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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2)

동래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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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 莊公丹桓宮楹刻其桷 使宗婦覿用幣
08-04-01 莊公丹桓宮楹刻其桷 使宗婦覿用幣
[左傳]莊二十二年이라 하다 二十四年春 刻其桷하니
諫曰 臣聞之하니 德之共也 惡之大也라하니이다 先君有이어늘 而君納諸大惡하니 無乃不可乎잇가
哀姜至한대 公使宗婦覿 用幣하니 非禮也 御孫曰 하고
하야 어늘 今男女同贄하니 是無別也니이다
어늘 而由夫人亂之하니 無乃不可乎잇가
08-04-02 莊公問後季友
[左傳]莊三十二年이라 한대 對曰 慶父材니이다 하노이다
公曰 鄕者叔牙曰 慶父材라하니라 하고
曰 飮此 則有後於魯國이어니와 不然이면 死且無後하리라 飮之하고라가 하다
08-04-03 叔牙共仲賊子般
[左傳]莊三十二年이라 八月癸亥 公薨于路寢하다 하다
冬十月己未 成季出奔하다하다
08-04-04 閔公請復季友
[左傳]閔元年이라 秋八月
齊侯許之하고 使召諸陳하니 하다 季子來歸 嘉之也
08-04-05 共仲賊閔公成季立僖公
[左傳]閔二年이라 秋八月辛丑 하다 成季以適邾러니 하다
以賂求共仲于莒하니 莒人歸之하다 하다 不許한대 哭而往하니 共仲曰 奚斯之聲也라하고 乃縊하다
驕者 亂之母也 疑者 奸之媒也 懦者 事之賊也 弱者 盜之招也
四者有一焉이면 皆足以亡其國이어늘 魯莊閔之際 合四者而兼之하니 簒弑之變 胡爲而不交作哉
至嚴之地 宗廟是也 至嚴之防 男女是也어늘 莊公以一之故 上侮宗廟而僭其飾하고 下亂男女而紊其幣하니라
二者 旣不足憚이면 則擧天下無可憚者矣 使哀姜來歸之初 已傲然視天下擧無足憚하니
宜其淫縱恣睢하야 朋慶父而敗魯國하고 敢於戕殺而不忌也 哀姜固死有餘罪어니와 導之驕而納之於亂者 果誰歟
問生於疑 未有問所不疑者也니라 子般之當爲後 奚疑哉 莊公疾病 反狐疑而徧問後於大夫하니 此所以一問而起二奸也니라
未問之前 父沒子繼 誰敢干之리오 旣問之後 慶父叔牙知莊公之意猶未有所定하고 始動其覬覦之心矣
慶父叔牙固死有餘罪어니와 示人以疑而召奸者 果誰歟
慶父叔牙一體也어늘 季友誅叔牙而置慶父하야 除惡而留其根 何耶
五王黜武而興唐 武三思在其掌握이로되 縱而不殺이라가 終死其手注+唐桓彦範 崔玄暐 張柬之 袁恕己 敬暉 同誅張昌宗兄弟 奉中宗反正 以計罷其政事封王 號 尋遭貶逐 皆爲武三思所害하니 懦之爲害如此니라
然五王欲遺中宗自誅之하야 以强主威하니 雖失策이나 猶有說也어니와 吾不知季友復何說耶
借曰 不忍一朝而尸二昆이면 盍亦宥之以遠竄於裔土 則君臣兄弟之間 豈不兩全哉
一失此幾라가 及子般之禍하야 奉頭鼠竄之不暇하니 非所謂當斷不斷하야 反受其亂者耶
慶父旣弑子般하고 凶威日熾 閔公還季友以自輔하니 望之者厚矣 乃含垢忍恥하야 一無所爲하니
意者示弱以有待歟 昔之智者 外雖示弱이나 而其中實有不可犯也하니 使季友以此全閔公이면 斯可謂之示弱矣어니와
今俛首結舌하고 坐待簒弑之至하니 是眞弱者耳언정 何名示弱哉리오 閔公幼而知倚季友하고
昏而知倚裴度注+見唐史 皆不免弑하니 吾未嘗不深悲二君之意하고 而深恨二臣之負其託也로라 二臣將何以見二君於地下耶
嗚呼 失之驕하고 失之疑하야 基禍於前者 莊公也 失之懦하고 失之弱하야 成禍於後者 季友也
總四惡而論之컨대 君取其二焉하고 臣取其二焉하니 君臣分受其責 可也
雖然이나 瑕不掩瑜하고 瑜不掩瑕 罪不掩功하고 功不掩罪 季友之失則然矣어니와 至其立僖公以續魯祀하얀 其忠亦不可誣也니라
注+僖九年하고 季友許莊公以死코도 而不能死하니 季友其有愧於荀息歟ㄴ저라호되
吾以爲荀息當愧季友 季友不當愧荀息也라하노라 荀息雖許獻公以死 當奚齊之禍하야 胡爲不死耶 以有卓子存也ㄹ새라
向若卓子能定其位 則荀息之不死 賢於死矣 縱死者復生이라도 獻公亦豈責荀息之食言耶
其所以死於卓子之弑者 勢窮理絶하야 不得不殉以身也ㄹ새라 季友於子般閔公之難하야 輕棄其身이면
則僖公不復立하고 慶父不復討하야 周公之廟不復血食矣리니 一身之死 一國之亡 孰輕孰重耶
季友之不死於子般閔公 卽荀息之不死於奚齊 本無異者 然荀息所輔者邪 季友所輔者正이니
是荀息有愧於季友언정 而季友無愧於荀息也 是故以不能全子般閔公으로 責季友則可어니와
以不能死子般閔公으로 責季友則不可니라 世儒論人臣之節者 至於死而止耳 孰知復有大於死者耶리오


장공莊公환공桓公의 사당 기둥에 붉은 칠을 하게 하고 서까래에 조각을 하게 하였으며 종부宗婦에게 〈애강哀姜을 알현할 때에〉 폐백을 올리게 하다
장공莊公환공桓公의 사당 기둥에 붉은 칠을 하게 하고 서까래에 조각을 하게 하였으며 종부宗婦에게 〈애강哀姜을 알현할 때에〉 폐백을 올리게 하다
장공莊公 22년, 가을에 환공桓公의 사당 기둥에 붉은 칠을 하였다. 24년 봄에 사당의 서까래에 조각彫刻을 하였으니 모두 가 아니다.
어손御孫하기를 “신이 듣건대 ‘검약儉約 중에 큰 것이고, 사치는 중에 큰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선군先君께서는 큰 을 가지셨는데 께서는 선군先君대악大惡 속에 모시려 하시니,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가을에 애강哀姜나라로 오자, 장공莊公종부宗婦들에게 애강哀姜알현謁見할 때 폐백幣帛을 올리게 하였으니, 가 아니다. 어손御孫이 말하기를 “남자男子의 폐백은 신분身分존귀尊貴한 자는 옥백玉帛을 가지고 가서 알현하고
신분이 낮은 자는 금조禽鳥를 가지고 가서 알현하여 각각 같지 않은 물건으로 신분身分등급等級을 드러내고, 여자女子의 폐백은 개암‧밤‧대추‧건육乾肉을 사용하여 정성을 표시表示할 뿐인데, 지금 남녀男女가 동일한 폐백을 사용하게 하였으니, 이는 남녀의 분별分別을 무시한 것이다.
남녀의 분별은 나라의 큰 예절禮節인데, 부인夫人으로 말미암아 이 분별을 어지럽혔으니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장공莊公계우季友에게 후사에 대해 묻다
장공莊公 32년, 장공이 을 앓을 때 숙아叔牙에게 후사後嗣에 대해 물으니, 숙아는 “경보慶父가 임금 재목材木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계우季友에게 물으니, 계우는 “은 목숨을 걸고 자반子般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장공이 계우에게 “조금 전에 숙아는 경보가 재목이라고 하더라.”라고 하니, 성계成季가 사람을 시켜 임금의 명으로 희숙僖叔에게 하여 침무씨鍼巫氏의 집으로 가서 기다리게 하고는
침계鍼季를 시켜 그에게 독주毒酒를 주며 “이것을 마시면 그대의 후손後孫나라에서 복록福綠을 누릴 것이지만, 마시지 않으면 그대가 죽는 것은 물론이고 후손도 복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그러자 숙아가 그 독주를 마시고서 돌아오다가 규천逵泉에 이르러 하니, 나라는 그의 아들을 후계後繼로 세워 숙손씨叔孫氏로 삼았다.
숙아叔牙공중共仲자반子般을 죽이다
장공莊公 32년, 8월 계해일에 정침正寢에서 하였다. 자반子般이 즉위하여 당씨黨氏의 집으로 가서 머물렀다.
겨울 10월 기미일에 공중共仲어인 락圉人 犖을 시켜 자반을 당씨 집에서 죽이니, 성계成季가 도망갔다. 경보慶父민공閔公을 세웠다.
민공閔公계우季友가 귀국하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하다
민공閔公 원년, 가을 8월에 민공이 제후齊侯낙고落姑에서 결맹하였으니, 이는 제후齊侯에게 계우季友가 귀국하도록 도와주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제후齊侯가 이를 허락하고서 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계우季友를 불러오게 하니, 민공은 에 머물러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에 “계자季子가 돌아왔다.”라고 기록한 것은 계우를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공중共仲민공閔公을 죽이자 성계成季희공僖公을 세우다
민공閔公 2년, 가을 8월 신축일辛丑日공중共仲(경보慶父)이 복의卜齮를 시켜 무위武闈에서 민공을 시해弑害하였다. 성계成季(계우季友)가 희공僖公을 모시고 나라로 갔다가 공중이 나라로 도망간 뒤에야 나라로 들어와서 희공을 임금으로 세웠다.
그리고 나라에 뇌물을 주며 공중을 넘겨주기를 요구하니, 거인莒人이 그를 나라로 돌려보냈다. 에 당도하여 공중이 공자 어公子 魚나라 조정에 보내어 사면赦免해주기를 요청하였다. 허락하지 않자 공자 어公子 魚가 울면서 돌아가니 공중이 그 울음소리를 듣고서 “이는 해사奚斯의 소리이다.” 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교만은 의 원인이고 의심은 간사함의 매개이며 나약은 일의 적이고 유약은 도적을 부르는 것이다.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있다면 모두 나라를 망치기에 충분하다. 나라 장공莊公민공閔公 때에 이 네 가지가 모두 있었으니, 찬시簒弑의 변란이 어찌 번갈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지극히 엄숙한 곳은 종묘宗廟이고, 지극히 엄하게 삼가야 할 일은 남녀男女의 일인데, 장공莊公은 한 사람 애강哀姜 때문에, 위로는 종묘를 무시하고 수식修飾을 분수에 넘치게 하였고, 아래로는 남녀 사이가 어지러워 폐백을 분별없이 사용하였다.
이 두 가지를 이미 꺼리지 않고 했다면 온 천하에 꺼리지 않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애강으로 하여금 그녀가 막 시집왔을 때에 이미 천하 보기를 오만하게 하여 꺼릴 것이 없게 하였으니,
음란하고 방자하여 경보慶父와 결탁하여 나라를 망치고 사람을 살해하는 일도 꺼리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애강은 진실로 죽어도 죄가 남지만, 그를 교만으로 인도하고 화란에 들어가게 한 자는 과연 누구인가?
물음은 의심에서 나오는 것이니 의심나지 않는 것을 묻는 자는 없다. 자반子般후사後嗣가 되는 것은 당연한데 어찌하여 물었는가? 장공莊公이 병이 위중해지자 도리어 의심이 생겨 대부들에게 두루 물었으니, 이것이 한 가지를 물어 두 가지 간악한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이다.
묻기 전에는 아비가 죽으면 자식이 계승하는 것을 누가 감히 침범하겠는가? 물은 뒤에 경보慶父숙아叔牙가 장공의 뜻이 아직도 정해진 바가 없음을 알고 비로소 기회를 엿보려는 마음을 일으킨 것이니,
경보와 숙아는 진실로 죽어도 죄가 남지만, 남에게 의심함을 보여 간악한 일을 부른 자는 과연 누구인가?
경보慶父숙아叔牙는 일체인데 계우季友숙아叔牙만 죽이고 경보慶父를 살려두어 악을 제거하면서 그 뿌리를 남겨둔 것은 어째서인가?
오왕五王측천무후則天武后를 축출하고 나라를 일으킬 때에 무삼사武三思가 그들의 수중에 있었는데도 놓아주고 죽이지 않았다가, 마침내 무삼사의 손에 죽었으니注+나라 환언범桓彦範최현위崔玄暐장간지張柬之원서기袁恕己경휘敬暉가 함께 장창종張昌宗형제兄弟를 주살하고 중종中宗을 받들어 반정反正하였는데, 무삼사武三思가 그들이 맡고 있는 정사를 파할 것을 계획하여 에 봉하고 오왕五王이라 불렀다. 〈오왕五王은〉 얼마 뒤 쫓겨나 모두 무삼사武三思에게 해를 당하였다. 나약함의 해가 이와 같다.
그러나 오왕五王중종中宗을 복위시키기 위해 스스로 상대를 죽여 군주의 위엄을 강화하였으니, 비록 잘못된 계책이지만 그래도 할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르겠다. 계우季友는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두 형제를 죽이는 일을 차마 하지 못해서라고 핑계대어 말할 것이라면, 어찌 그들을 용서하여 멀리 변방으로 귀양 보내지 않았는가? 그렇게 하였더라면 군신君臣형제兄弟 사이가 어찌 모두 온전하지 않았으리오?
한번 이런 기회를 잃자 자반子般를 당하게 되었으니, 머리를 가리고 쥐구멍을 찾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결단해야 할 때에 결단하지 못하다가 도리어 화란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보慶父자반子般을 시해하고 흉악한 위엄이 날로 치성하자, 민공閔公계우季友를 돌아오게 하여 자신을 보필하게 하였으니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두터웠다. 그러나 〈계우는 경보의〉 원한을 숨기고 치욕을 참고서 한 가지도 처리한 일이 없었다.
생각하건대, 겉으로 약함을 보이며 때를 기다리고자 한 것인가? 옛날 지혜로운 자는 비록 겉으로 약함을 보였으나 속마음은 진실로 범접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가령 계우季友가 이런 계획으로 민공閔公을 온전히 하고자 한 것이라면 이 일을 두고 약함을 보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 고개를 숙이고 할 말을 못한 채 찬시簒弑의 화가 이른 것을 좌시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약한 자일 뿐이지 어찌 ‘약함을 보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민공閔公은 어리지만 계우季友에게 의지할 줄 알았고,
경종敬宗은 혼미하지만 배도裴度에게 의지할 줄 알았으나注+신당서新唐書≫ 〈경종기敬宗紀〉에 보인다. 모두 시해를 면치 못하였으니, 나는 두 임금의 뜻을 깊이 슬퍼하고 두 신하가 그 의탁을 저버린 일을 깊이 한스럽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두 신하는 장차 무슨 낯으로 지하에서 두 임금을 만나보려는가?
아, 교만에서 잘못되고 의심에서 잘못되어 앞에서 화란의 기틀을 마련한 자는 장공莊公이고, 나약에서 잘못되고 유약에서 잘못되어 뒤에서 화란을 이룬 자는 계우季友이다.
네 가지 악을 총괄하여 논하건대, 임금이 그 가운데 두 가지를 가졌고 신하가 그 가운데 두 가지를 가졌으니, 임금과 신하가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단점은 장점을 가릴 수 없고 장점은 단점을 가릴 수 없으며, 죄는 공훈을 가릴 수 없고 공훈은 죄를 가릴 수 없는 것이다. 계우季友의 잘못은 그러하지만, 계우가 희공僖公을 세워 노나라의 제사를 잇게 한 것으로 말하면 그의 충심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순식荀息헌공獻公에게 죽음으로써 해제奚齊를 보호하겠다고 허락하고서 끝내 그를 위해 죽었고,注+노 희공魯 僖公 9년의 일이다. 계우季友장공莊公에게 죽음으로써 〈자반子般을 보호하겠다고〉 허락하고서도 끝내 자반을 위해 죽지 않았으니, 계우는 아마도 순식에게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순식이 계우에게 부끄러움은 마땅하고, 계우는 순식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순식이 비록 헌공에게 죽음으로 허락하였으나 해제가 를 당하였을 때 어찌하여 죽지 않았는가? 이는 탁자卓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만약 탁자가 그 자리에서 안정할 수 있었다면 순식이 죽지 않은 것이 죽는 것보다 현명하였을 것이니, 비록 죽은 헌공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어찌 순식이 거짓말을 했다고 책망하겠는가?
순식이 탁자가 시해당하였을 때 죽어야 하는 이유는 형세가 다한 이치여서 따라 죽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우가 자기 몸을 가벼이 하여 자반子般민공閔公화난禍難에 따라 죽었다면,
다시는 희공僖公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고 다시는 경보慶父를 토벌할 수 없어 주공周公의 사당에 제사가 끊겼을 것이니, 한 몸이 죽는 것과 한 나라가 망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대한가?
계우季友자반子般민공閔公의 화난에 죽지 않은 것은, 곧 순식荀息해제奚齊의 화난에 죽지 않은 것과 본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순식이 보필한 상대는 부정하고 계우가 보필 한 상대는 정통이니,
이 점이 순식이 계우에게 부끄러움이 있을지언정 계우가 순식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자반과 민공이 보전하지 못한 것으로써 계우를 책망하는 것은 말이 되지만,
자반과 민공의 화난에 죽지 못한 것으로써 계우를 책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하의 절개에 대하여 논하는 세상의 학자들은 목숨 바쳐 죽으면 최고라고 여길 뿐이니, 다시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리오.


역주
역주1 丹桓宮之楹 : 桓宮은 桓公의 사당이다. 楹은 기둥이다.
역주2 皆非禮也 : 사당 서까래에 붉은 칠을 한 것과 함께 모두 禮가 아니기 때문에 ‘皆’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3 御孫 : 魯나라 대부이다.
역주4 共德 : 杜預의 注에는 ‘共’을 ‘恭’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恭德과 大惡은 서로 對가 되지 않으니, 아무리 보아도 해석이 구차하다. ≪集韻≫에 “共은 ‘洪’과 通用하니 ‘大’의 뜻이다.”라고 하였고,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도 “共은 洪으로 읽어야 하니 大의 뜻이다. 從前에 ‘共’을 ‘恭’의 뜻으로 읽은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양백준의 說에 따라 ‘洪德’으로 번역하였다.
역주5 男贄 大者玉帛 : 公‧侯‧伯‧子‧男은 玉을, 諸侯의 世子와 附庸國의 孤卿은 帛을 가지고 가서 謁見한다.
역주6 小者禽鳥 : 卿은 염소, 大夫는 기러기, 士는 꿩을 가지고 가서 謁見한다.
역주7 以章物也 : 가지고 간 물건을 드러내 보여 身分의 貴賤을 구별한다는 말이다. 염소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를 이루어 그 무리를 잃지 않는 점을 취한 것이고, 기러기를 사용하는 것은 때를 기다려 가는 점을 취한 것이고, 꿩을 사용하는 것은 절개를 지켜 죽어도 절개를 잃지 않는 점을 취한 것이다.
역주8 女贄……以告虔也 : 榛은 小栗이고, 脩는 脯이고, 虔은 敬이니, 모두 그 名稱을 취하여 공경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즉, 栗은 戰栗의 뜻을, 棗는 早起(일찍 일어남)의 뜻을, 脩는 自脩(자신을 닦음)의 뜻을 취한 것이다. 오직 榛에 대해서만 說明이 없으니, 이는 榛의 音이 虔에 가깝기 때문에 일에 誠實하다는 뜻을 취한 것인 듯하다.
역주9 男女之別 國之大節也 : 집안이 다스려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기 때문에 남녀의 분별이 나라의 큰 예절이 되는 것이다.
역주10 公疾 問後於叔牙 : 자신의 母兄을 천거하고자 한 것이다.
역주11 問於季友……臣以死奉般 : 季友는 莊公의 母弟였기 때문에 子般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역주12 成季使以君命命僖叔 待于鍼巫氏 : 成季는 季友이다. 鍼巫氏는 魯나라 대부이다.
역주13 使鍼季酖之 : 酖은 새 이름인데, 그 깃에 毒이 있다. 그 깃으로 술을 저어 마시면 죽는다.
역주14 及逵泉而卒 立叔孫氏 : 逵泉은 魯나라 땅이다. 罪가 있어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後嗣를 세워 대대로 祿을 먹게 한 것이다.
역주15 子般卽位 次于黨氏 : 喪主의 자리로 나아간 것이다. 次는 머무르는 것이다.
역주16 共仲使圉人犖賊子般于黨氏 : 共仲은 慶父이다. 賊은 殺害하는 것이다.
역주17 閔公 : 莊公의 庶子로 이때 여덟 살이었다.
역주18 公及齊侯盟于落姑 請復季友也 : 閔公이 처음 즉위하여 국가에 어려운 일이 많았으므로 충성스럽고 賢能한 季子가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霸主인 齊侯에게 요청하여 歸國시킨 것이다.
역주19 公次于郞以待之 : 군대의 일이 아니면 원래 ‘次’라고 기록하지 않는다. 군대가 3일 이상 주둔하는 것을 ‘次’라 하는 것이 例이다. 閔公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주둔하여 意外의 사태를 대비하였기 때문에 ‘次’라고 기록하였다는 말이다.
역주20 共仲使卜齮賊公于武(圍)[闈] : 卜齮는 魯나라 대부이다. 閔公이 즉위할 때에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그 스승을 사랑할 줄만 알았으므로 스승의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 卜齮의 田地를 탈취하도록 버려둔 것이다. 卜齮는 그 스승에게 분노한 나머지 閔公까지 미워하였기 때문에 慶父가 그를 이용한 것이다. 宮中의 작은 문을 ‘闈’라 한다. 저본에는 ‘圍’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闈’로 바로잡았다.
역주21 僖公 : 閔公의 庶兄으로 成風의 아들이다.
역주22 共仲奔莒……立之 : 季友가 僖公을 모시고 魯나라로 들어와서 그를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역주23 及密 使公子魚請 : 密은 魯나라 땅이다. 琅邪(낭야) 費縣 북쪽에 密如亭이 있다. 公子 魚는 奚斯이다. 慶父가 奚斯를 보내어 死刑을 면제해주기를 청한 것이다.
역주24 哀姜 : 魯 莊公의 부인이며, 齊 桓公의 여동생이다. 莊公은 본래 사랑하던 부인이 있었으나, 제나라와의 우호관계를 위하여 제 환공의 동생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는데, 이가 哀姜이다.
역주25 武三思 : 則天武后의 조카이다. 則天武后가 자신의 아들인 中宗을 폐위하고 武三思를 세워 태자로 삼으려 하자, 승상인 張柬之 등이 武后의 무리인 張易之와 張昌宗 등을 죽이고 中宗을 복위시켰는데, 살아남은 武三思가 五王을 무고하여 죽였다.
역주26 五王 : 平陽王 敬暉, 扶陽王 桓彦範, 漢陽王 張柬之, 南陽王 袁恕己, 博陵王 崔玄暐로서 中宗을 복위한 功臣을 이른다.
역주27 敬宗 : 唐 敬宗 李湛이다. 혼매하고 방종하였으나 강직한 裴度(765~837)를 재상으로 삼았는데, 환관 劉克明에게 시해당하니 재위기간은 겨우 2년이었다.
역주28 荀息許獻公以死 而終能死 : 晉 獻公이 죽기 전에 荀息에게 아들 奚齊를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순식은 목숨 바쳐 섬길 것이라고 맹세하였다. 헌공이 죽은 뒤, 異克이 奚齊를 죽이고, 또 奚齊의 동생 卓子마저 죽이자 순식은 자살하였다.
역주29 (苟)[殉] : 저본에 ‘苟’로 되어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殉’으로 바로잡았다.

동래박의(2) 책은 2022.11.0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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