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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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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01 出姜貴聘而賤逆
17-02-02 襄仲殺惡及視立宣公 出姜歸齊
【左傳】 文八年이라 文公二妃敬嬴生宣公하다 敬嬴嬖로되 而私事襄仲하다 宣公長 而屬諸襄仲하다
欲立之하니 라하다
하니 齊侯新立일새 而欲親魯하야 許之하다
冬十月 하다 書曰 子卒 諱之也 하니 其宰公冉務人止之曰 入必死리이다 叔仲曰 死君命可也
公冉務人曰 若君命이면 可死어니와 非君命이어늘 何聽이닛가 弗聽하고 乃入하니 殺而하다
將行 哭而過市曰 仲爲不道하야 殺嫡立庶로다 市人皆哭하다 이라하다
義之所責 民略而士詳이요 法之所禁 市寬而軍急이라 吾所厚也 責之不當如民之薄也 吾所重也 治之不當如市之輕也 此說者之所共守者也
君子之意果出於是乎 君子 以同天下爲心者也 厚士而薄民하고 重軍而輕市 非所以同天下也
待之同而治之異者 稱物平施而歸之同也
爲士者 身處於籩豆絃歌之間하야 視禮義如寢食이나 而愚鄙之民 盖有不聞禮義之名者矣 士宜不犯義 而民宜犯義者也
在軍者 身處乎旗鼓鈇鉞之間하야 視法律如寢食이나 而市廛之氓 盖有不聞法律之名者矣 是軍宜不犯法하고 而市宜犯法者也
宜不犯義者 責之詳하고 宜犯義者 責之略하며 宜不犯法者 治之急하고 宜犯法者 治之寬이면 其不同乃所以爲同也 是所謂稱物平施者也
抑又有說焉이라 居於義之中而犯義하고 居於法之中而犯法 非盡棄義法而不顧 必不 其犯雖小 而蔑棄義法之心則大也
彼其處於義與法之外者 雖過惡暴著라도 特未知義法而然耳 身過雖大 而心過則小矣
天下之過 有衆人以爲大로되 而君子以爲小者하니 必身過也 有衆人以爲小로되 而君子以爲大者하니 必心過也
魯文公迎姜氏於齊 命使差輕하니 是衆人之所謂小過耳 而君子視之若大惡然이라
論姜氏之逐 魯國之禍컨대 皆本之於 驗襄仲之難컨대 其言無不讐者 其所觀者在心이요 不在事也
魯人之於禮 猶越人之漁 胡人之獵也하야 晝與禮俱作하고 夜與禮俱息일새 不見異物而遷者也
失禮之愆 在他國則可어니와 在魯國則不可하니
盖越人不能獵 非恥也 胡人不能漁 非恥也로되
在越而不能漁하고 在胡而不能獵이면 則擧國笑之矣 盖生漁獵之俗而不能者 必天下之至拙이요 生禮義之俗而不守者 必天下之至慢也
一使之不備 他國之所謂小過 而魯之所謂大過也
一使之不備 其事固小 至於蔑棄周公數百年之禮法이면 其心則大也
履堯舜之朝而爲欺者 眞欺也 欺一言 重於他時之欺萬言者也 入夷齊之里而爲盜者 眞盜也 盜一金 重於他時之盜萬金者也ㄹ새니라
見堯舜而敢欺하고 事夷齊而敢盜 居魯國而敢犯禮 推是心以往이면 何所不至耶리오
惡發於心者大 則禍應於心者亦大하니 是非報其事也 報其心也 非報其人也 報其天也니라
晉楚齊秦聘娶之際 其犯禮盖有大於出姜者矣로되 而其得禍皆不若文公之烈者注+而其得禍皆不若文公之烈者:公遭彭生之禍 以其冒禮而非侮禮 事雖醜而心則未如文公之縱也
不然이면 則文公一過而得譴하고 他君百過而無尤 天何私於晉楚齊秦而獨讐魯耶


축출逐出제녀齊女 강씨姜氏를 아내로 정할 때에는 귀인貴人을 보내어 빙문聘問하고, 맞이할 때에는 천자賤者를 보내어 맞이하다
문공文公 4년, 나라에서 부인婦人 강씨姜氏를 맞이해올 때 이 가지 않았으니 가 아니다. 군자君子는 이로 인해 출강出姜(축출逐出제녀齊女 강씨姜氏)이 나라에서 신임信任을 받지 못할 것을 알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귀인貴人을 보내어 빙문하고 천자賤者를 보내어 맞이하였으며, 소군小君인데도 비천卑賤한 예로 대우하였으며, 부인夫人으로 세우고도 상응相應한 예를 폐하였으며, 신의信義를 버리고 내주內主권위權威를 무너뜨렸으니, 나라에 이런 일이 있으면 나라가 반드시 어지러워지고, 집에 이런 일이 있으면 집이 반드시 망한다. 그러니 존경과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에 ‘하늘의 위엄威嚴을 두려워하여 내주內主를 보전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내주內主를 존경하라는 말이다.”
양중襄仲를 죽이고서 선공宣公을 세우니, 축출逐出제녀齊女 강씨姜氏나라로 돌아가다
문공文公 18년, 문공文公이비二妃 경영敬嬴선공宣公을 낳았다. 경영敬嬴문공文公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사로이 양중襄仲을 섬겼다. 선공宣公이 장성하자 경영敬嬴선공宣公양중襄仲에게 부탁하였다.
문공文公이 죽은 뒤에〉 양중襄仲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려 하니 숙중叔仲이 반대하였다.
양중襄仲제후齊侯를 만나 〈선공宣公을 임금으로 세워주기를〉 청하니, 제후齊侯는 새로 즉위하였으므로 나라와 가까이 지내고자 하여 양중襄仲의 요청을 허락하였다.
겨울 10월에 양중襄仲를 죽이고서 선공宣公을 세웠다. 에 “하였다.[子卒]”고 기록한 것은 사실을 숨긴 것이다. 양중襄仲군명君命으로 혜백惠伯(숙중叔仲)을 부르니, 그의 재신宰臣(가신家臣) 공염무인公冉務人이 가지 못하도록 말리며 말하기를 “들어가시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고 하니, 혜백惠伯이 “임금의 에 죽는 것이 신하의 도리이다.”고 하였다.
공염무인公冉務人이 말하기를 “임금의 이라면 죽어야 되지만 임금의 명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따르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혜백惠伯이 그 말을 듣지 않고 들어가니 양중襄仲은 그를 죽여 말똥 속에 묻었다.
공염무인公冉務人혜백惠伯처자妻子를 모시고서 나라로 달아났다. 얼마 뒤에 〈나라는 혜백惠伯의 아들을 세워〉 숙중씨叔仲氏로 삼고서 혜백惠伯관위官位승계承繼[]시켰다.
부인夫人 강씨姜氏나라로 돌아갔으니 대귀大歸한 것이다. 나라로 돌아갈 적에 울면서 저자를 지나며 말하기를 “하늘이시여, 양중襄仲이 도리를 어기고서 적자嫡子를 죽이고 서자庶子를 임금으로 세웠습니다.”라고 하니 저자의 사람들도 모두 울었다. 이로 인해 노인魯人은 그를 애강哀姜이라고 불렀다.
의리로써 책망함에는 백성에게는 소략하고 사인士人에게는 상세(엄중)하며, 법률法律로써 금지함에는 시정市井에는 너그럽고 군중軍中에는 박절하다. 사인士人은 우리가 후대厚待할 대상이니 책망하기를 일반 백성에게 하듯이 박략薄略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고, 군대는 우리가 믿고서 의존할 대상이니 다스리기를 시정市井 사람에게 하듯이 가볍게 하는 옳지 않다. 이것이 설자說者(평론가評論家)들이 공동으로 준수해야 할 원칙이다.
〈그러나〉 군자君子의 마음 씀이 과연 이러한가? 군자는 천하 사람을 누구나 차별 없이 똑같이 대우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니, 사인士人은 후대하고 백성은 박대하며 군대는 중시하고 시정市井 사람은 경시한다면 천하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우는 똑같이 하되 다스리기를 달리하는 것은, 사물의 경중을 헤아려 공평하게 대하여 똑같이 대우하기 위함이다.
사인士人이 된 자는 몸이 변두籩豆현가弦歌하는 예악禮樂 사이에 있으면서 예의禮義를 마치 자고 먹는 일처럼 항상 접하지만 어리석고 비루한 백성들은 예의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자도 있을 것이니, 사인士人은 의리를 범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만 백성은 의리를 범하는 것이 마땅하다.
군중軍中에 있는 자는 몸이 기고旗鼓부월鈇鉞 사이에 있으면서 법률法律을 마치 자고 먹는 일처럼 항상 접하지만 시전市廛의 백성들은 법률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자도 있을 것이니, 군대는 법을 범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만 시전의 백성들은 법을 범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리를 범해서는 안 될 자들에게는 책망하기를 상세히 하고, 의리를 범해도 괜찮은 자들에게는 책망하기를 간략히 하며, 법을 범해서는 안 될 자들에게는 다스리기를 급박하게 하고 법을 범해도 괜찮은 자들에게는 다스리기를 너그럽게 하면 동일하지 않은 것을 동일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주역周易겸괘謙卦에〉 이른바 “사물의 〈다과多寡경중輕重을〉 칭량稱量하여 공평하게 시여施與(급여給與)한다.”라는 것이다.
나는 또 할 말이 있다. 몸이 의리義理 가운데 있으면서 의리를 범하고, 몸이 법률法律 가운데 있으면서 법률을 범하는 것은 의리와 법률을 모두 무시해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한 잘못은 비록 작으나, 의리와 법률을 무시해버린 죄는 크기 때문이다.
저 몸을 의리와 법률 밖에 둔 자는 비록 범한 과악過惡이 드러났다 해도 의리와 법률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뿐이니, 몸이 범한 잘못은 비록 크지만 마음이 범한 잘못은 작기 때문이다.
천하의 잘못 중에 일반인은 큰 잘못으로 여기는데도 군자君子는 작은 잘못으로 여기는 것이 있으니 이는 반드시 몸이 범한 잘못이기 때문이고, 일반인은 작은 잘못으로 여기는데도 군자는 큰 잘못을 여기는 것이 있으니 이는 반드시 마음이 범한 잘못이기 때문이다.
나라 문공文公나라에서 강씨姜氏를 아내로 맞이할 때에 지위가 약간 낮은 사람을 사신使臣으로 보냈으니,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작은 잘못’일 뿐이지만 군자君子는 이를 큰 죄악처럼 본다.
강씨姜氏가 축출되어 본국으로 돌아간 것과 나라가 당한 화란禍亂을 논하건대, 모두 〈처음 맞이할 때에〉 한 사신使臣상경上卿으로 갖추지 않은 데서 기인起因한 것이고, 양중襄仲이 〈나라에〉 재난災難을 만든 것을 징험해보건대 군자의 예언이 들어맞지 않음이 없었던 것은 군자가 관찰하는 바가 마음에 있고 일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魯人예의禮義의 관계가 월인越人의 고기잡이[]와 호인胡人수렵狩獵과 같아서, 낮이면 예의와 함께 일어나고 밤이면 예의와 함께 쉬므로 외물外物을 보고서 변천하는 경우가 없었다.
예의를 잃는 잘못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용서〉할 수 있지만 나라에 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대체로 월인越人이 수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호인胡人이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라에 있으면서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고 호지胡地에 있으면서 수렵을 하지 못한다면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을 것이니, 이는 고기잡이하고 수렵하는 고장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천하에 더할 수 없이 졸렬한 자이고, 예의禮義의 고장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자는 반드시 천하에 더할 수 없이 태만한 자이기 때문이다.
사신使臣상경上卿으로 갖추지 않은 것이 다른 나라에 있어서는 이른바 ‘작은 잘못’이지만 나라에 있어서는 이른바 ‘큰 잘못’이다.
사신使臣상경上卿으로 갖추지 않은 것은 본래 작은 일이지만 주공周公이 제정해 수백 년 동안 거행한 예법禮法을 무시해버린 것으로 말하면[] 그 심보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의 조정을 밟고 있으면서 사기詐欺하는 자가 진짜 사기이니, 속이는 한 마디 말이 다른 때에 속이는 만 마디 말보다 엄중하기 때문이며, 백이伯夷숙제叔齊의 마을에 들어가서 도둑질하는 자가 진짜 도둑이니, 일금一金(한 푼의 돈)을 훔치는 것이 다른 때에 만금萬金을 훔치는 것보다 엄중하기 때문이다.
이 보는 앞에서 감히 속이고 백이伯夷숙제叔齊봉사奉事하면서 감히 도둑질 하는 것은 나라에 살면서 감히 를 범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마음을 미루어 나간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마음에 일어나는 악념惡念이 크면 마음에 보응報應하는 재화災禍도 크니, 이는 그 행사行事에 대한 보응이 아니라 악심惡心에 대한 보응이며, 사람에 대한 보응이 아니라 천리天理에 대한 보응이다.
등의 나라들이 아내를 맞이하는 즈음에 그 를 범한 것이 〈나라가〉 출강出姜을 맞이할 때보다 〈그 잘못이〉 중대한 경우가 있었으되, 그 나라들이 입은 재화災禍가 모두 문공文公처럼 혹독하지 않았던 것은注+桓公이 彭生에게 〈拉殺하는〉 禍를 당하였다. 그 예를 범하기는 하였으나 예를 업신여기지는 않았으니, 일은 비록 누추하지만 마음은 문공文公처럼 교만방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문공文公은 이 한 번의 잘못으로 꾸짖음을 받고 다른 나라 임금들은 백 번을 잘못하고도 꾸짖음을 받지 않은 것이니, 하늘이 어찌 등의 나라는 편애하고 유독 나라만을 원수로 보았겠는가.


역주
역주1 : 諸侯가 有故하면 卿을 보내어 맞이하는 것이 禮이다.〈杜注〉
역주2 : 允은 信이다. 처음 올 때 尊貴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끝내 國人의 尊敬과 信任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文公이 죽은 뒤에 축출되었기 때문에 ‘出姜’이라 한 것이다.〈杜注〉
역주3 : 公子 遂가 가서 納幣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貴한 자가 聘問한 것이다.〈杜注〉 婦人을 맞이해오는 일에 卿이 가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賤者를 보내어 맞이해온 것이다.〈附注〉
역주4 : 君은 小君이다. 부인의 예로 맞이하지 않았으니 이는 비천한 예로 대우하여 합당한 예를 廢한 것이다.〈杜注〉
역주5 : 主는 內主이다.〈杜注〉 納幣할 때 언약한 신의를 버리고 그 내주의 권위를 무너뜨렸다는 말이다. 魯나라의 처지에서 말하면 ‘國’이고, 宮中의 처지에서 말하면 ‘家’이다.〈附注〉
역주6 : 文公 18년에 姜氏가 齊나라로 돌아간 張本이다.〈附注〉
역주7 : 詩는 ≪詩經≫ 〈周頌 我將篇〉이다.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福祿을 보전한다는 말이다.〈杜注〉 범할 수 없는 名分이 바로 하늘의 위엄인데, 지금 魯나라는 內主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바로 이것이 名分을 犯한 것이다.〈附注〉
역주8 : 楊伯峻의 ≪春秋左傳注≫ 해석을 취해 번역하였다. 杜注는 詩의 本義로 해석하여 于是保之의 ‘之’를 福祿으로 해석하였으나, 傳의 引用은 斷章取義이니 之는 ‘內主’를 指示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아래 글에 ‘敬主之謂’가 바로 그 증거이다.(楊伯峻, ≪春秋左傳注≫)
역주9 : 저본에는 ‘襄仲’이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0 : 叔仲은 惠伯이다.〈杜注〉
역주11 : 襄仲이 齊나라에 간 기회를 이용해 드디어 齊侯에게 요청하여 宣公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附注〉
*) [역주] 賤하게 여겨서이다:〈杜注〉에 그를 천히 여겨 기록하지 않았다는 말은 옳지 않다. 經에 이미 惡이 弑害된 것을 숨기고서 ‘子卒’로 기록하였으니 視가 殺害된 것도 숨기고 기록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太子의 母弟를 어찌 賤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左氏會箋≫)
역주12 : 惡은 太子이고, 視는 太子의 母弟이다. 視를 죽인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를 賤하게 여겨서이다.〈杜注〉
역주13 : 이때 이미 惡을 弑害하였으나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惡의 命을 詐稱해 惠伯을 부른 것이다.
역주14 : 저본에는 ‘之埋’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埋之’로 바로잡았다.
역주15 : 惠伯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史官이 襄仲을 두려워하여 감히 惠伯을 죽였다고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杜注〉 襄仲이 惠伯을 죽여 마구간의 말똥 속에 묻은 것이다.〈附注〉
역주16 : 惠伯의 처자를 모시고 蔡나라로 出奔한 것이다.〈附注〉
역주17 : 그 後嗣를 끊지 않은 것이다.〈杜注〉 惠伯의 아들을 後嗣로 세워 叔仲氏로 삼고서 惠伯의 官位를 承繼시킨 것이다.
역주18 : 夫人 姜氏는 惡과 視의 어머니인 出姜이다. 罪가 있어 축출된 자와 혐의가 같지 않기 때문에 다시 傳을 낸 것이다.〈杜注〉 친정으로 완전히 돌아가서 다시 시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附注〉
역주19 : 하늘에 호소한 것이다.
역주20 : ≪春秋左氏傳≫ 文公 4년에 이른바 “出姜이 魯나라에서 신임을 받지 못할 것이다.[出姜之不允於魯]”는 말이 들어맞았다.〈杜注〉
역주21 : 저본에는 ‘滅’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蔑’로 바로잡았다.
역주22 : 저본에는 ‘赦’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敢’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3 : 他國으로 시집가는 여인을 호송하는 禮는 ≪春秋左氏傳≫ 桓公 3년에 보인다. “公女가 대등한 나라로 시집갈 경우, 그 公女가 임금의 姉妹이면 上卿이 호송하여 先君을 禮遇하고, 임금의 딸이면 下卿이 호송하며, 큰 나라로 시집갈 경우에는 비록 임금의 딸이라 해도 上卿이 호송하고, 天子에게 시집갈 경우에는 모든 卿이 다 함께 호송하되 임금이 스스로 호송하지는 않으며, 작은 나라로 시집갈 경우에는 上大夫가 호송한다.[凡公女嫁于敵國 姊妹則上卿送之 以禮於先君 公子則下卿送之 於大國 雖公子 亦上卿送之 於天子 則諸卿皆行 公不自送 於小國 則上大夫送之]”
역주24 : 저본에는 ‘文’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桓’으로 바로잡았다. 彭生에게 拉殺 당한 것은 桓公이지 文公이 아니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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