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之事簡則易知하고 繁則難知하니 此理之常也어니와
氏族莫繁於古로되 而知之者甚易하고 氏族莫簡於今이로되 而知之者甚難이라
三代之時에 曰姓者는 統其祖考之所自出者也니 百世而不變者也요 曰氏者는 別其子孫之所自分者也니 數世而一變者也라
天子建德
하야 因生以賜姓
注+因其所由生以賜姓 若舜由媯汭 故陳爲 하니 其得姓雖一
이나 而子孫別而爲氏者
는 不勝其多焉
이라
有以王父之字爲氏者矣
며 注+且如陳伯袁之後 而爲袁氏 齊公子高之後 而爲高氏 衛公子惠孫之後 而爲孫氏 宋公子樂父之後 而爲樂氏 宋司宼牛父之後 而爲牛氏 魯閔子騫之後而 爲騫氏 是皆以王父之字爲氏者也 有以先世之諡爲氏者矣
注+杜預曰 或先人之諡 稱以爲族며 有以所居之官爲氏者矣
注+祭仲初爲祭封人 掌封疆者 後以爲氏며 有以始封之邑爲氏者矣
注+如文王封子時叔於沈 故其後爲沈氏 武王封太伯曾孫於閻 故其後爲閻氏 晉穆封少子成師於韓 故其後爲韓氏 晉獻公封畢萬於魏 故其後爲魏氏 宋公子段食於褚 故其後爲褚氏 宋太公食於蕭 故其後爲蕭氏 楚賁皇食於苗 故其後爲苗氏 晉叔向食於楊 故其後爲楊氏 杞之後食於婁 而爲婁氏 越之後食於歐山之陽 而爲歐陽氏 是皆以始封之邑爲氏也 니 枝分派別
이 千塗萬轍
이라
初若參錯紛亂而難考나 及徐而視之하니 有綱有條하야 猶指諸掌焉이라
孟仲季
東門子叔
은 同出於魯也
注+孟穆伯仲子季文子臧僖伯東門襄仲子服昭伯叔孫氏是也요 游國豐印公
伯張
은 同出於鄭也
注+游國參豐卷印堇父公孫洩伯張之類是也요 向華蕩樂鱗魚仲老
는 同出於宋也
注+向宜華督父蕩意諸樂呂鱗朱魚石仲幾老佐是也요 欒高崔國叔仲東郭
은 同出於齊也
注+欒子高傒崔夭國歸父叔仲還仲孫湫東郭偃是也니
尋其流면 可以知其源이요 尋其葉이면 可以知其根이니 抑何易耶오
自秦漢以來로 氏族之制가 出於上之所賜하야 下之所更者가 絶無而僅有하니 至於世守一氏하야 傳千餘年而不變者하얀 天下皆是也니라
其變非若古之屢하고 其列非若古之多하니 可謂簡而易知矣라
王之氏一也
로되 吾不知出於元城之王耶
注+後漢王充會稽人 其先自魏郡元城徙居於此아 宜春之王耶
注+前漢宜春侯王訢之後아 邛成之王耶
注+前漢邛成侯 王奉光之後 奉光宣帝皇后父아 劉之氏一也
로되 吾不知出於陶唐之劉耶
注+高祖賛 漢帝本系 出自唐帝 降及于周 有秦作劉아 奉春之劉耶
注+劉敬說高帝都關中 高帝封敬爲奉春君 賜姓劉아 元海之劉耶
注+晉趙劉元海 本匈奴種 漢光武時內附 號南匈奴아 其能明辨而不惑者鮮矣
라
氏之馬者
도 未必能辨其爲馬服之馬
注+趙奢因封馬服君 其後遂轉而爲馬氏及馬矢之馬也
注+後漢馬融 其先本姓 馬矢氏며 氏之石者
도 未必能辨其周衛之石
注+周石速 衛石碏及後趙之石也
注+後趙石勒 本羯種라
古之氏族繁이나 而知之者反多하고 今之氏族簡이나 而知之者反少니라
在古則宜難而反易하고 在今則宜易而反難하니 其說果安在耶오
世之學者는 仰則欲知天文하고 俯則欲知地理하며 大則欲知治亂興衰之迹하고 小則欲知草木蟲魚之名이로되 至於己之氏族과 吾祖考之所自出하야는 則茫然不知하니 豈可不恥乎아
不知吾祖考氏族之所自가 是固可恥也어니와 乃若吾一身之間에 視而不知視之所自하고 聽而不知聽之所自하며 言而不知言之所自하고 動而不知動之所自하며 以至喜怒哀樂하야도 皆不知其所自면 是又大可恥也라
不知吾祖考氏族之所自면 問諸明譜學者足矣어니와 不知吾一身視聽言動喜怒哀樂之所自면 將問諸何人乎아
傳
은공隱公 8년, 무해無駭가 죽자 우보羽父가 시諡와 족族을 청하였다.
은공이 중중衆仲에게 족族에 대해 물으니, 중중이 대답하기를
“천자는 덕德이 있는 자를 제후諸侯로 세우고서 그가 출생한 곳의 지명地名을 그의 성姓으로 정해주고, 땅을 봉封해주고서 그 땅의 이름으로 씨氏를 명命하며, 제후는 그 자字로써 시諡를 삼고, 그 자손은 이 시諡를 족族으로 삼으며, 관직을 맡아 대대로 공로가 있으면 그 후손들은 그 관명官名을 족族으로 삼기도 하고, 선조先祖의 봉읍封邑을 족族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니,
은공은 자字로써 족族을 명하여 전씨展氏로 삼았다.
천하의 일이 간단하면 알기가 쉽고 복잡하면 알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상리常理이다.
씨족이 옛날보다 복잡한 적이 없었으나 도리어 알기가 매우 쉽고, 씨족이 지금보다 간단한 적이 없으나 도리어 알기가 매우 어렵다.
삼대시대三代時代에 ‘성姓’이라고 하는 것은 그 조상이 태어난 곳을 이은 것이니 백세토록 변하지 않고, ‘씨氏’라고 하는 것은 그 자손들의 분파分派를 구별한 것이니 몇 세대에 한 번씩 변한다.
옛날에 천자가
덕德이 있는 자를 제후로 세우고서 그가 출생한 곳의 지명을 따서 그의
성姓으로 내려주었으니
注+그의 출생지의 지명地名을 따서 그의 성姓으로 내려준 것은 순舜이 규수媯水 굽이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진陳나라가 규성嬀姓이 된 것과 같은 경우이다., 받은
성姓은 하나이지만 후세에 자손이 갈라져서
씨氏가 된 것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조부祖父의
자字를
씨氏로 삼은 경우도 있고
注+진陳나라 백원伯袁의 후손이 원씨袁氏가 되고, 제齊나라 공자公子 고高의 후손이 고씨高氏가 되고, 위衛나라 공자公子 혜손惠孫의 후손이 손씨孫氏가 되고, 송宋나라 공자公子 낙보樂父의 후손이 악씨樂氏가 되고, 송宋나라 사구司宼 우보牛父의 후손이 우씨牛氏가 되고, 노魯나라 민자건閔子騫의 후손이 건씨騫氏가 된 것은 모두 조부祖父의 자字를 씨氏로 삼은 경우이다.,
선조先祖의
시호諡號를
씨氏로 삼은 경우도 있으며
注+두예杜預는 “혹은 선인先人의 시諡를 족族으로 삼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맡은 관직의 이름을
씨氏로 삼은 경우도 있고
注+채중祭仲이 당초에 제읍祭邑의 봉인封人이 되었으니 국경國境의 수비守備를 맡은 자였으므로 그 후손은 ‘제祭’를 씨氏로 삼았다., 처음
봉封해진
읍邑의 이름을
씨氏로 삼은 경우도 있으니
注+문왕文王이 아들 시숙時叔을 심沈에 봉封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심씨沈氏가 되고, 무왕武王이 태백太伯의 증손曾孫을 염閻에 봉封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염씨閻氏가 되고, 진晉 목후穆侯가 소자少子 성사成師를 한韓에 봉封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한씨韓氏가 되고, 진晉 헌공獻公이 필만畢萬을 위魏에 봉封하였으므로 그 후손이 위씨魏氏가 되고, 송宋나라 공자公子 단段이 저褚를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저씨褚氏가 되고, 송宋나라 태공太公이 소蕭를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소씨蕭氏가 되고, 초楚나라 분황賁皇이 묘苗를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묘씨苗氏가 되고, 진晉나라 숙향叔向이 양楊을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그 후손이 양씨楊氏가 되고, 기杞나라의 후손이 누婁를 식읍으로 받아서 누씨婁氏가 되고, 월越나라의 후손이 구산歐山의 남쪽을 식읍으로 받아서 구양씨歐陽氏가 된 것이 모두 처음 봉封해진 읍명邑名을 씨氏로 삼은 경우이다., 그
분파分派가 천 갈래 만 갈래이다.
처음에는 뒤섞이고 어지러워서 고증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천천히 살펴보니 강綱이 있고 목目이 있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는 것같이 분명하였다.
맹씨孟氏‧
중씨仲氏‧
계씨季氏‧
장씨臧氏‧
동문씨東門氏‧
자씨子氏‧
숙씨叔氏는 모두
노魯나라에서 나왔고
注+맹목백孟穆伯‧중자仲子‧계문자季文子‧장희백臧僖伯‧동문양중東門襄仲‧자복소백子服昭伯‧숙손씨叔孫氏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씨游氏‧
국씨國氏‧
풍씨豐氏‧
인씨印氏‧
공손씨公孫氏‧
백장씨伯張氏는 모두
정鄭나라에서 나왔고
注+유길游吉‧국참國參‧풍권豐卷‧인근보印堇父‧공손설公孫洩‧백장伯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씨向氏‧
화씨華氏‧
탕씨蕩氏‧
악씨樂氏‧
인씨鱗氏‧
어씨魚氏‧
중씨仲氏‧
노씨老氏는 모두
송宋나라에서 나왔고
注+향의向宜‧화독보華督父‧탕의제蕩意諸‧악려樂呂‧인주鱗朱‧어석魚石‧중기仲幾‧노좌老佐가 여기에 해당한다.,
난씨欒氏‧
고씨高氏‧
최씨崔氏‧
국씨國氏‧
숙씨叔氏‧
중씨仲氏‧
동곽씨東郭氏는 모두
제齊나라에서 나왔다
注+난자아欒子雅‧고혜高傒‧최요崔夭‧국귀보國歸父‧숙손환叔孫還‧중손추仲孫湫‧동곽언東郭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지류支流를 찾아보면 그 원류源流를 알 수 있고, 그 지엽枝葉을 찾아보면 그 뿌리를 알 수 있으니 어쩌면 알기가 이리도 쉬운가.
진한秦漢 이후로는 씨족氏族을 임금이 정해서 하사하였으므로 하민下民 중에 그 씨氏를 고친 자가 거의 없고 조금 있었을 뿐이니, 대대로 하나의 씨氏를 지켜 천여 년을 전하여 변하지 않은 것으로 말하면 천하가 다 그러하였다.
그 변화가 옛날처럼 빈번하지 않고, 그 분파分派도 옛날처럼 많지 않으니, 간단하여 알기 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씨족氏族의 근원을 능히 분별하는 자가 드물다.
같은
왕씨王氏이지만 나는
원성元城의
왕씨王氏에서 나왔는지
注+후한後漢 때의 왕충王充은 회계會稽 사람이다. 그 선조가 위군魏郡 원성元城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의춘宜春의
왕씨王氏에서 나왔는지
注+전한前漢 때 의춘후宜春侯였던 왕흔王訢의 후손後孫이다.,
공성邛成의
왕씨王氏에서 나왔는지 모르겠고
注+전한前漢 때 공성후邛成侯였던 왕봉광王奉光의 후손이다. 왕봉광王奉光은 선제宣帝의 황후의 아버지이다., 같은
유씨劉氏이지만 나는
도당陶唐의
유씨劉氏에서 나왔는지
注+《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 찬贊〉에 “한漢나라 황제皇帝의 본계本系는 당제唐帝(堯)에서 나왔다. 주周나라 때에 미쳐 진秦나라에 사는 자들은 유씨劉氏가 되었다.” 하였다.,
봉춘奉春의
유씨劉氏에서 나왔는지
注+유경劉敬이 고제高帝를 설득하여 관중關中에 도읍都邑을 정하게 하니, 고제는 유경을 봉封하여 봉춘군奉春君으로 삼고 유씨성劉氏姓을 하사下賜하였다.,
원해元海의
유씨劉氏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니
注+동진東晉‧전조前趙의 유원해劉元海는 본래 흉노족匈奴族이다.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 때 귀부歸附하니 남흉노南匈奴라 불렀다., 아마도 밝게 분별하여 의심하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다.
마馬를
씨氏로 쓰는 자들도 자기들이 쓰는
마馬가
마복馬服의
마馬에서 나왔는지
注+조사趙奢가 마복군馬服君에 봉封해짐으로 인하여 그 후손들이 드디어 씨氏를 고쳐 마씨馬氏가 되었다.마시馬矢의
마馬에서 나왔는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注+후한後漢 때 사람 마융馬融은 그 선조의 본성本姓이 마시씨馬矢氏였다.,
석石을
씨氏로 쓰는 자들도 자기들이 쓰는
석石이
주周나라와
위衛나라의
석石에서 나왔는지
注+주周나라의 석속石速과 위衛나라의 석작石碏이다.후조後趙의
석石에서 나왔는지를 분별하지 못한다
注+후조後趙의 석륵石勒은 본래 갈족羯族이다..
옛날의 씨족氏族은 번잡하였으나 아는 자가 도리어 많았고, 지금의 씨족氏族은 간단하나 아는 자가 도리어 적다.
옛날에는 〈씨족氏族을〉 분별하기 어려울 것 같으나 도리어 분별하기가 쉬웠고, 지금에는 〈씨족氏族을〉 분별하기 쉬울 것 같으나 도리어 분별하기가 어려우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보첩譜牒이 분명하냐, 보첩譜牒이 폐기廢棄되었느냐에서 연유한 것일 뿐이다.
보첩譜牒이 분명하면 비록 어려운 것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그 쉬운 것이겠는가?
보첩譜牒이 폐기되면 비록 쉬운 것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어려운 것이겠는가?
나는 이로 인하여 보첩譜牒의 학문學問을 강구講究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노라.
세상의 학자들은 위로는 천문天文을 알고자 하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알고자 하며, 크게는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의 자취를 알고자 하고 작게는 초목草木과 충어蟲魚의 이름을 알고자 하지만, 자기의 씨족氏族과 자기 조고祖考의 뿌리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알지 못하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자기 조고祖考와 씨족氏族의 뿌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 자신의 몸에 대하여 〈자신이〉 보면서도 보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며, 말하면서도 말하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고 움직이면서도 움직이게 된 연유를 알지 못하며, 심지어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이르러서도 그렇게 된 연유를 모두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더욱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자기 조고祖考와 씨족氏族의 뿌리를 알지 못하면 보학譜學에 정통한 이에게 물으면 되지만, 내 일신의 시청언동視聽言動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연유를 알지 못하면 장차 누구에게 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