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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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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曾子固本色이라
至秦開其地하여 列於하여 始幷爲閩中郡이라
與吳之豫章 爲其通路
其路在閩者 陸出則阨於兩山之間하고 山相屬無間斷하여 累數驛이라야 迺一得平地하니 小爲縣하고 大爲州
然其四顧亦山也
其途或逆坂如緣絙하고 或垂崖如一髮하며 或側徑鉤出於不測之谿上
皆石芒峭發하여 擇然後可投步
負戴者雖其土人이라도 猶側足然後能進이요 非其土人이면 罕不躓也
其谿行 則水皆自高瀉下하고 石錯出其間하여 如林立하고
如士騎滿野하여 千里下上 不見首尾
水行其隙間 或衡縮蟉糅하고 或逆走旁射어늘
其狀若蚓結하고 若蟲鏤하며 其旋若輪하고 其激若矢
舟溯沿者 投便利라가 失毫分하면 輒破溺하니 雖其土長川居之人이라도 非生而習水事者 不敢以舟楫自任也
其水陸之險如此하니라
漢嘗處其衆江淮之間而虛其地하니 蓋以其陿多阻
豈虛也哉리오
福州治하고 於閩爲土中이니 所謂閩中也
其地於閩爲最平以廣하여 四出之山皆遠하고在其南하고 大海在其東이라
其城之內外皆涂어늘 旁有溝하고 溝通하여 舟載者晝夜屬于門庭이라
麓多桀木하고 而匠多良能하여 人以屋室鉅麗相矜하니
雖下貧이라도 必豐其居하고 而佛老子之徒 其宮又特盛이라
城之中三山 西曰閩山이요 東曰九僊山이요 北曰粤王山이니 三山者鼎趾立이라
其附山 蓋佛老子之宮以數十百이니 其瓌詭殊絶之狀 蓋已盡人力이라
光祿卿直昭文館程公爲是州할새 得閩山嶔崟之際하여 爲亭於其處하니 其山川之勝 城邑之大 宮室之榮 不下簟席而盡於四矚이라
程公以謂在江海之上 爲登覽之觀 可比於道家所謂之山이라 故名之曰道山之亭이라하니라
閩以險且遠이라 故仕者常憚往이어늘
程公能因其地之善하여 以寓其耳目之樂하니 非獨忘其遠且險이요 又將抗其思於埃壒之外하니 其志壯哉로다
程公於是州以治行聞하니
旣新其城하고 又新其學하며 而其餘功又及於此
蓋其歲滿 就更廣州하여 拜諫議大夫하고 又拜給事中集賢殿修撰이러니 今爲越州
字公闢이요 名師孟云이라


04. 도산정道山亭에 쓴 기문
증자고曾子固의 본디 색깔이 드러난다.
지역이 옛날에는 나라에 예속된 곳이었는데, 나라 때에 이르러 이 지역을 개척하여 화하華夏가 관할하는 범위에 편입하고 비로소 여러 고을을 합쳐 민중군閩中郡으로 삼았다.
지역의 태말太末 지역의 예장豫章 지역으로 출입하는 두 갈래의 통로이다.
지역에 뻗어 있는 통로 중에 육로로 갈 경우에는 두 산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길을 거쳐가야 하는데, 산이 계속 이어져 끊어진 곳이 없다가 여러 개의 역참을 지나서야 비로소 한 곳의 평지를 만나니, 작은 평지는 이고 큰 평지는 이다.
그러나 그 사방을 둘러보면 또한 모두 산이다.
그 도로가 어떤 곳은 기울어진 비탈길이 마치 동아줄을 걸쳐놓은 것 같고, 어떤 곳은 벼랑에 드리워져 있는 모양이 마치 한 가닥 머리털을 잡아매놓은 것 같기도 하며, 어떤 곳은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시냇물 위에서 오솔길을 더듬어 찾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로 가든 모두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아나온 바위가 깔려 있으므로 발 디딜 곳을 잘 골라 디뎌야만 걸음을 뗄 수 있다.
물건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었을 때는 비록 그 현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도 오히려 발을 조심조심 디뎌본 뒤에 갈 수 있으니, 현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넘어지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수로로 갈 경우에는 그 계곡물이 모두 높은 곳에서 쏟아져 내리고, 바위가 계곡물 사이에 어지럽게 삐져나와 있는 모습이 마치 숲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는 것 같다.
수많은 바위는 마치 들판에 가득한 병마兵馬가 천 리까지 깔려 있어 처음과 끝을 볼 수 없는 것과도 같다.
물이 바위의 빈틈 사이로 지나가는데, 혹 부딪쳐 멈추었다가 휘돌고 혹 소용돌이치다가 옆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 형상은 지렁이가 몸을 서리는 것 같고 벌레가 무엇을 갈아먹은 모양 같기도 하며, 그 돌아 흐르는 것은 수레바퀴 같고 그 급히 흐르는 것은 날아가는 화살 같기도 하다.
역류하여 올라오거나 흐름을 따라 내려가는 배가 만일 편히 가기 위해 모험을 부리다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게 되면 곧 배가 부서지고 사람이 물에 빠지게 되니, 비록 본 고장에서 장성하여 물 위에서 생활한 사람이라도 어릴 적부터 물 위에서 하는 작업을 익숙하게 익히지 않았다면 감히 노를 잡고 스스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 지역의 수로와 육로의 교통상황은 이처럼 험난하다.
나라가 일찍이 이 지역의 백성을 장강長江회하淮河 일대로 이주시켜 이 지역을 비운 적이 있었는데, 이는 이곳의 협곡에 험난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빠짐없이 모두 비울 수 있었겠는가.
복주福州의 관청은 후관候官에 있는데 지방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이른바 민중閩中이다.
이 지방은 지역에서 가장 평탄하고 광활하여 사방에 솟은 산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는데, 길게 뻗은 민강閩江이 남쪽에 있고 큰 바다가 동쪽에 있다.
그곳의 성은 안팎에 모두 도로가 있고 도로가에는 도랑이 있으며 도랑은 강과 바다로 통하여 손님과 짐을 실은 배들이 밤낮으로 문 앞에 모여든다.
산기슭에는 거목이 많고 장인은 좋은 솜씨를 지닌 자들이 많아 사람들이 자기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지어 서로 과시한다.
비록 가난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자기 집을 크고 넓게 꾸미는데, 불가佛家도가道家의 무리는 그들의 이 또 특히 많다.
성 안에 있는 세 산은 서쪽은 민산閩山이라 하고 동쪽은 구선산九僊山이라 하고 북쪽은 월왕산粤王山이라 하는데, 세 산이 솥발처럼 서 있다.
그 산을 의지하여 세운 불가佛家도가道家의 사찰과 도관道觀이 많아 수십 군데 이상 백 군데나 되는데, 그 기이하고 특별한 형상은 인력으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다 발휘한 것이다.
광록경光祿卿 직소문관直昭文館 정공程公이 이 고을을 다스릴 적에 민산閩山의 높은 곳을 선정하여 그곳에 정자를 세우니, 그 산천의 아름다움과 성읍城邑의 거대함과 궁실의 번화로움을 앉은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더라도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는 가운데 모두 눈 안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정공程公은 ‘강해江海가에다가 올라가서 유람할 정자를 세우고 보니 주위에 보이는 세 산이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에 견줄 만하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도산지정道山之亭’이라 이름하였다.
지역은 도로가 험난하고 멀어서 벼슬하는 자들이 항상 그곳에 가기를 꺼린다.
그런데 정공程公은 능히 그 지방의 좋은 특성을 살려 거기에다 이목의 즐거움을 부쳤으니, 그 지역이 멀고 험난하다는 것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의 생각을 속세의 밖에다가 높이 두었으니 그 뜻이 장대하다.
정공程公은 이 고을에서 치적이 있었다는 명성이 있다.
그 성을 새로 수축하고 또 그 학사를 새로 건립하였는데, 그 여력이 또 이 일에까지 미쳤다.
임기가 다해 광주지주廣州知州로 전보되었다가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되고 또 급사중給事中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에 임명되었으며, 지금은 월주지주越州知州로 있다.
그의 자는 공벽公闢이고 이름은 사맹師孟이다.


역주
역주1 道山亭記 : 작자가 明州(지금의 浙江 寧波)知州로 재임하던 元豐 2년(1079)에 전 福州知州 程師孟의 요청에 따라 지은 작품이다. 작자는 이때 61세였다. 程師孟이 福州知州로 재임하던 중에 그 지방이 험난하고 열악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성곽을 수축하고 학교도 중건한 치적을 찬양한 뒤에 경치 좋은 자리에 道山亭을 건립하여 物欲을 멀리하는 道家思想을 추구한 뜻을 서술하였다.
역주2 閩故隷周者也 : 周代에 지금의 福建과 浙江 남부에 거주하던 閩人을 일곱 부족으로 나누어 七閩이라 불렀다. 이로 인해 후세에 福建을 閩이라 하였다.
역주3 中國 : 中國 華夏族이 상고 때 黃河 유역에 도읍을 세웠는데, 그곳이 천하의 중앙이라 하여 자칭 中國이라 하고 中國을 둘러싼 기타 지역을 四方이라 불렀다.
역주4 粤之太末 : 粤은 越과 같고 지금의 浙江 일대에 있었다. 太末은 옛 縣의 이름으로, 秦漢 때 會稽郡에 소속되어 있었다.
역주5 候官 : 옛 縣 이름이다. 宋代에는 福建路에 소속되었고 지금의 福州이다.
역주6 長江 : 여기서는 閩江을 가리키는데 建江이라 부르기도 한다. 길이는 약 1,300리이다.
역주7 潮汐 : 潮水汐水의 준말로, 밀물과 썰물을 말한다. 강물과 바닷물이 주기적으로 불어났다 빠졌다 하는 현상이다. 여기서는 바다와 맞닿은 강의 하류를 뜻한다.
역주8 蓬萊方丈瀛洲 : 전설에서 해상에 있다는 三神山이다. 三壺라고도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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