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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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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有深思하고 有法度
洪渥 撫州臨川人이라
爲人和平하여 與人游 初不甚歡이나 久而有味
家貧하고 以進士從하니 有能賦名이라
初進於有司한대 連輒黜하고 久之乃得官이어늘
官不自馳騁하여 又久不進하고 卒監之茶場以死
死不能하고 亦不能返其孥하니
里中人聞渥死 無賢愚皆恨失之하니라
予少與渥相識이나 而不深知其爲人이라
渥死 迺聞有兄年七十餘하니 渥得官時 兄已老하여 不可與俱行이라
渥至官하여 量口用俸하고 掇其餘以歸하여 買田百畝하여 居其兄하고 復去而之官하니 則心安焉이라하니라
渥旣死 兄無子하여 數使人至麻城撫其孥하고 欲返之而居以其田이나
其孥蓋弱하여 力不能自致하고 其兄益已老矣
無可奈何 則念輒悲之하고 其經營之猶不已하여 忘其老也하니 渥兄弟如此無愧矣
渥平居若不可任以事 及至赴人之急이면 早夜不少懈하니 其與人眞有恩者也
予觀古今豪傑士傳 論人行義 不列於史者 往往務摭奇以動俗하고 亦或事高而不可爲繼하며 或伸一人之善而誣天下以不及하니
雖歸之輔敎警世라도
如渥所存 蓋人人所易到 故載之云하니라


11. 홍악洪渥에 관한 전기
깊은 생각이 있고, 법도가 있다.
홍악洪渥무주撫州 임천臨川 사람이다.
사람됨이 온화하고 관대하여 사람들과 교유할 적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래되면 정감이 있었다.
가정환경이 가난하였고 진사進士향거鄕擧가 되었는데, 를 잘 짓는다는 이름이 났다.
그가 처음에 관부官府에 추천되었을 때 연이어 번번이 떨어지다가 오래되어서야 관직을 얻었다.
그러나 벼슬하면서 스스로 세력가에게 뛰어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또 오래도록 승진하지도 못하고 끝내 황주黃州 마성麻城다장茶場을 감독하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죽어서도 고향에 옮겨 장사 지내지 못하고 또한 그 처자식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의 고향마을 사람들이 홍악洪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능한 자나 우매한 자를 막론하고 모두 그를 잃은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내가 젊을 때에 홍악洪渥과 서로 알았지만 그 사람됨은 깊이 알지 못했다.
홍악洪渥이 죽은 뒤에야 들으니, 형이 70여 세인데 홍악洪渥이 관직을 얻었을 때 형은 이미 연로해서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래서 홍악洪渥은 임지에 부임하여 그의 가족 숫자를 헤아려 녹봉祿俸을 적절하게 쓰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땅 백 를 사서 형에게 주고 다시 관청으로 가니, 그런 뒤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하였다고 한다.
홍악洪渥이 죽은 뒤에 형은 자식이 없어서 자주 사람을 마성麻城으로 보내 그의 처자식을 보살피고, 고향에 돌아오게 해서 그의 농지를 기반으로 삼아 살아가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처자식이 아직 어려 스스로 농사를 지어 살아갈 힘이 없었고, 형은 더욱 늙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저 자나 깨나 슬퍼하는 가운데 그들을 위해 도모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자기 몸이 늙어가는 것조차 잊었으니, 홍악洪渥 형제가 이와 같이 서로에게 부끄러운 점이 없었다.
홍악洪渥은 평소에 무슨 일을 맡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사람들의 급한 일을 도와줄 때는 밤낮으로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에게 참으로 은혜로운 면이 있었다.
내 보건대 고금古今의 영웅호걸들의 전기傳記에서 인물의 품행을 논한 글 중 역사서에 들어있지 않은 경우에는, 이따금 애써 기이한 것을 찾아 세속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나, 혹은 수준이 너무 높아 보통 사람은 따를 수 없는 내용을 늘어놓기도 하고, 혹은 한 사람의 선행을 과장하여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천하 사람들을 속인다.
이는 비록 교화를 돕고 세상을 경계하는 것에 속하는 것이긴 해도 《중용中庸》의 가르침으로 살펴보면 혹 지나치다.
홍악洪渥의 사적과 같은 경우는 사람마다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일이므로 그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洪渥傳 : 문장의 내용으로 보아 洪渥은 작자와 비슷한 나이의 인물이며 만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洪渥의 평생 사적을 서술하는 과정을 통해 정직하고 선량한 보통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따라서 고금의 호걸들에 대한 傳記들이 현실을 벗어난 경향임을 비평하였다.
역주2 鄕擧 : 州縣의 지방관리가 추천한다는 뜻으로, 鄕貢‧鄕薦과 같다. 각 州의 判官이 그 고을의 學士 및 예전에 明經‧秀才‧俊士‧進士가 된 자와 鄕里에서 뛰어나다고 이름난 자를 시험을 보여, 합격하면 州의 長官이 覆試하고 거기에서 합격한 자를 해마다 10월에 지방의 토산물과 함께 禮部로 올려보냈다.
역주3 黃州麻城 : 黃州의 관청 소재지는 黃岡으로 지금의 湖北이며, 麻城은 黃州의 屬縣으로 지금의 湖北 麻城縣 동쪽이다.
역주4 歸葬 : 사람이 객지에서 죽은 뒤에 시체를 고향에 옮겨 매장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5 考之中庸或過矣 : 《中庸》 13章에 “道가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이 道를 하면서 사람을 멀리한다면 道라 할 수 없다.”라 하였고, 朱子 註에 “道는 本性을 따르는 것일 뿐이므로 사실 衆人들도 능히 알고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으니, 만일 道를 행하는 자가 그 卑近함을 싫어하여 이는 족히 할 것이 못 된다 하고 도리어 高遠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을 힘쓴다면 道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비춰볼 때 일반인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행동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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