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參之歐陽公所贈楊寘琴說序에 不如遠甚이나 而其學問之旨는 亦似有得者하여 錄之라
古者學士之於
에 射能弧矢之事矣
나 又當善其揖讓之節
하고 御能車馬之事矣
나 又當善其驅馳之節
하며
書非能肆筆而已
라 又當辨其體而皆通其意
요 數非能布策而已
라 又當知其用而各盡其法
이며 而
는 至於三千
하고 은 可謂微且多矣
니
然習其射御於禮하고 習其干戈於樂은 則少於學하고 長於朝하니 其於武備固修矣라
於視聽言動有其容
하고 於衣冠飮食有其度
하며 有銘
하고 有戒
하며
蓋其出入進退俯仰左右에 接於耳目하고 動於四體하여 達於其心者는 所以養之至如此其詳且密也라
若夫
萬物之理
와 之際
에 力學以求之
하고 深思以索之
하여 使知其要
하고 識其微
하며 齋戒以守之
하여 以盡其才
하고 成其德
하여 至合於天地而後已者
는 又當得之於心
이니
噫라 古之學者 其役之於內外하여 以持其心養其性者 至於如此하니 此君子所以愛日而自强不息하여 以求至乎極也라
然其習之有素와 閑之有具如此하니 則求其放心하고 伐其邪氣하여 而成文武之材하고 就道德之實者를 可謂易矣라
孔子曰
이라하니 蓋樂者
는 所以感人之心而使之化
라 故曰 成於樂
이라하고
昔舜命夔典樂敎冑子曰
라하니 則樂者
는 非獨去邪
라 又所以救其性之偏而納之中也
라
故和鸞佩玉과 雅頌琴瑟之音이 非其故면 不去於前하니 豈虛也哉아
今學士大夫之於持其身養其性에 凡有待於外者는 皆不能具하고 得之於內者는 又皆略其事하니 可謂簡且易矣라
然所以求其放心하고 伐其邪氣하여 而成文武之材하고 就道德之實者는 豈不難哉아
夫有待於外者는 予旣力不足이어니와 而於琴竊有志焉久矣라
治平三年夏에 得洪君於京師하여 始合同舍之士하여 聽其琴於相國寺之維摩院이라 洪君之於琴에 非特能其音이라 又能其意者也니 予將就學焉이라
同舍之士는 丁寶臣元珍과 鄭穆閎中과 孫覺莘老와 林希子中이요 而予曾鞏子固也라
洪君은 名規요 字方叔이니 以文學吏事로 稱於世云이라
10. 상국사相國寺 유마원維摩院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고 쓴 서문
注
구양공歐陽公이 양치楊寘에게 준 〈금설서琴說序〉와 비교하면 그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학문을 도야하는 방법을 설명한 뜻은 나름대로 올바로 인식한 점이 있는 것 같아 채록하였다.
옛날 학사學士들이 육예六藝에 있어서, 사射는 활을 쏘는 일에 능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 마땅히 예절에 관한 법도 잘 익혀야 했고, 어御는 거마車馬를 다루는 일에 능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 마땅히 말을 빨리 모는 법도 잘 익혀야 했다.
그리고 서書는 붓을 자유자재로 놀리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 그 서체書體를 구분하고 글자 형성의 뜻을 모두 알아야 했고, 수數는 산가지를 잘 놓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 그 쓰임을 알고 그 법을 각각 다 알아야 했고, 오례五禮의 위의威儀는 삼천 가지나 되고 육악六樂의 절문節文은 세세하고 많다 할 만하다.
아, 어쩌면 그리도 번거롭고 수고롭게 하기를 이와 같이 하였단 말인가.
그러나 옛날 학자學者들은 반드시 이것들을 충분히 수행해냈으니 또한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사射와 어御를 예禮에서 익히고 무예를 낙樂에서 익히는 일을 어려서는 학교에서 하고 장성해서는 조정에서 하였으니 군사훈련이 진실로 완전하게 진행되었다.
집안에는 사숙私塾이 있고 당黨에는 상庠이 있고 향鄕에는 서序가 있고 나라에는 학學이 있고 가르칠 때에는 스승이 있었다.
또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데에는 규범이 있고 의관衣冠과 음식에는 법도가 있으며, 안석安席과 지팡이에는 명銘이 있고 대야와 바리에는 계戒가 있었다.
그리고 수레를 타고 갈 때에는 화和, 난鸞을 울리고 걸어갈 때에는 패옥佩玉을 울리고 평소에는 아雅, 송頌의 음악을 연주하여 변고가 있지 않으면 금슬琴瑟이 앞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보고 듣고 실천하여 그 마음에까지 미쳐가게 하였으니, 자신을 수양함이 이처럼 상세하고 치밀했던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이것은 오히려 외면에 의지하여 행하는 것들이다.
삼재三才 만물의 이치와 성명性命의 부분에 관해 힘써 배워서 연구하고 깊이 생각하여 탐색함으로써 그 요점을 알고 그 깊은 뜻을 알게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지켜서 그 재주를 다 발휘하고 그 덕을 완성시켜 천지天地와 합치된 뒤에야 그만두는 일 같은 것은 또 마땅히 마음으로 터득하여야 하는 것이다.
아, 옛날의 학자學者가 내면과 외면에 힘써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성품을 기른 것이 이와 같았으니, 이는 군자君子가 시간을 아껴 스스로 힘써 멈추지 않아서 지극한 경지에 오르려 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익히기를 평소에 꾸준히 하고 방자함을 방지하는 장치가 있었으니, 그렇다면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 삿된 기운을 제거하여 문무文武의 재주를 이루고 도덕道德의 내실을 성취하는 것이 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시詩에서 흥기하고 예禮에서 입신立身하며 낙樂에서 완성한다.” 하였으니, 낙樂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교화되게 하는 것이므로 “낙樂에서 완성한다.”고 한 것이다.
옛날에 순舜이 기夔를 전악典樂으로 임명하고 왕족, 귀족의 자제들을 가르치게 하며 말하기를 “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관대하면서도 엄하며, 강하되 사납지 않게 하고, 소탈하되 오만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낙樂이라는 것은 다만 악惡을 제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 치우친 품성을 고쳐 중도中道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和, 난鸞과 패옥佩玉, 아雅, 송頌과 금슬琴瑟의 음악이 변고가 없으면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의미 없는 일이겠는가.
요즘 학사學士 대부大夫는 몸을 닦고 심성을 기르는 일에 있어서 외면에 필요로 한 것들을 모두 갖추지 못하고, 내면에 얻어야 할 것들은 또 모두 그 일을 소략하게 하니, 간단하고도 쉽다 할 만하다.
그러나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 삿된 기운을 제거하여 문무文武의 재주를 이루고 도덕道德의 내실을 성취하는 일은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군자君子가 되지 못하고 소인小人이 될까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외면에 필요로 한 것은 내가 이미 힘이 부족하지만 거문고에 대해서만큼은 뜻을 둔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치평治平 3년 여름, 도성에서 홍군洪君을 만나 처음으로 같은 관사館舍에 머물고 있던 선비들과 함께 상국사相國寺 유마원維摩院에서 거문고 연주를 듣게 되었는데, 연주를 들어보니 홍군洪君은 가락을 잘 탈 뿐만 아니라 그 뜻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니, 내 장차 그에게 가 거문고를 배우려 한다.
그러므로 내가 옛날의 학문에 대해 흠모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니, 그런대로 내 스스로 분발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관사館舍에 있는 선비는 정보신丁寶臣 원진元珍, 정목鄭穆 굉중閎中, 손각孫覺 신로莘老, 임희林希 자중子中이고, 나는 증공曾鞏 자고子固이다.
홍군洪君은 이름이 규規이고 자字가 방숙方叔이니, 문학文學에 뛰어나고 정사政事에 능하다고 세상에 이름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