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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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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之典刑이니 雍容雅頌이라
熙寧三年三月 尙書司封員外郞秘閣校理錢君純老出爲婺州할새
秘閣同舍之士相與飮餞于城東佛舍之觀音院하니 會者凡二十人이라
純老亦重僚友之好하고 而欲慰處者之思也
乃爲詩二十言以示坐者하니
於是 在席人 各取其一言爲韻하고 賦詩以送之러니
純老至州 將刻之石할새 而以書來曰 爲我序之하라하니라
蓋朝廷常引天下儒學之士하여 聚之館閣 所以長養其材而待上之用이니
有出使於外者어든 則其僚必相告語하며
擇都城之中廣宇豐堂 游觀之勝하여 約日皆會하고
飮酒賦詩하여 以敍去處之情하고
而致綢繆之意하나니 歷世寢久 以爲故常이라
其從容道義之樂 蓋他司所無
而其賦詩之所稱引況諭 莫不道去者之義하고 祝其歸仕於王朝 而欲其無久於外
所以見士君子之風流習尙 篤於相先이니 非世俗之所能及이며
又將待上之考信於此하여 而以其彙進이요 非空文而已也
純老以入等하여 歷敎國子生하고 入館閣하여 爲編校書籍校理檢討
其文章學問有過人者하니 宜在天子左右하여 與訪問하고 任獻納이로되
而顧請一州하여 欲自試於川窮山阻僻絶之地하니 其志節之高 又非凡才所及이라
此賦詩者所以推其賢하며 惜其去 殷勤反覆而不能已
余故爲之하여 序其大旨하여 以發明士大夫之公論하고 而與同舍視之하여 使知純老之非久於外也
十月日序하노라
王遵巖曰 治朝盛世 文儒遭逢出入得意之氣象 藹然篇中하니
觀者不但可以想見其人이요 而又可以知其時也라하니라


06. 관각館閣에서 지무주知婺州로 부임하는 전순로錢純老를 전송하는 의 서문
문장의 전범典範으로, 온화한 아송雅頌과도 같은 작품이다.
희령熙寧 3년 3월 상서성사봉원외랑尙書省司封員外郞 비각교리秘閣校理 전군錢君 순로純老가 도성을 떠나 무주婺州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때 삼관三館비각秘閣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사들이 서로 함께 도성 동쪽에 있는 절 가운데 관음원觀音院에서 술을 마시며 그를 전송하였는데, 모인 자들은 총 20명이었다.
순로純老도 동료들과의 우호를 중시하여 도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려 했다.
그래서 20자로 된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를 지어 좌중의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좌중에 있던 사람들도 저마다 순로純老가 지은 시에서 한 글자씩 취해 운자韻字로 삼고 증시贈詩를 지어 전송했다.
순로純老무주婺州에 부임하여 이 시들을 비석에 새기려고 하면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 “나를 위해 서문을 써주시오.” 하였다.
조정朝廷에서 늘 유학儒學을 공부한 천하天下인사人士들을 선발하여 관각館閣에 모으는 이유는 그들의 재능을 배양해두었다가 황제께서 임용할 때 대비하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외지로 벼슬살이하러 떠나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의 동료들은 반드시 상호간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는 도성 안의 큰 집과 유람할 만한 좋은 장소를 고르고 날을 잡아 함께 모인다.
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증시贈詩를 지어 떠나는 이와 남는 이들 사이의 회포를 풀고 서로간의 끈끈한 정을 전달한다.
여러 세대를 거쳐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행위는 관습으로 굳어졌다.
여유롭게 도의道義로 교제하는 그 즐거움은 아마도 다른 관서에는 없는 관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읊는 시에서 말하고 비유하는 내용은 하나같이 떠나는 사람의 고상한 인품을 칭찬하면서 이 사람이 조정으로 돌아와 벼슬하기를 축원하고 외지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사군자士君子풍류風流와 관습이 상호간에 예의를 차리는 것을 특별히 중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일반 세속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황제가 이 작품을 통해 실제 정황을 고찰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 사군자士君子들이 모두 승진하는 계기를 조성할 것이고 그저 헛된 문장으로 그치고 말지는 않을 것이다.
순로純老명경明經, 진사進士, 제책制策을 통해 급제하여 국자감國子監 생원生員을 가르친 뒤에 관각館閣에 들어가 서적을 편찬 교감하고, 비각秘閣교리校理사관史館검토관檢討官을 지냈다.
남보다 월등한 문장과 학문 실력을 갖춘 그는 마땅히 천자의 곁에 있으면서 천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데 참여하고 간언을 올리는 직임을 맡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하나를 다스리겠다고 자청하여 산천으로 막힌 벽지僻地에서 스스로를 시험하고자 하니, 그의 높은 지조는 또 평범한 재주를 가진 이가 따라잡을 수준이 아니다.
이것이 증시贈詩를 지어준 자들이 순로純老현능賢能을 추앙하고 외지로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간절하여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나는 이 때문에 그들을 대신하여 이 시들의 요지要旨를 서문으로 작성하여 사대부士大夫공론公論을 천명하고 동시에 그를 동료나 다름없이 간주함으로써 그가 외지에서 오래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하였다.
10월 아무 날에 서문을 쓴다.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태평성대에 문사文士가 때를 만나 조정에서 출입할 적에 유감이 없는 기상氣象이 이 작품 안에서 물씬 배어나고 있다.
이 문장을 보는 사람들은 그 사람됨을 상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가 어떠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館閣送錢純老知婺州詩序 : 작자가 52세 때인 熙寧 3년(1070)에 쓴 글이다. 純老는 錢藻의 자인데 秘閣校理를 지냈다. 熙寧 3년 그가 知婺州로 부임하게 되자, 館閣에 재직하던 동료들이 그를 전송하며 贈詩를 써주었는데, 그가 부임 후 이 시들을 비석에 새기려고 하면서 당시 越州通判으로 있던 작자에게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작자는 이 서문에서 錢藻가 외지에 오래 머물지 않고 머지않아 조정으로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역주2 三館 : 崇文館에 딸린 昭文館, 史館, 集賢院 등 세 관서를 말한다. 經, 史, 子, 集 四部을 관리하면서 문헌을 교정하고 편찬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역주3 明經進士制策 : 明經은 유학 경전의 뜻을 물어 인재를 뽑고, 進士는 詩賦를 평가하여 뽑고, 制策은 황제가 문제를 내걸어 뽑는 과거시험이다. 그러나 宋나라 때는 이 세 과목을 進士시험에 통합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그저 進士시험을 뜻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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