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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1)

동래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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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6 隱公問族於衆仲
은공隱公중중衆仲에게 을 묻다
【左傳】隱八年이라 無駭卒커늘 하다
은공隱公 8년, 무해無駭가 죽자 우보羽父을 청하였다.
公問族於衆仲한대 衆仲對曰
은공이 중중衆仲에게 에 대해 물으니, 중중이 대답하기를
“천자는 이 있는 자를 제후諸侯로 세우고서 그가 출생한 곳의 지명地名을 그의 으로 정해주고, 땅을 해주고서 그 땅의 이름으로 하며, 제후는 그 로써 를 삼고, 그 자손은 이 으로 삼으며, 관직을 맡아 대대로 공로가 있으면 그 후손들은 그 관명官名으로 삼기도 하고, 선조先祖봉읍封邑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니,
은공은 로써 을 명하여 전씨展氏로 삼았다.
天下之事簡則易知하고 繁則難知하니 此理之常也어니와
천하의 일이 간단하면 알기가 쉽고 복잡하면 알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상리常理이다.
至於氏族之說하야는 則反是焉이라
그러나 씨족氏族에 이르러서는 이와 반대이다.
氏族莫繁於古로되 而知之者甚易하고 氏族莫簡於今이로되 而知之者甚難이라
씨족이 옛날보다 복잡한 적이 없었으나 도리어 알기가 매우 쉽고, 씨족이 지금보다 간단한 적이 없으나 도리어 알기가 매우 어렵다.
三代之時 曰姓者 統其祖考之所自出者也 百世而不變者也 曰氏者 別其子孫之所自分者也 數世而一變者也
삼대시대三代時代에 ‘’이라고 하는 것은 그 조상이 태어난 곳을 이은 것이니 백세토록 변하지 않고, ‘’라고 하는 것은 그 자손들의 분파分派를 구별한 것이니 몇 세대에 한 번씩 변한다.
天子建德하야 因生以賜姓注+因其所由生以賜姓 若舜由媯汭 故陳爲 하니 其得姓雖一이나 而子孫別而爲氏者 不勝其多焉이라
옛날에 천자가 이 있는 자를 제후로 세우고서 그가 출생한 곳의 지명을 따서 그의 으로 내려주었으니注+그의 출생지의 지명地名을 따서 그의 으로 내려준 것은 규수媯水 굽이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규성嬀姓이 된 것과 같은 경우이다., 받은 은 하나이지만 후세에 자손이 갈라져서 가 된 것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有以王父之字爲氏者矣 注+且如陳伯袁之後 而爲袁氏 齊公子高之後 而爲高氏 衛公子惠孫之後 而爲孫氏 宋公子樂父之後 而爲樂氏 宋司宼牛父之後 而爲牛氏 魯閔子騫之後而 爲騫氏 是皆以王父之字爲氏者也 有以先世之諡爲氏者矣注+杜預曰 或先人之諡 稱以爲族 有以所居之官爲氏者矣注+祭仲初爲祭封人 掌封疆者 後以爲氏 有以始封之邑爲氏者矣注+如文王封子時叔於沈 故其後爲沈氏 武王封太伯曾孫於閻 故其後爲閻氏 晉穆封少子成師於韓 故其後爲韓氏 晉獻公封畢萬於魏 故其後爲魏氏 宋公子段食於褚 故其後爲褚氏 宋太公食於蕭 故其後爲蕭氏 楚賁皇食於苗 故其後爲苗氏 晉叔向食於楊 故其後爲楊氏 杞之後食於婁 而爲婁氏 越之後食於歐山之陽 而爲歐陽氏 是皆以始封之邑爲氏也 枝分派別 千塗萬轍이라
조부祖父로 삼은 경우도 있고注+나라 백원伯袁의 후손이 원씨袁氏가 되고, 나라 공자公子 의 후손이 고씨高氏가 되고, 나라 공자公子 혜손惠孫의 후손이 손씨孫氏가 되고, 나라 공자公子 악보樂父의 후손이 악씨樂氏가 되고, 나라 사구司宼 우보牛父의 후손이 우씨牛氏가 되고, 나라 민자건閔子騫의 후손이 건씨騫氏가 된 것은 모두 조부祖父로 삼은 경우이다., 선조先祖시호諡號로 삼은 경우도 있으며注+두예杜預는 “혹은 선인先人으로 삼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맡은 관직의 이름을 로 삼은 경우도 있고注+채중祭仲이 당초에 제읍祭邑봉인封人이 되었으니 국경國境수비守備를 맡은 자였으므로 그 후손은 ‘’를 로 삼았다., 처음 해진 의 이름을 로 삼은 경우도 있으니注+문왕文王이 아들 시숙時叔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심씨沈氏가 되고, 무왕武王태백太伯증손曾孫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염씨閻氏가 되고, 목후穆侯소자少子 성사成師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한씨韓氏가 되고, 헌공獻公필만畢萬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위씨魏氏가 되고, 나라 공자公子 를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저씨褚氏가 되고, 나라 태공太公를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소씨蕭氏가 되고, 나라 분황賁皇를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묘씨苗氏가 되고, 나라 숙향叔向을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양씨楊氏가 되고, 나라의 후손이 를 식읍으로 받아서 누씨婁氏가 되고, 나라의 후손이 구산歐山의 남쪽을 식읍으로 받아서 구양씨歐陽氏가 된 것이 모두 처음 해진 읍명邑名로 삼은 경우이다., 그 분파分派가 천 갈래 만 갈래이다.
初若參錯紛亂而難考 及徐而視之하니 有綱有條하야 猶指諸掌焉이라
처음에는 뒤섞이고 어지러워서 고증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천천히 살펴보니 이 있고 이 있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는 것같이 분명하였다.
孟仲季東門子叔 同出於魯也注+孟穆伯仲子季文子臧僖伯東門襄仲子服昭伯叔孫氏是也 游國豐印公伯張 同出於鄭也注+國參豐卷印堇父公孫洩伯張之類是也 向華蕩樂鱗魚仲老 同出於宋也注+向宜華督父蕩意諸樂呂鱗朱魚石仲幾老佐是也 欒高崔國叔仲東郭 同出於齊也注+欒子高傒崔夭國歸父叔仲還仲孫湫東郭偃是也
맹씨孟氏중씨仲氏계씨季氏장씨臧氏동문씨東門氏자씨子氏숙씨叔氏는 모두 나라에서 나왔고注+맹목백孟穆伯중자仲子계문자季文子장희백臧僖伯동문양중東門襄仲자복소백子服昭伯숙손씨叔孫氏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씨游氏국씨國氏풍씨豐氏인씨印氏공손씨公孫氏백장씨伯張氏는 모두 나라에서 나왔고注+유길游吉국참國參풍권豐卷인근보印堇父공손설公孫洩백장伯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씨向氏화씨華氏탕씨蕩氏악씨樂氏인씨鱗氏어씨魚氏중씨仲氏노씨老氏는 모두 나라에서 나왔고注+향의向宜화독부華督父탕의제蕩意諸악려樂呂인주鱗朱어석魚石중기仲幾노좌老佐가 여기에 해당한다., 난씨欒氏고씨高氏최씨崔氏국씨國氏숙씨叔氏중씨仲氏동곽씨東郭氏는 모두 나라에서 나왔다注+난자아欒子雅고혜高傒최요崔夭국귀보國歸父숙손환叔孫還중손추仲孫湫동곽언東郭偃이 여기에 해당한다..
尋其流 可以知其源이요 尋其葉이면 可以知其根이니 抑何易耶
지류支流를 찾아보면 그 원류源流를 알 수 있고, 그 지엽枝葉을 찾아보면 그 뿌리를 알 수 있으니 어쩌면 알기가 이리도 쉬운가.
自秦漢以來 氏族之制 出於上之所賜하야 下之所更者 絶無而僅有하니 至於世守一氏하야 傳千餘年而不變者하얀 天下皆是也니라
진한秦漢 이후로는 씨족氏族을 임금이 정해서 하사하였으므로 하민下民 중에 그 를 고친 자가 거의 없고 조금 있었을 뿐이니, 대대로 하나의 를 지켜 천여 년을 전하여 변하지 않은 것으로 말하면 천하가 다 그러하였다.
其變非若古之屢하고 其列非若古之多하니 可謂簡而易知矣
그 변화가 옛날처럼 빈번하지 않고, 그 분파分派도 옛날처럼 많지 않으니, 간단하여 알기 쉽다고 할 수 있다.
然人罕有能辨氏族之源者니라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씨족氏族의 근원을 능히 분별하는 자가 드물다.
王之氏一也로되 吾不知出於元城之王耶注+後漢王充會稽人 其先自魏郡元城徙居於此 宜春之王耶注+前漢宜春侯王訢之後 邛成之王耶注+前漢邛成侯 王奉光之後 奉光宣帝皇后父 劉之氏一也로되 吾不知出於陶唐之劉耶注+高祖賛 漢帝本系 出自唐帝 降及于周 有秦作劉 奉春之劉耶注+劉敬說高帝都關中 高帝封敬爲奉春君 賜姓劉 元海之劉耶注+晉趙劉元海 本匈奴種 漢光武時內附 號南匈奴 其能明辨而不惑者鮮矣
같은 왕씨王氏이지만 나는 원성元城왕씨王氏에서 나왔는지注+후한後漢 때의 왕충王充회계會稽 사람이다. 그 선조가 위군魏郡 원성元城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의춘宜春왕씨王氏에서 나왔는지注+전한前漢의춘후宜春侯였던 왕흔王訢후손後孫이다., 공성邛成왕씨王氏에서 나왔는지 모르겠고注+전한前漢공성후邛成侯였던 왕봉광王奉光의 후손이다. 왕봉광王奉光선제宣帝의 황후의 아버지이다., 같은 유씨劉氏이지만 나는 도당陶唐유씨劉氏에서 나왔는지注+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 〉에 “나라 황제皇帝본계本系당제唐帝(堯)에서 나왔다. 나라 때에 미쳐 나라에 사는 자들은 유씨劉氏가 되었다.” 하였다., 봉춘奉春유씨劉氏에서 나왔는지注+유경劉敬고제高帝를 설득하여 관중關中도읍都邑을 정하게 하니, 고제는 유경을 하여 봉춘군奉春君으로 삼고 유씨성劉氏姓하사下賜하였다., 원해元海유씨劉氏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니注+동진東晉전조前趙유원해劉元海는 본래 흉노족匈奴族이다. 나라 광무제光武帝귀부歸附하니 남흉노南匈奴라 불렀다., 아마도 밝게 분별하여 의심하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다.
氏之馬者 未必能辨其爲馬服之馬注+趙奢因封馬服君 其後遂轉而爲馬氏及馬矢之馬也注+後漢馬融 其先本姓 馬矢氏 氏之石者 未必能辨其周衛之石注+周石速 衛石碏及後趙之石也注+後趙石勒 本羯種
로 쓰는 자들도 자기들이 쓰는 마복馬服에서 나왔는지注+조사趙奢마복군馬服君해짐으로 인하여 그 후손들이 드디어 를 고쳐 마씨馬氏가 되었다.마시馬矢에서 나왔는지를 분별하지 못하고注+후한後漢 때 사람 마융馬融은 그 선조의 본성本姓마시씨馬矢氏였다., 로 쓰는 자들도 자기들이 쓰는 나라와 나라의 에서 나왔는지注+나라의 석속石速나라의 석작石碏이다.후조後趙에서 나왔는지를 분별하지 못한다注+후조後趙석륵石勒은 본래 갈족羯族이다..
古之氏族繁이나 而知之者反多하고 今之氏族簡이나 而知之者反少니라
옛날의 씨족氏族은 번잡하였으나 아는 자가 도리어 많았고, 지금의 씨족氏族은 간단하나 아는 자가 도리어 적다.
在古則宜難而反易하고 在今則宜易而反難하니 其說果安在耶
옛날에는 〈씨족氏族을〉 분별하기 어려울 것 같으나 도리어 분별하기가 쉬웠고, 지금에는 〈씨족氏族을〉 분별하기 쉬울 것 같으나 도리어 분별하기가 어려우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蓋由譜牒之明與廢而已
이는 보첩譜牒이 분명하냐, 보첩譜牒폐기廢棄되었느냐에서 연유한 것일 뿐이다.
譜牒明이면 則雖難者猶且知之어든 況其易者乎
보첩譜牒이 분명하면 비록 어려운 것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그 쉬운 것이겠는가?
譜牒廢 則雖易者猶不知之어든 況其難者乎
보첩譜牒이 폐기되면 비록 쉬운 것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어려운 것이겠는가?
吾以是知譜牒之學 不可不講也로라
나는 이로 인하여 보첩譜牒학문學問강구講究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노라.
世之學者 仰則欲知天文하고 俯則欲知地理하며 大則欲知治亂興衰之迹하고 小則欲知草木蟲魚之名이로되 至於己之氏族 吾祖考之所自出하야는 則茫然不知하니 豈可不恥乎
세상의 학자들은 위로는 천문天文을 알고자 하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알고자 하며, 크게는 치란治亂흥망興亡의 자취를 알고자 하고 작게는 초목草木충어蟲魚의 이름을 알고자 하지만, 자기의 씨족氏族과 자기 조고祖考의 뿌리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알지 못하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不知吾祖考氏族之所自 是固可恥也어니와 乃若吾一身之間 視而不知視之所自하고 聽而不知聽之所自하며 言而不知言之所自하고 動而不知動之所自하며 以至喜怒哀樂하야도 皆不知其所自 是又大可恥也
자기 조고祖考씨족氏族의 뿌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 자신의 몸에 대하여 〈자신이〉 보면서도 보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며, 말하면서도 말하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고 움직이면서도 움직이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며, 심지어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이르러서도 그렇게 된 연유를 모두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더욱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不知吾祖考氏族之所自 問諸明譜學者足矣어니와 不知吾一身視聽言動喜怒哀樂之所自 將問諸何人乎
자기 조고祖考씨족氏族의 뿌리를 알지 못하면 보학譜學에 정통한 이에게 물으면 되지만, 내 일신의 시청언동視聽言動희로애락喜怒哀樂의 연유를 알지 못하면 장차 누구에게 묻겠는가?
아, 한탄스럽다.
역주
역주1 [역주] 羽父請諡與族 : 諡는 죽은 자의 이름을 바꾸는 稱號이고, 族은 氏이다. 羽父가 임금에게 無駭를 위해서 諡號를 내려주고, 그 아들을 위해서 族氏를 내려주기를 청한 것이다.
역주2 [역주] 建德 : 德이 있는 자를 세워 諸侯로 삼는 것이다.
역주3 [역주] 因生以賜姓 : 出生한 지명을 姓으로 정해준다는 것은, 舜이 嬀水 굽이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陳나라가 嬀姓이 된 것과 같은 경우를 이른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異說이 매우 많다.
夏禹의 조상은 그 어머니가 薏苡를 먹고 낳았기 때문에 성을 苡라 했고, 商나라의 先祖 契은 그 어머니가 燕子(제비알)를 먹고 낳았기 때문에 商나라는 성을 子라 했다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라 해석할 경우, 그 조상이 孕胎한 情況에 따라 성을 준다는 말이 된다.
또 舜이 嬀水 굽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周나라가 그 후손인 陳나라 胡公 滿에게 嬀를 성으로 주고, 姜姓도 그 조상이 姜水 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姜을 성으로 삼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라 해석할 경우, 譯文처럼 해석된다.
또 “生은 性으로 보아야 하니 바로 德을 이름이다. 因生以賜姓은 바로 그 사람의 德行을 參考하여 姓을 주는 것이다.”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楊伯峻의 注에 의하면 “上古時代의 姓氏 起源에 대한 구체적인 情況을 推斷하기 어려우니, 이상의 각종 해석은 모두 臆測에 속한다. 그리고 天子가 賜姓한다는 衆仲의 설도 당시의 傳說이나 典禮에 근거해 말한 것으로 太古의 情況에 꼭 符合한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역주4 [역주] 胙(조)之土而命之氏 : 胙는 賜이다. 예를 들면 舜의 후손을 陳에 封하고서 嬀를 姓으로, 陳을 氏로 命하고, 伯禽을 魯에 봉하고서 姬를 姓으로, 魯를 氏로 命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역주5 [역주] 諸侯以字爲諡 因以爲族 : 諸侯는 지위가 낮아 신하에게 姓을 下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신하는 그 祖父의 字를 氏로 삼으며, 혹은 先人의 諡를 族으로 삼기도 한다.
역주6 [역주] 官有世功……邑亦如之 : 官名을 氏로 삼은 例는 司馬氏‧司空氏‧司徒氏‧司城氏 등이고, 食邑을 族으로 삼은 例는 晉나라의 韓氏‧魏氏‧趙氏 등이다.
역주7 [역주] 公命以字 爲展氏 : 제후의 아들은 公子라 칭하고, 공자의 아들은 公孫이라 칭한다. 공손의 아들은 다시 공손이라 칭할 수 없기 때문에 그 祖父의 字를 氏로 삼는다. 無駭는 公子 展의 손자이기 때문에 展을 氏로 삼은 것이다.
역주8 [역주] 媯姓 : 陳나라의 始祖는 舜의 후손으로서 有虞에 封해진 虞閼父이다. 그가 功이 있어 周 武王의 陶正이 되니, 武王이 큰딸 大姬를 閼父의 아들 滿에게 시집보내고서 虞閼父를 陳侯로 封하여 虞舜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舜이 媯水 굽이에서 출생하였으므로 周나라가 그 후손에게 嬀姓을 하사하였다는 말이다.
역주9 [역주] (使)[便卽] : 저본에는 ‘使’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便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역주] (族)[侯] : 저본에는 ‘族’으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侯’로 바로잡았다.
역주11 [역주] (藏)[臧] : 저본에는 ‘藏’으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臧’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2 [역주] (告)[吉] : 저본에는 ‘告’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吉’로 바로잡았다.
역주13 [역주] (父)[孫] : 저본에는 ‘父’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孫’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역주] (椎)[雅] : 저본에는 ‘椎’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雅’로 바로잡았다.

동래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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