熙寧三年三月에 尙書司封員外郞秘閣校理錢君純老出爲婺州할새
秘閣同舍之士相與飮餞于城東佛舍之觀音院
하니 會者凡二十人
이라
於是에 在席人이 各取其一言爲韻하고 賦詩以送之러니
純老至州에 將刻之石할새 而以書來曰 爲我序之하라하니라
蓋朝廷常引天下儒學之士하여 聚之館閣은 所以長養其材而待上之用이니
而其賦詩之所稱引況諭 莫不道去者之義하고 祝其歸仕於王朝요 而欲其無久於外라
所以見士君子之風流習尙이 篤於相先이니 非世俗之所能及이며
又將待上之考信於此하여 而以其彙進이요 非空文而已也라
純老以
入等
하여 歷敎國子生
하고 入館閣
하여 爲編校書籍校理檢討
라
其文章學問有過人者하니 宜在天子左右하여 與訪問하고 任獻納이로되
而顧請一州하여 欲自試於川窮山阻僻絶之地하니 其志節之高는 又非凡才所及이라
此賦詩者所以推其賢하며 惜其去가 殷勤反覆而不能已라
余故爲之하여 序其大旨하여 以發明士大夫之公論하고 而與同舍視之하여 使知純老之非久於外也라
注
王遵巖曰 治朝盛世에 文儒遭逢出入得意之氣象이 藹然篇中하니
觀者不但可以想見其人이요 而又可以知其時也라하니라
06. 관각館閣에서 지무주知婺州로 부임하는 전순로錢純老를 전송하는 시詩의 서문
注
문장의 전범典範으로, 온화한 아송雅頌과도 같은 작품이다.
희령熙寧 3년 3월 상서성사봉원외랑尙書省司封員外郞 비각교리秘閣校理 전군錢君 순로純老가 도성을 떠나 무주婺州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때 삼관三館과 비각秘閣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사들이 서로 함께 도성 동쪽에 있는 절 가운데 관음원觀音院에서 술을 마시며 그를 전송하였는데, 모인 자들은 총 20명이었다.
순로純老도 동료들과의 우호를 중시하여 도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려 했다.
그래서 20자로 된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를 지어 좌중의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좌중에 있던 사람들도 저마다 순로純老가 지은 시에서 한 글자씩 취해 운자韻字로 삼고 증시贈詩를 지어 전송했다.
순로純老가 무주婺州에 부임하여 이 시들을 비석에 새기려고 하면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 “나를 위해 서문을 써주시오.” 하였다.
조정朝廷에서 늘 유학儒學을 공부한 천하天下의 인사人士들을 선발하여 관각館閣에 모으는 이유는 그들의 재능을 배양해두었다가 황제께서 임용할 때 대비하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외지로 벼슬살이하러 떠나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의 동료들은 반드시 상호간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는 도성 안의 큰 집과 유람할 만한 좋은 장소를 고르고 날을 잡아 함께 모인다.
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증시贈詩를 지어 떠나는 이와 남는 이들 사이의 회포를 풀고 서로간의 끈끈한 정을 전달한다.
여러 세대를 거쳐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행위는 관습으로 굳어졌다.
여유롭게 도의道義로 교제하는 그 즐거움은 아마도 다른 관서에는 없는 관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읊는 시에서 말하고 비유하는 내용은 하나같이 떠나는 사람의 고상한 인품을 칭찬하면서 이 사람이 조정으로 돌아와 벼슬하기를 축원하고 외지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사군자士君子의 풍류風流와 관습이 상호간에 예의를 차리는 것을 특별히 중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일반 세속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황제가 이 작품을 통해 실제 정황을 고찰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 사군자士君子들이 모두 승진하는 계기를 조성할 것이고 그저 헛된 문장으로 그치고 말지는 않을 것이다.
순로純老는 명경明經, 진사進士, 제책制策을 통해 급제하여 국자감國子監 생원生員을 가르친 뒤에 관각館閣에 들어가 서적을 편찬 교감하고, 비각秘閣의 교리校理와 사관史館의 검토관檢討官을 지냈다.
남보다 월등한 문장과 학문 실력을 갖춘 그는 마땅히 천자의 곁에 있으면서 천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데 참여하고 간언을 올리는 직임을 맡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주州 하나를 다스리겠다고 자청하여 산천으로 막힌 벽지僻地에서 스스로를 시험하고자 하니, 그의 높은 지조는 또 평범한 재주를 가진 이가 따라잡을 수준이 아니다.
이것이 증시贈詩를 지어준 자들이 순로純老의 현능賢能을 추앙하고 외지로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간절하여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나는 이 때문에 그들을 대신하여 이 시들의 요지要旨를 서문으로 작성하여 사대부士大夫의 공론公論을 천명하고 동시에 그를 동료나 다름없이 간주함으로써 그가 외지에서 오래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하였다.
注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태평성대에 문사文士가 때를 만나 조정에서 출입할 적에 유감이 없는 기상氣象이 이 작품 안에서 물씬 배어나고 있다.
이 문장을 보는 사람들은 그 사람됨을 상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가 어떠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