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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陳敬仲辭卿飮威公酒
[左傳]莊二十二年이라 〈春 陳人殺其大子御寇하니〉 陳公子完〈與顓孫〉奔齊하다 〈顓孫自齊來奔하다
齊侯使敬仲爲卿한대 辭曰 幸若獲하야 及於寬政하고 赦其不閑於敎訓하야 而免於罪戾하고 於負擔 君之惠也
所獲多矣 敢辱高位하야 以速官謗이릿가 請以死告하노이다
云 翹翹車乘으로 招我以弓이로다 豈不欲往이리오마는 畏我友朋이라하니이다 使爲工正하다
飮桓公酒하니하야 公曰 以火繼之하라 辭曰 臣卜其晝 未卜其夜하니 不敢하노이다
君子曰 酒以成禮하고 不繼以淫 義也 以君成禮하고 弗納於淫 仁也라하다
人之嗜進而不知止 未有不由子孫累者니라 一身之奉易足也 一身之求易供也로되 其所以嗜進而不知止者 特欲爲子孫無窮之計耳니라
吾身不能常存이요 主眷不能常保 身未沒眷未衰之時 厚集權寵하야 以遺後之人이라
一失此機 子孫將何所疪乎 此所以爵愈高而心愈躁하고 祿愈豐而心愈貪也니라
陳氏之在齊하야 其子孫莫强焉하니 竊意敬仲入齊之始 其所以遺子孫者必甚厚 反覆考之則大不然하니
人皆求權位以遺子孫이어늘 齊威公使之爲卿하니 位旣高矣로되 而敬仲辭之하고
人皆結眷寵以遺子孫이어늘 齊威公飮其家 至欲繼之以燭하니 寵亦深矣로되 而敬仲又辭之하니라
敬仲雖安於恬退 曷不少享齊公之美하야 意以爲子孫之託耶
嗚呼 是乃敬仲深託其子孫於齊也 人之所以多求位與寵者 不過欲子孫用之不盡耳
抑不知吾盡取其位 安得餘位以遺子孫乎 吾盡取其寵이면 安得餘寵以遺子孫乎
敬仲所以不處齊卿之位者 恐其位之盡也 不當夜宴之寵者 恐其寵之盡也
齊敬仲每有不盡之恨이라 故其子孫亦每有不盡之澤하니 是辭一卿之秩하야 而開一世之基하고 辭一夕之宴하야 而得數百年之眷이니
深矣哉 敬仲託其子孫於齊也 至於하야 하야 六七傳而遂亡하니라
以損而興하고 以滿而滅하니 豈非盈者天地鬼神之所共惡耶
君子之立朝 使君有慊心則可어니와 使君有厭心則不可니라 樂歲之肉如藿하고 凶歲之藿如肉하며 富家之帛如布하고 貧家之布如帛하니
貴生於不足이요 而賤生於旣足也 勢盈位極이면 爲君所厭하야 身且不保어든 而況子孫乎
宋劉湛之事文帝 其始帝與語 視日早晩하야 惟恐其去하고 其後亦視日早晩하야 惟恐其不去하니라
文帝旣厭湛이로되 而湛獨寵冒하니 宜其不免於誅也注+見南史劉湛傳 使湛當文帝惟恐其去之時 翻然引去 則文帝之與湛常有無窮之思리라
是知愛極則移하고 高極則危로라 由古至今 用過其量하야 見險不止하고 未有能全者也
用過其量者 固召釁而集禍矣어니와 彼人與位相稱者라도 其可以無慮歟
曰 亦未可以安枕而臥也니라 謝安之隱東山也 晉國慕之하야 惟恐其不起也러니
及其旣出 高崧謂之曰 卿高臥東山 諸人每言安石不肯出하니 將如蒼生何오하더니 蒼生今將如卿何오하니 安有愧色注+見晉謝安傳하니라
蓋天下望安之出久矣 一旦爲蒼生而起 則寒者求衣하고 飢者求食하며 不獲者求得하리라
今之責我者 皆昔之慕我者也 未出則爲人所慕하고 旣出則爲人所責하며 未出則人恐失我之賢하고 旣出則我恐失人之望하니
憂樂勞逸 豈可 然則用過其量者 固爲不可어니와 語人與位相稱者 亦未易處也니라


진경중陳敬仲을 사양하고 환공桓公에게 술을 접대하다
장공莊公 22년, 봄에 진인陳人이 그 태자 어구太子 御寇를 죽이니 진 공자陳 公子 전손顓孫과 함께 나라로 도망하였다. 전손은 또 나라에서 나라로 도망해 왔다.
제후齊侯경중敬仲으로 삼으려 하니, 사양해 말하기를 “나그네로 타국他國에 붙어사는 이 다행히 용서를 받아 너그러운 정치政治를 하는 나라에 살 수 있게 되었고, 교훈敎訓을 익히지 못한 을 용서하시고 죄과罪過사면赦免하시어 부담負擔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 바로 임금님의 은혜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얻은 것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감히 높은 지위를 욕되게 하여 관리官吏들의 비난을 부르겠습니까? 죽음으로써 합니다.
에 ‘높은 수레를 타고 와서 활로 나를 부르는구나. 어찌 가고 싶지 안으랴만 벗들의 비난이 두려워서이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 환공齊 桓公은 그를 공정工正으로 삼았다.
경중敬仲주연酒宴을 베풀어 제 환공을 접대하니 환공은 매우 즐거워하였다. 환공이 “불을 밝히고 계속 마시자.”라고 하니, 경중이 사양하기를 “은 낮에 모시는 일은 을 쳤지만 밤까지 모실 것은 점을 치지 않았으니, 감히 을 받들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술로써 를 이루고 지나치게 계속하지 않은 것은 이고, 임금을 모시고서 를 이루고 지나친 데 들지 않게 한 것은 이다.”
사람이 승진陞進만 좋아하고 멈출 줄 모르는 것은 자손을 위한 마음에 얽매어서가 아닌 경우가 없다. 내 한 몸의 봉양은 충족하기 쉽고 한 몸의 수요는 공급하기 쉬운데도, 승진만 좋아하고 멈출 줄 모르는 것은 자손을 위하여 무궁하게 전하려는 계산일 뿐이다.
〈사람들은〉 ‘내 몸이 항상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임금의 은총도 항상 변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 내 몸이 죽기 전과 임금의 은총이 쇠하기 전에 권력과 은총을 많이 모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 기회를 한번 잃는다면 자손이 장차 무엇에 비호를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니, 이것이 벼슬이 더욱 높아질수록 마음이 더욱 조급해지고, 녹이 더욱 많아질수록 마음이 더욱 탐욕스러워지는 까닭이다.
진씨陳氏나라에 있어 그 자손이 더없이 강성하였으니, 나는 그 이유가 경중敬仲이 제나라로 들어온 처음에 자손에게 물려준 것이 매우 풍부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반복해 고찰해보니 크게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권세와 지위를 구하여 자손에게 물려주려 하는데, 제 환공齊 桓公이 자신을 으로 삼으려 하였으니 높은 지위인데도 경중은 사양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권고眷顧총애寵愛를 구하여 자손에게 물려주려 하는데, 제 환공이 자기 집에서 술을 마실 때 촛불을 켜놓고 계속 마시고자 하였으니 깊은 은총인데도 경중은 또 사양하였다.
경중이 비록 명리名利에 미련 없이 물러나는 것을 편안하게 여겼다 하더라도, 어찌하여 제 환공의 아름다운 뜻을 조금 받아들여 자손으로 하여금 의탁할 바가 있게 하지 않았는가?
아! 이것이 바로 경중敬仲이 그 자손을 나라에 오래도록 의탁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다대多大녹위祿位은총恩寵을 구하는 까닭은 자손들이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게 하려는 데 불과하다.
그러나 이는, 내가 그 녹위를 다 취하면 어찌 자손에게 물려줄 남은 녹위가 있겠으며, 내가 그 은총을 다 취하면 어찌 자손에게 물려줄 남은 은총이 있겠느냐는 것을 모른 것이다.
경중이 제나라 의 자리에 앉지 않은 것은 그 녹위를 다 취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서이고, 밤까지 주연酒宴을 계속하라는 은총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 은총을 다 취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나라 경중敬仲에게 매양 다 취하지 않은 여한餘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 또한 매양 〈경중이〉 다 누리지 않은 은택恩澤을 누린 것이니, 이는 한 경의 관직을 사양하여 한 세대의 기업基業을 열고, 하루 저녁의 주연을 사양하여 수백 년의 권고眷顧를 얻은 것이니,
심원하도다. 경중이 그 자손을 제나라에 의탁하게 한 것이여! 전화田和에 이르러 경중의 기업에 의지해 〈권세와 부귀를 믿고〉 자만하면서 분수 넘는 짓을 하여, 제나라를 찬탈하여 6, 7대를 전하다가 마침내 망하였다.
겸양해 물러남으로써 흥성하였고 자만으로 멸망하였으니, 어찌 자만은 천지天地귀신鬼神이 함께 미워하는 바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군자君子가 조정에 출사出仕하여 신하가 되면 임금으로 하여금 부족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해야 하고, 임금으로 하여금 만족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풍년에는 고기를 콩잎처럼 천하게 여기고, 흉년에는 콩잎을 고기처럼 귀하게 여기며, 부잣집은 비단을 삼베처럼 천하게 여기고, 가난한 집은 삼베를 비단처럼 귀하게 여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부족한 데서 생기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은 풍족한 데서 생긴다. 권세가 크고 지위가 높아지면 임금의 미움을 받아 자신도 본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자손이겠는가?
유담劉湛남조 송南朝 宋 문제文帝를 섬길 적에, 처음에는 문제가 그와 담론할 때 시간을 살피면서 오직 그가 돌아갈까만 걱정하였고, 뒤에는 또 시간을 살피면서 오직 그가 돌아가지 않을까만 걱정하였다.
문제는 이미 유담을 싫어하였는데도 유담은 총애를 탐하였으니 주살誅殺을 면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注+남사南史≫ 〈유침전劉湛傳〉에 보인다. 가령 유담이 문제가 돌아갈까 걱정할 때에 신속하게 떠났다면 문제는 유담에 대해 항상 끝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사랑이 극에 달하면 옮겨가고, 높음이 극에 달하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역량에 벅찬 자리에 등용되어 위험을 보고도 그만두지 않은 사람 치고 몸을 보전한 자는 있지 않았다.
자기 역량보다 벅찬 자리에 등용되는 것은 본래 흔단釁端을 부르고 재해災害를 모으기 마련이지만, 사람과 지위가 서로 걸맞는 자라 하더라도 어찌 우려가 없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 또한 베개를 편히 베고 누워있지 못할 것이다. 사안謝安동산東山에 은거할 때 나라 사람들은 그를 사모하여 오직 그가 출사出仕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는데,
그가 출사한 뒤에 고숭高崧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동산에 은거할 때 사람들은 매양 ‘안석安石(사안의 )이 출사하려 하지 않으니 장차 창생蒼生을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더니, 지금은 창생이 ‘장차 그대를 어찌할 것인가?’라고 한다.”라고 하니, 사안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띠었다.注+진서晉書≫ 〈사안전謝安傳〉에 보인다.
대체로 천하 사람들이 사안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란 지 오래이더니, 하루아침에 창생을 위해 출사하자, 추운 자는 옷을 얻기를 바라고, 주린 자는 밥을 얻기를 바라고, 얻지 못한 자는 얻기를 바랐다.
지금 사안에게 얻기를 요구하는 자들은 모두 전일에 그를 사모하던 자들이니, 나오기 전에는 남들의 사모를 받았는데 나온 뒤에는 사람들의 요구를 받고, 나오기 전에는 사람들이 현능賢能한 사안을 잃을까 걱정하였는데 나온 뒤에는 사안이 남들의 기대를 잃을까 두려워하였으니,
〈출사하기 이전의〉 일락逸樂과 〈출사한 이후의〉 우로憂勞를 어찌 함께 논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자기의 역량보다 벅찬 자리에 등용된 자는 본래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람과 자리가 서로 걸맞는 자도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하겠다.


역주
역주1 覊旅之臣 : 覊는 붙어 사는 것이고, 旅는 나그네이다.
역주2 : 용서이다.
역주3 : 벗어나는 것이다.
역주4 : 逸詩이다.
역주5 田和 : 陳敬仲의 9代孫으로, 齊 康公을 幽閉하고 齊侯가 된 자이다.
역주6 席敬仲之業……簒竊齊國 : ‘席’은 의지함이다. 敬仲이 개척한 기업에 의지하여 부귀와 권세가 극에 달하자, 自滿하여 분수 넘는 짓을 저질러 齊나라를 찬탈하였다는 말이다.
역주7 同日而語 : ‘同日而語’ 위에 ‘豈可’나 ‘不可’가 붙으면, 차이가 너무 커서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동래박의(2) 책은 2022.11.0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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