스스로 성인聖人의 도리를 지키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들에게 기문記文을 지어준 것은 그들의 재능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유자儒者의 도道가 세상에 행해지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