然天子諸侯大夫 各有制度하여 加于度則譏之하니 見于易禮記春秋라
老子之敎行天下할새 其宮視天子或過焉하니 其門亦三之라
其備豫之意는 蓋本於易이나 其加于度는 則知禮者所不能損하고 知春秋者所太息而已니 甚矣라 其法之蕃昌也여
建昌軍南城縣麻姑山仙都觀은 世傳麻姑於此仙去라 故立祠在焉이라
距城六七里에 由絶嶺而上하여 至其處하니 地反平寬衍沃하여 可宮可田이요 其穫之多 與他壤倍요 水旱之所不能災라
予嘗視而歎曰 豈天遺此以安且食其衆하고 使世之衎衎施施趨之者不已歟아
慶曆六年에 觀主道士凌齊曄相其室無不修而門獨庳曰 是不足以稱吾法與吾力이라하고 遂大之라
旣成에 託予記어늘 予與齊曄으로 里人也니 不能辭라
噫라 爲里人而與之記는 人之情也요 以禮春秋之義告之는 天下之公也라
齊曄之取予文에 豈不得所欲也夫며 豈以予言爲厲己也夫아
注
증공曾公이 일반적으로 불교와 도교를 신봉하는 무리들을 위해 지은 문장은 반드시 자신이 추구하는 유학儒學의 입장에서 썼다.
문을 만드는 것은 강도의 침입에 미리 대비하자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가 각기 그 신분에 맞는 제도가 있어서 제도보다 넘어서면 비난을 받으니, 그 내용이 《주역周易》‧《예기禮記》‧《춘추春秋》에 보인다.
성城의 사방에 세 개씩 문을 만들고 문마다 세 갈래의 길을 만드는 것은 오직 왕성王城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노자老子의 가르침이 천하에 만연하게 되자, 도관道觀이 천자天子에 비해 혹 지나치기도 하여 그 문을 또한 세 개로 만들었다.
강도의 침입에 미리 대비하는 뜻은 《주역周易》에 그 근본을 두고 있지만, 제도보다 넘어서는 것은 《예기禮記》를 아는 자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고 《춘추春秋》를 아는 자는 크게 탄식할 뿐이니, 지나치다, 그들의 법이 번창함이여.
건창군建昌軍 남성현南城縣 마고산麻姑山 선도관仙都觀은 세상에서 전해오는 말에, 마고麻姑가 이곳에서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곳으로 그를 위해 세운 옛 사당이 있다.
성城에서 6, 7리 떨어진 곳에서 높은 재를 따라 올라가 그곳에 당도하니, 지대가 도리어 넓고 비옥해서 집을 지을 만하고 농사도 지을 만했는데, 그곳에서 수확하는 곡물이 다른 토양에 비해 곱절이고 가뭄이나 장마의 피해도 없었다.
내가 한번 둘러보고 탄식하기를 “어찌 하늘이 이곳을 세상에 내놓아 도가道家의 무리에게 편안하게 지내고 또 잘 먹고살게 하였으며, 세상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여유롭게 사는 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이곳으로 달려오게 하였단 말인가.
이와 같은 장소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그들의 법이 이처럼 번창하니 인력으로 과연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는가.
그 농지의 수입이 풍족하니 도관道觀도 따라서 호화롭게 꾸미는 것은 당연하다.
경력慶曆 6년에 도관주道觀主 도사道士 능제엽凌齊曄이 그 건물은 모두 수리가 잘되었는데 오직 문만 비좁고 낮은 것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 도교의 법도와 힘에 걸맞지 않다.” 하고, 마침내 크게 만들었다.
문이 완성되자 나에게 기문記文을 부탁했는데, 나는 제엽齊曄과 동향인이라 사양할 수가 없었다.
아, 동향인으로서 기문記文을 주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예기禮記》와 《춘추春秋》의 뜻으로써 고해주는 것은 그것이 천하의 공인된 말이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으로 천하의 공인된 말을 바꿀 수는 없다.
제엽齊曄이 내 글을 가져다가 볼 적에 어찌 듣고 싶었던 말을 얻지 못했다고 하지 않겠으며, 또 어찌 내 말이 자기를 해롭게 한 것으로 생각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