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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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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覽此文이면 則知爲縣者所甚難이라
爲後世之吏하여 得行其志者少矣 此仕之所以難也로되
而縣爲最甚하니 何哉
凡縣之政無小大 令主簿皆獨任하되 而民事委曲 當有所操縱緩急하여 不能一斷以法하나니
擧法而繩之 則其罪固易求也
凡有所爲 問可不可於州하되 執一而違之 則其勢固易撓也
其罪易求하며 其勢易撓 故爲之者有以得於州라야 然後其濟可幾也
不幸其一錙銖與之咈이면 則大者求其罪 小者撓其勢 將不遺其力矣리라
吏之不能自安 豈足道哉리오
縣有不與其擾者乎
方是時也하여 而天下之能忘其勢而好惡不妄者鮮矣 能忘人之勢而强力不苟者亦鮮矣리라
州負其强以取威하고 縣憂其弱以求免하니
其習已久 其俗已成之後 而守正循理以求其得於州하여도 其亦不可以必也
則仕於此者 欲行其志인들 豈非難也哉
君子者 雖無所處而不安이나 然其於自處也 未嘗不擇이니
仕而得擇其自處하면 則縣之事 有不敢任者라도 豈可謂過也哉리오
洪州新建 自太平興國六年으로 分南昌爲縣하고
至嘉祐三年하여는 凡若干年 爲令者 凡三十有九人이로되
而秘書省著作佐郞黃巽公權 來爲其令하여 抑豪縱하고 惠下窮하며 守正循理하여 而得濟其志者也
公權 亦喜其職之行하여 因考次凡爲令者名氏하여
將伐石以書하여 而列置于壁間이라
故予爲之載其行治하고 而因著其爲縣之難하여 使來者得覽焉하노라


05. 홍주洪州 신건현新建縣 현청縣廳에 쓴 기문
이 글을 보면 을 다스리는 자가 매우 어려워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후세의 관리가 되어서 능히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니, 이는 벼슬살이가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데 에서 벼슬살이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까닭은 무엇인가?
의 정무는 크고 작은 일 할 것 없이 현령縣令주부主簿가 모두 전담하지만,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가지각색이어서 관대하게 처리할 것인지 엄격하게 처리할 것인지 조처하는 요령이 있어야지, 일률적으로 법으로 재단裁斷해서는 안 된다.
법에 따라 규제하기로 든다면, 현령縣令의 잘못은 정말로 적발하기 쉽다.
그리고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에 그 가부可否를 묻기 마련인데,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하여 의 지시를 어긴다면, 현령縣令의 권세는 그야말로 꺾이기 쉽다.
현령縣令의 잘못은 적발하기 쉽고 현령縣令의 권세는 꺾이기 쉬우므로, 을 다스리는 자는 로부터 신임을 얻을 수 있어야만 그 성공을 바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의 입장과 사소하게 어긋나기라도 한다면, 크게는 에서 현령縣令의 잘못을 적발하게 되고 작게는 현령縣令의 권세를 꺾어서 앞으로 현령縣令은 자기의 힘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관리가 스스로 편안해하지 못하는 심정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가운데 외부세력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곳이 과연 있는가.
이러한 때에 자신의 권세를 잊고 호오好惡의 감정을 함부로 가하지 않는 사람은 천하에 드물 것이며, 남의 권세를 의식하지 않고 매우 분발하여 구차하게 처신하지 않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는 자신의 강성함을 믿어 위엄을 갖는 반면, 에서는 자신의 약함을 걱정하여 죄를 면하려고만 한다.
이러한 습관이 이미 오래되어 이미 그와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 뒤에는 바른 도리를 준수하여 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해도 꼭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려고 해도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군자는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편안하게 처신하지만,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선택하지 않은 적이 없다.
벼슬을 할 때 자신이 처할 환경을 제대로 선택한다면, 의 직무 가운데 담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홍주洪州신건현新建縣태평흥국太平興國 6년(981)부터 남창南昌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이 되었다.
가우嘉祐 3년(1058)에 이르러 그동안 현령縣令을 맡았던 사람들이 총 39이었다.
그런데 비서성저작좌랑秘書省著作佐郞 황손黃巽 공권公權신건현현령新建縣縣令으로 부임하여 발호하는 자들을 억누르고 궁핍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바른 도리를 준수하여, 자신의 의지를 실현한 사람이었다.
공권公權현령縣令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을 즐거워하던 차에 역대로 신건현新建縣의 현령을 지냈던 모든 사람들의 성씨를 조사하고 차례대로 정리하였다.
그리고는 장차 석재石材를 캐어 와 이들을 비석에 새기고 현청縣廳의 벽 사이에 진열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황손黃巽의 치적을 기재하고 이참에 을 다스리는 어려움을 밝혀 뒷사람으로 하여금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역주
역주1 洪州新建縣廳壁記 : 작자 40세 때인 嘉祐 3년(1058)에 쓴 記文이다. 洪州는 지금의 南昌市이며, 新建縣은 洪州의 屬縣이었다. 당시 지방 관료사회의 폐단을 분석하고 縣을 다스리는 정사가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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