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禮에 無往敎而有待問이라하니 則師之道는 有問而告之者爾라
世之挾書而講者 終日言而非有問之者也라도 迺不自知其强聒而欲以師自任하니 何其妄也오
古之敎世子之法은 太傅는 審父子君臣之道以示之하며 少傅는 奉世子以觀太傅之德行而審喩之하니 則示之以道者는 以審喩之爲淺이라 故不爲也어늘 況於師者에 何爲也哉리오
故得其行者 或不得其所以行
하고 得其言者 或不得其所以言也
하여 하니 德如是然後
에 師之道盡
이라
故天子不得而召也며 諸侯不得而友也어늘 又況得而臣之乎아
此는 伊尹太公子思孟子之徒所以忘人之勢요 而唐虞三代大有爲之君所以忘其勢也라
世之挾書而講於禁中者는 官以侍爲名하니 則其任故可知矣어늘
迺自以謂吾師道也는 宜坐而講이라하여 以爲請於上하니 其爲說曰 必如是然後에 合於古之所謂坐而論道者也라하니라
夫
라하니 語其任之無爲與有爲
요 非以是爲尊師之道也
라
且禮於朝에 王及群臣皆立에 無獨坐者하며 於燕皆坐에 無獨立者라
則坐云者는 蓋師之所以命學者요 未果有師道也어늘 顧僕僕然以坐自請者也하니 則世之爲此者는 非妄歟아
注
王遵巖曰 此文은 根據經訓하여 以爲掊擊之地하며 而措詞嚴健하며 復存委曲하니 是는 絶好文字라하니라
注
필시 당시에 이천伊川(정이程頤)이 앉아서 강하는 것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이 의議를 지은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사람을 가르쳐 말씀하기를 “통하려고 노력하고 애태워하지 않으면 열어주고 말해주지 않되, 한 모서리를 들어주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모서리를 반증하지 못하면 일러주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으며,
맹자孟子께서 사람을 가르쳐 말씀하기를 “물음에 답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하였으며,
순자荀子가 사람을 가르쳐 말씀하기를 “묻지 않았는데 일러주는 것을 오만하다고 하며,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일러주는 것을 시끄럽게 지껄인다고 하니, 오만한 것은 잘못이요, 시끄럽게 지껄이는 것도 잘못이다. 군자는 메아리와 같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기禮記》에 말하기를 “가서 가르치는 경우는 없고 묻기를 기다리는 경우는 있다.”고 하였으니, 스승의 도는 물으면 일러주는 것일 뿐이다.
세간에 책을 끼고 다니며 강하는 사람들은 묻는 자가 없는데 종일 떠들어대고도 도리어 자기가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스승으로 자임하려 하니, 어찌 그리 망령스러운가.
옛날 세자世子를 가르치는 법도는, 태부太傅는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의 도리를 자세히 밝혀 가르쳐주며 소부少傅는 세자世子를 받들어 태부太傅의 덕행을 보게 하여 자세히 깨우쳐주니, 도道를 가르쳐주는 자는 자세히 깨우쳐주는 것을 하찮게 여기므로 하지 않는데 하물며 소사少師가 어찌 깨우쳐주는 일을 하겠는가?
자기를 바루어 〈자기의 덕행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변화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행동을 본 사람은 간혹 그렇게 행동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말을 들은 사람은 간혹 그렇게 말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여,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니 덕이 이와 같은 다음에 스승의 도道가 다해진다.
그러므로 천자天子도 부를 수 없으며 제후諸侯도 벗 삼을 수 없는데 게다가 하물며 신하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는 이윤伊尹과 태공太公, 자사子思와 맹자孟子의 무리가 남의 세력을 잊을 수 있었던 까닭이요, 요순堯舜과 삼대三代와 같이 크게 훌륭한 일을 한 군주君主가 자신의 세력을 잊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세간에 책을 가지고 다니며 궁중宮中에서 강론하는 자는 모신다[시侍]는 것을 벼슬 이름으로 삼으니 그 직임職任을 그 때문에 알 수 있는데,
도리어 스스로 생각하기를 스승의 도道는 마땅히 앉아서 강론하는 것이라 하여 이로써 상上에게 청하니, 그 하는 말에 이르기를 “반드시 이렇게 한 다음에 옛날의 이른바 ‘앉아서 도道를 논한다.’는 것에 부합됩니다.”라고 한다.
무릇 “앉아서 도道를 논하는 것은 삼공三公을 말하고, 일어나서 정무를 행하는 것은 경대부卿大夫를 말한다.” 하였으니, 그 직임職任이 애써 노력함이 있고 없음을 말한 것이지 이를 스승을 높이는 방법으로 여긴 것이 아니다.
또한 조정에서의 예법禮法에 따르면 왕과 여러 신하들이 모두 서 있는데 혼자 앉아 있어서는 안 되며, 사석에서 모두 앉아 있는데 혼자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앉아 있는 것을 일찍이 스승을 높이는 예禮로 여긴 적이 없었다.
옛날 진晉나라 평공平公은 해당亥唐에 대해 그가 앉으라고 하면 앉았고, 증자曾子는 공자孔子를 모실 적에 공자孔子께서 “삼參아, 다시 앉거라.”라고 하셨으니,
앉으라는 것은 스승이 배우는 자에게 명한 것이지 정말로 스승의 도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도 두려워하며 앉아 있기를 자청하니, 세간에 이렇게 하는 자는 망령스럽지 않은가.
注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이 글은 경서經書의 풀이에 근거하여 이를 공격의 바탕으로 삼았으며, 어구語句를 배치함이 엄하고 굳세며 다시 자세한 곡절을 두었으니 이는 매우 훌륭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