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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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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 士會不見先蔑
【左傳】 文七年이라 趙宣子背先蔑而立靈公하다 己丑 하다 士會在秦三年 不見士伯한대 其人曰 하고
物之易合者 莫如居患難之時 同川之魚 鱣不知鮪하고 鮪不知鱣하야不相顧也라가 及失水 則相沫相濡하야 驩然而相親하니 豈得水則不仁하고 失水則仁耶리오 居患難之地하야는 不得不合也ㄹ새니라
同舟之人 胡不知越하고 越不知胡하야 語言不相入也라가 及遇風이면 則相赴相救하야 慨然而協力하니 豈無風則不義하고 有風則義耶리오 居患難之地하야는 不得不合也일새니라
隨會之與先蔑 竝立於晉朝하야 其游居周旋之久하니 豈如胡越之無情哉리오
及以公子雍之故 俱得罪而奔秦하니 此政涸澤之魚相濡沫之時어늘 會之視蔑乃漠然無情하야 歲律三改而曾不與之一面하니라
居患難之地하야 而反落落難合 何耶 人知患難之易合이요 而未知其所以合也 憂同則易合하고 怨同則易合하며 忿同則易合하니
同憂相遇 必相親以謀其憂하고 同怨相遇 必相親以毁其怨하며 同忿相遇 必相親以逞其忿하니
其朝夕聚會하야 握手而語하고 促膝而議者 豈復有善意哉 非咎人則訾人也 非私計則詭計也 以憂濟憂하고 以怨濟怨하야 交日深而惡日長矣리라
其所以易合者 果正耶 ]竇嬰灌夫父子歡於廢退之時注+竇嬰灌夫父子歡於廢退之時: 하고 淮南衡山昆弟語於怨望之日注+淮南衡山昆弟語於怨望之日:이나 其終之爲何如耶
是宜隨會之所不忍爲也
吾嘗聞君子處患難矣 內省不疚者也 反求諸己者也 素其位而行者也
本未嘗憂하니 何必與人共其憂 本未嘗怨하니 何必與人共其怨이며 本未嘗忿하니 何必與人共其忿이리오
使其人道義可慕하고 忠信可友하며 樂易可近하고 慈仁可依 則未有患難之始 吾固與之合矣 豈必待有患難而與之合耶리오
待患難而始合이면 則其合者非吾本心也 驅於患難하야 苟合以濟事也 是宜隨會之所不忍爲也
貧者不肯與富者狎하고 而與貧者狎 是何也 富者其所忌 兩貧則無所忌也ㄹ새니라
愚者不肯與賢者狎하고 而與愚者狎 是何也 賢者其所忌 兩愚則無所忌也ㄹ새니라
人居患難之時 以己之在難으로 而疾人之無難하야 其視優豫愉佚之人이면 且憎且忌하야 望望然去之하고 惟其同在難者라야 欵密親狎而無間하니 其心豈不甚淺狹而可憐耶 是宜隨會之所不忍爲也
或曰 趙盾實執晉柄이어늘 背先蔑而立靈公하니 則盾之所讐者 惟蔑爾 至隨會하야는 雖以累而俱出이나 本非盾所怒也
會明絶蔑於秦 乃所以陰結盾於晉하야 僥倖歸國하야 不顧賣友以市恩이니 非險薄之尤者乎
吾應之曰 此後世之心이요 而非隨會之心也 以後世之利心으로 而量君子之公心이면 則其擧其措 其語其黙 無不可名以利 豈獨先蔑一事哉리오
會果出於利心이면 則其險譎僅足以欺一夫耳 不動聲色而群盜自奔 是亦可以利心感之耶
光輔五君而名聞諸侯하니 是亦可以利心圖之耶 固不可以後世之利心으로 量君子之公心也
雖然會之公心 吾猶有憾焉이라 會不以同患而親蔑可也어니와 至於絶迹不見 則矯枉過直矣
吾不知會在晉之時 於朝廷 於官府 於衢路 果能避蔑而不見耶 在晉則見之하고 在秦則不見 是不免以罪自嫌이요 而非公之盡也
以公自處 則去國如在國하고 有難如無難하야 雖不加親이라도 亦不加疏 豈以晉秦二其心哉
吾固疑會公心之未盡也ㄹ새 吾固以公心責之하고 而不以利心量之也로라


사회士會선멸先蔑을 만나지 않다
문공文公 7년, 조선자趙宣子(조돈趙盾)가 선멸先蔑을 배신하고 영공靈公을 세웠다. 기축일己丑日선멸先蔑나라로 도망가니 사회士會도 따라갔다. 사회士會나라에 있는 3년 동안 사백士伯(선멸先蔑)을 만나지 않으니, 그 종자從者가 말하기를 “그 사람과 나라에서 함께 도망하였으면서 이곳에서 만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사계士季(사회士會)가 말하기를 “나는 그와 가 같기 때문에 함께 도망한 것뿐이고 그를 의롭게 여겨 따라온 것이 아니니 무엇 때문에 만나겠는가?”라고 하고서, 나라로 돌아올 때까지 끝내 선멸先蔑을 만나지 않았다.
물류物類가 쉽게 뜻이 맞는 것은 환난患難을 당하는 경우만한 때가 없다. 같은 하천河川어류魚類 중에 전어鱣魚유어鮪魚를 의식하지 않고 유어鮪魚전어鱣魚를 의식하지 않고서 각자 헤엄치면서 서로 돌아보지 않다가 하천에 물이 줄면 서로서로 입안의 침으로 적셔주면서 즐겁게 화합하며 서로 친애하니, 어째서 물을 얻으면 서로 친애하지 않고 물이 줄면 서로 친애하는 것인가? 이는 함께 환난의 처지에 있으면 투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선박에 탄 사람 중에 북방인[]은 남방인[]을 의식하지 않고, 남방인은 북방인을 의식하지 않아 서로 말도 건네지 않다가 폭풍우를 만나면 서로 달려가 구원하고 격앙된 모습으로 협력하니, 어째서 폭풍우가 없으면 도의道義가 없고 폭풍우가 있어야 도의가 있는 것인가? 이는 함께 환난의 처지에 있으면 서로 투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회隨會(사회士會)가 선멸先蔑과 함께 나라 조정에 출사出仕하여 교유하고 왕래한 세월이 오래이니, 어찌 북방인과 남방인처럼 조금의 정감도 없었겠는가?
공자公子 을 맞이해 세우려한 일로 인해 함께 죄를 얻어 나라로 출분出奔하였으니, 이때는 바로 물이 마른 수택水澤어류魚類가 입안의 침으로 서로를 적셔주어야 할 때였는데, 수회隨會선멸先蔑을 대하기를 도리어 냉담하리만큼 무정하게 하여 3년이 지나도록 그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함께 환난의 처지에 있으면서 도리어 외로이 혼자 지내고 투합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들은 단지 환난이 있을 때에 쉽게 투합하는 것만을 알 뿐, 투합하는 까닭은 모른다. 우환이 같은 사람이 〈서로 만나면〉 쉽게 투합하고, 원한이 같은 사람이 〈서로 만나면〉 쉽게 투합하며, 분노가 같은 사람이 〈서로 만나면〉 쉽게 투합한다.
우환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만나면 반드시 서로 친구가 되어 그 우환을 해결할 방법을 꾀하고, 원한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만나면 반드시 서로 친구가 되어 그 원한을 끼친 사람을 헐뜯고, 분노가 같은 사람끼리 서로 만나면 반드시 서로 친구가 되어 분노를 함부로 토로한다.
그들이 아침저녁으로 모여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고 무릎을 맞대고 논의하는 말에 어찌 다시 선의善意가 있겠는가? 남을 꾸짖는 말이 아니면 남을 헐뜯는 말이고, 사사로운 계획이 아니면 속임수일 뿐이니, 이는 우환으로써 우환을 조장助長하고 원한으로써 원한을 조장하는 것과 〈같아서〉 친분이 날로 깊어질수록 죄악도 날로 자라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쉽게 서로 투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과연 정당하지 않은 것인가? 〈 경제景帝 때의〉 두영竇嬰관부灌夫는 정분이 부자父子 같았는데, 〈두영竇嬰이 버림을 받고〉 조정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분이 여전하였고,注+≪漢書≫ 〈竇田灌韓列傳〉에 보인다. 무제武帝 때의〉 회남왕淮南王(유안劉安)과 형산왕衡山王(유사劉賜) 형제는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여〉 원망하던 때에 서로 모의하였으나,注+≪漢書≫ 〈淮南衡山濟北王列傳〉에 보인다. 그 결과가 어떠하였는가?
이로 보면 수회隨會가 차마 선멸先蔑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내 일찍이 듣건대 군자는 환난患難에 처했을 때에 마음속으로 반성해보아도 허물이 없고, 자신을 반성하여 자기에게서 구하며,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다.
본래 근심한 적이 없으니 어찌 사람과 더불어 그 근심을 함께 걱정할 필요가 있으며, 본래 원한한 적이 없으니 어찌 사람과 더불어 그 원한을 끼친 사람을 함께 헐뜯을 필요가 있으며, 본래 분노한 적이 없으니 어찌 사람과 더불어 그 분노를 함께 토로할 필요가 있겠는가?
가령 그 사람의 도의道義앙모仰慕할 만하고 충신忠信이 벗할 만하며, 〈인품이〉 화락하고 평이平易하여 가까이할 만하고 인자仁慈가 의지할 만하다면 환난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그와 투합하였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환난이 있기를 기다려 그와 투합하겠는가?
환난을 기다려 그와 투합한다면 이 투합은 나의 본심이 아니라 환난에 몰리어 구차히 투합해 일을 이루려는 것이니, 이로 보면 수회隨會가 차마 선멸先蔑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마땅하다.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와 친압親狎하려 하지 않고, 가난한 자와 친압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가 꺼리는 바이지만 둘 다 가난하면 서로 꺼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자와 친압하려 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와 친압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자가 꺼리는 바이지만 둘 다 어리석으면 서로 꺼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환난 속에 있을 때에 자기가 환난 속에 있다 하여 환난이 없는 남을 미워하여, 한가롭고 안락한 사람을 보면 미워하고 시기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고, 오직 함께 환난 속에 있는 사람이라야 흉허물 없이 친밀하게 대하니, 그 마음이 어찌 가여울 정도로 매우 얕고 좁은 것이 아닌가? 이로 보면 수회隨會가 차마 선멸先蔑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마땅하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조돈趙盾이 실로 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는데 그가 선멸先蔑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영공靈公을 세웠으니, 조돈趙盾이 원수로 여기는 사람은 오직 선멸先蔑뿐이고, 수회隨會로 말하면 비록 연루되어 선멸先蔑과 함께 출분出奔하였으나 본래 조돈趙盾원노怨怒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수회隨會가 공개적으로 나라에서 선멸先蔑과 관계를 끊은 것은 바로 암암리에 나라의 조돈趙盾과 결탁하여 귀국하기를 바라,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벗을 팔아 은혜를 베푸는 짓을 한 것이니, 어찌 더욱 음험하고 각박한 자가 아닌가?”라고 하기에,
내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것은 후세 사람들의 마음이고 수회隨會의 마음이 아니다. 이익을 탐하는 후세 사람의 마음으로 군자君子공심公心을 추측하면 군자의 행동거지와 언어동작이 모두 이익을 탐하는 짓이라고 명명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어찌 유독 선멸先蔑의 한 가지 일뿐이겠는가?
수회隨會의 행위가 과연 이익을 탐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면 어찌 그의 음험陰險궤휼詭譎이 겨우 조돈趙盾 한 사람만을 속이기에 충분하였을 뿐이겠는가? 〈뒤에 수회隨會가 국정을 주지主持할 때에〉 큰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았어도 군도群盜가 스스로 도망갔으니,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도둑들을 감화시켜서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라의 다섯 군주君主를 보좌하여 명성이 제후諸侯에 알려졌으니,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패업覇業을 도모해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이익을 탐하는 후세 사람의 마음으로 군자의 공심公心을 추측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수회隨會공심公心도 나의 〈생각에는〉 오히려 만족스럽지 못함이 있다. 수회隨會가 환난을 함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멸先蔑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은 괜찮지만, 발길을 끊고 만나보지 않은 것은 너무 지나쳤다.
내 모르겠으나, 수회隨會나라에 있을 때에 조정朝廷이나 관부官府나 길거리에서 과연 선멸先蔑을 피하고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가? 나라에서는 서로 만나고 나라에서는 만나지 않은 것은 스스로 혐의가 있어서 그렇게 했다는 죄에서 면할 수 없으니 공심公心을 다한 것이 아니다.
공심公心으로 자처했다면 나라를 떠났을 때나 나라에 있을 때의 행동이 같았을 것이고, 어려움이 있을 때나 어려움이 없을 때의 행동이 같았을 것이니, 설령 더 친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더 소원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어찌 나라에 있을 때와 나라에 있을 때의 마음이 다를 수 있는가.
나는 본래 수회隨會공심公心이 지극하지 못함을 의심하였기 때문에, 진실로 그의 공심公心이 미진함을 꾸짖고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는 헤아리지 않는다.


역주
역주1 : 刳首(고수)에서 도망간 것이다. 令狐는 河東에 있는 땅으로 刳首와 서로 인접한 곳이다.〈杜注〉
역주2 : 그 사람(先蔑)과 晉나라에서 함께 도망하였다는 말이다.〈杜注〉
역주3 :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하느냐는 말이다.〈杜注〉
역주4 : 함께 公子 雍을 맞이하려 한 罪가 있다는 말이다.〈杜注〉
역주5 : 내가 先蔑의 義氣를 사모해 따라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杜注〉
역주6 : 士會는 先蔑이 正卿이 되어 잘못을 諫하여 바로잡지 못한 죄를 책망하는 뜻과, 또 함께 出奔하였기 때문에 黨을 짓는다는 비난을 싫어하는 뜻에서 만나지 않은 것이다. 士會는 文公 13년에 晉나라로 돌아왔다.〈杜注〉
역주7 : 저본에는 ‘水’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泳’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 저본에는 ‘果不正耶’가 없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 灌夫는 漢 武帝 때의 武將인 아버지 灌孟을 따라 吳나라를 공격하여 용맹을 떨쳤다. 失勢한 竇嬰과 날마다 교유했는데, 사람됨이 호협하여 丞相 田蚡에게 반감을 가졌다가 술좌석에서 주정을 부려 田蚡을 욕보였다. 田蚡이 노하여 그의 전 가족을 처형하고, 竇嬰도 田蚡에게 무함받아 죽었다.
역주10 : 淮南王과 衡山王은 모두 淮南厲王 劉長의 아들로, 강한 유교정치를 이루려는 漢나라 조정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武帝 때에 모반의 음모가 있다는 혐의를 받아 옥리에 회부되자 둘 다 자결하였다.
역주11 : 저본에는 ‘始’가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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