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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2)

동래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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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宋太子玆父請立子魚
송 태자宋 太子 자부玆父자어子魚에게 임금 자리에 설 것을 청하다
[左傳]僖八年이라 宋公疾 하니 君其立之하소서 公命子魚한대
희공僖公 8년, 송공宋公의 병이 위독危篤해지자 태자 자부太子 玆父가 “목이目夷는 나이가 저보다 많고 또 인자仁慈하니 임금님께서는 그를 임금으로 세우소서.”라고 굳이 청하였다. 송공宋公자어子魚에게 승계承繼하라고 명하니,
子魚辭曰 能以國讓하니 仁孰大焉이릿가 臣不及也 이니이다하고 遂走而退하다
자어子魚는 “태자太子는 능히 나라를 남에게 사양하니 이보다 더 큰 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태자太子에 미칠 수가 없고, 또 제가 임금이 되는 것은 순리順理도 아닙니다.”라고 사양하고서 드디어 빠른 걸음으로 물러났다.
九年 襄公卽位하야 以公子이라하야 使爲左師以聽政하니 於是宋治하다 하다
9년에 송 양공宋 襄公이 즉위하여 공자 목이公子 目夷가 인자하다고 여겨 좌사左師로 삼아 국정國政을 담당하게 하니 이로 인해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그러므로 어씨魚氏가 대대로 나라의 좌사左師가 되었다.
無故而爲駭世之行 求名之尤者也 宋襄公之遜於子魚是也 以統則正이요 以親則嫡이며 以勢則順이로되
까닭 없이 세상이 놀랄 만한 행동을 하는 자는 과도하게 명예를 구하는 자이다. 송 양공宋 襄公자어子魚에게 읍손揖遜한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통法統으로 보면 정통正統이고, 혈연으로 보면 적자嫡子이며, 형세로 보면 순리인데,
無故而欲推之他人하니 非求名이면 果何說也 然求名之罪 人所共指 不足深責이어니와
까닭 없이 양보하여 남에게 주고자 하였으니, 명예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명예를 구하는 자의 죄는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지만 깊이 꾸짖을 것은 못 된다.
乃若不明乎善 則學者所同病이니 所當先論也니라 宋襄所以無故而遜國者 吾知之矣로라
그러나 에 밝지 못한 경우에는 배우는 자들이 함께 병통으로 여겨 먼저 의론해야 한다. 나는 송 양공이 까닭 없이 나라를 사양한 이유를 알겠다.
其心急欲自表見於世 悒然恨無善之可爲 故振奇以駭世耳 築山於平地者 以其無山也
그는 자기를 드러내어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다급하였으나, 행할 만한 선행善行이 없는 것을 답답해하고 한스러워하였다. 그러므로 기이한 행동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것뿐이다. 평지에 산을 만드는 자는 거기에 산이 없기 때문이니,
使居泰華之傍이면 必不築也 鑿沼於平地者 以其無沼也 使居江海之傍이면 必不鑿也리라
만약 태산泰山이나 화산華山 옆에 살았다면 반드시 산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평지에 못[]을 파는 자는 거기에 못이 없기 때문이니, 만약 강이나 바다 옆에 살았다면 반드시 못을 파지 않았을 것이다.
平地無山이라 故板築而强爲山하고 平地無沼 故疏鑿而强爲沼하니
평지에는 산이 없기 때문에 흙을 쌓아 억지로 산을 만들고, 평지에는 못이 없기 때문에 땅을 파 억지로 연못을 만든 것이다.
彼矯激而强爲駭世之行者 豈非平居自視無善之可爲하야 不得不出此耶
〈이와 마찬가지로〉 저 사람이 억지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과격한 행동을 한 것도, 어찌 평소에 행할 만한 선행이 없다고 생각하고서 마지못해 이렇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人之言曰 天下之善 遇之不可不爲 不遇不可强爲라하니 其視宋襄進一等矣이나 亦未免五十步笑百步也
사람들이 말하기를 “천하의 은 만나면 반드시 해야 하고, 만나지 않으면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라 하니, 이를 송 양공宋 襄公에 비교해보면 한 수 위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의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一歲之間 自春至冬 一日之間 自朝至暮 一國之間 自君至民 一身之間 自頂至踵 無時非善이요 無物非善이라
봄부터 겨울까지 1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내내, 임금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나라 안 누구든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 전체가 선하지 않은 때가 없고 선하지 않은 일이 없어,
周流充塞하야 隨在隨滿이어늘 今乃謂遇善則可爲 不遇善則不可爲라하니 吾不知擇何物爲善하고 棄何物爲不善耶
두루 흘러 충만하여 어느 곳이든 가득한데, 지금 선을 만나면 해야 하고 선을 만나지 않으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나는 무엇을 이라고 여겨 가려 행하고, 무엇을 불선不善이라고 여겨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吉人爲善 惟日不足이어늘 世俗乃嘆善之難遇하니 何其反也
길인吉人은 날이 부족할 정도로 선을 행하는데 세속世俗에서는 선을 만나기 어렵다고 탄식하니 어쩌면 그렇게 반대로 말하는가? 나라가 나라를 만난 것을 만났다고 하고, 나라가 나라를 만난 것을 만났다고 하며,
爲善而欲遇善하니 善豈在外耶 君子明乎善者 天理混然하야 生生不息하니
자로子路하조장인荷蓧丈人을 만난 것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면서 선을 만나고자 하니 선이 어찌 내 몸 밖에 있겠는가? 군자君子는 선을 밝게 분별할 줄 알기 때문에, 천리天理가 혼연하여 선한 마음이 항상 일어나고 그치지 않으니,
不知有善之可擇也 不知有不善之可棄也 尙不見精이면 何者爲粗 尙不見純이면 何者爲駁이리오
가려 행할 만한 선이 있음을 모르고 버릴 만한 불선이 있음을 모른다. 정수精髓도 보지 못하면서 어느 것을 조악粗惡으로 여기겠으며, 순수純秀도 보지 못하면서 어느 것을 잡박雜駁으로 여기겠는가?
雖極世所謂至高之節 如堯舜之揖遜 亦世俗自爲之名耳 步趨也, 言語也, 飮食也, 寢息也 皆人日用之常也로되
비록 온 세상이 지극히 높은 절개라고 극찬하는 요순堯舜읍손揖遜(선양禪讓)이라도, 세속에서는 스스로 명예로운 일이라고 여길 뿐이다. 걷고 달리며 말을 하며 먹고 마시며 잠자고 쉬는 것이 모두 사람의 일상생활인데,
而兀者獨羨人之步趨하야 以爲不可及이라하니 豈步趨果難於言語食息之屬哉리오 自兀者觀之則然也니라
절름발이는 유독 사람들이 걷고 달리는 것만 부러워하여 자신은 미칠 수 없다고 여기니, 어찌 걷고 달리는 것이 말하고 먹고 쉬는 일보다 어려워서이겠는가? 절름발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堯舜之事布在天下하니 若禮樂 若法度 若征伐 若巡狩 若 若揖遜 皆因理之固然이요 本未嘗置輕重於其間也
요순의 일이 천하에 알려져 있으니, 예악禮樂법도法度정벌征伐순수巡狩역시歷試읍손揖遜의 일이 모두 당연한 이치를 따르고 본래 그 사이에 경중을 둔 적이 없었다.
則所謂揖遜者 特堯舜事中一事耳 世俗指其一事爲高하고 而忽其餘事爲常者
이른바 읍손揖遜은 요순이 행한 여러 일 중의 한 가지일 뿐이다. 그런데도 세속에서 이 한 가지 일을 가리켜 고상하게 여기고 나머지 일들은 경솔히 평범하게 여기는 까닭은,
無他焉이라 彼自見其捐一金之難이로되 而駭堯舜忘天下之易하야
다름이 아니라 저 사람 스스로 일금一金을 출연하는 것도 어렵게 여기는데 요순이 천하를 쉽게 잊은 일이 놀라웠던 것이다.
遂誇大以爲至高之節이라하야 矯情而效之하니 此宋襄之徒所以每不絶於世也니라
그리하여 마침내 과대 포장하여 이를 지극히 고상한 절개로 여겨 마음을 속여 모방하였으니, 이것이 송 양공 같은 무리가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堯舜之揖遜 堯舜曷嘗自知其高哉리오 以世俗之心度之則高耳
아, 요순堯舜읍손揖遜을 어찌 요순 스스로 고상한 것으로 알았겠는가? 세속의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고상할 뿐이다.
然則非特之毁 爲以利心量聖人也 誦堯舜揖遜以爲高者 正所謂以利心量聖人也니라
그렇다면 단지 옥에 가두고 들에서 죽었다는 비방만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성인을 요량料量하는 것이 아니라, 요순의 읍손을 칭송하며 고상한 덕행德行으로 여기는 것도 바로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성인을 요량料量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太子玆父固請曰 目夷長且仁 : 玆父는 襄公이다. 目夷는 玆父의 庶兄 子魚이다.
역주2 且又不順 : 庶子를 임금으로 세우는 것은 禮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주3 (伯)[目] : 저본에 ‘伯’으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目’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目)[爲] : 저본에 ‘目’으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爲’로 바로잡았다.
역주5 故魚氏世爲左師 : 子魚의 後裔가 할아버지의 字를 氏로 삼았기 때문에 ‘魚氏’라고 한 것이다.
역주6 以魯遇宋 謂之遇 : ≪春秋左氏傳≫ 隱公 4년 經文에 “여름에 은공이 宋 殤公과 淸에서 만났다.[夏 公及宋公遇于淸]”라 하였는데, 杜預의 注에 “遇는 갑자기 만나는 것이다. 두 나라가 각기 禮節을 간소히 하여 道路에서 서로 만난 것처럼 한 것이다.”라 하였다.
역주7 以齊遇陳 謂之遇 : ≪春秋左氏傳≫ 莊公 4년 경문에 “여름에 齊侯‧陳侯‧鄭伯이 垂에서 회합하였다.[夏 齊侯陳侯鄭伯遇于垂]”라 하였는데, 林堯叟의 附注에 “세 나라 이상이 회합하는 것은 國交의 옛 법도가 아니다.”라 하였다.
역주8 以子路遇荷蓧 謂之遇 : ≪論語≫ 〈微子〉에 보인다. 공자를 모시고 가던 자로가 뒤에 쳐지게 되어 길을 잃었는데, 대바구니를 멘[荷蓧] 장인을 만나 “우리 선생님을 보았습니까?”라고 묻자, 그가 말하기를 “四肢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五穀을 분별하지 못하니, 누구를 선생님이라 하는가?” 하고,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매었다. 자로가 은자임을 알고 공경하자, 그는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고는 아들을 인사시켰다.
역주9 歷試 : 堯임금이 9男2女로 하여금 百官‧牛羊‧倉廩을 갖추어 舜을 섬기게 하고 인심을 살피어 帝位를 물려준 일을 말한다.≪書經≫ 〈虞書 堯典〉에 堯임금이 “내가 시험해보겠다. 이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내어 두 딸에게서 그 법을 관찰하겠다.[帝曰 我其試哉 女于時 觀厥刑于二女]”라 하였다.
역주10 (一)[萬] : 저본에 ‘一’로 되어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萬’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1 幽囚野死 : 幽囚는 舜임금이 堯임금을 구류했다는 말이고, 野死는 순임금이 蒼梧에서 죽은 일을 말한다. ≪史記正義≫에, ≪竹書紀年≫을 인용하여 “舜이 堯를 가두고, 또 丹朱를 감금하여 父子가 서로 만날 수 없게 하였다.”고 하였는데, 사고전서본의 ≪竹書紀年≫에 이러한 내용은 없다. 조선 李敏求의 ≪東州集≫ 〈伊尹說〉에 “자기 임금을 추방하고 시해하는 제후들이, 요임금은 감금되었고 순임금은 객지에서 죽었다는 말로 찬탈행위를 합리화하였다.[諸侯有放弑其君者 則曰堯幽囚舜野死以飾其簒]”라는 글이 보인다.

동래박의(2) 책은 2019.1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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