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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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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深父之文 不可得而見이라
予按王荊公所爲墓銘與其相答書하니 大略賢者也
吾友也 姓王氏 諱回
當先王之迹熄하여 六藝殘缺하고 道術衰微하여 天下學者 無所折衷이라
深甫於是 奮然獨起하여 因先王之遺文以求其意하여 得之於心하고 行之於己하여 其動止語黙 必考於法度 而窮達得喪으로 不易其志也
文集二十卷이니 其辭反覆辯達하여 有所開闡이나 其卒蓋將歸於簡也
其破去百家傳注하고 推散缺不全之經하여 以明聖人之道於千載之後하니
所以振斯文於將墜하고 回學者於旣溺 可謂道德之要言이요 非世之別集而已也
後之潛心於聖人者 將必由是而有得이리니 則其於世敎 豈小補之而已哉
嗚呼 深甫 其志方强하고 其德方進이어늘 而不幸死矣
故其澤不加於天下하고 而其言止於此
然觀其所可考者하면 豈非
其文有片言半簡이면 非大義所存라도 皆附而不去者 所以明深甫之於其細行 皆可傳於世也
深甫 福州侯官縣人이니 今家於潁이라
嘗擧進士하여 中其科하고 爲亳州衛眞縣主簿라가 未一歲棄去하여 遂不復仕
卒於治平二年之七月二十八日하니 年四十有三이라
天子嘗以某軍節度推官知陳州南頓縣事 就其家命之 而深甫旣卒矣


06. 《왕심부문집王深父文集》에 쓴 서문
심보深父의 글은 현재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왕형공王荊公이 지은 묘갈명墓碣銘과 그에게 답한 편지를 보니 대체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심보深甫는 나의 벗이니, 왕씨王氏이고 이다.
선왕先王의 자취가 사라진 때를 당하여 육예六藝가 없어지고 도술道術이 쇠미해져 천하의 학자學者들이 바른 를 취할 데가 없었다.
심보深甫가 이때에 분연히 홀로 일어나 선왕先王유문遺文을 통해 그 뜻을 구하여 마음에 간직하고 몸에 행하여 그 행동과 말을 반드시 법도에 맞게 하였고 궁달窮達득실得失을 가지고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았다.
그의 문집이 20권인데, 그 말이 이리저리 반복되면서 말재주가 민첩하고 사리가 통달하여 미묘한 이치를 활짝 열어 밝히는 성향이 있으나 그 끝은 간결함으로 귀결된다.
그의 글은 경전에 대한 백가百家의 주석을 모두 간파하고, 산실되어 온전치 못한 경전을 복구하여 천 년의 뒤에서 성인聖人를 밝혀내었다.
이 때문에 사문斯文이 장차 추락할 위기에서 일어나고 학자學者가 이미 매몰된 상태에서 돌아 나오게 하였으니, 그의 글은 도덕의 중요한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요, 세상의 일반적인 문집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후세에 성인聖人를 탐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이 문집을 통해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이 문집이 세교世敎에 있어 어찌 작은 도움이 되고 말 뿐이겠는가.
아, 심보深甫가 의지가 막 꿋꿋해지고 덕이 막 진전되어 가던 중이었는데 불행히도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은택이 천하에 입혀지지 못하고 토로하는 말이 여기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고찰할 수 있는 유문遺文을 살펴보면 어찌 맹자孟子가 말한 ‘세상에 이름난 자’가 아니겠는가.
그의 글은 대의大義가 담겨 있지 않은 한두 마디 말이라 하더라도 모두 그대로 놓아두고 삭제하지 않았으니, 이는 심보深甫의 작은 행위 하나까지도 모두 후세에 전할 만한 것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심보深甫복주福州 후관현侯官縣 사람으로 지금은 영주潁州에 집이 있다.
일찍이 진사進士시험에 응시하여 급제하고 박주亳州 위진현주부衛眞縣主簿가 되었는데 1년이 못 되어 관직을 버리고 떠나가 마침내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치평治平 2년 7월 28일에 죽었으니, 이때 나이가 43세였다.
천자天子가 일찍이 모군절도추관某軍節度推官, 지진주남돈현사知陳州南頓縣事의 관직을 주기 위해 사신을 그의 집으로 보내 임명하려 하였으나 그때 심보深甫는 이미 죽고 난 뒤였다.


역주
역주1 王深父文集序 : 작자의 나이 47세 때인 治平 2년(1065)에 쓴 글이다. 王回가 儒學이 쇠퇴한 때에 儒學을 부흥시키려고 노력한 것에 대해 크게 인정하면서, 그가 곤궁할 때나 영달할 때나 그 지조를 바꾸지 않은 품행을 칭찬하였다. 아울러 그가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의 재주를 다 발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애석해하였다.
역주2 深甫 : 甫는 남자의 이름이나 字 밑에 붙이는 美稱으로 父와 통한다.
역주3 孟子所謂名世者 : 《孟子》 〈公孫丑 下〉에 “5백 년에 반드시 王者가 나오니, 그 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유명한 자가 있다.”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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