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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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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有古者詩人風刺之義하여 錄之
柳侯 圖其靑陵之居하고 屬予而敍하여 以書曰
武陵之西北 有湖屬于梁山者하니 梁山之西南 有田屬于湖上者하니 吾之先人靑陵之田也
吾築廬於是而將老焉이라
靑陵之西二百步 有泉出於兩厓之間而東注于湖者하니 曰采陵之澗이라
吾爲橋於其上하고 而爲屋以覆之하니 武陵之往來有事於吾廬者 與吾異日得老而歸하고 皆出於此也리라
故題之曰歸老之橋라하니라
維吾先人遺吾此土者하니 宅有桑麻하고 田有秔稌하며 而渚有蒲蓮이라
弋于高而追鳬雁之下上하고 緡于深而逐鱣鮪之潛泳하니 吾所以衣食其力하여 而無愧於心也
息有喬木之繁陰하고 藉有豐草之幽香하며 登山而凌雲하여 覽天地之奇變하고 弄泉而乘月하여 遺氛埃之溷濁하니 此吾所以處其怠倦하여 而樂於自遂也
吾少而安焉하고 及壯而從事于四方하여 累乎萬物之自外至者로대 未嘗不思休于此也
今又獲位于朝하여 而榮於寵祿이나 以爲觀遊于此하여 而吾亦將老矣리니 得無志於歸哉아하니라
又曰 世之老於官者 或不樂於歸하고 幸而有樂之者라도 無以爲歸
今吾有是以成吾樂也하니 其爲我記之하여 使吾後人之有考하여 以承吾志也하라하니라
余以謂先王之養老者備矣 士大夫之致其位者 曰不敢煩以政이라하니 蓋尊之也
而士亦皆明於進退之節하여하니 可謂兩得之也
後世養老之具旣不備하고 士大夫之老於位者 或擯而去之也 然士猶有冒而不知止者하니 可謂兩失之也
今柳侯年六十이요 齒髮未衰하여 方爲天子致其材力하여 以惠澤元元之時
雖欲遺章綬之榮하고 從湖山之樂이나 余知未能遂其好也
然其志於退也如此하니 聞其風者 亦可以興起矣리라
乃爲之記하노라


08. 귀로교歸老橋에 쓴 기문
문장에 옛 시인의 풍자하는 뜻이 깃들어 있으므로 뽑아 기록하였다.
무릉武陵유후柳侯가 장차 청릉靑陵에 자리 잡아 살 계획을 하고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 기문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그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릉武陵의 서북쪽에 양산梁山과 접해 있는 호수가 있으니 백마호白馬湖이고, 양산梁山의 서남쪽에 호숫가에 접해 있는 농토가 있으니 나의 선인先人(돌아가신 아버지)의 청릉靑陵에 있는 농토입니다.
내가 이곳에 집을 짓고 장차 노년을 보내려 합니다.
청릉靑陵의 서쪽으로 2백 보 떨어진 곳에 두 산비탈 사이에서 샘물이 솟아 동쪽 호수로 흐르는 계곡이 있는데 채릉采陵계곡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 위에 다리를 만들고 또 지붕을 만들어 그 다리를 덮었으니 후일에 나의 집에 볼 일이 있어 왕래하는 무릉武陵 사람들은 내가 늙어서 귀향한 것을 칭찬하면서 모두 이 다리를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귀로교歸老橋라 지었습니다.
나의 선인先人께서 나에게 이 토지를 남기셨는데 집 주변에는 뽕나무와 삼이 심어져 있고, 농지에는 메벼와 찰벼가 자라고 있으며, 물가에는 부들과 연이 깔려 있습니다.
높이 주살질하여 위아래로 나는 오리와 기러기를 쫓고, 깊이 낚시질하여 물속에서 헤엄치는 잉어와 붕어를 뒤쫓으니, 이것이 내가 자력으로 입고 먹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이유입니다.
휴식을 취할 때는 높은 나무의 무성한 그늘이 있고 자리를 깔고 앉은 곳에는 무성한 풀의 그윽한 향기가 있으며, 산에 올라 구름 위에서 천지의 기이한 변화를 둘러보고 샘물에 손을 담그고 달빛 아래 거닐어 세상의 혼탁한 기운을 떨쳐버리니, 이것이 내가 한가로이 지내며 유유자적 즐거운 까닭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 여기에서 평안하였고,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사방으로 떠돌아다녀 외적인 만사萬事에 매어 있으면서도 일찍이 여기에서 휴식할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또 조정에서 벼슬자리를 얻어 총애와 녹봉으로 영화를 누리고 있으나, 여기에서 관상하고 노닐며 내가 장차 노년을 보내려 하니 돌아가고픈 뜻이 과연 없을 수 있겠습니까.”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상에 관직생활로 늙은 자들은 간혹 귀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다행히 좋아하는 자가 있더라도 돌아가 의지할 만한 전장田莊이 없습니다.
지금 나는 이것이 있어 나의 즐거움을 실현했으니, 바라건대 나를 위해 기문을 써서 내 후손으로 하여금 살펴볼 만한 자료가 있게 하여 내 뜻을 받들게 해주십시오.”
나는 생각해보건대, 노인을 보살피는 옛 성군들의 제도가 구비되어 사대부가 나이가 들어 그 관직을 그만둘 경우에는 “감히 정사로 번거롭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대체로 그를 존중한 것이고,
선비 또한 모두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법도에 밝아 녹봉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양쪽이 모두 제대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후세에는 노인을 보살피는 제도가 이미 구비되지 않아서 사대부 중 나이 들어 관직에 있는 자를 간혹 물리쳐 쫓아내고, 그런데도 선비 중에는 오히려 명령을 위반하고 그만둘 줄 모르는 자가 있으니 양쪽 모두 잘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유후柳侯는 나이가 60으로 치아와 머리카락이 쇠하지 않아 바야흐로 천자를 위해 그 재능을 다하여 백성들에게 은택을 베풀 시기이다.
비록 관복 차림에 인장을 차는 영화를 버리고 산수山水에서의 낙을 좇고자 하더라도 나는 그가 좋아하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물러나겠다고 각오한 뜻이 이와 같으니 그 기풍을 들은 자들은 또한 분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기문을 쓰노라.


역주
역주1 歸老橋記 : 武陵知州 柳氏가 후일 관직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낼 장소에 다리를 만들고, 작자에게 편지를 보내와 기문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본문 대부분이 상대의 편지 내용을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와 같은 형식은 歐陽脩의 《南陽縣君謝氏墓誌銘》과 유사하다.
역주2 武陵 : 北宋 鼎州의 屬縣으로 지금의 湖南 常德市를 말한다.
역주3 白馬湖 : 지금 湖南 常德市에서 서쪽으로 7리 떨어진 곳에 있다. 白蟒湖라고도 불린다.
역주4 : 저본에 없는 것을 《曾鞏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留祿之人 : 나이가 70이 되었는데도 관직을 내놓고 물러나 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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