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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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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見極正大하고 文有典刑이라
劉向所集次新序三十篇 目錄一篇 隋唐之世 尙爲全書러니 今可見者 十篇而已
臣旣考正其文字하고 因爲其序論曰
古之治天下者 一道德하고 同風俗이라
之廣 萬民之衆 千歲之遠 其敎已明하고 其習已成之後 所守者一道 所傳者一說而已
故詩書之文 歷世數十하고 作者非一이로되 而其言未嘗不相爲終始하니 化之如此其至也
當是之時하여 異行者有誅하고 異言者有禁하니 防之又如此其備也
故二帝三王之際 及其中間嘗更衰亂이나 而餘澤未熄之時 百家衆說 未有能出於其間者也
及周之末世하여 先王之敎化法度旣廢하고 餘澤旣熄 世之治方術者 各得其一偏이라
故人奮其私智하고 家尙其私學者 蜂起於中國하니 皆明其所長而昧其短하고 矜其所得而諱其失이라
天下之士 各自爲方而不能相通하여 世之人 不復知夫學之有統道之有歸也
先王之遺 文雖在 皆絀而不講이온 況至於秦爲世之所大禁哉리오
漢興 六藝皆得於斷絶殘脫之餘하여 世復無明先王之道以一之者하니
諸儒苟見傳記百家之言이면 皆悅而嚮之
故先王之道 爲衆說之所蔽하여 闇而不明하고 鬱而不發하여
而怪奇可喜之論 各師異見하여 皆自名家者 誕漫於中國하여 一切不異於周之末世하니 其弊至於今尙在也
自斯以來 天下學者 知折衷於聖人하여 而能純於道德之美者 揚雄氏而止耳
如向之徒 皆不免乎爲衆說之所蔽하여 而不知有所折衷者也
漢之士 豈特無明先王之道以一之者哉리오
亦其出於是時者 豪傑之士少 故不能特起於流俗之中絶學之後也
蓋向之序此書 於今爲最近古하니
雖不能無失이나 然遠至舜禹하고 而次及於周秦以來 古人之嘉言善行 亦往往而在也하니 要在愼取之而已
故臣旣惜其不可見者而校其可見者特詳焉하니 亦足以知臣之攻其失이라
豈好辯哉리오 臣之所不得已也로이다
王遵巖曰 南豐文字 於原本經訓處 多用董仲舒劉向也니라하니라


06. 《신서新序》에 관한 목록서
식견은 극히 정대하고 문장은 전범이 있다.
유향劉向이 수집하여 엮은 《신서新序》 30편과 〈목록目錄〉 1편은 시대까지만 해도 온전하게 남아 있었는데,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10편뿐이다.
나는 그 문자를 조사하여 바로잡고 이어 다음과 같이 서문을 지어 논변한다.
옛날에 천하를 다스린 자는 사람들의 도덕을 통일하고 사회풍속을 동일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구주九州의 넓은 천하와 만백성의 수많은 인구와 천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그 교화가 이미 명확해지고 그 풍속이 이미 형성된 뒤에는 견고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의 도였고 후세에 전하는 것은 하나의 학설일 뿐이었다.
이 때문에 《시경詩經》, 《서경書經》의 문자가 수십 대를 지나고 작자가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 말이 서로 일맥상통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교화가 이처럼 지극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단행위를 하는 자는 주벌을 당하고 이단의 설을 주장하는 자는 금지시켰으니, 이단을 방지하는 것이 또 이처럼 완비하였다.
그러므로 이제삼왕二帝三王 당시와 그 중간에 쇠란을 겪었지만 선왕의 남은 덕택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때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각종 학설이 그 사이에 출현할 수 없었다.
나라 말엽에 이르러 선왕의 교화와 법도가 폐지되고 남은 덕택이 소멸되자, 세상에 학술을 연구하는 자들이 각기 그 한쪽 방면의 도리를 얻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자기의 사적인 지혜를 드러내고 집집마다 자기의 학파를 숭상하는 일이 중국에 벌떼처럼 일어났는데 모두 그 장점에는 밝고 단점에는 어두웠으며, 그 잘하는 것은 과시하고 그 결점은 숨겼다.
그리하여 천하의 선비들이 각기 자기 영역만 표방하고 서로 통하지 못하여,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학문은 전통이 있고 는 근본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선왕들이 후세에 남긴 글이 비록 남아 있었으나 모두 팽개치고 강구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나라 때 와서 선왕의 도가 당대에 엄격하게 금지된 상황에 처한 경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나라가 일어났을 때는 육예六藝(육경六經)를, 모두 원형이 파손되고 누락된 상황에서 수습하여 세상에 다시 선왕의 도를 밝혀 그것으로 통일시킬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제유諸儒들이 혹시 세상에 전해오는 백가百家의 학설을 보면 모두 기뻐하여 그것을 추종하였다.
이 때문에 선왕의 도가 각종 학설에 가려져서 어두워 밝지 못하고 닫혀져 드러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괴하여 좋아할 만한 설로 저마다 이단의 견해를 추구하여 모두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룬 자들이 온 나라에 만연하여 일체 나라 말기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으니, 그 폐단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때 이후로 천하의 학자 중에 성인의 가르침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준칙을 삼을 줄 알고, 아울러 순수하게 도덕의 아름다운 경지에 도달한 자는 오직 양웅揚雄뿐이었다.
유향劉向과 같은 무리는 모두 잡다한 학설에 현혹됨을 면치 못하여 올바른 준칙을 취할 줄을 몰랐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문왕文王을 기다린 뒤에 분발하는 자는 평범한 사람이다. 걸출한 선비의 경우는 비록 문왕文王이 출현하지 않더라도 분발한다.” 하였다.
나라의 선비만 어찌 유독 선왕의 도를 밝혀 그것으로 통일시킬 자가 없었단 말인가.
그 이유는 그 당시에 나온 자들 중에 걸출한 선비가 적었으므로, 당시 수준이 낮은 사회풍조와 학문이 단절된 속에서 뛰어난 인재가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유향劉向이 편집한 이 책이 지금 시점에서 보면 가장 고대古代와 근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비록 결점이 없지는 않으나 멀리 시대부터 이후까지 옛사람의 가언嘉言선행善行이 또한 그 속에 이따금 남아 있으니, 요점은 그것을 신중히 취사선택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볼 수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는 한편, 그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상세하게 교정하였으니, 또한 내가 그 결점을 공박攻駁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어찌 변론하기를 좋아해서이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남풍南豐의 문자는 경전經典의 뜻을 근본으로 한 곳에 동중서董仲舒유향劉向의 설을 많이 채택하였다.”


역주
역주1 新序目錄序 : 작자가 漢나라 劉向(B.C. 77~B.C. 6)이 편찬한 《新序》 1책과 目錄을 조사하여 오류를 바로잡은 뒤에 쓴 서문이다. 儒家의 표준 관점에서 출발하여 劉向이라는 인물과 《新序》의 장단점에 대해 평가하면서, 劉向과 같은 부류는 聖人의 가르침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준칙을 삼을 줄 몰랐다고 비평하고, 아울러 이 책에 대해 독자들은 취사선택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新序》는 전설 속의 舜‧禹로부터 漢나라 초기 역사적인 인물들의 각종 사적을 기록한 책이다.
역주2 九州 : 고대에 중국을 冀‧袞‧靑‧徐‧揚‧荊‧豫‧梁‧雍 등 아홉 개의 州로 나누었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중국 천하를 가리킨다.
역주3 孟子曰……猶興 : 《孟子》 〈盡心 上〉에 나오며, 그 원문은 “待文王而後 興者 凡民也 若夫豪傑之士 雖無文王 猶興”으로 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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