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東萊博議(2)

동래박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동래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04 齊侯戍曹遷邢封衛
제후齊侯를 지키게 하고, 을 옮기고, 를 봉하다
09-04-01 齊侯戍曹遷邢封衛
제후齊侯를 지키게 하고, 을 옮기고, 를 봉하다
[左傳]閔二年이라 齊侯使公子 帥車三百乘 甲士三千人하야 以戍하다
민공閔公 2년, 제후齊侯공자 무휴公子 無虧에게 병거兵車 300갑사甲士 3,000인을 거느리고 가서 조읍曹邑을 지키게 하였다.
僖之元年 齊桓公遷邢于夷儀하고 二年 封衛于楚丘하니 邢遷如歸하고 이러라
희공 원년僖公 元年제 환공齊 桓公형국邢國이의夷儀로 옮기고, 희공 2년에 위국衛國초구楚丘에 봉하였는데, 형인邢人들은 자기들의 본국으로 돌아가듯이 기뻐하였고, 위인衛人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멸망된 것을 잊었다.
09-04-02 諸侯救邢
제후諸侯을 구원하다
[左傳]僖元年이라 諸侯救邢하다 邢人潰하야 出奔하니 師遂逐狄人하고 邢器用而遷之하되 師無私焉하다
희공僖公 원년, 제후諸侯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형인邢人이 흩어져 제후諸侯의 군대로 도망해 오니, 제후諸侯의 군대가 드디어 적인狄人축출逐出하고서 형인邢人기물器物을 모두 꾸려 옮겨주었는데, 제후諸侯의 군대 중에 그 기물器物을 사사로이 취한 자가 없었다.
09-04-03 城楚丘
초구楚丘에 성을 쌓다
[左傳]僖二年이라 諸侯城而封衛焉하다
희공僖公 2년, 봄에 제후諸侯초구楚丘에 성을 쌓고서 나라를 그곳에 하였다. 회합會合제후諸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노 희공魯 僖公이 뒤늦게 갔기 때문이다.
[主意]齊桓公爲霸主하야 坐視邢衛之威亡이라가 至二年之後에야 而始救之者
제 환공齊 桓公패주霸主가 되어 나라와 나라가 위협을 당하고 망하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2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구원한 이유는
盖霸者之心 喜於得名일새니라 故養其亂 所以張其功이요 張其功 所以隆其名也니라
패자霸者의 마음은 명예 얻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지러움을 기르는 것은 을 넓히려는 의도이고, 공을 넓히는 것은 명예를 융숭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王者之所憂 伯者之所喜也注+憂喜二字 便見王霸用心不同 伯者之所喜 王者之所憂也 王者 憂名하고 伯者 喜名注+三句是一篇主意 名字是一篇血脈이라
왕자王者(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근심하는 것은 패자霸者(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좋아하는 것이며,注+’와 ‘’ 두 자에서 곧 왕자王者패자霸者의 마음 씀이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패자가 좋아하는 것은 왕자가 근심하는 것이니, 왕자는 이름이 나는 것을 근심하고 패자는 이름이 나는 것을 좋아한다.注+이 3구는 이 글의 주의主意이고, ‘’자는 이 글의 혈맥血脈이다.
이름이 나는데 어찌하여 근심하는가?注+이 글 이하는 왕자王者우명憂名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걸왕桀王이 난폭하게 했던 세상을 겪지 않았다면 백성이 탕왕湯王이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注+이 난폭하여 탕왕湯王이 그를 추방하자, 탕왕의 이름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주왕紂王이 악행을 저질렀던 세상을 겪지 않았다면 백성이 무왕武王이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注+나라 사람이 나라를 치자, 제 선왕齊 宣王이 물었다.
“어떤 이는 과인에게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 하고 어떤 이는 과인에게 연나라를 취하라 합니다. 만승萬乘의 나라로 만승의 나라를 쳐서 50일 만에 함락하였으니 인력으로 이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늘의 뜻이니〉 연나라를 취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맹자孟子가 대답하였다.
“연나라를 취하였는데 연나라 백성이 기뻐한다면 취하십시오. 옛사람 중에 그렇게 하신 분이 있으니 무왕武王이 이런 경우입니다. 연나라를 취하였는데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아니하면 취하지 마십시오. 옛사람 중에 그렇게 하신 분이 있으니 문왕文王이 이런 경우입니다. 만승의 나라로 만승의 나라를 치는데, 도시락의 밥과 호리병의 음료수를 싸 가지고 가서 무왕의 군대를 맞이한 것이 어찌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겠습니까? 바로 물난리 불난리 같은 재앙을 피하고자 한 것입니다. 만일 물이 더 깊고 불이 더 뜨겁다면 백성들은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할 것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쳐서 취하니, 제후諸侯들이 연나라를 구원할 것을 도모하였다. 제 선왕이 말하였다.
“제후 중에 과인을 치려고 도모하는 자가 많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신은 70리를 가지고 천하에서 정치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탕왕湯王이 이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1,000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서경書經≫에 ‘탕왕이 한번 정벌하기를 로부터 시작하시니, 천하 사람들이 믿어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하자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였고, 남쪽을 향하여 정벌하자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를 뒤에 정벌하는가?」라고 했다.’라 하여, 백성들이 큰 가뭄에 비오기를 바라듯이 정벌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정벌하자 시장에 가던 자들이 여전히 시장으로 갔으며 밭을 갈던 자들도 변함없이 밭을 갈았습니다. 폭군暴君주벌誅罰하고 백성을 위로하였으니 제때에 내리는 비 같아 백성들이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서경≫에 ‘우리 임금을 기다리노니, 임금께서 오시면 소생하리라.’ 하였습니다.”
使湯武幸而居唐虞之時注+發明二王本心唐堯時虞舜時 無害可除注+無桀紂之害하고 無功可見注+無弔民伐罪之功하야 湯自湯, 武自武, 民自民하야 交相忘於無事之域注+無名可稱이리니
가령 탕왕과 무왕이 다행히 시절에 살았다면注+두 왕(탕왕湯王무왕武王)의 본심도 임금 때나 임금 때와 같음을 밝힌 것이다. 제거할 만한 해악이 없고注+ 같은 해로움이 없다는 말이다. 드러날 만한 공적이 없어,注+‘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친 공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탕왕은 그저 탕왕이고, 무왕은 그저 무왕이고, 백성은 그저 백성이어서 무사한 세상에서 서로 상관이 없었을 것이니,注+일컬을 만한 이름이 없는 것이다.
則聖人之志願得矣注+王者本心 正欲如此리라 功因亂而立注+有桀紂之亂 而後有弔伐之功하고 名因功而生注+有弔伐之功 而後天下知湯武之名하니 夫豈吾本心耶注+王者 所以憂名리오
이는 성인聖人의 뜻과 바람이 제대로 실현된 것이다.注+왕자王者의 본심은 바로 이와 같고자 하는 것이다. 공적功績은 난리로 인하여 세워지고注+의 어지러움이 있은 뒤에 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친 공이 있게 되는 것이다. 명예名譽는 공적으로 인하여 생겨나니注+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친 공이 있은 뒤에 천하 사람들이 탕왕湯王무왕武王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우리들의 본심本心이겠는가?注+왕자王者는 이 때문에 이름나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다.
是故雲霓之望注+孟子曰 湯一征自葛始 民望之 若大旱之望雲霓也 非湯之盛也注+湯不欲如此 乃湯之不幸也注+不幸有桀之亂 壺漿之迎注+孟子曰 東征 綏厥士女 其小人簞食壺漿 以迎其小人 非武王之盛也注+武王不欲如此 乃武王之不幸也注+不幸有紂之亂 伯者之心 異是矣注+引入本題 言伯者用心 與王者異니라
이러므로 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탕왕의 군대를 맞이한 일이注+맹자孟子≫에 “탕왕이 한번 정벌하기를 로부터 시작하였는데, 백성들이 바라기를 큰 가뭄에 비 오기를 바라듯이 하였다.”라 하였다. 탕왕의 번성이 아니라注+탕왕湯王이 이와 같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탕왕의 불행이며,注+불행히도 의 어지러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호리병의 음료수로 무왕의 군대를 환영한 일이注+맹자孟子≫에 “동쪽을 정벌하여 그곳의 벼슬아치와 그에 따른 여인들을 편안하게 해주자, 그곳의 소인들은 도시락의 밥과 호리병의 음료수로 정벌하는 소인小人을 맞이하였다.”라 하였다. 무왕의 번성이 아니라注+무왕武王이 이와 같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왕의 불행이다.注+불행히도 의 어지러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패자의 마음은 이와 다르다.注+본편의 일을 인용하여 패자霸者의 마음은 왕자王者의 마음과 다름을 말하였다.
凡王者之所謂不幸 乃伯者之所謂大幸也 王者 恐天下之有亂注+以亂爲不幸하고 伯者 恐天下之無亂注+以亂爲幸하니
왕자王者가 말하는 불행은 곧 패자霸者가 말하는 큰 행운이다. 왕자는 천하에 난리가 있을까 걱정하고注+어지러움을 불행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패자는 천하에 난리가 없을까 걱정한다.注+어지러움을 행운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亂不極이면 則功不大注+功因亂而立故하고 功不大 則名不高注+名因功而立故ㄹ새니라 將隆其名注+霸者喜名 所以如此인댄 必張其功注+欲功之大이요 將張其功인댄 必養其亂注+欲亂之極 ○養亂二字 以誅齊威之心이라
이는 난리가 극에 달하지 않으면 공적을 크게 세우지 못하고,注+은 어지러움으로 인하여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이 크지 않으면 명예가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注+명예는 으로 인하여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예를 융숭하게 하려면注+패자霸者는 명예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반드시 공적을 넓혀야 하고,注+이 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공적을 넓히고자 한다면 반드시 난리를 길러야 한다.注+어지러움이 지극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 ‘’ 두 자로써 제 환공齊 桓公의 마음을 주벌한 것이다.
狄以閔之元年伐邢注+이어늘 其後二年에야 而齊始遷邢于夷儀注+事在僖之元年하고 狄以閔之二年滅衛注+見本題註어늘 其後二年에야 而齊始封衛于楚丘注+事在僖之二年하니
적인狄人민공閔公 원년에 나라를 쳤는데注+본편의 주석에 보인다. 2년 뒤에야 나라가 비로소 형나라를 이의夷儀로 옮겼고,注+이 일이 희공僖公 원년에 있었다. 적인이 민공 2년에 나라를 멸하였는데注+본편의 주석에 보인다. 2년 뒤에야 제나라가 비로소 위나라를 초구楚丘에 봉하였다.注+이 일이 희공僖公 2년에 있었다.
齊威之恤二國 必在於二年之後者 何也注+總二事設問 所以養其亂也注+應前養亂字 斷齊威之罪니라
제 환공齊 桓公이 두 나라를 구휼하기를 반드시 2년 뒤에야 한 것은 어째서인가?注+두 일을 총괄하여 물은 것이다. 난리를 기르려고 해서였다.注+앞글의 ‘’, ‘’자에 호응하여 제 환공齊 桓公을 단죄한 것이다.
齊威之心注+此下發明伯者之心喜名 以爲當二國之始受兵注+狄初伐邢衛時 吾亟攘夷狄而却之注+隨卽救之 則亦諸侯救災恤隣之常耳注+無甚高之名
제 환공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注+이 이하는 패자의 마음은 명예를 좋아함을 밝힌 것이다. ‘두 나라가 전쟁을 시작하였을 때注+오랑캐가 처음 를 정벌했을 때를 이른다. 내가 서둘러 이적夷狄을 물리쳐 퇴각시킨다면,注+‘따라서 즉시 구원했다면’이라는 말이다. 이는 제후諸侯로서 재앙을 구원하고 이웃나라를 돕는 일반적인 일일 뿐이니,注+매우 높게 이름날 것은 없다는 것이다.
其迹必不甚奇 其事必不甚이며 其恩必不甚深注+三句 皆形容功不大名不高之意이니 曷足以取威定伯哉注+如此則不足以取威名而定伯業
그 자취가 분명코 그다지 특별하지 않고, 그 일이 분명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을 것이며, 그 은혜가 분명코 그다지 깊지 않을 것이니,注+이 3구는 모두 공이 크지 않으면 명예도 높을 수 없다는 뜻을 형용하였다. 어찌 위엄 있는 명예를 취하고 패자의 공업을 정립하기에 충분하겠는가?注+이와 같다면 위엄 있는 명예를 취하여 패업을 정하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다.
先飢而後食之 則其食美注+飢者甘食하고 先渴而後飮之 則其飮甘注+渴者甘飮 喩始不救二國者 所以飢之渴之이니
먼저 굶주리게 한 뒤에 먹게 하면 먹는 것이 달 것이고,注+굶주린 자는 먹을 것을 달게 여긴다. 먼저 목마르게 한 뒤에 마시게 한다면 마시는 것이 달 것이다.注+목마른 자는 마실 것을 달게 여긴다. 처음에 두 나라를 구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을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자 한 것임을 비유하였다.
今吾坐養其亂注+應前養亂하야 待其社稷已頹하고 都邑已傾하며 屠戮已酷하고 流亡已衆注+頹 崩也 傾 壞也 酷 慘也 衆 多也 ○此四句 譬則先飢之渴之然後 徐起而救之注+譬則飮之食之
지금 내가 앉아서 난리를 기르다가,注+앞글의 ‘’, ‘’에 호응한다. 그들의 사직社稷이 무너지고, 도읍都邑이 경복되고, 참혹하게 도륙되고, 류망자流亡者가 많게 된注+는 붕괴이고, 은 파괴이고, 은 참혹이며, 은 많음이다. ○이 네 구는 비유하자면 먼저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는 것이다. 뒤에 천천히 일어나 구원한다면,注+비유하자면 마시게 하고 먹게 하는 것이다.
拔於危蹙顚頓之中하야 置於豐樂平泰之地注+譬則飢之得食 渴之得飮 是邢衛之君 無國而有國注+國已亡而復存이요 邢衛之民 無身而有身也注+身已死而復生
이는 위태롭고 전복된 속에서 건져내어 풍요롭고 태평한 곳에 살게 하는 것이니,注+비유하자면 굶주린 자를 먹게 할 수 있고, 목마른 자를 마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형나라‧위나라 임금의 처지에서는 나라가 없어졌다가 있게 된 것이고,注+나라가 이미 없어졌다가 다시 있게 된 것이다. 형나라‧위나라 백성의 처지에서는 몸이 없어졌다가 있게 된 것이다.注+몸이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深仁重施注+如此則齊威仁恩深而施惠重 殆將淺九淵而輕九鼎矣注+淺與深對 輕與重對 言仁深而九淵爲淺 施重而九鼎爲輕也 ○九淵見列子 莊子云 淵有九 九鼎禹所鑄 見左傳리라 故其功名震越하고 光耀注+應前功之大名之高赫然하야 爲五伯首注+自入春秋 而齊威始伯 孟子曰 五伯威公爲盛하니라
〈이렇게 되면〉 깊고 중한 은혜를注+이와 같다면 제 환공齊 桓公의 어진 은혜가 깊고, 베풀어준 은혜가 중한 것이다. 구연九淵의 물보다 깊게 여기고 구정九鼎의 철보다 무겁게 여길 것이다.’注+에 상대되는 말이고, 에 상대되는 말이니, 이 깊어 〈상대적으로〉 구연九淵이 얕음이 되고, 베풂이 무거워 〈상대적으로〉 구정九鼎이 가벼움이 된다는 말이다. ○구연九淵은 ≪열자列子≫ 〈황제黃帝〉편에 보인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깊은 못에 아홉 가지 이름이 있다.”라 하였다. 구정九鼎임금이 주조한 것으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공명功名이 진동하고 혁혁히 빛나注+앞글의 ‘공지대 명지고功之大 名之高’에 호응하는 말이다. 오패五霸의 으뜸이 되었으니,注+춘추시대春秋時代에 들어선 이래로 제 환공齊 桓公이 처음 패자가 되었다.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 下〉에 “오패五霸 중에 제 환공齊 桓公이 가장 성하였다.” 하였다.
向使絶之於萌芽注+二國始亂而遽救之 則名安得如是之著耶注+則齊威安得此盛名也 以上發明伯者喜名之意
지난번에 가령 난리가 시작되었을 때에 즉시 난리를 구제하였다면注+‘두 나라가 처음 어지러웠을 때 빨리 구원했다면’의 뜻이다. 어떻게 이처럼 명성이 드러날 수 있었겠는가?注+그렇다면 제 환공齊 桓公이 어찌 이런 성대한 명예를 얻었겠느냐는 말이다. 이상의 글은 패자가 명예를 좋아하는 뜻을 발명하였다.
嗚呼注+此下深責齊威 養成二國之亂 邢衛之難 曰君曰卿 曰士曰民注+無貴無賤 均被狄難 肝腦塗中原하고 膏液潤野草注+言被殺戮之慘하니
아!注+이 이하는 제 환공齊 桓公이 두 나라의 난리를 양성한 것임을 깊이 책한 것이다. 나라와 나라의 난리는 임금과 공경대부公卿大夫, 선비와 백성 할 것 없이注+귀천貴賤에 상관없이 모두 오랑캐의 난리를 입었다는 말이다. 모두 그들의 간뇌肝腦중원中原의 길을 뒤덮었고 고혈膏血이 들판의 풀들을 적시는 참혹한 지경이었다.注+살육殺戮의 참혹함을 당했다는 말이다.
苟仁人視之 奔走拯救 不能一朝居也注+何待二年之久리라 今齊威徒欲成區區之名注+惟其喜名 所以養亂하야 安視其死하야 至於二年之久하니 何其忍耶注+與仁人之用心 異矣
만일 인인仁人이 그것을 보았다면 분주히 달려가 구원하여 하루아침도 가만히 있지 못하였을 것이다.注+어찌 2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제 환공齊 桓公은 한갓 하찮은 이름을 이루고자注+오직 명예를 좋아하기 때문에 난을 기른 것이다. 2년이라는 오랜 시간 그들의 죽음을 편안히 쳐다만 보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리도 잔인하였는가?注+인인仁人의 마음 씀과는 다르다.
長人之亂而欲張吾之惠하고 多寇之虐而欲明吾之勳注+文字中 有此等句法 最爲警策하니 是以萬人之命으로 而易一身之名也注+痛快喜名之弊 一至於此
남의 난리를 조장하여 나의 은혜를 확장하고자 하고, 도적의 학대를 많게 하여 나의 공훈을 밝히고자 하였으니,注+문장 안의 이런 수법은 가장 좋은 경구警句가 된다. 이는 만인萬人의 목숨을 일신一身의 명예와 바꾼 것이다.注+명예를 좋아하는 폐단이 한결같이 이런 데에 이름을 통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是誠何心哉注+不仁之甚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注+引孟子語 하면 怵惕惻隱之心 不期而生注+人心皆有此仁故也하니 此人之眞心也注+仁人心正 故曰眞
진실로 이것이 무슨 마음인가?注+불인不仁함이 심한 것이다. 지금 어떤 이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언뜻 보면,注+맹자孟子의 말을 인용하였다. 두렵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니,注+인심人心은 모두 이런 어진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의 진실한 마음이다.注+인심人心의 바른 것이기 때문에 이라 한 것이다.
眞心一發이면 森不可禦注+自然之心 故不可遏 豈暇計其餘哉注+非爲內(納)交要譽惡其聲而然也 有人於此注+承上文 入井設喩하니 謂彼未入於井而全之 其功淺하고
진실한 마음이 일단 일어나면 빽빽한 마음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인데注+스스로 그러한 마음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겨를에 그 나머지 일을 따지겠는가?注+어린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기 위함이 아니고, 명예를 구하기 위함도 아니며,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이가注+윗글을 이어 ‘우물에 들어가는 일’을 가설하여 비유하였다. “저 아이가 아직 우물에 들어가기 전에 온전하게 구해준다면 그 공이 얕고,
旣入於井而全之 其功深注+正如齊威坐視二國之亂이라하야 縮手旁觀타가 俟其旣墜하야 乃始褰裳濡足而救之注+正如齊威救二國 必在二年之後
우물에 빠진 뒤에 온전하게 구해준다면 그 공이 깊을 것이다.”注+바로 제 환공齊 桓公이 두 나라의 난리를 좌시한 것과 같은 것이다.라 하여 수수방관한 채 기다렸다가, 그가 이미 빠진 뒤에 비로소 바지를 걷고 발을 적시어 구원한다면,注+바로 제 환공齊 桓公이 2년 뒤에야 두 나라를 구원한 것과 같은 것이다.
則其父母必以爲再生之恩注+因孟子所謂內(納)交於孺子之父母而發이라하고 鄕隣必以爲過人之行注+因孟子所謂要譽於鄕黨朋友而發이라하야 義槪凜凜 傾動閭里注+正如齊威功名震越光耀
그의 부모는 반드시 다시 살려준 은혜라 여기고,注+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 이른바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는 것’이란 말로 인하여 발설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뛰어난 행동이라고 여겨,注+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 이른바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명예를 구하는 것’이란 말로 인하여 발설한 것이다. 늠름凜凜하고 의로운 기개氣槪가 마을에 진동할 것이다.注+바로 제 환공齊 桓公공명功名이 진동하고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回顧前日未入井以救之者注+再一轉佳 父母不謝注+無再生之恩하고 鄕隣不稱注+無過人之行이면 若大不侔注+彼有名 此無名
전일에 아이가 우물에 빠지기 전에 구제한 자에게注+다시 한 번 아름다운 일로 전환한 것이다. 부모가 사례하지 않고,注+다시 살려준 은혜가 없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지 않았던 것을注+남보다 뛰어난 행적이 없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전혀 다르다.注+저(빠진 뒤에 구하는) 일은 명예가 있으나, 이(빠지기 전에 구하는) 일은 명예가 없는 것이다.
然則爲孺子計者注+孺子以譬邢衛컨대 寧遇前一人耶注+未入井而救者 寧遇後一人耶注+已入井而救者 以諭齊威 此王伯之辨也注+結語 王伯 首尾相應니라
그렇다면 어린아이를 위한 계책으로注+어린아이를 가지고 나라와 나라에 비유한 것이다. 앞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은가?注+우물에 들어가기 전에 구원해주는 자를 말한다. 뒤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은가?注+우물에 빠진 뒤에 구원하는 자로써 제 환공齊 桓公을 비유한 것이다. 아! 이것이 왕자王者패자霸者의 분별이다.注+맺는 말이다. 왕백王伯수미首尾가 상응한다.
역주
역주1 無虧 : 齊 桓公의 아들 武孟이다. 兵車 1乘에 配定한 甲士의 수가 정상의 制度와 다르기 때문에 傳에 특별히 드러낸 것이다. 정상의 제도란 兵車 1乘에 甲士 3人씩 배정해 병역을 담당하게 하는 것인데, 지금은 兵車 1乘에 甲士 10人씩 배정하였기 때문에 정상의 제도와 다르다고 한 것이다.
역주2 : 衛나라의 下邑(小邑)이다.
역주3 衛國忘亡 : 나라가 滅亡된 苦痛을 잊었다는 말이다.
역주4 (帥)[師] : 저본에는 ‘帥’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師’로 바로잡았다.
역주5 (其)[具] : 저본에는 ‘其’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具’로 바로잡았다.
역주6 楚丘 : 衛나라 邑이다.
역주7 不書所會 後也 : 諸侯가 會合을 마친 뒤에 魯 僖公이 갔기 때문에 제때에 미쳐 가지 못한 것을 숨기려 하였다. 그러므로 魯나라가 단독으로 성을 쌓은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역주8 齊人伐燕……其蘇 : ≪孟子≫ 〈梁惠王 下〉에 나온다.
역주9 〈事〉 : 본서의 세주에 간혹 ‘入本題事(본편의 일로 들어감)’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이에 의거하여 ‘事’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10 見本題註 : 본편에 수록된 [左傳]에 閔公 원년의 기사는 없다.
역주11 (博)[傳] : 저본에 ‘博’으로 되어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傳’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2 〈名〉 : 저본에 없으나, ≪莊子≫ 〈應帝王〉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3 □結□存理處 : 2字의 궐문이 있어 해석하지 않았다.
역주14 □□ : 저본에 2자 闕字가 있다.

동래박의(2) 책은 2019.1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