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川之城東에 有地隱然而高하고 以臨于溪하니 曰新城이요 新城之上에 有池窪然而方以長하니 曰王羲之之墨池者라하니
羲之嘗慕
하야 臨池學書
할새 池水盡黑
하니 此爲其故跡
이라하니 豈信然邪
아
方羲之之不可强以仕하고 而嘗極東方하고 出滄海하여 以娛其意於山水之間하니 豈有徜徉肆恣라가 而又嘗自休於此邪아
羲之之書晩乃善하니 則其所能은 蓋亦以精力自致者요 非天成也라
敎授王君盛
이 恐其不
也
하여 書晉王右軍墨池之六字於楹間以揭之
하고 又告於鞏曰 願有記
라하니라
惟王君之心이 豈愛人之善하여 雖一能不以廢하고 而因以及乎其跡邪아
夫人之有一能이로대 而使後人尙之如此하니 況仁人莊士之遺風餘思 被於來世者는 如何哉아
注
주제가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규모가 심원하고 엄정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임천성臨川城 동쪽에 완만하게 높이 솟아 시내를 굽어보는 지역이 있으니 이를 신성新城이라고 부르며, 신성新城가에는 우묵하게 패여 있는 장방형의 못이 있는데 이곳은 왕희지王羲之의 묵지墨池라고 한다.
이것은 순백자荀伯子의 《임천기臨川記》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왕희지王羲之는 일찍이 장지張芝를 흠모하여 못가에서 글씨를 익혀 못물이 모두 먹물로 변했다고 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 유적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이란 말인가?
어느 누구도 왕희지王羲之더러 세상에 나가 벼슬하라고 억지로 권하지 못할 당시에, 그는 일찍이 동방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배를 타고 큰 바다까지 나가는 등 산수 사이에서 흥취를 즐겼는데, 혹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로이 유람하던 가운데 또 언젠가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던 것은 아닐까?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은 만년晩年에 들어서야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였으니, 그렇다면 그의 이와 같은 재능은 또한 필생의 정력을 들여 얻어낸 것이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후세에 어느 한 사람도 그 경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것은 어찌 글씨를 익히는 노력을 왕희지王羲之처럼 들이지 않아서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부지런히 배우고 노력하는 정신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도덕을 수양하는 부분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교수 왕성王盛이 묵지墨池의 유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진왕우군묵지晉王右軍墨池’ 여섯 글자를 써서 당堂 앞 두 기둥 사이에 내걸고 또 나에게 기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생각건대 왕군王君의 마음이 어찌 남의 장점을 끔찍이 아껴서 비록 하나의 재능이라도 폐기해버리지 못하고 더 나아가 그 유적에까지 미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그 고사를 미루어 배우는 자들을 권면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어떤 사람이 하나의 재능을 지녔더라도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이처럼 추앙하게 하는데, 하물며 품덕이 높고 행위가 단정한 사람이 남긴 좋은 기풍과 좋은 사상이 후세에 영향을 끼쳤을 경우 과연 얼마만큼 존경을 받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