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覽前大半篇컨대 曾公似薄張侯하여 有不必祀之意하니
其所按經典以相折衷處 雖有本領이나 而予之意는 竊以張侯 方其與關壽亭佐昭烈하여 百戰以立帝業於蜀하니 祭法所謂以勞定國則祀之者也라
智足以周於事요 而辨至於不惑은 則理之微妙를 皆足以盡之라
今夫推策灼龜와 審於夢寐는 其爲事至淺이로되 世常尊而用之하여 未之有改也요
坊墉道路馬蠶猫虎之靈은 其爲類至細로되 世常嚴而事之하여 未之有廢也요
水旱之災
와 日月之變
과 與夫兵師疾癘昆蟲鼠豕之害
는 凡一慝之作
에 世常有祈有
하여 未之有止也
라
夫精神之極은 其叩之無端이요 其測之甚難이로되 而尊而信之를 如此其備者는 皆聖人之法이니 何也오
彼有接於物者는 存乎自然하여 世旣不得而無하니 則聖人固不得而廢之는 亦理之自然也라
其智足以周於事요 而其辨足以不惑은 則理之微妙를 皆足以盡之也라
故古之有爲於天下者는 盡己之智而聽於人하며 盡人之智而聽於神하여 未有能廢其一也라
書曰
이라하니 所謂盡己之智而聽於人
하며 盡人之智而聽於神也
라
繇是觀之
컨대 則荀卿之言
에 以謂
者
는 以疾夫世之不盡在乎己者而聽於人
하고 不盡在乎人者而聽於神
이니 其可也
라
蜀車騎將軍領司隸校尉西鄕張侯는 名飛字益德이니 嘗守是州하니라
州之東有張侯之冢하니 至今千有餘年히 而廟祀不廢하며
嘉祐中에 比數歲連熟하니 閬人以謂張侯之賜也라하여
當蜀之初에 與魏將張郃으로 相距於此라가 能破郃軍하여 以安此土하니 可謂功施於人矣라
其歿也에 又能澤而賜之하니 則其食於閬人不得而廢也 豈非宜哉리오
知州事尙書職方員外郞李君獻卿字材叔이 以書來曰 爲我書之하라하니
注
이 작품의 전반부를 보면, 증공曾公이 장후張侯(장비張飛)를 평가절하하여 굳이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가 경전經典을 근거로 절충折衷한 부분은 비록 일리가 있으나, 내 생각에는 장후張侯가 수정후壽亭侯 관우關羽와 함께 소열황제昭烈皇帝 유비劉備를 보좌하여 숱한 전투를 치른 끝에 촉蜀 땅에서 제업帝業을 완수하도록 하였으니, 〈제법祭法〉에 이른바 “공로로 나라를 안정시킨 인물에게는 제사를 지낸다.”는 것에 해당한다.
아마도 이 말을 근거로 삼아 정론正論으로 보아야 할 듯싶다.
우선 이 작품을 기록하여 남겨둠으로써 자고子固가 본래 독자적인 주장을 세운 부분을 보여주는 바이다.
사정事情이란 늘 지혜가 두루 미치지 못하는 데에서 어두워지고, 사물에 대한 분별력은 늘 의혹을 갖는 데에서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지혜가 일에 두루 미칠 수 있고, 분별력이 의혹하지 않는 데에 이른다면, 미묘한 이치를 모두 다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시초蓍草점을 치고 거북점을 치며 해몽을 통해 길흉을 알아보는 것은 그 일이 매우 천근하지만, 세상에서는 늘 숭상하여 그 방식을 따라하였고 바꾼 적이 없다.
성벽, 도로, 말, 누에, 고양이, 호랑이의 영혼은 매우 미미한 종류이지만, 세상에서는 늘 어려워하여 그것들을 섬겼고 그만둔 적이 없다.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재앙, 태양과 달에 일어나는 변화와 전쟁, 질병, 곤충, 쥐, 멧돼지 등의 피해 중에 어떤 이변이 한번 발생하면, 세상에서는 늘 기도하고 제사를 지냈으며 그와 같은 행위를 그만둔 적이 없었다.
〈금등金縢〉에 있는 글과 〈운한雲漢〉시에 보이는 내용은 그 뜻이 지극하다 할 만하고 그 표현도 곡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精神의 극치極致에 대해서는 물어보아도 단서가 없고 추측해보아도 매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존숭尊崇하여 믿기를 이처럼 완전하게 하는 것은 모두 성인聖人의 법法이니, 어째서인가?
저 사물에 접하는 것들은 자연 속에 존재하여 세상에서 없을 수 없으니, 성인聖人이 진정 그것들을 무시해버릴 수 없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성인聖人이 어찌 자신의 총명을 짜낸 것이겠는가.
자신의 지혜가 일에 두루 미치고 자신의 분별력이 의혹하지 않을 수 있다면, 미묘한 이치를 모두 다 파악할 수 있다.
때문에 옛날 천하天下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는 자신의 지혜를 다 발휘하고도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사람들의 지혜를 다 경청하고도 신神의 의견을 경청하였으니,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그만두어도 되었던 적이 없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내 뜻이 우선 정해지자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하여 상의한 결과 모두 같았으며, 귀신이 그 뜻에 따라 거북점과 시초蓍草점도 맞추어 따라준다.” 하였으니, 이른바 자신의 지혜를 다하고서도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사람들의 지혜를 전부 경청하고 나서도 신神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순경荀卿의 말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시초蓍草점을 치거나 구일救日을 하는 행위를 두고 백성들은 신령스럽게 여긴다.” 하였는데, 이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내재된 능력은 다하지 않고 사람들의 의견만 따른다거나, 사람들에게 내재된 능력은 다하지 않고 신神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미워한 것으로써 옳은 말이다.
신神의 이치가 정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정에 어두워지는 것은 자신의 지혜가 두루 미치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하고, 사물을 분별하는 데에 있어서의 과오는 자신이 의혹을 갖는 데에서 발생한다.
촉蜀의 거기장군車騎將軍 영사례교위領司隸校尉 서향후西鄕侯 장후張侯의 이름은 비飛이고 자는 익덕益德으로, 일찍이 파서태수巴西太守를 역임하였다.
낭주閬州 동쪽에 장후張侯의 무덤이 있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 동안 사당제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매년 큰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면 그때마다 반응이 있었다.
가우嘉祐 연간(1056~1063) 근 수년에 걸쳐 잇달아 풍년이 들자, 낭주閬州 사람들은 장후張侯의 선물로 여겼다.
그리하여 서로들 비용을 모아 장후張侯를 기리는 사당을 손질하여 건물을 확대하고 새롭게 만들었다.
장후張侯는 지혜와 용력勇力으로 장수가 되어 만인萬人을 대적할 인물로 불렸다.
촉한蜀漢 초기에 위魏나라 장수 장합張郃과 여기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장합張郃의 군대를 격파하여 이 땅을 안정시켰으니, 사람들에게 공을 베풀었다고 할 만하다.
그가 죽은 뒤에 또 백성들에게 은택을 베풀고 선물을 주었으니, 그렇다면 낭주閬州 사람들에게 제삿밥을 먹는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주사知州事 상서직방원외랑尙書職方員外郞 이군李君 헌경獻卿 자字 재숙材叔이 편지를 보내와 “나를 위해 기문記文을 써주시오.” 하였다.
재숙材叔은 고대古代의 문화를 좋아하는 군자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지어 내가 고대의 문화에 대해 아는 내용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