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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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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1 穆伯取己氏
【左傳】 文七年이라 하다 戴己卒 하다 莒人以聲己辭하니 하다
徐伐莒하니 하다 穆伯如莒涖盟하고 且爲仲逆하다 하야 登城見之하니어늘 自爲娶之하다
仲請攻之하니 公將許之하다 曰 臣聞之하니 兵作於內爲亂이요 於外爲寇 寇猶及人이어니와 亂自及也라하니이다 今臣作亂이어늘 而君不禁하야 하시니 若之何잇가 公止之하다
惠伯成之하야 하고 公孫敖反之하야 復爲兄弟如初하니 從之하다
18-04-02 穆伯以幣奔莒
【左傳】 文八年이라 穆伯如周弔喪이라가 不至하고 以幣奔莒하야 하다
18-04-03 穆伯歸魯復適莒
【左傳】 文十四年이라 하다 穆伯生二子於莒하고 而求復이어늘 文伯以爲請하니 襄仲使無朝聽命하다
이러니 年而以復適莒하다
文伯疾 而請曰 하니 하소서 許之하다 文伯卒커늘 立惠叔하다
이어늘 惠叔以爲請한대 許之하다
將來라가 卒于齊하다 告喪하고 한대 弗許하다
18-04-04 齊人歸公孫喪 聲己不視
【左傳】 文十五年이라 曰 魯 爾親也 魯必取之리라 從之하다 卞人以告한대
하다 한대 惠伯曰 喪 親之終也 雖不能始 善終可也
史佚有言曰 兄弟致美하야 救乏賀善弔災하고 하야 情雖不同이나 라하니 子無失道 何怨於人
襄仲說하야 帥兄弟以哭之하다
【主意】 兄弟之属 天也 非較怨之地也 人知襄仲之於穆伯 昔怨而今解 而不知胷中之天則無怨無人也 不然이면 雖有叔仲惠伯이라도 豈能解其怨於立談之間哉
問修怨於君子 必以爲非注+問修怨於君子 必以爲非:此言君子忘怨 問修怨於小人이면 必以爲是注+問修怨於小人 必以爲是:此言小人報怨라하니 二者皆未爲定論也注+二者皆未爲定論也:斷二者皆非確然之論
專於報怨者 商鞅氏之徒耳 范雎氏之徒耳注+專於報怨者……范雎氏之徒耳:商鞅范雎戰國之佐 專以報怨爲事 格之以聖人之門이면 在所擯也 專於忘怨者 老聃氏之徒耳 莊周氏之徒耳注+專於忘怨者……莊周氏之徒耳:老聃莊周漬虛之說 專以忘怨爲論 格之以聖人之言이면 亦在所擯也
吾聖人之門 未嘗修怨注+吾聖人之門 未嘗修怨:與鞅雎異하고 未嘗不修怨注+未嘗不修怨:與老莊異이요 權其小大輕重而中持衡焉注+權其小大輕重而中持衡焉:聖人處事 如權衡之稱物焉 怨之小者輕者可忘 而怨之大者重者不可忘也 謂如身之私怨 固可忘 若有君父之怨 則不可矣이라 小者忘之하고 大者報之하며 輕者忘之하고 重者報之 未嘗倚一偏而主一說也注+未嘗倚一偏而主一說也:一偏之說 如報怨忘怨之謂 此已上未是主意
穆伯爲襄仲聘婦于莒注+穆伯爲襄仲聘婦于莒:入事 詳見本題出處 中道而奪之注+中道而奪之:見其美而自娶之하니 夫豈細怨也哉注+夫豈細怨也哉:妻爲人所奪 安得而不怨리오 而惠伯區區其間하야 委曲調護注+委曲調護:叔仲惠伯 調停一人之怨하야 始則釋其憾注+始則釋其憾:復爲兄弟如初하고 終則全其恩注+終則全其恩:帥兄弟以哭之하니라
彼非不知輕重小大之所在也注+彼非不知輕重小大之所在也:應前權其小大輕重 彼 謂惠伯 盖穆伯之於襄仲 兄弟也注+盖穆伯之於襄仲 兄弟也:公孫敖與公子遂 爲仍從兄弟ㄹ새니라 怨之小大 在他人可言耳注+怨之小大 在他人可言耳:說破起頭意 兄弟之間 非較小大之地也 怨之輕重 在他人可言耳 兄弟之間 非較輕重之地也注+兄弟之間……非較輕重之地也:兄弟無藏怒無宿怨 非可以此爲怨也 至此方是主意
合以人者 有時而離注+合以人者 有時而離:如交遊知友之類 合以天者 無時而離注+合以天者 無時而離:如父子兄弟之類 兄弟之屬 天也注+兄弟之屬 天也:以天合矣 人怨不足以害之注+人怨不足以害之:天倫之愛 非怨可害니라
襄仲之怨穆伯 以人觀之注+襄仲之怨穆伯 以人觀之:自人情觀之 則固大矣 重矣注+則固大矣 重矣:大則不小 重則不輕 以天視之注+以天視之:自天理視之 則兄弟之親 與生俱生而不可離注+則兄弟之親 與生俱生而不可離:天合之心 豈較輕重小大之地 豈以恩而加하고 豈以怨而損哉注+豈以恩而加 豈以怨而損哉:不爲恩而加 不爲怨而損리오
雨暘變於前이나 太虛之眞體未嘗動也注+雨暘變於前 太虛之眞體未嘗動也:譬之太虛 不爲雨暘而變其眞體也 恩怨交於前이나 兄弟之眞情未嘗動也注+兄弟之眞情未嘗動也:亦猶兄弟不爲恩怨而移其眞情 曰雨曰暘이나 而眞體之中 本不知有雨暘이요 自恩自怨이나 而眞情之中 本不知有思怨이라
襄仲向者之怨 私情之怨耳注+襄仲向者之怨 私情之怨耳:以私情而蔽其天也 今者之解 私情之解耳注+今者之解 私情之解耳:解私情而還其天也 乃若胷中之天 則向無怨而今無解也注+乃若胷中之天 則向無怨而今無解也:兄弟之天 不以怨而無 不以解而有 不然注+不然:若胷中素無此天理이면 則豈惠伯立談之頃 所能回耶注+則豈惠伯立談之頃 所能回耶:惠伯雖善調護 豈能解其怨乎리오
焚廪捐階之虐注+焚廪捐階之虐:引舜事證 孟子 萬章曰 父母使舜完廩捐階 瞽瞍焚廪 捐 棄也 階 梯也 治棲入宮之侮注+治棲入宮之侮:同上 象曰 二嫂使治朕捿 象往入舜宮 百世之後 讀其書者 猶爲舜切齒注+百世之後……猶爲舜切齒:舜弟象日以殺舜爲事 且入宮而取其室 悖逆如此 後世讀其書者 無不代舜切齒而怨之어늘
而舜之恩意 源源不絶者注+而舜之恩意 源源不絶者:舜不惟 怨象之心 且封之有痺 以富貴之 又欲常常而見之 故源源而來 非以德而報怨也注+非以德而報怨也:以德報怨 出論語 引此以言兄弟之間 無怨可報 以弟待象이요 而不以象待象也注+以弟待象 而不以象待象也:舜知愛弟而已 不知象之害已 以天觀象이요 而不以人觀象也注+以天觀象 而不以人觀象也:舜知天屬之愛 不知象之人僞 盖鬱陶而思舜者注+盖鬱陶而思舜者:孟子 象曰鬱陶思君爾 忸怩 乃象之天注+乃象之天:思其兄者 象之天理이요 彼傲而害舜者注+彼傲而害舜者:書堯典曰象傲 特象之人耳注+特象之人耳:害其兄者 象之人僞 舜之胷中純乎天注+舜之胷中純乎天:聖人之心 純乎天理이라 故見象之天而不見象之人也注+故見象之天而不見象之人也:所以以天觀象 而不以人觀象
使惠伯立於舜之朝注+使惠伯立於舜之朝:假設如此 將化於舜之天而不自知矣注+將化於舜之天而不自知矣:自然與舜相忘於天理之中 雖有喙三尺注+雖有喙三尺:莊子云 丘願有喙三尺이라도 焉攸用注+焉攸用:假使惠伯有三尺之喙 善爲辭說 何能復措一辭乎이리오


목백穆伯기씨己氏를 아내로 맞이하다
문공文公 7년, 목백穆伯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그 아내의 이름이 대기戴己이다. 대기戴己문백文伯을 낳고 그의 동생 성기聲己혜숙惠叔을 낳았다. 대기戴己가 죽자 목백穆伯이 또 나라에 행빙行聘하니 거인莒人성기聲己가 있다는 이유로 사절하였다. 그러자 목백穆伯양중襄仲을 위해 행빙行聘하였다.
겨울에 나라가 나라를 토벌하니 거인莒人나라에 와서 결맹結盟을 요청하였다. 목백穆伯나라로 가서 결맹에 참가하고서 양중襄仲을 위해 여자를 맞이해왔다. 언릉鄢陵에 당도하여 에 올라 그 여자를 바라보니 미인美人이므로 그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였다.
양중襄仲목백穆伯을 공격하기 위해 문공文公에게 허락을 요청하니 문공文公이 허락하려 하였다. 그러자 숙중혜백叔仲惠伯하기를 “이 듣건대 병란兵亂내부內部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라 하고 외부外部에서 일어나는 것을 ‘’라고 하는데 외구外寇가 사람들에게 미치지만 내란內亂은 화가 스스로에게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하가 내란을 일으키려 하는데 께서 금하지 않으시어 외구가 침입할 마음을 내도록 인도하시니 〈만약 외구가 쳐들어온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문공文公양중襄仲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혜백惠伯이 두 사람을 화해시켜 양중襄仲은 그 여자를 포기하고 공손오公孫敖는 그 여자를 나라로 돌려보내고서 다시 형제가 옛날처럼 지내도록 권하니 두 사람은 모두 그의 말을 따랐다.
목백穆伯예물禮物을 가지고 나라로 도망가다
문공文公 8년, 목백穆伯조상弔喪하기 위해 나라에 가다가 경사京師로 가지 않고, 가지고 간 예물禮物을 가지고 나라로 도망하여 기씨己氏를 찾아갔다.
목백穆伯나라로 돌아왔다가 다시 나라로 가다
문공文公 14년, 목백穆伯(공손오公孫敖)이 기씨己氏를 찾아 나라로 간 뒤에 노인魯人문백文伯목백穆伯후계자後繼者로 세웠다. 목백穆伯나라에서 아들 둘을 낳은 뒤에 나라로 돌아오기를 요구하자 문백文伯이 〈목백穆伯을 위해 나라 조정에〉 청원請願하니, 양중襄仲이 그가 돌아온 뒤에 조정朝廷에 나와 정사政事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목백穆伯이 돌아온 뒤에 외출하지 않더니 2년 뒤에 전 재산을 다 가지고 다시 나라로 갔다.
문백文伯이 병이 들자 문공文公에게 청하기를 “의 자식은 어리니 의 아우 를 후계자로 세워주소서.”라고 하니, 문공文公이 허락하였다. 문백文伯이 죽자 혜숙惠叔후사後嗣로 세웠다.
얼마 뒤에 목백穆伯나라에 많은 재물財物를 바치고서 귀국을 허락해달라고 청하였다. 혜숙惠叔이 〈그를 위해〉 청하니 문공文公이 허락하였다.
돌아오다가 나라에서 하였다. 나라에 을 고하고 귀장歸葬하기를 청하였는데 허락하지 않았다.
제인齊人공손오公孫敖상구喪柩를 돌려보냈으나 성기聲己가 그 상구를 보지 않다
문공文公 15년, 나라의 어떤 사람이 맹씨孟氏를 위해 계책을 내어 말하기를 “나라는 저 사람의 친속親屬이니 을 장식하여 당부堂阜에 갖다 두면 나라에서 반드시 가져갈 것이다.”고 하였다. 이 말을 따라 그대로 하니 변인卞人이 이 일을 혜숙惠叔에게 알렸다.
혜숙惠叔은 〈목백穆伯이 죽은 지 이미 8~9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애훼哀毁한 모습으로 귀장歸葬을 청하면서 조정朝廷에 서서 임금의 명을 기다렸다. 문공文公이 귀장을 허락하니 〈혜백惠伯목백穆伯을〉 가져다가 하였다.
제인齊人상구喪柩를 전송하였기 때문에 에 “제인齊人공손오公孫敖의 상구을 돌려보냈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목백穆伯맹씨孟氏조부祖父이고 또 나라의 공족公族이기 때문이다. 장례葬禮공중共仲를 따랐다.
성기聲己는 〈목백穆伯의 상구를〉 보지 않으려고 에 휘장을 치고서 하였다. 양중襄仲하려 하지 않자, 혜백惠伯이 말하였다. “상례喪禮친족親族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의식儀式이니 비록 생시生時[]에는 잘 지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일은 잘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일史佚의 말에 ‘형제 사이에는 아름다운 우애友愛를 다하여 궁핍窮乏을 구제하고 좋은 일을 축하하고 재난災難을 위로하며 제사를 공경하고 상사喪事를 애도하여, 비록 이 화목[]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우애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 친족의 도리이다.’고 하니, 당신께서 도리를 잃지 않으면 그만이지 남을 원망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양중襄仲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형제들을 거느리고 가서 하였다.
형제兄弟천생天生으로 결합된 존재이니 서로 다투거나 원망할 자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양중襄仲목백穆伯에 대한 지난날의 원한이 지금 풀린 줄로만 알고, 가슴속의 하늘(마음)에는 원한도 없고 (미상未詳)도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비록 숙중혜백叔仲惠伯의 화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그 원한을 잠시 동안의 담설談說로 풀어버릴 수 있었겠는가?
군자君子에게 원한을 갚음에 대해 물으면 반드시 옳지 않다고 하고,注+이것은 君子는 원한을 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소인에게 원한을 갚음에 대해 물으면 반드시 옳다고 한다.注+이것은 小人은 원한을 갚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말은 모두 정론定論이 될 수 없다.注+이 두 가지는 모두 확정된 논의가 아니라고 단정한 것이다.
오로지 원한을 갚기를 주장하는 자는 상앙商鞅범저范雎의 무리이니,注+商鞅과 范雎는 戰國時代의 보좌로 오로지 원한을 갚기만을 일삼았다. 이들을 성인聖人 문하門下의 〈로써〉 헤아려보면[] 반드시 내쳐야 할 대상이고, 오로지 원한을 잊을 것을 주장하는 자는 노담老聃장주莊周의 무리이니,注+老聃과 莊周는 淸靜虛無의 說로 오로지 원한을 잊기만을 논하였다. 이들을 성인의 말씀으로 헤아려보면 또한 반드시 내쳐야 할 대상이다.
우리 성인의 문하에서는 원한 갚기를 강조한 적이 없고,注+商鞅․范雎의 경우와 다르다. 원한 갚지 말기를 강조한 적도 없었으며,注+老子․莊子의 경우와 다르다. 오직 일의 대소大小경중輕重을 헤아려 알맞게 처리하였을 뿐이다.注+聖人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마치 저울로 물건을 다는 것과 같으니, 작고 가벼운 원한은 잊어야 하지만 크고 무거운 원한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一身의 사사로운 원한은 실로 잊어야 하지만 君父의 원한이라면 잊어서는 안 된다. 작은 원한은 잊고 큰 원한은 갚았으며, 가벼운 원한은 잊고 무거운 원한은 갚았고, 한 쪽에 치우치거나 일방의 말만을 주장하지 않았다.注+한 쪽의 말이란 원한을 갚고 원한을 잊는 따위를 이른다. 이 이상은 이 글의 主意가 아니다.
목백穆伯양중襄仲을 위해 나라로 가서 빙례聘禮를 거행하고서注+〈여기부터 본편의〉 일로 들어간다. 本題의 出處에 자세히 보인다.양중襄仲의 아내 될 여인을 데리고 돌아오다가 그 여인의 미색美色에 반하여〉 중도中途에서 그 여인을 가로채 자기의 여자로 만들었으니,注+그 여인이 美女인 것을 보고서 자기의 아내로 삼은 것이다. 〈아내를 빼앗긴 양중襄仲에게는〉 이 일이 어찌 작은 원한이었겠는가?注+자기 아내가 될 여인을 남에게 빼앗겼으니 어찌 원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혜백惠伯이 중간에서 마음을 다해 완곡한 말로 화해시켜,注+叔仲惠伯이 한 사람의 원한을 조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양중襄仲의 원한을 풀게 하고注+다시 兄弟가 처음(과거)처럼 〈사이좋게 지내게〉 된 것이다. 뒤에는 형제간의 은정恩情을 보전하게 하였다.注+형제를 거느리고 가서 哭한 것이다.
혜백惠伯경중輕重대소大小의 소재를 모르지 않았지만,注+앞의 “그 小大와 輕重을 헤아린다.”고 한 것에 호응한 것이다. 彼는 惠伯을 이른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은 것은〉 목백穆伯양중襄仲형제兄弟이기 때문이다.注+公孫敖와 公子 遂는 여전히 從兄弟로 잘 지냈다. 원한의 대소를 다른 사람은 말할 수 있으나注+첫머리의 뜻을 설파한 것이다. 형제는 원한의 대소를 따질 자리가 아니며, 원한의 경중을 다른 사람은 말할 수 있으나 형제는 원한의 경중을 따질 자리가 아니다.注+兄弟 사이는 분노를 간직함이 없고 원한을 묵힘이 없으니, 이로써 원한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主意를 말하였다.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맺은 관계[人合]는 사이가 벌어질 때가 있지만,注+交遊하는 知友(서로 마음을 아는 벗) 같은 부류이다. 천생天生으로 결합된 관계[천합天合]는 벌어지는 때가 없다.注+父子나 兄弟 같은 부류이다. 형제는 천합天合이니注+〈父母와 兄弟는〉 하늘이 맺어준 사이이다. 인합人合의 원한이 해칠 수 없다.注+天倫 사이의 恩愛는 원한이 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백穆伯에 대한 양중襄仲의 원한을 사람들의 감정으로 보면注+人情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참으로 중대하지만注+크면 작지 않고 무거우면 가볍지 않다. 천리天理로 보면注+天理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형제간의 친정親情출생出生과 함께 생겨나서 벌어질 수 없는 것이니,注+‘하늘이 맺어준 〈형제의〉 마음이 어찌 輕重과 小大로 따질 처지인가?’의 뜻이다. 어찌 은혜로 인해 더 많아지거나 원한으로 인해 더 줄어들겠는가?注+恩愛한다 하여 〈情이〉 더 많아지지도 않고, 怨恨한다 하여 〈정이〉 더 줄어들지도 않는다.
비가 내리거나 날이 개는 날씨는 수시로 변하지만 태허太虛[우주宇宙]의 본체는 변동함이 없듯이注+비유하면 太虛(우주)가 비가 오거나 날이 갬으로 인해 그 본체가 변화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의 은혜와 원한도 수시로 발생하지만 형제의 친정親情은 변동함이 없다.注+兄弟도 恩怨으로 인해 그 진정이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날씨는 비록〉 비가 올 때도 있고 갤 때도 있으나 우주의 본체 속에는 본래 비가 오고 갬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듯이, 사람에게는 은혜도 있고 원한도 있으나 형제의 친정親情 속에는 본래 은혜와 원한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양중襄仲의 지난날의 원한은 사정私情의 원한이고注+私情이 그 天性을 가렸기 때문이다. 오늘의 화해는 사정私情의 화해일 뿐이다.注+사사로운 감정을 해제하고 天性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가슴속의 천성天性으로 말하면 지난날의 원한도 없고 오늘의 화해도 없다.注+兄弟 사이의 天生의 親情은 원한으로 인해 없어지지도 않고, 화해로 인해 생기지도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注+‘만약 가슴속에 본래 이러한 天理가 없었다면’의 뜻이다.양중襄仲목백穆伯 사이의 원한을〉 어찌 혜백惠伯이 잠시 동안의 담설談說로 만회할 수 있었겠는가?注+‘惠伯이 아무리 잘 調護했더라도 어찌 그 원한을 解除할 수 있었겠는가?’의 뜻이다.
창고에 불을 지르고서 사다리를 치운 고수瞽叟악행惡行注+舜의 일을 이끌어 증거로 삼은 것이다. ≪孟子≫에 萬章이 말하기를 “舜의 父母 瞽瞍가 舜에게 창고를 수선하게 하고는 순이 창고 지붕으로 올라가자, 瞽瞍가 사다리를 치워버리고서 창고에 불을 놓았다.”고 하였다. 捐은 버림이고, 階는 사다리이다. 두 형수로 하여금 자신의 잠자리에 시중을 들게 하겠다고 하고서 침실寢室로 들어간 의 모욕적인 행위는注+≪孟子≫에 〈舜의 아우〉 象이 말하기를 “두 형수는 나의 잠자리를 돌보게 할 것이다.”라고 하고서 舜의 집으로 가서 그 寢室[宮]로 들어갔다. 백세百世 뒤에 그 기록을 읽는 자도 오히려 을 위하여 〈대신〉 이를 간다.注+舜의 아우 象은 날마다 舜을 살해하기를 일삼았고, 또 舜의 집으로 가서 그 아내를 취하려 하였다. 悖逆스러움이 이와 같으므로 후세에 그 기록을 읽는 자 중에는 舜을 대신해 이를 갈면서 원한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은정恩情을 끊임없이 이어간 것은,注+舜은 象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를 有痺에 封하여 부유하고 존귀하게 만들어주고, 또 항상 보고 싶어 하였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오게 한 것이다. 으로써 원한을 갚은 것이 아니라注+德으로써 원한을 갚는다는 말은 ≪論語≫에 나오는데, 이 말을 인용하여 형제 사이에는 보복할 원한이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을 아우로 대우하고 이 한 짓으로 을 대우하지 않은 것이며,注+舜은 아우를 사랑할 줄만 알았을 뿐이고, 象이 자기를 해코지하는 줄을 몰랐다. 천합天合으로 보고 인합人合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注+舜은 天屬의 사랑만을 알았고, 象의 人僞는 알지 못하였다. 〈그리워 마음이〉 우울하여 이 생각났다고 한 것은注+≪孟子≫에 “象이 ‘형님이 그리워 마음이 우울했습니다.’라고 하고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라고 하였다. 바로 천성天性이고,注+그 형을 그리워한 것은 象의 天理이다. 오만하게 을 해코지 한 것은注+≪尙書≫ 〈堯典〉에 “象이 오만하였다.”고 하였다. 인욕人欲일 뿐이다.注+그 형을 해코지한 것은 象의 人僞이다. 의 가슴속에는 순전한 천리뿐이었기 때문에注+聖人의 마음은 純全한 천리뿐이다. 의 천성만을 보고 의 인욕을 보지 않은 것이다.注+그러므로 天理로써 象을 보았고, 人僞로써 象을 보지 않았다.
가령 혜백惠伯의 조정에 벼슬하였다면注+이 같은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아마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 천성에 감화되었을 것이니,注+자연히 舜과 함께 天理 가운데서 서로 잊게 될 것이다. 비록 뛰어난 말재주가 있다 해도注+≪莊子≫에 “孔丘는 3尺의 부리(뛰어난 말재주)를 갖기를 원했다.”고 하였다. 어디에 쓰겠는가.注+‘가령 惠伯이 3尺의 부리를 가져 말을 잘했다 하더라도 어찌 다시 한 마디인들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帝舜圖帝舜圖


역주
역주1 : 穆伯은 公孫敖이다. 文伯은 穀이고 惠叔은 難이다.〈杜注〉 己는 莒나라의 氏이다.〈附注〉
역주2 : 聘은 婚姻을 청한 남자 집에서 여자의 집으로 禮物을 보내는 것인데, 이를 行聘 또는 下聘이라 한다.
역주3 : 襄仲은 公孫敖의 從父昆弟(四寸兄弟)이다.〈杜注〉
역주4 : 토벌을 당하였기 때문에 結盟해 구원을 받고자 한 것이다.〈杜注〉
역주5 : 鄢陵은 莒나라의 邑이다.〈杜注〉
역주6 : 惠伯은 叔牙의 손자이다.〈杜注〉
역주7 : 魯나라에 內亂이 일어나면 장차 寇讐가 침입할 마음을 먹게 된다는 말이다.〈附注〉
역주8 : 그 여자를 버리고 아내로 맞이하지 않는 것이다.〈杜注〉
역주9 : 己氏는 莒女이다.〈杜注〉
역주10 : 文公 8년에 있었다.〈杜注〉
역주11 : 文伯은 穆伯의 아들 穀이다.〈杜注〉
역주12 : 그를 政事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끝까지 집에서만 생활(寢食)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出入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杜注〉 穆伯은 귀국하는 일이 급하여 朝廷에 나오지 말라는 襄仲의 말을 허락하였기 때문에 돌아온 뒤에 출입하지 않고 끝내 집안에서만 생활한 것이다.〈附注〉
역주13 : 저본에는 ‘三’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14 : 집안의 재물을 다 싸 가지고 가는 것이다.
역주15 : 아들은 孟獻子인데, 이때 나이가 아직 어렸다.〈杜注〉
역주16 : 難는 穀의 아우이다.〈杜注〉
역주17 : 穆伯이 많은 재물을 魯나라에 바치고서 歸國하기를 청한 것이다.〈附注〉
역주18 : 楊伯峻의 설에 따라 번역하였다.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 “이것은 魯나라에 歸葬하기를 청한 것이다. 아래 15년 傳에 ‘飾棺하여 堂阜에 갖다 두라.’는 말로 보아 歸葬을 청한 것이고 卿禮를 바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歸葬은 他鄕에서 죽은 사람을 故鄕으로 運柩하여 장사 지내는 것이다. 飾棺은 각종 물건으로 棺을 粧飾하는 것이다. ≪禮記≫ 〈喪大記〉에 의하면 諸侯의 棺에는 龍을 그린 포장을 사면에 치고 위에는 도끼 모양을 그린 보를 덮으며 뒤에는 병풍처럼 생긴 振容을 치고 黼翣․黻翣․畵翣을 각각 두 개씩 세우고, 大夫의 棺에는 구름을 그린 포장을 사면에 치고 위에는 구름을 그린 보를 덮으며 뒤에는 振容을 치지 않고 黻翣과 畵翣을 각각 두 개씩 세운다.
역주19 : 孟氏는 公孫敖의 家門이다. 慶父가 庶子 중에 맏이였기 때문에 或者가 ‘孟氏’라고 칭한 것이다.〈杜注〉
역주20 : 堂阜는 齊나라와 魯나라의 國境에 있는 땅이다. 飾棺을 殯하지 않은 것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杜注〉
역주21 : 孟氏의 祠堂[寢]에 殯한 것이다. 叔服의 말대로 된 것이다.〈杜注〉
역주22 : 惠叔이 哀毁한 모습으로 請願하고, 또 魯나라의 公族이기 때문에 歸嬪을 허락하고서 史策에 기록한 것이다.〈杜注〉 歸殯은 他鄕에서 죽은 사람의 喪柩를 고향으로 운반해와서 草殯하는 것이다.
역주23 : 慶父의 葬事와 같은 제도로 장사 지낸 것이다. 慶父와 穆伯은 모두 罪가 있었기 때문에 등급을 낮춘 것이다.〈杜注〉
역주24 : 聲己는 惠叔의 어머니이다. 公孫敖가 莒女를 찾아간 것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堂에 장막을 친 것이다.〈杜注〉 帷堂而哭은 堂中에 안치한 穆伯의 喪柩를 보지 않으려고 堂에 휘장을 치고서 堂下에서 哭한 것이다. ≪禮記≫ 〈檀弓 下〉 ‘帷堂非古’ 條의 孔疏에 “聲己는 穆伯에게 怨恨이 있어 喪柩가 있는 堂을 보지 않으려고 堂에 휘장을 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5 : 公孫敖가 자기의 아내 될 여자를 가로챈 것을 원망했기 때문이다.〈杜注〉
역주26 : 죽은 형제의 제사를 공경히 지내고 형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역주27 : 天性에서 우러나는 형제간의 지극한 우애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 친족을 親愛하는 도리라는 말이다.〈附注〉
역주28 : 저본에는 1자 빈칸으로 되어 있다.
역주29 : 저본에는 1자 빈칸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하여 ‘無’를 보충하였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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