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子固作文之旨 與其所自任處로 幷已槪見하니 可謂文之中尺度者也라
自蜀以書至京師遺余하여 稱蜀之士하되 曰黎生安生者라하더니
旣而오 黎生攜其文數十萬言하고 安生攜其文亦數千言이어늘 辱以顧余한대
讀其文
하니 誠閎壯雋偉
하며 善
馳騁
하여 窮盡事理
하니 而其材力之放縱
을 若不可極者也
러라
二生固可謂魁奇特起之士요 而蘇君固可謂善知人者也라
頃之에 黎生補江陵府司法參軍하여 將行할새 請余言以爲贈이어늘 余曰
余之知生은 旣得之於心矣어늘 迺將以言相求於外邪아하니 黎生曰
生與安生之學於斯文을 里之人 皆笑以爲迂闊이라하니
今求子之言은 蓋將解惑於里人이라한대 余聞之하고 自顧而笑러라
知信乎古而不知合乎世하며 知志乎道而不知同乎俗이 此余所以困於今而不自知也라
今生之迂는 特以文不近俗이니 迂之小者耳어늘 患爲笑於里之人하니
若余之迂는 大矣라 使生持吾言而歸면 且重得罪하리니 庸詎止於笑乎아
謂余之迂爲善이어든 則其患若此요 謂爲不善이어든 則有以合乎世하여 必違乎古하며 有以同乎俗하여 必離乎道矣리라
生其無急於解里人之惑이면 則於是焉必能擇而取之리라
07. 여생黎生과 안생安生 두 사람에게 주는 서문
注
자고子固가 문장을 지은 취지가 그가 자부하는 경지와 함께 대체적으로 드러났으니, 문장 중에서도 규범에 맞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군趙郡의 소식蘇軾은 나와 같은 해에 급제한 벗이다.
그는 촉蜀 땅에서 경사京師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와 촉蜀 땅의 선비인 여생黎生과 안생安生이라는 사람을 칭찬했다.
이윽고 여생黎生이 그가 지은 글 수십만 자를, 그리고 안생安生은 그가 지은 글 수천 자를 휴대하고 나를 방문하였다.
내가 그 글들을 읽어보니 확실히 담긴 기상이 크고 웅장했으며, 억양반복抑揚反覆의 변화와 거침없이 치닫는 솜씨가 대단하여 사리事理를 유감없이 분석하였으니, 그와 같은 이들의 자유분방한 재주와 필력은 어떻게 평론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들 두 사람은 진정 뛰어나고 특출한 선비라 할 수 있으며, 소군蘇君도 진정 인재를 잘 알아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얼마 후 여생黎生이 강릉부江陵府의 사법참군司法參軍으로 보임補任되어 부임하려 할 때, 나에게 이별에 즈음하여 몇 마디 충고하는 말을 써달라고 요청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 대해 아는 것을 이미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데 구태여 언어를 통해 밖으로 표현하기를 바라는가.” 그러자 여생黎生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와 안생安生이 유학儒學을 배우는 것을 두고 고향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비웃으며 오활하다고 여깁니다.
지금 당신의 한마디 말을 청하는 것은 장차 마을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주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웃었다.
세상에서 오활하기로는 그 누가 나보다 심한 이가 있겠는가.
옛 성현의 가르침을 믿을 줄은 알아도 세상에 영합할 줄은 모르며, 도道에 뜻을 둘 줄은 알아도 세속과 한통속이 될 줄은 모르니, 이것이 내가 지금 세상에 곤란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그 이유를 모르는 이유이다.
세상에서 오활하기로는 그 누가 나보다 심한 이가 있겠는가.
지금 그대들이 오활한 것은 다만 문장이 시속時俗에 가깝지 않다는 이유 때문인데, 이는 오활한 것 가운데 사소한 경우인데도 마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걱정한다.
나처럼 오활한 것은 중대한 경우이니, 만약 내 말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강릉부江陵府로 부임한다면 장차 크게 죄를 얻을 것이니, 어찌 비웃음을 당하는 정도로 그치겠는가.
그렇다면 나같은 사람이 그대들에게 장차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의 오활함이 좋은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것이 조성한 재난이 그와 같고, 나의 오활함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세상과 영합하는 부분이 있어 반드시 옛 성현의 가르침을 위배하고, 시속과 부합하는 부분이 있어 반드시 성현의 도를 위배할 것이다.
그대들은 마을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주는 데에 급급해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이 두 가지 중에서 올바른 것을 가려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이 글을 써서 두 사람에게 주고 아울러 소군蘇君도 한번 읽어보기를 바라는 바이니,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注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논변이 신중하고 치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