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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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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雖小言이나 自中律이라
이나 然亦以朋比夸詐見於習俗이라
今其地富饒하고 而介於河岱之間이라 故又多獄訟하고 而豪猾群黨 亦往往喜相攻剽賊殺하니 於時號難治
余之疲駑 來爲是州 除其姦强而振其弛壞하고 去其疾苦而撫其善良하니 未期囹圄多空하고 而枹鼓幾熄하며 歲又連熟하여 州以無事
故得與其士大夫及四方之賓客으로 以其暇日 時遊後園하니 或長軒嶢榭登覽之觀 屬思千里하고 或芙蕖芰荷湖波渺然 從舟上下
雖病不飮酒 而間爲小詩하여 以娛情寫物하니 亦拙者之適也
通儒大人 或與余有舊하여 欲取而視之 亦不能隱이요 而靑鄆二學士 又從而和之 士之喜文辭者 亦繼爲此作하니 總之凡若干篇이니
豈得以余文之陋 而使夫宗工秀人雄放瑰絶可喜之辭 不大傳于此邦也리오
故刻之石하고 而幷序之하여 使覽者得詳焉하니라


08. 《제주잡시齊州雜詩》에 쓴 서문
비록 짧은 글이지만 절로 법도에 맞는다.
제주齊州는 본디 문학文學으로 이름난 지방이었으나 또한 편을 가르고 자만하고 속이는 풍속이 있었다.
지금 그 지역이 부유하고 황하黃河태산泰山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또 송사訟事가 많고 교활한 무리들이 종종 서로 공격하고 살인하기를 좋아하니, 오늘날 다스리기 어려운 지방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능한 내가 와서 이 를 다스릴 적에 간흉한 무리들을 제거하여 무너진 기강을 진작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부담을 없애 선량한 백성을 진무鎭撫하니, 오래지 않아 감옥이 대부분 비게 되고 위험을 알리는 북소리가 거의 멎게 되었으며 농사가 또 연달아 풍년이 되어 이로 인해 제주齊州에 별탈이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대부 및 사방의 빈객과 함께 여가를 이용하여 때때로 후원後園에서 유람을 할 수 있었으니, 혹 높은 행랑과 높은 정자에 올라 사방을 바라볼 적에 천 리 밖을 연상하였고, 혹 연꽃이 피어 있고 물결 잔잔한 너른 호수에 배를 띄워 오르내렸다.
비록 신병으로 술은 마시지 못했으나 간간이 짧은 를 지어 회포를 풀어내고 사물을 묘사했으니, 이 또한 졸렬한 내가 즐기는 방식이었다.
큰 선비와 존귀한 사람이 혹 나와 친분이 있어서 이 를 가져다 보려고 하면 나는 또한 숨길 수 없었고, 청주靑州, 운주鄆州학사學士가 또 따라서 화답하면 문장 짓기를 좋아하는 선비가 또 이어서 를 지으니, 이것들을 취합하자 약간 이 되었다.
그러니 내 어찌 나의 글이 볼품없다는 이유로 웅장하고 아름다워 좋아할 만한 종장宗匠수재秀才들의 작품을 이 고을에 널리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을 석판石版에 새기고 아울러 서문을 써서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이 자세히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역주
역주1 齊州雜詩序 : 熙寧 6년(1073) 2월 기축일에 지은 글이다. 이때 작자의 나이는 55세였으며 知齊州로 있었다. 齊州를 맡아 다스리는 동안 이룩한 성과를 회고하면서 공무를 수행하는 여가에 시를 지어 정서를 즐기고 사물을 묘사하는 여유를 즐긴 것을 서술하였다.
역주2 齊故爲文學之國 : 齊는 齊州로 治所가 지금 山東 濟南에 있다. 그 지역이 전국시대 齊나라에 속하였으므로 齊州라 한 것인데, 그 당시 도성 臨淄의 學宮에 學者 수천 명을 모아놓고 학문을 강론하게 함으로써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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