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莊二十二年
이라 初
에 에 占之曰 吉
이라 이라
하야 五世其昌
하야 竝于正卿
하고 八世之後
엔 이라
陳厲公
은 니 生敬仲
하다 〈其少也
에〉
有以周易見陳侯者
하니 陳侯使
之
한대 遇
之
하다
曰 是
이라 ㄴ저 不在此
라 其在異國
이요 非此其身
이라 在其子孫
이리니
傳
[左傳]閔元年
이라 하야 公將上軍
하고 太子申生將下軍
하고 하야 以滅耿滅霍滅魏
하다
還
하야 하고 賜趙夙耿
하고 賜畢萬魏
하야 以爲大夫
하다
曰 畢萬之後必大
하리라 萬
은 盈數也
요 어늘 以是始賞
하니 天啓之矣
로다
天子曰兆民이요 諸侯曰萬民이라 今名之大로 以從盈數하니 其必有衆하리라
初
에 畢萬筮仕於晉
할새 遇
之
하니 占之曰 吉
이라 하니 吉孰大焉
가 其必蕃昌
하리라
傳
[左傳]閔二年
이라 成季之將生也
에 桓公使
之父卜之
한대 曰男也
니이다
其名曰友
니 하고 리니 季氏亡
이면 則魯不昌
이리이다
又筮之
한대 遇
之
이라 리이다 及生
에 有文在其手曰友
라 하다
傳
[左傳]僖十五年
이라 이로되 하다 故秦伯伐晉
하다
卜徒父筮之
하니 吉
이라 涉河
면 侯車敗
하리다 한대 對曰 乃大吉也
니이다 三敗
면 必獲晉君
하리이다
傳
[左傳]僖十五年
이라 初
에 晉獻公筮嫁伯姬於秦
하니 遇
之
라 占之曰 不吉
하니이다
及惠公在秦曰 先君若從史蘇之占이면 吾不及此夫ㄴ저 韓簡侍라가 曰 龜는 象也요 筮는 數也니
物生而後에 有象하고 象而後에 有滋하고 滋而後에 有數니 先君之敗德을 及可數乎잇가 史蘇是占을 勿從何益이리잇가
傳
[左傳]僖十七年
이라 惠公之在梁也
에 하다 어늘 與其子卜之
하다
其子曰 將生一男一女리라 招曰 然하다 男爲人臣하고 女爲人妾하리라
傳
[左傳]僖二十五年
이라 秦伯師于河上
하야 將納王
이어늘 狐偃言於晉侯曰 求諸侯
ㄴ댄 莫如
王
이니
諸侯信之
요 且大義也
니이다 繼文之業
하야 而
ㄴ댄 今爲可矣
니이다
使卜偃卜之
한대 니이다 라 對曰 周禮未改
하니 니이다
公曰 筮之
하라 筮之
하야 遇
之
하다 曰吉
하니이다 하니 戰克而王享
이면 이릿가
傳
[左傳]文十八年
이라 하고 而有疾
하니 醫曰 不及秋
하야 將死
하리라
公聞之
하고 卜曰
하노라 하니 曰 齊侯不及期
나 非疾也
요
傳
[左傳]成十六年이라 晉侯伐鄭이라 晉師濟河한대 遇楚王〈於〉鄢陵이라 公筮之하니
史曰 吉
이니이다 其卦遇
하니 이라하니 國蹙王傷
이면 不敗何待
릿가 하다
傳
[左傳]成十七年이라 施氏卜宰하니 匡句須吉하다 施氏之宰는 有百室之邑이라 與匡句須邑하야 使爲宰하니
以讓鮑國而致邑焉하다 施孝叔曰 子實吉이라 對曰 能與忠良이면 吉孰大焉이릿가
鮑國相施氏忠
이라 故齊人取以爲鮑氏後
하다 이라하다
傳
[左傳]襄九年
이라 穆姜薨
하다 始往而筮之
하니 이라 史曰 是謂艮之隨䷐
라 隨
는 其出也
니 하리다
姜曰
리라 是於周易曰
라하니라 元
은 體之長也
요 亨
은 嘉之會也
요
利는 義之和也요 貞은 事之幹也라 體仁足以長人이요 嘉會足以合禮요 利物足以和義요 貞固足以幹事라
어니와 今我婦人
으로 而與於亂
하고 하야 而有不仁
하니 不可謂元
이며
有四德者
는 隨而無咎
어니와 아 我則取惡
하니 能無咎乎
아 必死於此
요 弗得出矣
리라
傳
[左傳]襄十年
이라 宋公享晉侯於楚丘
할새 하니 荀罃
하다
荀罃不可曰 我辭禮矣
로되 하니 猶有鬼神
이면 하리라 이라
傳
[左傳]襄十年
이라 鄭皇耳帥師侵衛
하니 楚令也
라 하야 獻
於
하니
姜氏曰
니 大夫圖之
하라 衛人追之
하야 孫蒯獲鄭皇耳于犬丘
하다
傳
[左傳]襄二十五年
이라 齊
之妻
는 東郭偃之姊也
라 하다
偃曰
하나니 하고 라 武子筮之
하야 遇
之
하니 이라하다
〈困于石
은 往不濟也
요 據于蒺梨
는 所恃傷也
요 入于其宮
이라도 不見其妻
하니 凶
은〉
라
傳
[左傳]襄二十八年
이라 盧蒲癸王何卜攻慶氏
하야 示子之兆曰
하노라
子之曰
이어니와 見血
하리라 冬十月
에 慶封田于萊
에 陳無宇從
하다 丙辰
에 하니
請曰
하노라 卜之
하야 示之兆
하니 라하고 奉龜而
이어늘 乃使歸
하다
聞之曰 禍將作矣
리라하고 謂
速歸
하소서 禍作必於
이리니 니이다
子家弗聽
하고 〈亦無
志
하다〉 十一月乙亥
에 嘗于太公之廟
할새 慶舍
하다
慶氏之馬善驚
일새 士皆釋甲
하고 而飮酒
하며 且觀優
하야 어늘 하다
하니 盧蒲癸自後刺子之
하고 王何以戈擊之
하야 解其左肩
이로되
猶援廟桷
하야 하고 하다 遂殺慶繩麻嬰
하다 公懼
하니 鮑國曰 群臣爲君故也
니이다
傳
[左傳]昭元年이라 晉侯有疾하니 鄭伯使公孫僑如晉聘하고 且問疾하다
叔向問焉曰 寡君之疾
이 病
이라 卜人曰
라하야늘 史莫之知
하니 敢問此何神也
오
子産曰 昔
有二子
하니 伯曰閼伯
이요 季曰實沈
이라 居於曠林
하야 하야 日
干戈
하야 以相征討
하니
遷實沈于
하여 主參
이러니 是因
하야 以服事夏商
하니라 라
用嘉之
하야 封諸汾川
일새 이 實守其祀
러니 라 由是觀之
컨대 則臺駘
는 汾神也
라
이리오 云云 叔向曰 善哉
라 肹未之聞也
로다 此皆然矣
라
傳
[左傳]昭五年
이라 初
에 穆子之生也
에 以周易筮之
하야 遇
之
하다
以示卜
하니 曰 是將行
이라가 而
하리라 이니 其名曰牛
라 리라
離
는 火也
요 艮
은 山也
라 離爲火
하니 火焚山
이면 山敗
라 이니 이라
傳
史朝亦夢康叔謂己
호되 余將命而子苟與孔烝鉏之曾孫圉相元
하리라 史朝見成子
하고 告之夢
하니 夢
이라
晉韓宣子
가 聘于諸侯之歲
에 婤姶生子
하니 名之曰元
이라하다 行
이라
孔成子以周易筮之
하니 曰 元尙亨衛國
하야 하노라 遇
하다
하노라 遇屯䷂之
하다 以示史朝
한대 이라하니 又何疑焉
이리오
侯主社稷
하야 臨祭祀
하고 奉民人
하고 事鬼神
하고 從會朝
니 又焉得居
리오 아 故孔成子立靈公
하다
傳
[左傳]昭十二年
이라 季平子立
하야 而不禮於
하다 南蒯謂
하되 吾出季氏
하고 而
하리니
하라 하리라 子仲許之
하다 故叔仲小南蒯公子憖謀季氏
하다 하고 而遂從公如晉
하다
이라 以爲大吉也
라하야 示子服惠伯曰 卽欲有事
하니 何如
오
惠伯曰
學此矣
니 忠信之事則可
어니와 不然
이면 必敗
리라 요
라 故曰黃裳元吉
이라하니라 黃
은 中之色也
요 裳
은 下之飾也
요 元
은 善之長也
라
傳
[左傳]昭二十五年
이라 初
에 臧昭伯如晉
에 하야 하다
에 하다 昭伯問家故
하니 盡對
하고 하고 再三問
호되 不對
하다
이어늘 執諸季氏中門之外
하니 平子怒曰 何故以兵入吾門
가하고 拘臧氏老
하니
傳
[左傳]哀九年
이라 晉趙鞅卜救鄭
하야 遇
하다 하니 史龜曰
이니 이라
라 하니 姜姓其後也
라 水勝火
하니 伐姜則可
라하고
傳
[左傳]哀十七年
이라 楚公孫朝帥師滅陳
하다 이러니 沈尹朱曰 吉
이나 리라
葉公曰
이오도 오 他日
에 改卜
하야 而使爲令尹
하다
傳
[左傳]哀十八年
이라 巴人伐楚圍
하다 라하다 하다
及巴師至
하야 將卜帥
한대 王曰
하니 何卜焉
가하고 使帥師而行
하다 한대 王曰
라
三月
에 楚公孫寧
由于薳固敗巴師于鄾
하다 故封子國於析
하니라
注
[主意]以心立說하야 謂吉凶禍福이 皆出於心이로되 後世不求於心하고 而泥於卜筮라 故術愈詳而驗愈疎라하다
物莫不有先
注+吉凶禍福 皆有先兆 微物亦然하니 礎先雨而潤
注+礎 柱下之石也 天未雨而礎先潤하고 鍾先霽而淸
注+天欲晴而鍾聲淸하며 灰先律而飛
注+古人置葭灰於十二律之端 以候十二月之氣 氣至則灰先飛하고 蟄先寒而閉
注+冬令將寒 蟄虫皆閉하며
蟻先潦而徙
注+水潦將降則蟻先徙穴하고 鳶先風而翔
注+風將作則鳶飛戾天이라 陰陽之氣
가 渾淪旁薄於覆載之間
注+天地之間 升降飛揚 無非陰陽之所爲者하야
而一物之微
도 先見其幾
注+如礎如蟄如蟻之類 先見陰氣之幾者也 如鍾如灰如鳶之類 先見陽氣之幾者也 ○或曰 律有十二 陽爲律 陰六爲呂 今專言律爲陽 可乎 答曰 律呂固有陰陽 然陽動陰靜 氣動則屬陽矣 氣不動 灰何以能飛 或又曰 風何以專言陽 雨何以專言陰 答曰 陽陷於陰 不得出 則爲陰所累而爲雨 坎之象也 陰在內 陽不得入 則周旋不舍而爲風 巽之象也 以卦言之 則坎陽而巽陰 以氣言之 則坎陰盛而巽陽盛也가 如券契符鑰
하야 無毫釐之差
注+物見其幾而陰陽之氣 應之不爽는 何也
注+設問其理如何오
通天地一氣
하야 同流而無間者也
注+答言氣類相感召 自然而然也 ○或曰 上文言陰陽之氣 此言一氣何也 答曰以對待言之 則陰陽二氣也 以流行言之 則陰生陽 陽生陰 無間可容息 一氣而已 又天地間 惟有一氣 息則爲陽 消則爲陰也ㄹ새라 一物且然
이온 而況聖人備萬物於我
注+就微物引上聖人不費力 아
일새 上下四方之宇
와 古往今來之宙
注+天地間謂之宇宙 上下四方曰宇 古往今來曰宙에 와 吉凶哀樂
이 猶疾痛痾痒之於吾身
하야
觸之卽覺
하고 干之卽知
注+以萬物皆備於身故也니라 淸明在躬
注+淸明之氣 不爲物欲所亂하야 志氣如神
注+此吾心寂然不動之時일새 嗜慾將至
注+嗜慾 謂應事接物時면 有開必先
注+天地間事事物物 皆有開先之兆 中庸曰 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孼 禍福將至 善必先知之 不善必先知之 此吾心感而遂通之時也 이라
仰而觀之
注+在天成象면 熒光德星
注+熒惑火星德星吉星과 注+二者皆凶星名가 皆吾心之發見也
注+天象不在心外며
俯而視之
注+在地成形면 醴泉瑞石
注+祥瑞과 川沸木鳴
注+災異도 亦吾心之發見也
注+地理不在心外며
玩而占之
注+龜爲卜 蓍爲筮면 注+此龜卜也 周禮卜師 掌開龜之四兆 一曰方兆 二曰功兆 三曰義兆 四曰弓兆과 老少奇耦
注+此蓍筮也 蓍四十九 扐揲得九 是爲老陽 於爻爲重▭ 扐揲得六 是爲老陰 於爻爲交╳ 扐揲得七 是爲少陽 於爻爲單━ 扐揲得八 是爲少陰 於爻爲拆╍ 七九爲奇 六八爲耦도 亦吾心之發見也
注+卜筮不在心外라
未灼之前
注+灼龜以卜에 三兆已具
注+周禮太上 掌三兆之法 一曰玉兆 二曰瓦兆 三曰原兆하고 未揲之前
注+揲蓍以筮에 三易已彰
注+同上 掌三易之法 一曰連山 二曰歸藏 三曰周易이라
龜旣灼矣
注+已卜요 蓍旣揲矣
注+已筮에 是兆之吉
은 乃吾心之吉
注+兆 以卜言이요 是易之變
은 乃吾心之變
注+易 以筮言이라
心問心答하고 心扣心酎하니 名爲龜卜이나 實爲心卜이요 名爲蓍筮나 實爲心筮라
水中之天이 卽水上之天也요 鑑中之面이 卽鑑外之面也며 蓍龜之心이 卽聖人之心也라
天天相對
하고 面面相臨
하며 心心相應
하야 混融交徹
하야 混然無際
注+聖人先知 與卜筮合하니 敗甲朽株云乎哉
注+敗甲謂龜 朽株謂蓍 言聖人不煩卜筮也아 故曰 聖人不煩卜筮
注+ 引此以斷上意라하니라
在聖人觀之
注+發明聖人之心면 拂龜布蓍
가 已爲煩矣
注+承上文煩字說어든 況區區推步揣摩之煩耶
注+此句 包一篇大意 譏後世無聖人之先知 其於卜筮 不過推步揣摩僥倖一中而已아
卜筮之理
注+卜筮聖人所創 不可全貶 故下文略擧數事 以見聖人不廢卜筮之意가 嘗見於大舜之訓矣
니 曰卜不習吉而已
注+見書大禹謨篇 習 重習也 言卜不再吉也 易曰 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라하니 一吉之外
에 無他語也
注+發明主意요
又嘗見於神禹之疇矣
注+天錫禹洪範九疇니 曰龜從筮從而已
注+見洪範篇 從謂吉也라하니 一從之外
에 無他語也
注+發明主意요
又嘗見於武王之誓矣
니 曰朕夢協朕卜而已
注+見泰誓篇 謂卜之得吉 與夢相合也라하니 一協之外
에 無他語也
注+發明主意요
又嘗見於周公之誥矣
니 曰卜澗水東
과 瀍水西
에 惟洛食而已
注+見洛誥篇 周公卜建都于洛 其地在澗瀍二水之間 惟洛食者 謂得吉兆 許逢於洛也 食謂墨兆之食也라하니 一食之外
에 無他語也
注+發明主意 ○上文四箇無他語 皆言聖人無推步揣摩之煩 與後世不同하니라
至於後世
하야 始求吉凶於心外
注+轉說後世卜筮 以貶左氏所載之事하야 心愈疑而說愈鑿
하고 說愈鑿而驗愈疎
注+說之穿鑿 驗之疎略 皆由求吉凶於心外 心自生疑故也니라
注+瞽無目者 附謂會也하고 雜之以巫覡之妄
注+覡音檄 ○女曰巫 男曰覡 하야 注+言推步揣摩 不一其術에 庶幾一中
注+僥倖後來吉凶之或驗이라
失之於心
하고 而求之於事
注+病根正在於此하니 殆見心勞而日拙矣
注+說鑿故勞 驗疎故拙라 左氏之所載是也
注+本題出處條目甚多 니라
或曰 左氏所載卜筮之事
는 巧發奇中
하야 動心駭目
注+設或人反難 謂左氏所載卜筮之事 或預言吉凶於數十年之前 其應可謂巧發奇中 動人之心 駭人之目矣 而何以謂之疎하니 其驗若此
어늘 奚其疎
오 曰 左氏起隱迄哀
히 二百四十二年之間
注+春秋起魯隱公 終於哀公 凡二百四十二年에
若天子若諸侯若卿大夫若士庶人
의 竊意其卜筮之數
를 約而計之
라도 猶不啻數萬也
어늘 左氏載其驗於書者
는 纔數十事耳
注+卜筮之驗 不過左氏所載 數十事而止라
是數十事者
를 聚於左氏之書則多
나 散於二百四十二年則希闊寂寥
하니 絶無而僅有也
注+此說當理 極新得到라
乃若誕謾無驗
하야 不傳於時
하고 不錄於書者
를 吾不知其幾萬矣
注+謂左氏 於二百四十二年間 取其有驗者而載之 其不驗者 必多 皆不載也 此等所在 謂之以無爲有 最作文高處니 安得不謂之疎耶
아
就左氏之所載
에 彼善於此者
注+謂稍近理者 는 如穆姜荀罃子服惠伯之屬
注+略取此三條 所謂彼善於此者이 猶庶幾焉
注+庶幾謂近於理 ○穆姜 魯宣公夫人也 淫於叔孫僑如 欲廢成公 不克 被放于東宮 始往而筮之 遇艮之隨 卜史欲悅穆姜 乃妄對曰 隨其出也 君必速出 穆姜答曰 不然 乃歷陳周易隨元亨利貞无咎之義 因言己之淫亂 不足以當此卦之義 曰必死於此 弗得出矣 此穆姜之論 爲近理也 ○荀罃者 晉之大夫也 從晉悼公在宋 宋公享晉侯 欲用桑林之樂 荀罃辭 宋公不可 卒用之晉侯因是得疾 卜之曰 桑林見 荀偃士匄 請禱於宋 荀罃不可 但言我辭禮 而彼用之 假使桑林而見鬼神 不當加禍於我也 晉侯之疾 亦瘳 此荀罃之論 爲近理也 ○子服惠伯者 魯大夫也 季平子之家臣南蒯 欲叛季氏筮之 遇坤之比 其爻辭曰 黃裳元吉 南蒯以爲大吉也 示子服惠伯 惠伯曰 忠信之事則可 不然必敗 且爲解釋黃裳元吉三德之義 此惠伯之論 爲近理也이라
是雖未足少議聖人之卜筮
注+載之舜禹武王周公 固爲有間나 然類能信其心之所安
하야 而不奪於瞽史之說
注+如穆姜不謂得出 荀罃不禱桑林 惠伯以爲忠信之事 則可是已하니 近之矣
注+近於聖人之卜筮라
不信瞽史
가 是眞信蓍龜者也
注+信吾心之蓍龜니 是心之外
에 豈復有所謂蓍龜者耶
注+收照主意아
噫
라 桑林之見
은 妄也
注+見上文荀罃注 桑林安能見於卜筮 故以見妄요 僂佝之應
은 僭也
注+僂佝 龜名也 初臧會 竊臧氏之寶龜僂佝 以卜之云信與僭孰吉 卜曰僭吉 其後 魯昭公出奔 臧昭伯從 臧會果以變詐 得立爲臧氏後 故斷之曰僭也요 臺駘實沈之祟
는 妖也
注+實沈 高辛氏之子也 死而爲參星之神 臺駘 金天氏之裔也 死而爲汾川之神 晉平公有疾 卜者曰實沈臺駘爲崇 晉人不知其爲何神 問於子産 子産歷言二神之本末 且言二神不能爲晉君祟 故此斷之曰妖也니라 彼蓍龜之中
에 曷嘗眞有是耶
注+安有爲妄爲僭爲妖之事리오
妄者見其妄
注+吾心自妄故見其爲妄하고 僭者見其僭
注+吾心自僭故見其爲僭하며 妖者見其妖
注+吾心自妖故見其爲妖하니 皆心之所自發見耳
注+心字是一篇血脈 終始以此字貫穿라
蓍龜者
는 心之影也
注+蓍龜在人 猶影隨形 心有此念 乃見於蓍龜니 小大修短
注+修 長也이 咸其自取
注+形如此 則影亦如之니라 傴者曲而躄者跛
注+傴 亦曲也 躄 亦跛也 其形傴者 其影曲 其形躄者 其影跛가 夫豈影之罪哉
注+形實使然也 則所謂爲妄爲僭爲妖者 亦豈蓍龜之罪哉리오
의씨懿氏가 경중敬仲을 사위 삼고자 하여 거북점을 치다
의씨懿氏가 경중敬仲을 사위 삼고자 하여 거북점을 치다
傳
장공莊公 22년, 당초에 의씨懿氏가 진경중陳敬仲을 사위로 삼고자 하여 길흉吉凶을 점칠 적에 그의 아내가 점占을 치고서 말하기를 “길吉하다. 이 점괘占卦는 ‘봉鳳과 황凰이 짝지어 나니 서로 주고받으며 우는 소리가 해맑도다.
규씨嬀氏의 후손이 강성姜姓의 나라에서 양육되어 5대代 뒤에는 번창하여 관위官位가 정경正卿과 대등對等해지고, 8대 뒤에는 누구도 그와 강대强大함을 다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
진 여공陳 厲公은 채蔡나라 여자의 소생所生으로 뒤에 진경중陳敬仲을 낳았다. 〈진경중이 어렸을 때〉 주사周史가 ≪주역周易≫을 가지고 와서 진후陳侯를 뵙자, 진후는 그에게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였는데, 관괘觀卦(회䷓)가 비괘否卦(䷋)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태사太史가 풀이하기를 “이 괘卦는 ‘왕국王國의 빛을 보는 것이니 군왕君王의 빈객賓客이 되는 것이 이롭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진陳나라를 대신하여 나라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국異國에서 있을 것이고, 이 사람에게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빛은 멀리 있는 다른 곳에서 비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곤坤은 토土이고 손巽은 풍風이고 건乾은 천天인데, 풍風이 토상土上에서 천天이 되었으니 산山입니다.
산山에는 재목이 있는데, 천광天光이 이를 비추고 토지土地의 위에 있으므로 ‘왕국王國의 빛을 보는 것이니 군왕君王의 빈객賓客이 되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고,
뜰에는 온갖 예폐禮幣를 벌여놓고 또 옥백玉帛을 진헌進獻하니, 천지天地의 아름다운 물건이 모두 구비具備되었으므로 ‘군왕君王의 빈객賓客이 되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관자觀者의 뜻이 있으므로 ‘후손後孫에게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고,
바람은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토상土上에 낙착落着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이국異國에서 있다면 반드시 강성姜姓의 나라일 것이니, 강성姜姓은 태악太嶽의 후손입니다.
산악山嶽은 그 고대高大함이 하늘과 짝할 만합니다. 사물의 이치는 두 개의 사물이 동시에 강대强大할 수 없는 것이니, 진陳나라가 쇠衰하여야 이 사람의 후손이 창성昌盛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진陳나라가 처음 망하였을 때에 미쳐 진환자陳桓子가 비로소 제齊나라에서 강대해졌고, 그 뒤 진陳나라가 망하였을 때 성자成子가 제齊나라의 정권을 잡았다.
傳
민공閔公 원년, 진후晉侯가 2군軍을 만들어 헌공獻公이 상군上軍을 통솔統率하고 태자 신생太子 申生이 하군下軍을 통솔하고 조숙趙夙이 헌공獻公의 융거戎車를 몰고 필만畢萬이 거우車右가 되어 경국耿國‧곽국霍國‧위국魏國을 격멸擊滅하였다.
돌아와서 태자太子를 위해 곡옥曲沃에 성을 쌓고, 조숙趙夙에게 경耿을 하사하고 필만畢萬에게는 위魏를 하사하여 각각 대부大夫로 삼았다.
복언卜偃이 말하기를 “필만畢萬의 후손이 반드시 성대盛大해질 것이다. 만萬은 가득 찬 숫자이고 위魏는 ‘대大’의 명칭名稱인데, ‘대大’의 뜻을 가진 위魏에 비로소 상賞으로 주었으니, 이는 그의 후손이 성대하리라는 것을 하늘이 계시한 것이다.
천자天子가 통치하는 백성을 조민兆民이라 하고, 제후諸侯가 통치하는 백성을 만민萬民이라 하는데, 지금 대大의 명칭名稱(위魏)을 가득 찬 숫자(만萬)에 딸리게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대중大衆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초에 필만畢萬이 진晉나라에서 벼슬하는 것이 길吉한지 흉凶한지를 놓고 시초점蓍草占을 칠 적에 둔괘屯卦䷂가 비괘比卦䷇로 변變한 괘卦를 만났다. 신료辛廖가 이 점괘占卦를 풀이하기를 “길吉하다. 둔屯은 견고堅固의 상象이고 비比는 진입進入의 상象이니, 이보다 큰 길吉이 어디 있겠는가. 그 후손이 반드시 번창할 것이다.
진震이 토土가 되고, 수레가 말을 따르고, 두 발이 땅을 밟고 있고, 형兄이 양육養育하고, 어머니가 보호保護하고, 대중大衆이 귀의歸依하니,
육체六體가 바뀌지 않아 대중을 화합시켜 굳게 지킬 수 있고, 선善한 백성은 편안히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고 악인惡人은 죽여 위엄을 보일 수 있으니, 이는 공후公侯의 괘상卦象이다. 공후公侯의 자손이 반드시 그 처음의 위치로 회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계成季가 태어나려 할 때 환공桓公이 복사 초구卜士 楚丘의 아비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다
傳
민공閔公 2년, 성계成季가 태어나려 할 때 환공桓公이 복사 초구卜士 楚丘의 아비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였는데, 그가 점을 치고서 말하기를 “사내아이입니다.
이름은 ‘우友’로 임금님의 오른쪽에 있고 양사兩社 사이에서 공실公室을 보좌輔佐할 것이니, 계씨季氏가 망하면 노魯나라도 창성昌盛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니, 대유괘大有卦(䷍)가 건괘乾卦(건䷀)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복사 초구卜士 楚丘의 아비가 그 점괘占卦를 풀이하기를 “이 아이의 존귀尊貴가 아버지와 같아서 임금처럼 존경尊敬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가 출생함에 미쳐 손바닥에 ‘우友’자 꼴의 문양이 있으므로 드디어 ‘우友’를 이름으로 삼았다.
진백秦伯이 진晉나라를 토벌하는 일에 대하여 거북점을 치다
傳
희공僖公 15년, 진晉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었을 때 진秦나라는 양곡을 보내주었는데, 진秦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자 진晉나라는 양곡糧穀 보내는 것을 막았다. 그러므로 진백秦伯이 진晉나라를 토벌討伐한 것이다.
복사 도보卜士 徒父가 이번 전쟁의 길흉吉凶을 점占치니 길吉하였다. “황하黃河를 건너면 후거侯車가 패퇴敗退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진백秦伯이 꾸짖었다. 도보徒父가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대길大吉입니다. 세 번 패퇴敗退하면 반드시 진晉나라 임금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 괘卦가 고괘蠱卦(䷑)를 만났으니, 그 괘사卦辭에 ‘천승千乘이 세 번 패퇴敗退할 것이니 세 번 패퇴敗退한 뒤에 그 웅호雄狐를 잡는다.’고 하였으니, 저 호고狐蠱는 진晉나라 임금이 틀림없습니다.
고蠱의 정貞(내괘內卦)은 바람이고, 회悔(외괘外卦)는 산山인데, 지금 철이 이미 가을이 되었으니, 우리(바람)가 그 나무의 열매를 떨어뜨리고 그 재목을 취하는 상象입니다.
그러므로 이길 수 있습니다. 열매가 떨어지고 나무가 없어진다면 패배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과연 진군晉軍은 세 번 패퇴敗退하여 한韓에 이르렀다.
진 헌공晉 獻公이 백희伯姬를 진秦나라로 시집보내는 것에 대해 시초점을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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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僖公 15년, 당초에 진 헌공晉 獻公이 백희伯姬를 진秦나라로 시집보내는 것에 대해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니 귀매괘歸妹卦가 규괘睽卦로 변한 괘卦가 나왔다. 사소史蘇가 점占을 풀이하기를 “불길不吉합니다.
귀매괘歸妹卦는 규고睽孤하여 구적寇敵이 시위를 당기는 상象이니 조카가 고모姑母에 의지하다가 6년 만에 도망해 자기 나라로 돌아와서는 그 아내를 버리고 다음 해에 고량高梁의 언덕에서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혜공惠公이 진秦나라에 있을 적에 “선군先君이 만일 사소史蘇의 점占을 따랐다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자, 한간韓簡이 곁에서 모시고 있다가 말하였다. “거북점은 형상形象으로 길흉吉凶을 보이고, 시초점은 수數로 길흉吉凶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물事物이 생긴 뒤에 형상形象이 있고 형상形象이 있은 뒤에 점점 많아지고 많아진 뒤에 수數가 생겼으니, 선군先君의 패덕敗德을 어찌 수數로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소史蘇의 점을 따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슨 보탬이 되었겠습니까?
시詩에 ‘백성들의 재앙災殃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면전面前에서는 좋은 말만 하다가 돌아서서는 서로 미워하기만을 오로지 힘쓰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영梁嬴이 임신하여 출산시기出産時期를 넘기자 복사 초보卜士 招父가 거북점을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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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僖公 17년, 진 혜공晉 惠公이 양梁나라에 있을 적에 양백梁伯이 그를 사위로 삼았다. 임신한 양영梁嬴이 출산시기出産時期를 넘기자, 복사 초보卜士 招父가 그 아들과 점을 쳤다.
그 아들이 “장차 1남 1녀를 낳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초보招父가 “그렇다. 아들은 남의 신하가 될 것이고, 딸은 남의 첩妾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들의 이름을 ‘어圉’로 짓고 딸의 이름을 ‘첩妾’으로 지었다. 자어子圉가 서쪽 진秦나라의 인질人質이 되었을 때 첩妾은 진秦나라의 환녀宦女가 되었다.
진후晉侯가 왕을 들여보내는 일에 대하여 거북점을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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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僖公 25년, 진백秦伯이 군대를 황하黃河 가에 주둔시키고서 왕王을 호송護送해 경사京師로 들여보내려고 하자, 호언狐偃이 진후晉侯에게 말하기를 “제후의 패자霸者가 되기를 구하려면 왕사王事에 진력盡力하는 것만 한 게 없습니다.
제후諸侯가 신임信任할 것이고 또 대의大義에도 부합합니다. 문후文侯의 공업功業을 계승하여 제후諸侯에게 신의信義를 선양宣揚하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라고 하였다.
문공文公이 복사 언卜士 偃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니, 복사 언卜士 偃이 “길吉합니다. 황제黃帝가 판천阪泉에서 싸울 때의 징조徵兆를 만났습니다.”라고 하였다. 공公이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하니, 복사 언卜士 偃이 “주례周禮가 아직 바뀌지 않았으니 지금의 왕王은 옛날의 제帝입니다.”라고 하였다.
공公이 “시초점을 치라.”고 하니, 복사 언卜士 偃이 시초점을 쳐서 대유大有䷍가 규睽䷥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복사 언卜士 偃이 말하기를 “길吉합니다. 공公이 천자天子의 접대를 받는 괘卦를 만났으니, 전쟁에 승리하고서 왕의 접대를 받는다면 이보다 큰 길사吉事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이 괘卦는 하늘[건乾]이 연못[태兌]이 되어 햇볕[이離]을 받고 있으니 천자天子가 마음을 낮추고서[강심降心] 공公을 영접迎接하는 상象입니다. 이 또한 좋지 않습니까? 대유괘大有卦가 규괘睽卦로 변하였으나 끝내는 본괘本卦로 회복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라고 하였다. 진후晉侯가 진군秦軍에게 사양하고서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
제후齊侯가 출병시기出兵時期를 명命하고서 병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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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文公 18년, 제후齊侯가 출병시기出兵時期[사기師期]를 명命[계戒]하고서 병이 나니, 의원醫員이 “아마도 가을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노 문공魯 文公은 이 소식을 듣고서 거북점을 치게 하며 말하기를 “저 제후齊侯가 출병시기가 되기 전에 죽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혜백惠伯이 점치고 싶은 일을 귀갑龜甲에 명령하니, 복사 초구卜士 楚丘가 점을 풀이해 말하였다. “제후齊侯가 출병시기까지 살지 못하겠지만 질병 때문이 아닙니다.
임금님께서도 그의 죽음을 듣지 못하실 것이고, 귀갑龜甲에 명령한 분도 재앙災殃이 있을 것입니다.” 2월 정축일丁丑日에 공公이 훙薨하였다.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언릉鄢陵에서 만났는데 진후晉侯가 시초점을 치니 ‘길하다’는 점괘가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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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成公 16년, 진후晉侯가 정鄭나라를 쳤다. 진군晉軍이 황하黃河를 건넜는데, 초왕楚王을 언릉鄢陵에서 만났다. 진후晉侯가 태사太史에게 점占을 치게 하니,
태사太史가 점을 치고서 말하기를 “길吉합니다. 복괘復卦를 만났으니, 그 점사占辭에 ‘남방南方의 나라가 위축萎縮될 것이고, 그 왕王에게 활을 쏘니 화살이 그 눈에 꽂힌다.’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위축되고 왕王이 부상負傷당한다면 패敗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라고 하니, 진후晉侯는 묘분황苗賁皇의 계획을 따라 전쟁戰爭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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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成公 17년, 시씨施氏가 가재家宰(경대부가卿大夫家의 가사家事를 총관리總管理하는 가신家臣의 장長)로 누가 좋은지를 점占치니 광구수匡句須가 길吉하였다. 시씨施氏의 가재家宰는 백호百戶의 채읍采邑을 소유하도록 되어있으므로 이 채읍采邑을 광구수匡句須에게 주어 가재家宰가 되게 하니,
광구수匡句須는 가재家宰의 자리를 포국鮑國에게 사양하고 채읍采邑까지 포국鮑國에게 주었다. 그러자 시효숙施孝叔이 말하기를 “점占에 그대가 길吉하였다.”고 하니, 광구수匡句須가 대답하기를 “충량忠良한 사람에게 양여讓與한다면 이보다 더 큰 길吉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포국鮑國이 시씨施氏를 보좌補佐함에 충심忠心을 다하였다. 그러므로 제인齊人이 데려다가 포씨鮑氏의 후계자로 삼은 것이다. 중니仲尼가 말하기를 “포장자鮑莊子의 지혜知慧는 규채葵菜만도 못하다. 규채葵菜는 오히려 그 뿌리[족足]를 보호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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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襄公 9년, 목강穆姜이 동궁東宮에서 훙薨하였다. 목강이 처음 동궁으로 갔을 때 시초점蓍草占을 치니 간괘艮卦가 팔八(간艮의 육효六爻 중에 이효二爻만이 변變하지 않은 것)로 변變한 괘卦䷳를 만났다. 태사太史가 말하기를 “이것은 간괘艮卦가 수괘隨卦䷐로 변變한 것입니다. 수隨는 나가는 뜻이니, 소군小君께서는 반드시 빨리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니,
목강이 말하기를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주역周易≫에 ‘수隨는 원元‧형亨‧이利‧정貞하니 화禍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元은 신체身體의 장長(머리)이고, 형亨은 아름다운 모임이고,
이利는 의義에 화합和合함이고, 정貞은 사물의 근간根幹이다. 인仁을 체현體現하면 사람들의 장長이 될 수 있고, 아름다운 모임은 예禮에 부합할 수 있고, 만물萬物을 이롭게 하면 도의道義와 조화調和될 수 있고, 성실誠實하고 견고堅固하면 일을 주간主幹할 수 있다.
이와 같기 때문에 〈사덕四德이 없는 자는 있는 것처럼〉 속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비록 수괘隨卦를 만나더라도 재화災禍가 없지만 지금 나는 부인婦人으로 난亂에 참여하였으며, 본래 하위下位의 신분身分으로 불인不仁을 저질렀으니 ‘원元(나라의 어른)’이라 할 수 없고,
국가國家를 안정安靖시키지 못하였으니 ‘형亨(연향燕享을 받을 만함)’이라고 할 수 없고, 난亂을 일으켜 자신을 해쳤으니 ‘이利’라고 할 수 없고, 소군小君의 지위地位를 버리고서 간음姦淫하였으니 ‘정貞(정숙貞淑)’이라 할 수 없다.
이 네 덕德이 있는 사람은 수괘隨卦를 만나도 재화災禍가 없지만 나에게는 네 덕德이 전혀 없으니, 어찌 수괘隨卦의 괘사卦辭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악행惡行을 취하였으니 어찌 재화災禍가 없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여기서 죽을 것이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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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襄公 10년, 송공宋公이 초구楚丘에서 잔치를 열어 진후晉侯를 접대할 때에 상림악桑林樂을 연주演奏[이以]하기를 청하니 순앵荀罃이 사양하였다.
그러자 순언荀偃과 사개士匄가 말하기를 “제후諸侯 중에 송宋나라와 노魯나라에서만 천자天子의 예禮를 볼 수 있습니다. 노魯나라에는 체악禘樂이 있어 귀빈貴賓의 대접과 대제大祭 때에 사용하니, 송宋나라가 상림악桑林樂으로 우리 임금을 접대하는 것이 가可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상림무桑林舞를 추려고 악대樂隊의 장長이 악대를 거느리고 맨 앞에서 큰 깃발을 들고 들어오자, 진후晉侯는 놀라서 물러나 방房으로 들어갔다. 송인宋人이 깃발을 치우자, 다시 나와 연회宴會를 마치고 환국還國길에 올랐다.
저옹著雍에 당도하여 진후晉侯가 병을 앓자, 점占을 치니 점괘占卦에 상림신桑林神이 나타났다. 순언荀偃과 사개士匄가 송宋나라로 달려가 상림신桑林神에게 기도하기를 청하고자 하자,
순앵荀罃이 반대하며 말하기를 “우리는 이 예禮(상림악桑林樂으로 접대한 예禮)를 사양하는데도 저들이 이 악樂을 연주하였으니, 만약[유猶] 귀신鬼神이 있다면 저들에게 화禍를 내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진후晉侯의 병이 나았다.
정鄭나라 황이皇耳가 위衛나라를 침공侵攻하니 손문자孫文子가 정군鄭軍을 추격하는 것에 대하여 거북점을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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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襄公 10년, 정鄭나라 황이皇耳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위衛나라를 침공侵攻하였으니, 이는 초楚나라의 명령命令을 따른 것이다. 위衛나라 손문자孫文子가 정군鄭軍을 추격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점占을 쳐서 조兆를 정강定姜에게 올리니
정강이 주繇(점사占辭)를 물었다. 손문자孫文子가 “그 점사占辭에 ‘조兆가 산릉山陵 같으니, 대부大夫가 출정出征하면 그 웅雄(장수將帥)을 잃는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강씨姜氏가 말하기를 “출정出征한 쪽(정鄭나라)이 웅雄을 잃는 것은 적敵을 방어하는 쪽(위衛나라)에 유리한 것이니, 대부大夫는 깊이 생각해 결정하라.”고 하였다. 위인衛人이 정군鄭軍을 추격하여 손괴孫蒯가 견구犬丘에서 정鄭나라 황이皇耳를 사로잡았다.
최자崔子가 제 당공齊 棠公의 처妻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 일에 대하여 거북점을 치다
傳
양공襄公 25년, 제齊나라 당공棠公의 아내는 동곽언東郭偃의 누이이고, 동곽언은 최무자崔武子의 가신家臣이었다.
당공이 죽자 동곽언이 최무자를 수레에 태우고 가서 조상弔喪을 하였는데, 무자武子가 당강棠姜(당공의 아내)을 보고는 한눈에 반하여, 언偃에게 그녀를 자기가 취할 수 있도록 주선하게 하였다.
언偃이 말하기를 “남녀男女의 혼인婚姻에는 성姓을 변별辨別하는 것인데, 지금 당신은 정공丁公의 후손이고 신臣은 환공桓公의 후손이니 통혼通婚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자武子(최저崔杼)가 점占을 쳐서 ‘곤困(䷮)’이 ‘대과大過(䷛)’로 변變한 괘卦를 얻으니, 태사太史들은 모두 길吉하다고 하였다.
최저崔杼가 이 점괘占卦를 진문자陳文子에게 보이자 문자文子가 말하기를 “남편은 바람이 되고[부종풍夫從風] 바람은 아내를 불어 떨어뜨리니[풍운처風隕妻] 취娶하여서는 안 됩니다.
또 그 요사繇辭(점사占辭)에 ‘바위에 곤란을 당하고[곤우석困于石] 납가새 위에 앉은 것이라[거우질리據于蒺梨]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입우기궁 불견기처入于其宮 不見其妻 흉凶]’고 하였습니다.
‘곤우석困于石’은 일을 하여도[왕往] 성공成功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거우질리據于蒺梨’는 믿는 사람에게 상해傷害를 당한다는 뜻이고, ‘입우기궁 불견기처入于其宮 不見其妻 흉凶’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라고 하니,
최자崔子는 “그 여인女人은 과부寡婦이니 무슨 해害가 있겠는가? 전남편이 이미 그 흉화凶禍를 당하였다.”고 하고서, 드디어 그 여인女人을 취하였다. 제 장공齊 莊公이 그녀와 정情을 통하니
최자崔子는 이로 인해 병病을 핑계 대고 나와서 정무政務를 보지 않았다. 장공이 최자의 집으로 가서 문병問病하고서 강씨姜氏를 찾아가니 최저崔杼가 장공을 죽였다.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가 경씨慶氏를 공격하는 일에 대하여 거북점을 치다
傳
양공襄公 28년,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가 경씨慶氏를 공격攻擊하는 일로 거북점을 치고서 귀조龜兆(귀갑龜甲이 터진 무늬)를 자지子之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어떤 자가 원수怨讐를 치려고 거북점을 쳤기에 감히 그 귀조龜兆를 올립니다. 〈그 길흉吉凶이 어떠합니까?〉”라고 하자, 자지子之가 말하기를 “우두머리를 잡을 것이지만 피를 볼 것이다.”라고 하였다.
겨울 10월에 경봉慶封이 내萊에서 사냥할 때 진무우陳無宇가 수행隨行하였다. 병진일丙辰日에 진문자陳文子가 사람을 보내어 무우無宇를 부르니,
무우無宇가 경봉慶封에게 요청하기를 “제 모친母親의 병이 위독하니 돌아가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경계慶季(경봉慶封)가 〈무우無宇를 위해〉 거북점을 쳐서 무우無宇에게 그 귀조龜兆를 보이니 무우無宇는 “이는 우리 모친母親이 죽을 귀조龜兆입니다.”라고 하고서 그 귀갑龜甲을 들고 울자, 경봉慶封은 그를 돌아가게 하였다.
경사慶嗣가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화란禍亂이 곧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고서, 자가子家(경봉慶封)에게 “속히 돌아오십시오. 화란禍亂이 반드시 상제嘗祭 때에 일어날 것이니 돌아오시면 오히려 사전事前에 미쳐 막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나,
자가子家는 듣지 않고 또 뉘우치는 뜻도 없었다. 11월 을해일乙亥日에 태공太公의 묘廟에 상제嘗祭를 거행할 때 경사慶舍가 그 제사祭祀에 참가하였다.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는 침과寢戈를 들고 옆에서 시위侍衛하고, 경씨慶氏는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공궁公宮을 에워쌌다. 진씨陳氏와 포씨鮑氏의 어인圉人들이 광대놀이를 벌이니,
경씨慶氏의 말들은 본래 놀라 내달리기를 잘하므로 갑사甲士들은 모두 갑옷을 벗고 말을 묶어놓고서 술을 마시고 광대놀이를 구경하면서 어리魚里까지 갔다. 그러자 난씨欒氏‧고씨高氏‧진씨陳氏‧포씨鮑氏의 무리가 경씨慶氏의 갑사甲士들이 벗어놓은 갑옷을 입었다.
자미子尾가 서까래를 뽑아 문짝을 세 번 치니 노포계盧蒲癸가 뒤에서 자지子之(경사慶舍)를 찌르고 왕하王何가 창으로 쳐서 경사慶舍의 왼쪽 어깨를 잘랐다.
그런데도 경사慶舍는 오히려 사당祠堂의 서까래를 잡아당겨 용마루를 흔들고 도마[조俎]와 병[호壺]을 던져 사람을 죽인 뒤에 죽었다. 노포계盧蒲癸는 드디어 경승慶繩과 마영麻嬰을 죽였다. 제 경공齊 景公이 두려워하니 포국鮑國이 말하기를 “군신群臣이 〈난亂을 일으킨 것은〉 임금님을 위해서입니다.”라고 하였다.
진후晉侯가 병을 앓자 자산子産을 통해 빌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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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昭公 원년, 진후晉侯가 병病을 앓으니, 정백鄭伯이 공손 교公孫 僑(자산子産)를 진晉나라에 보내어 빙문聘問하고 또 문병問病하게 하였다.
숙향叔向이 자산子産에게 묻기를 “우리 임금님의 병환病患이 위독[병病]합니다. 복인卜人은 ‘실침實沈과 대태臺駘가 빌미가 되었다.’고 하는데, 태사太史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감히 묻습니다. 이것이 무슨 신神입니까?”라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였다. “옛날 고신씨高辛氏에게 두 아들이 있었으니 큰 아들은 알백閼伯이고 작은 아들은 실침實沈이었습니다. 그들은 광림曠林에 살면서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여 날마다 간과干戈를 사용해 서로 공격하니,
후제后帝(요堯)는 그들을 좋지 않게 여겨 알백閼伯을 상구商丘로 옮겨 진성辰星(대화성大火星)의 제사祭祀를 주관主管하게 하였더니, 상인商人이 이 일을 인습因襲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성辰星이 상商나라의 별이 된 것입니다.
실침實沈을 대하大夏로 옮겨 삼성參星의 제사祭祀를 주관主管하게 하였더니, 당인唐人이 이 일을 인습因襲하여 하왕조夏王朝와 상왕조商王朝에 복종해 섬겼습니다. 당唐나라 말세末世의 임금이 당숙우唐叔虞였습니다.
무왕武王의 후비 읍강后妃 邑姜이 태숙太叔을 임신姙娠할 때를 당하여, 꿈에 천제天帝가 읍강邑姜에게 ‘내가 너의 아들을 우虞로 명명命名하고서, 장차 이 아이에게 당唐나라를 주어 삼성參星 분야의 땅을 귀속歸屬시켜 자손子孫이 번창繁昌하게 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출생出生함에 미쳐 손바닥에 ‘우虞’자 모양의 무늬가 있으니, 드디어 ‘우虞’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성왕成王에 미쳐 당국唐國을 멸滅하고 태숙太叔을 그곳에 봉封하였으므로 삼성參星이 진晉나라의 별이 된 것입니다.
이로써 보면 실침實沈은 삼성參星의 신神입니다. 옛날에 금천씨金天氏의 후예에 매昧라는 자가 있었더니, 현명사玄冥師가 되어 윤격允格과 대태臺駘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대태臺駘는 능히 그 세업世業을 계승하여 분수汾水와 조수洮水를 소통시키고 대택大澤에 제방堤防을 쌓아 광대廣大한 평원平原에 인민人民들을 편히 살게 하니,
제帝(전욱顓頊)가 이를 가상嘉尙히 여겨 그를 분천汾川에 봉封하였으므로 〈그 후손後孫인〉 심국沈國‧사국姒國‧욕국蓐國‧황국黃國이 실로 그 제사祭祀를 대대로 지내왔는데, 지금 진晉나라가 분수汾水 일대를 주재主宰(통치統治)하면서 이 네 나라들을 멸滅하였습니다. 이로써 보면 대태臺駘는 분수汾水의 신神입니다.
그러나 이 두 신神은 진군晉君의 신병身病과는 무관無關합니다. 장마와 가뭄과 전염병 등의 재해災害가 있으면 이에 산천山川의 신神에게 영제禜祭를 지내고,
눈과 서리, 바람과 비 등이 철을 잃으면 이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신神에게 영제禜祭를 지냅니다. 진군晉君의 신병身病으로 말하면 출입出入, 음식飮食, 애락哀樂의 일로 인해 생긴 것이니,
산천山川이나 성신星辰의 신神이 또 어찌 병을 줄 수 있겠습니까…….”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좋은 말씀입니다. 나는 아직 이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지적하신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다.”라고 하였다.
목자穆子가 출생出生하였을 때에 장숙莊叔이 시초점을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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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昭公 5년, 당초에 목자穆子가 출생出生하였을 적에 장숙莊叔이 ≪주역周易≫으로 점을 쳐서 명이괘明夷卦가 겸괘謙卦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이 점괘占卦를 복사 초구卜士 楚丘에게 보이니, 초구楚丘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출분出奔하였다가 돌아와서 당신을 위해 제사祭祀를 받들 것입니다. 돌아올 때 참인讒人을 데리고 들어올 것인데, 그자의 이름은 우牛입니다. 이 아이는 끝내 이자로 인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명이明夷는 해이고 해의 수는 십十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에 십시十時가 있으니 이 또한 사람의 열 등급의 위차位次에 해당합니다. 왕王 이하로 두 번째가 공公이고 세 번째가 경卿이며,
태양太陽의 최상위最上位는 중천中天에 이른 때로 〈왕王에 해당하고,〉 조반朝飯을 먹을 때의 태양太陽이 이위二位로 공公에 해당하고, 새벽의 태양太陽이 삼위三位로 경卿에 해당합니다. 명이괘明夷卦가 변하여 겸괘謙卦가 된 것은 날이 밝았으나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것이니, 아마 새벽(경위卿位)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위해 제사祭祀를 받들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해(이離)가 변하여 겸謙이 된 것은 새[조鳥]에 해당하기 때문에 효사爻辭에 ‘명이明夷가 난다.’고 하였고, 날이 밝았으나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기 때문에 ‘날개를 늘어뜨렸다.’고 하였고,
〈명이明夷의 초구初九는〉 해의 움직임을 상징象徵하였기 때문에 ‘군자君子가 떠나간다.’고 하였고, 제삼위第三位인 새벽에 해당하기 때문에 ‘3일 동안 먹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離는 화火이고 간艮은 산山입니다. 이離가 화火가 되었으니 화火가 산山을 태우면 산山은 패괴敗壞(파괴破壞)됩니다. 간艮이 사람에 있어서는 언어言語가 되는데, 남을 패괴敗壞하는 말이 참언讒言입니다.
그러므로 효사爻辭에 ‘가는 곳이 있으면 주인主人이 말을 한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반드시 참언讒言입니다. 순리純離(상하괘上下卦가 모두 이괘離卦인 것)가 우牛인데, 세상이 어지러우면 참언讒言이 승리하고 승리하면 〈간艮이 도로〉 이離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이름이 우牛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겸謙은 부족不足이므로 날되 멀리 날지 못하고, 날개를 늘어뜨렸으므로 멀리 날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당신의 후계자後繼者가 될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당신이 아경亞卿이니 〈이 아이도 아경亞卿이 되겠지만〉 이 아이[소少]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
공성자孔成子가 거북점을 쳐서 영공靈公을 세우다
傳
소공昭公 7년, 위 양공衛 襄公의 부인 강씨夫人 姜氏는 아들을 낳지 못하였고, 폐인 주압嬖人 婤姶이 맹집孟縶을 낳았다. 공성자孔成子의 꿈에 강숙康叔(위衛나라의 시조始祖)이 공성자孔成子에게 말하기를 “원元을 임금으로 세우라.”고 하였다.
사조史朝 역시 꿈에, 강숙康叔이 사조史朝에게 말하기를 “내 장차 너의 아들 구苟와 공증서孔烝鉏의 증손 어曾孫 圉에게 명命하여 원元을 섬기게 하겠다.”고 하였다. 사조史朝가 성자成子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하니, 두 사람의 꿈이 같았다.
진晉나라 한선자韓宣子가 제후諸侯를 빙문聘問하던 해에 주압婤姶이 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원元이라 하였다. 맹집孟縶은 발이 온전하지 못하여 걸음을 잘 걷지 못하였다.
공성자孔成子가 ≪주역周易≫으로 점을 치며 〈태서泰筮(시초蓍草로 만든 산가지)에 명命하기를〉 “원元이 위衛나라를 향유享有하여 그 사직社稷을 주관主管하기를 바란다.”고 하고서, 〈설시揲蓍(시초점蓍草占을 칠 때 산가지를 세어 괘卦를 만듦)하니〉 둔괘屯卦가 나왔다.
또 〈태서泰筮에 명命하기를〉 “나는 맹집孟縶을 임금으로 세우기를 희망하니 좋은 괘卦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하고서, 〈설시揲蓍하니〉 둔괘屯卦가 비괘比卦로 변變한 괘卦가 나왔다. 그 괘卦를 사조史朝에게 보여주니, 사조史朝가 말하기를 “〈괘사卦辭에〉 ‘원형元亨’이라 하였으니, 또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성자成子가 “원형元亨의 원元은 장자長子를 이름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니, 사조史朝가 대답하기를 “강숙康叔이 원元으로 명명命名하셨으니 장자長子라 이를 수 있습니다. 맹집孟縶은 합당合當한 사람이 아니라서 장차 종사宗社를 주관主管할 수 없을 것이니 장자長子라 할 수 없습니다.
또 그 괘사卦辭에 ‘후侯로 세우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사자嗣子를 세우는 것이 길吉하다면 〈당연히 사자嗣子가 임금이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후侯로 세운다.’고 하였겠습니까? 사자嗣子가 아닌 자를 세우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두 괘卦에 모두 그렇게 말하였으니, 당신께서는 원元을 세우십시오.
강숙康叔이 명하셨고 두 괘卦가 그리 고告하였으니, 시초점蓍草占이 꿈과 부합符合한 것은 무왕武王께서도 따르신 바이니 무엇 때문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절뚝발이는 집안에 한가로이 있어야 합니다.
후侯(군주君主)는 사직社稷을 주관主管하여 제사祭祀에 친림親臨하고 인민人民을 봉양奉養하고 귀신鬼神을 섬기고 회맹會盟과 조회朝會에 참가해야 하니 어찌 집안에 한가로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각각 이로운 바를 따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성자孔成子가 영공靈公을 세웠다.
남괴南蒯가 반란을 일으키고자 할 적에 묻고 싶은 일을 지적해 말하지 않고 시초점을 쳐서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보이다
傳
소공昭公 12년, 계평자季平子가 계씨가季氏家의 계승자繼承者가 된 뒤에 남괴南蒯를 예우禮遇하지 않았다. 남괴南蒯가 자중子仲(공자 은公子 憖)에게 이르기를 “내가 계씨季氏를 축출逐出하고서 그 가산家産[실室]을 공실公室로 귀속歸屬시킬 것이니,
그대는 계씨季氏를 대신해 경卿의 자리에 오르십시오. 나는 비읍費邑으로써 공실公室의 신하臣下가 되겠습니다.”고 하였다. 자중子仲이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숙중소叔仲小‧남괴南蒯‧공자 은公子 憖이 함께 계씨季氏를 제거하기로 모의謀議하였다. 공자 은公子 憖은 이 계획을 소공昭公께 고하고서 드디어 소공昭公을 따라 진晉나라로 갔다.
남괴南蒯는 성공成功[극克]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비읍費邑의 무리를 이끌고서 계씨季氏를 배반하여 제齊나라로 갔다. 남괴南蒯가 배반하려 할 때 그 마을 사람 중에 어떤 자가 남괴南蒯의 음모陰謀를 알고서 그 앞을 지날 때 탄식하며 말하기를 “매우 우려憂慮된다.
생각은 깊으나 지모智謀는 옅고 몸은 비근卑近하면서 뜻은 원대遠大하고 가신家臣이면서 임금의 일을 도모圖謀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하였다. 남괴南蒯는 묻고 싶은 일을 지적해 말하지 않고 점占을 쳐서 곤괘坤卦가 비괘比卦로 변한 괘卦를 얻었는데,
그 효사爻辭에 ‘황상黃裳(노란 치마)이니 크게 길吉하다.’고 하였다. 남괴南蒯는 이 점괘占卦가 크게 길吉한 것으로 여겨, 이 점괘占卦를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보이며 “나는 즉시 일을 벌이고 싶은데 어떻겠는가?”라고 묻자,
자복혜백子服惠伯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주역周易≫을 배운 적이 있는데, 충신忠信한 일이라면 해도 성공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외표外表가 강强하고 내면內面이 온순溫順한 것이 ‘충忠’이고,
화순和順한 마음으로 점占친 일[정貞]을 행[솔率]하는 것이 ‘신信’입니다. 그러므로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 한 것입니다. 황黃은 중앙中央의 색깔이고 상裳은 하체下體의 복식服飾이고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니,
중심中心이 충성忠誠스럽지 않으면 황색黃色이 될 수 없고, 하위下位에 있으면서 공경恭敬하지 않으면 식飾[상裳]이 될 수 없고, 하는 일이 선善하지 않으면 준칙準則[극極]이 될 수 없습니다.
안(임금)에서 선창先唱하면 밖(신하臣下)에서 화답和答하는 것이 충忠이고, 성신誠信으로 일을 행하는 것이 공共(공恭)이고, 세 가지 덕德(황黃‧상裳‧극極)을 양성養成하는 것이 선善이니,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이 괘卦에 해당該當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주역周易≫은 험악險惡한 일을 점치지 않는 것인데 그대는 장차 무슨 일을 하려는 것입니까? 하위下位에 있으면서 공경恭敬하려는 것입니까?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 황黃이고 상체上體가 아름다운 것(재상자在上者의 미덕美德을 뜻함)이 원元이고 하체下體가 아름다운 것(재하자在下者의 미덕美德을 뜻함)이 상裳이니,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지면 효사爻辭처럼 길吉할 수 있지만, 만약[유猶] 이 중에 하나라도 부족不足하다면 점괘占卦가 아무리 길吉하여도 성공成功하지 못합니다.”
장소백臧昭伯이 진晉나라에 갈 때 장회臧會가 보귀 누구寶龜 僂句를 훔쳐 거북점을 치다
傳
소공昭公 25년, 당초에 장소백臧昭伯이 진晉나라에 갈 때 장회臧會가 소백昭伯의 보귀 누구寶龜 僂句를 훔쳐서 성실誠實[신信]하게 행동하는 것이 길吉한지 불성실不誠實[참僭]하게 행동하는 것이 길吉한지에 대해 점占을 치니, 불성실不誠實하게 행동하는 것이 길吉하였다.
장씨臧氏의 가로家老가 소백昭伯에게 문후問候하기 위해 진晉나라로 가려 할 때 장회臧會가 대신 가기를 청하여 진晉나라로 갔다. 소백昭伯이 집안일을 묻자 일일이 다 대답하고, 내자內子와 모제 숙손母弟 叔孫에 대한 물음에 미쳐서는 대답하지 않고 두세 번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소백昭伯이 귀국歸國길에 올라 교외郊外에 당도하였을 때 장회臧會가 나가 영접迎接하였다. 〈소백昭伯이 내자內子와 모제母弟에 대해〉 물으니 또 전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소백昭伯이 성내城內로 들어와 밖에 머물면서 정황情況을 살펴보니 모두 무고無故하였다.
이에 소백昭伯이 장회臧會를 잡아 죽이고자 하니, 장회臧會는 도망하여 후읍郈邑으로 달아났다. 후방가郈魴假가 그를 고정賈正으로 삼았다. 장회臧會가 회계장부會計帳簿를 가지고 계씨季氏의 집으로 가니, 장씨臧氏는 다섯 사람을 시켜 창과 방패를 가지고서 동여桐汝의 이려里閭에 매복埋伏하게 하였다.
장회臧會가 나오자 그를 뒤쫓으니 장회臧會는 도로 계씨季氏의 집으로 도망갔다. 다섯 사람이 그를 뒤쫓아 가서 계씨季氏의 중문中門 밖에서 그를 잡으니, 계평자季平子가 노하여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무기武器를 들고 나의 집 문으로 들어왔느냐?”고 하고서 장씨臧氏의 가로家老를 구류拘留하니,
이 일로 인해 계씨季氏와 장씨臧氏가 서로 미워하였다. 소백昭伯이 소공昭公을 따라 망명亡命함에 미쳐 평자平子가 장회臧會를 장씨臧氏의 승계인承繼人으로 세우니 장회臧會가 말하기를 “누구僂句가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진晉나라 조앙趙鞅이 정鄭나라를 구원救援하는 것에 대하여 거북점을 치다
傳
애공哀公 9년, 진晉나라 조앙趙鞅이 정鄭나라를 구원救援하는 것이 길吉한지에 대해 거북점을 쳐서 물이 불로 간 점괘占卦를 만났다. 조앙趙鞅이 사조史趙, 사묵史墨, 사구史龜에게 이 점을 풀이하게 하니, 사구史龜는 “이것을 일러 ‘양陽이 물에 잠긴 것이라.’ 하니 군대를 출동出動시킬 수 있습니다.
강성姜姓을 치는 것은 유리有利하고 자상子商을 치는 것은 불리不利하니, 제齊나라를 치는 것은 길吉하고 송宋나라를 대적하는 것은 불길不吉합니다.”고 하고, 사묵史墨은 “영盈은 물[강江]의 이름이고 자子는 물의 방위方位입니다.
이름과 방위는 대등하니 서로 침범할 수 없습니다. 염제炎帝가 화사火師였는데 강성姜姓은 그 후손입니다. 물이 불을 이기니 강성姜姓의 나라를 치는 것은 좋습니다.”라고 하고,
사조史趙는 “이것을 일러 ‘내에 물이 가득 찬 것과 같다.’는 것이니 헤엄쳐 건널 수 없습니다. 정鄭나라는 죄가 있으니 구원救援해서는 안 됩니다. 정鄭나라를 구원하는 것은 불길不吉합니다. 그 밖의 것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양호陽虎가 ≪주역周易≫으로 시초점蓍草占을 쳐서 태괘泰卦가 변하여 수괘需卦가 된 괘卦를 만났다. 양호陽虎가 말하기를 “송宋나라가 바야흐로 길吉한 때를 만났으니 그들과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미자계微子啓는 제을帝乙의 원자元子이고 송宋나라와 정鄭나라는 사위와 장인의 나라입니다.
지祉는 복록福祿입니다. 가령 제을帝乙의 원자元子가 누이동생을 시집보내어 길吉한 복록福祿이 있다면 우리가 어찌 길吉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조앙趙鞅은 이에 정鄭나라를 구원하는 일을 중지하였다.
초楚나라가 자량子良에 대하여 거북점을 치고 영윤令尹으로 삼고자 하다
傳
애공哀公 17년, 초楚나라 공손 조公孫 朝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진陳나라를 멸망滅亡시켰다. 초 혜왕楚 惠王이 섭공葉公과 함께 자량子良의 〈이름을 들어 말하지 않고〉 점을 쳐서 영윤令尹으로 삼으려 하자, 침윤 주沈尹 朱가 말하기를 “길吉합니다만 그의 소망所望[지志]은 이보다 큽니다.”라고 하니,
섭공葉公이 말하기를 “왕자王子로서 상국相國이 되고서도 소망이 이보다 크다면 장차 무엇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얼마 뒤에 다시 자국子國이 어떤지 점쳐서 그를 영윤令尹으로 삼았다.
파인巴人이 초楚나라를 침벌侵伐하자 초왕楚王이 점을 쳐서 장수를 뽑으려 하다
傳
애공哀公 18년, 파인巴人이 초楚나라를 침벌侵伐하여 우鄾를 포위하였다. 당초에 〈초왕楚王이〉 자국子國을 우사마右司馬로 삼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거북점을 칠 적에 관첨觀瞻이 말하기를 “〈임금님의〉 지망志望에 부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국子國을 우사마右司馬에 임명하였다.
파군巴軍이 쳐들어올 때에 미쳐 점을 쳐서 장수將帥를 뽑으려 하자, 왕王이 말하기를 “영寧이 나의 지망志望에 부합한다고 하였으니, 다시 점을 칠 게 뭐 있는가?”라고 하고서, 자국子國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가게 하였다. 자국子國이 부수副帥[승承]를 임명하기를 청하자, 왕王이 말하기를 “침윤寢尹과 공윤工尹이 선군先君 때 근로勤勞한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3월에 초楚나라 공손 영公孫 寧과 오유우吳由于‧위고薳固(공윤工尹)가 파군巴軍을 우鄾에서 패배시켰다. 그러므로 석析을 자국子國의 봉읍封邑으로 준 것이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혜왕惠王은 〈사람들의〉 지망志望을 알았도다. 〈하서夏書〉에 ‘복관卜官이 점을 칠 때에는 먼저 뜻을 결정한 뒤에 원귀元龜(대귀大龜)에 명命(고告)한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혜왕惠王의 경우를 이른 듯하다.
옛 기록에 ‘성인聖人은 빈번頻煩하게 거북점과 시초점蓍草占을 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혜왕惠王에게도 그런 점이 있다.”
注
마음을 주제로 논설을 세워,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이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후세 사람들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고 복서卜筮에 탐닉하였기 때문에, 점술占術이 상세할수록 징험이 더욱 엉성하게 되었음을 말하였다.
사물 가운데 조짐이 먼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없다.
注+길흉화복吉凶禍福은 모두 먼저 조짐이 나타나니 미물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주춧돌은 비가 오기 전에 먼저 축축해지고,
注+초礎(주춧돌)는 기둥 아래에 있는 돌이다. 비가 내리기 전에 주춧돌이 먼저 축축해진다는 말이다. 종소리는 날이 개기 전에 먼저 맑아지고,
注+날이 개려고 하면 종소리가 먼저 맑아진다는 말이다. 재는 절기가 되기 전에 먼저 날리고,
注+옛사람은 열두 개의 대통 끝에 갈대 재를 담아 열두 달의 기운을 예측하였다. 달의 기운이 이르면 〈그 달에 맞는 양量의〉 재가 먼저 날았다. 벌레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먼저 숨고,
注+동절기冬節期 추위가 오려 하면 벌레들이 모두 숨는다는 말이다.
개미는 장마가 지기 전에 먼저 개미굴을 옮기며,
注+장마가 지기 전에 비가 내리려 하면 개미가 먼저 개미굴을 옮긴다는 말이다. 솔개는 태풍이 불기 전에 먼저 높이 난다.
注+바람이 불려 하면 솔개가 높이 난다는 말이다. 음양陰陽의 기운이
천지天地 사이에 엉키고 뒤섞여 있는데,
注+천지天地 사이에 오르내리고 날아오르는 것이 모두 음양陰陽의 작용이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일개
미물微物이 먼저 그 조짐을 아는 것이
注+주춧돌‧벌레‧개미 같은 유는 먼저 음기陰氣의 조짐을 보이는 것이고, 종‧재‧솔개 같은 유는 먼저 양기陽氣의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12율律 중에 여섯 개의 양陽을 율律이라 하고 여섯 개의 음陰을 여呂라 하는데, 지금 12율을 전적으로 양이라 하니 그래도 됩니까?” 이에 대하여 답하였다. “율려律呂에는 본래 음양陰陽이 있다. 양陽은 움직이고 음陰은 고요한 것이기는 하나 기氣가 움직이는 입장에서 보면 양陽에 속하는 것이다. 기氣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재가 어떻게 날 수 있겠는가?” 어떤 이가 또 물었다. “어찌하여 바람은 전적으로 양이라 하고, 비는 전적으로 음이라 합니까?” 이에 대하여 답하였다. “양陽이 음陰에 빠져서 나올 수 없으니 음에 매어 비가 된 것이 감괘坎卦의 형상이고, 음陰이 안에 있어 양陽이 들어갈 수 없으니 이리저리 다니며 머무를 수 없어 바람이 된 것이 손괘巽卦의 형상이다. 괘卦로써 말하면 감坎이 양陽이고 손巽이 음陰이며, 기氣로써 말하면 감坎은 음기陰氣가 성盛하고 손巽은 양기陽氣가 성한 것이다.” 마치
병부兵符가 일치하고 열쇠가 들어맞는 것처럼 터럭만치도 어긋나지 아니하니
注+물건이 기미를 드러냄에 음양陰陽의 기운이 응하는 것이 어긋남이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注+그 이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물은 것이다.
천지간에는 하나의 기운이 통하여 함께 유행하여 틈이 없기 때문이다.
注+기류氣類가 서로 감응하여 저절로 그러한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윗글에서는 음양陰陽의 기운이라 하고 여기에서는 하나의 기운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답하였다. “대대對待로 말하면 음양陰陽이 두 가지 기운이지만, 유행流行으로 말하면 음陰이 양陽을 낳고 양陽이 음陰을 낳아, 한 번 숨 쉬는 사이의 〈중단도〉 용납할 틈이 없으니 하나의 기운일 뿐이다. 또한 천지간天地間에는 한 가지 기운만 있을 뿐이니 자라는 것은 양陽이고, 사라지는 것은 음陰이다.” 하찮은 한 사물도 그러한데 하물며 만물의 이치를 몸에 갖추고 있는
성인聖人이겠는가?
注+미물微物에 나아가 성인聖人은 억지로 힘쓰지 아니함을 인용한 말이다. 맹자孟子가 말하였다.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 있다.”
성인聖人은 만물의 이치를 한 몸에 갖추고 있어
상하사방上下四方의 공간과
고금왕래古今往來의 시간 속의
注+천지간天地間을 우주宇宙라 하는데, 상하사방上下四方을 ‘우宇’라 하고, 고왕금래古往今來를 ‘주宙’라 한다. 모이고 흩어지고 참혹하고 편안하며
길흉吉凶과
애락哀樂의 일이 마치 자기 한 몸에 있는 통증이나 가려움증 같아서,
건드리면 즉시 깨닫고 침범하면 즉시 안다.
注+만물이 모두 내 몸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청정淸靜하고
광명光明한 덕이 그 몸에 있어서
注+청명淸明한 기운은 물욕物慾에 어지럽혀지지 않는 것이다. 의지와 정신의 변화가
신神처럼 미묘하기 때문에,
注+이는 내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때를 이른다. 기호嗜好하고
욕구慾求하던 것이 이르려 하면
注+기욕嗜慾은 일에 응하고 만물과 접할 때를 이른다. 반드시 그에 앞서 조짐이 나타난다.
注+천지간의 온갖 사물은 모두 미리 알려주는 조짐이 있다. ≪중용中庸≫에 “지극히 성실한 도는 미리 알 수 있다. 국가가 흥성하려 하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으며, 국가가 망하려 하면 반드시 요망한 재앙이 있는 것이다. 재앙과 복이 이르려 함에 좋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나쁘게 될 것을 미리 안다.”라 하였다. 이는 내 마음이 느껴서 마침내 통한 때이다. ‘청명재궁淸明在躬’ 이하 4구는 ≪예기禮記≫ 〈공자간거孔子間居〉편에 보인다.
위로 하늘을 관찰해보면
注+하늘에서 형상을 이룬다는 말이다. 형혹성熒惑星‧
덕성德星과 같은 조짐과
注+형혹熒惑은 화성火星이고, 덕성德星은 상서로운 별이다. 참창攙搶‧
왕시枉矢 같은 조짐이
注+두 가지는 모두 흉험한 별이름이다. 모두 내 마음이 발현된 것이고,
注+하늘의 형상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래로 땅을 관찰해보면
注+땅에서 형체를 이룬다는 말이다. 예천醴泉‧
서석瑞石과
注+상서祥瑞의 조짐이다. 천비川沸‧
목명木鳴 같은 조짐도
注+재이災異의 조짐이다. 모두 내 마음이 발현된 것이며,
注+땅의 이치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의辭意를 완미하여 점을 치면
注+거북점을 복卜이라 하고, 시초점을 서筮라 한다. 방조方兆‧
공조功兆‧
의조義兆‧
궁조弓兆와
注+이는 거북점을 이른다. ≪주례周禮≫ 〈복사卜師〉에 “〈복사는〉 궤를 열고서 네 부의 점서占書를 꺼내는 일을 맡는데, 첫째는 방조方兆이고, 둘째는 공조功兆이며, 셋째는 의조義兆이고, 넷째는 궁조弓兆이다.”라 하였다. 노양老陽‧
소양少陽‧
기수奇數‧
우수耦數도
注+이는 시초점蓍草占을 이른다. 시초蓍草 49개를 손가락 사이에 걸고 나머지를 세어 구九를 얻으면 이것이 노양老陽이니 효爻에 있어 중重▭이다. 손가락 사이에 걸고 세어 육六을 얻으면 이것이 노음老陰이니 효爻에 있어 교交╳이다. 손가락 사이에 걸고 세어 칠七을 얻으면 이것이 소양少陽이니 효爻에 있어 단單━이다. 손가락 사이에 걸고 세어 팔八을 얻으면 이것이 소음少陰이니 효爻에 있어 탁拆╍이다. 칠七과 구九는 기수奇數이고 육六과 팔八은 우수耦數이다. 내 마음이 발현된 것이다.
注+복서卜筮는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귀갑龜甲을 굽기 전에
注+거북의 가죽을 태워 점을 치는 것이다. 삼조三兆가 이미 갖추어졌고,
注+≪주례周禮≫ 〈태상太上〉에 “〈태상이〉 삼조三兆의 법을 관장하였으니, 첫째는 옥조玉兆이고, 둘째는 와조瓦兆이며, 셋째는 원조原兆이다.”라 하였다. 시초蓍草를 세어보기 전에
注+시초蓍草를 세어 시초점蓍草占을 치는 것이다. 이미
삼역三易이 드러났다.
注+〈출전이〉 위와 같다. ≪주례周禮≫ 〈태상太上〉에 “〈태상이〉 삼역三易의 법을 관장하니, 첫째는 연산連山이고, 둘째는 귀장歸藏이며, 셋째는 주역周易이다.”라 하였다.
귀갑을 굽고
注+이미 거북점을 쳤다는 말이다. 시초를 센 뒤에
注+이미 시초점을 쳤다는 말이다. 점괘가 길한 것은 곧 내 마음이 길한 것이고,
注+조兆는 거북점으로 말한 것이다. 이
역易이 변하는 것은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注+역易은 시초점으로 말한 것이다.
마음으로 묻고 마음으로 답하고, 마음으로 두드리고 마음으로 응수하니, 명색은 거북점이지만 사실은 ‘마음의 거북점’이고, 명색은 시초점이지만 사실은 ‘마음의 시초점’이다.
물속의 하늘이 곧 물위의 하늘이고, 거울 속의 얼굴이 곧 거울 밖의 얼굴이며, 시귀蓍龜의 마음이 곧 성인의 마음이다.
하늘과 하늘이 서로 대하고, 얼굴과 얼굴이 서로 임하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응하여, 융합하고 교통하여 하나가 되어 간격이 없으니
注+성인聖人이 미리 아는 것이 복서卜筮가 미리 아는 것과 부합된다는 말이다. 낡은 귀갑과 썩은 시초줄기를 말할 것이 있겠는가?
注+낡은 껍질은 거북을 말하고 썩은 줄기는 시초를 말하니, 성인은 번거롭게 점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번거롭게 거북점과 시초점을 치지 않는다.”
注+≪예기禮記≫에 나온다. 이글을 인용하여 윗글의 뜻을 결단한 것이다.라 한 것이다.
성인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注+성인의 마음을 밝힌 것이다. 귀갑을 털고 시초줄기를 배열하는 것이 이미 번거로운 것인데,
注+윗글의 ‘번煩’자를 이어 설명하는 것이다. 하물며 좀스럽게
일월日月의 운행을 추산해보고 상황을 짐작해보는 번거로운 일을 하겠는가?
注+이 구절은 본편의 대의大意를 포괄하여, 후세 사람들은 성인聖人의 예지叡智가 없으니 복서卜筮에 있어서 일월日月의 운행을 추산해보고 상황을 짐작하여 요행히 한번 맞추기를 바라는 데에 불과할 뿐임을 기롱한 것이다.
복서卜筮의 이치는
注+복서卜筮는 성인聖人이 만든 것이니 전적으로 폄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래 글에 대략 몇 가지 일을 들어 성인이 복서의 일을 폐지하지 않은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일찍이
순舜임금의 교훈에서 보이는데, 순임금은 “거북점은 거듭 길하지 않다.”
注+≪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편에 보인다. 습習은 거듭이니 거북점괘는 거듭 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역周易≫에 “처음 묻거든 고해주고 두 번 세 번 물으면 번독煩瀆하니, 번독하면 고해주지 않을 것이다.”라 하였다.고만 하였으니, 하나의 ‘
길吉’자 이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注+주의主意를 밝힌 것이다.
또 일찍이
우禹임금의
홍범구주洪範九疇에도 보이는데
注+하늘이 우禹임금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주었다는 말이다. 우임금은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른다.”
注+≪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보인다. 종從은 길함을 이른다.고만 하였으니, 하나의 ‘
종從’자 이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注+주의主意를 밝힌 것이다.
또 일찍이
무왕武王의 맹세에도 보이는데 무왕은 “짐의 꿈이 짐의 거북점과 합치된다.”
注+≪서경書經≫ 〈태서泰誓〉편에 보인다. 거북점을 쳐서 길함을 얻었는데 꿈과 서로 합치된다는 말이다.고만 하였으니, 하나의 ‘
협協’자 이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注+주의를 밝힌 것이다.
또 일찍이
주공周公의
낙고洛誥에도 보이는데 주공은 “
간수澗水 동쪽과
전수瀍水 서쪽을 점쳐보니 오직
낙읍洛邑을 먹었다.”
注+≪서경書經≫ 〈낙고洛誥〉편에 보인다. 주공周公이 거북점을 쳐서 낙읍洛邑에 도읍을 세웠다. 그 지역이 간수澗水와 전수瀍水 사이에 해당한다. ‘유락식惟洛食’은 길한 거북점을 얻어 낙읍을 만나게 되었음을 말한다. 식食은 〈거북껍질을 태운〉 조짐이 을 먹은 것을 이른다.고만 하였으니, 하나의 ‘
식食’자 이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注+주의主意를 밝힌 것이다. ○윗글 네 개의 ‘무타어無他語’는 모두 성인聖人이 일월日月의 운행을 추구하거나 상황을 짐작하는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음을 말하였으니 후세 사람들과는 같지 않다는 말이다.
후세에 이르러 비로소 마음 밖에서
길흉吉凶을 구하여,
注+후세 사람들의 복서卜筮를 전환하여 말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일을 폄하한 것이다. 마음으로 의심할수록 점괘가 더욱 천착하였고, 점괘가 천착할수록 징험은 더욱 엉성해져 맞는 확률이 적었다.
注+말이 천착되고 징험이 엉성한 것은 모두 마음 밖에서 길흉을 구하니 마음에서 저절로 의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자
악관樂官과
사관史官의 습성이 보태지고,
注+고瞽는 눈이 없는 자이고, 부附는 모은다는 말이다. 무당과 박수무당의 망령됨이 섞이게 되니,
注+격覡의 독음은 ‘격’이다. ○여자무당을 무巫라 하고, 남자 무당을 격覡이라 한다. 천 갈래 백 갈래 길처럼 많은 방법 중에서
注+사태를 추산하고 상황을 짐작하는 점술占術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하나라도 적중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注+미래를 점친 길흉이 혹 징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음에서 잃어버리고 밖의 일에서 찾으려 하니,
注+병폐는 바로 여기에 있음을 이른다. 마음은 수고로우나 나날이 졸렬함을 드러낼 뿐이다.
注+말이 천착되기 때문에 수고롭고, 징험이 엉성하기 때문에 졸렬한 것이다.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실린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注+본편의 출처에 그 조목이 매우 많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실린
복서卜筮의 일은 교묘하게 들추어내고 신기하게 들어맞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눈을 놀라게 하였으니,
注+어떤 이가 반론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복서卜筮의 일은 때로는 수십 년 전에 길흉吉凶을 미리 말하여 그 대답이 교묘한 말로 기이하게 일에 적중하였으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한다고 말할 만한데, 어찌하여 성글다고 하는지’를 가설한 것이다. 그 들어맞은 것이 이와 같은데, 엉성하여 맞는 확률이 적었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춘추좌씨전≫은
은공隱公으로부터
애공哀公에 이르기까지 242년간의 기록이다.
注+≪춘추春秋≫는 노 은공魯 隱公에서 시작하여 애공哀公에서 마치니 모두 242년간의 일이라는 말이다.
〈그 사이에〉
천자天子‧
제후諸侯‧
경卿‧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이 복서의 일에서
길흉吉凶을 구한 것이 대략 계산해보아도 오히려 수만 건일 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좌씨左氏가 책에 징험을 수록한 것은 겨우 수십 가지일 뿐이다.
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수록된 복서卜筮의 징험은 수십 가지 일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다.
이 수십 가지의 일을 좌씨의 책에 모아놓으면 많아 보이나, 242년간에 흩어놓으면 드물고 쓸쓸하여 어떤 때는 전혀 없다가 겨우 있는 정도이다.
注+이 말은 합리적이어서 매우 참신하다.
허탄하고 징험되지 못하여 당시에 전해지지 않고 책에도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말하자면,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수만 가지는 될 것이다.
注+좌씨左氏가 242년 동안에 징험된 것만 취하여 수록한 것이니, 징험되지 않은 것이 분명 많을 것이로되 이것은 모두 수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일들이 존재하는 것을 이무위유以無爲有(없는 일을 있다고 함)라 하였으니, 작문作文에 있어 가장 뛰어난 곳이다. 그러니 어찌 엉성하여 맞는 확률이 적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실린 것 가운데 비교적 좀 나은 것이 있다.
注+조금이나마 이치에 가까운 것을 이른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그중에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것은 있다.”고 하였다. 예컨대
목강穆姜‧
순앵荀罃‧
자복혜백子服惠伯 등의 점은
注+대략 이 세 가지 일을 취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피선어차彼善於此’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사리事理에 가깝다.
注+거의 이치에 가깝다는 말이다.
○목강穆姜은 노 선공魯 宣公의 부인이다. 숙손교여叔孫僑如와 간음하여 성공成公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동궁東宮으로 추방되었다. 〈목강穆姜이〉 처음 동궁東宮에 갔을 때 시초점蓍草占을 치니 간괘艮卦가 수괘隨卦로 간 괘를 만났다. 복사卜史가 목강을 기쁘게 하고자 하여 함부로 말하기를 “수隨는 나가는 뜻이니, 소군小君께서는 반드시 빨리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목강穆姜이 대답하기를 “나갈 수 없을 것이다.”라 하고, ≪주역周易≫에 “수隨는 원元‧형亨‧이利‧정貞하니 화禍가 없을 것이다.”라고 한 뜻을 일일이 열거하고, 인하여 자신은 음란하니 이 괘의 뜻에 맞기에 부족함을 말하면서, “반드시 여기서 죽을 것이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목강의 의론이니 이치에 가깝다.
○순앵荀罃은 진晉나라 대부로 진 도공晉 悼公을 따라 송宋나라에 있었다. 송공宋公이 진후晉侯를 위해 연향宴享을 베풀 적에 상림악桑林樂을 쓰고자 하니 순앵荀罃이 사양하였다. 그러나 송공宋公이 받아들이지 않고 마침내 상림악을 연주하게 하니 진후晉侯가 이로 인해 병이 났다. 이 일을 점치자 “상림신桑林神이 나타났습니다.”라 하니, 순언荀偃과 사개士匄가 송宋나라에 가서 기도할 것을 청하였다. 순앵荀罃이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우리가 예를 사양하였거늘 저들이 연주한 것이니, 가령 상림신이 있어서 귀신이 나타난 것이라면 우리에게 화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진후晉侯의 병病이 나았다. 이것이 순앵荀罃의 의론이니 이치에 가깝다.
○자복혜백子服惠伯은 노魯나라 대부이다. 계평자季平子의 가신家臣인 남괴南蒯가 계씨季氏를 배반하고자 하여 시초점을 쳐서 곤괘坤卦가 비괘比卦로 간 괘를 만났다. 그 효사爻辭에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 하니 남괴南蒯가 크게 길하다고 여기고 이것을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보였다. 혜백惠伯이 말하기를 “〈점을 치고자 하는 일이〉 충신忠信의 일이라면 점괘대로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그르칠 것입니다.” 하고, 또 황黃‧상裳‧원元‧길吉과 삼덕三德의 뜻을 풀어주었다. 이것이 혜백惠伯의 의론이니 이치에 가깝다.
이들의
복서卜筮를 조금이라도
성인聖人의 복서에 비교해 논할 수는 없으나,
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실려있는 순舜‧우禹‧무왕武王‧주공周公의 일과는 진실로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자기 마음의 편안함을 믿고
고사瞽史의 말에 흔들리지 않은
注+예컨대 목강穆姜은 〈동궁東宮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고, 순앵荀罃은 상림桑林에 기도하지 않았으며, 혜백惠伯은 충신忠信의 일이라야만 이 점괘대로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음을 이른다. 점은 성인의 복서에 가깝다고 하겠다.
注+성인聖人의 복서卜筮와 비슷하다는 말이다.
고사瞽史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진정으로
시귀蓍龜를 믿은 것이지만,
注+내 마음의 시초점과 거북점을 믿는다는 말이다. 이 마음 밖에 어찌 다시 ‘
시귀蓍龜’란 것이 있겠는가?
注+결론적으로 이 글의 주의主意에 조응照應한다.
아,
상림신桑林神이 나타났다는 것은 허망한 말이고,
注+윗글 순앵荀罃의 주석에 보인다. 상림신桑林神이 어떻게 복서卜筮에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상림신이 나타난 것이 허망한 말이라고 한 것이다. 누구僂佝가 감응했다는 것은 참람한 말이며,
注+누구僂佝는 거북 이름이다. 이전에 장회臧會가 장씨臧氏의 보귀寶龜인 누구僂佝를 훔쳐 ‘성실함[신信]과 불성실함[참僭] 가운데 어느 것이 길한지’를 점쳤다. 점괘에 배신[참僭]하는 것이 길하다고 하였다. 그 뒤 노 소공魯 昭公이 출분出奔하자 장소백臧昭伯이 따라갔는데, 장회臧會가 과연 변심과 속임수로 장씨臧氏의 뒤를 이어 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참람하다고 결단한 것이다. 대태臺駘와
실침實沈이 병의 빌미가 되었다는 것은 요망한 말이다.
注+실침實沈은 고신씨高辛氏의 아들로 죽어서 삼성參星의 신이 되었고, 대태臺駘는 금천씨金天氏의 후예로 죽어 분천汾川의 신이 되었다. 진 평공晉 平公이 병이 들자 복자卜者가 “실침實沈과 대태臺駘가 병의 빌미입니다.”라 하였다, 진인晉人이 그것이 무슨 신인지 알지 못하여 자산子産에게 물었다. 자산子産은 두 신神이 신이 되기까지의 자초지종을 일일이 말해주고, 또 두 신神이 진晉나라 임금 병의 빌미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에 요망하다고 결단한 것이다. 저
시귀蓍龜 안에 어찌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가?
注+어찌 〈시초점과 거북점 안에〉 망령되고 참람하고 요망한 일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허망한 자가 허망을 보는 것이고,
注+내 마음이 스스로 망령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망령되었다는 말이다. 참람한 자가 참람을 보는 것이며,
注+내 마음이 스스로 참람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참람하다는 말이다. 요망한 자가 요망을 보는 것이니,
注+내 마음이 스스로 요망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요망하다는 말이다. 모두 마음이 저절로 발현한 것일 뿐이다.
注+‘심心’자는 본편의 혈맥血脈이다. 시종일관 이 글자가 관통하고 있다.
시귀蓍龜는 마음의 그림자이니,
注+시초점과 거북점은 사람에게 있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으니, 마음에 이런 생각이 있으면 곧 시초점과 거북점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작고 크고 길고 짧은 것이
注+수修는 길다는 뜻이다. 모두 자기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注+형체가 이와 같다면 그림자도 이와 같다는 말이다. 곱사의 그림자가 구부정하고 절름발이의 그림자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注+구傴는 굽은 것이고, 벽躄은 절뚝거리는 것이다. 형체가 굽은 자는 그림자도 굽고, 형체가 절뚝이는 자는 그림자도 기운다는 말이다. 어찌 그림자의 죄이겠는가?
注+형체가 실제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망령되고 참람하고 요망한 것이 어찌 시초점과 거북점의 죄이겠느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