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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2)

동래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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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舟之僑奔晉
주지교舟之僑나라로 달아나다
[左傳]閔二年이라 〈春〉 虢公敗犬戎於渭汭하다 舟之僑曰 殃也 殃將至矣리라하고 遂奔晉하다
민공閔公 2년, 봄에 괵공虢公위수渭水 굽이에서 견융犬戎을 패배시키자, 주지교舟之僑가 말하기를 “도 없으면서 을 받는 것은 재앙災殃이니, 재앙이 장차 닥칠 것이다.”라고 하고 드디어 나라로 도망갔다.
僖二十八年 晉侯侵曹伐衛하니 楚人救衛하다 三月丙午 晉侯入曹하니 舟之僑 爲戎右하다
희공僖公 28년에, 진후晉侯나라를 침공侵攻하고 나라를 토벌하니 초인楚人나라를 구원하였다. 3월 병오일에, 진후晉侯나라를 침입하니 주지교舟之僑융거戎車거우車右로 삼았다.
夏四月 晉侯及楚人 戰于城濮하여 楚師하니 舟之僑 先歸하다 秋七月〈丙申〉 하야 以入于晉하야 殺舟之僑以徇於國하다
여름 4월에, 진후晉侯초인楚人성복城濮에서 싸워 초사楚師가 크게 패배하니 주지교舟之僑가 먼저 돌아갔다. 가을 7월 병신일에, 진려振旅하여 나라로 들어와서 주지교舟之僑를 죽여 전국全國에 조리돌렸다.
天下之理 有深可怪者하니 倒挽九牛로되 而不能擧秋毫 吁可怪也 洞視百里로되 而不能見岱華 吁可怪也
천하의 이치 중에 매우 괴이한 것이 있다. 아홉 마리 소를 끌 수 있으면서도 가을 터럭 하나를 들 수 없다면, 아, 괴이한 일이다. 백 리를 꿰뚫어보면서도 태산泰山이나 화산華山을 볼 수 없다면, 아, 괴이한 일이다.
高脫亂世之禍로되 而不能免治世之誅 吁可怪也
고상하여 난세亂世의 화를 면하면서도 치세治世주벌誅罰은 면하지 못한다면, 아, 괴이한 일이다.
舟之僑 當虢公有功之時하야 獨先見其敗亡之釁하고 幡然適晉하야 遂免於禍하니 可謂智矣
주지교舟之僑괵공虢公이 공을 세운 때에 누구보다도 먼저 패망의 조짐을 알고 나라를 등지고 나라로 가서 마침내 화를 면하였으니 지혜롭다고 할 만하다.
其後城濮之役 爲晉文公之戎右하야 畔(叛)官離次하야 棄衆而歸하니 晉文誅之以徇於國하니라
그러나 그 뒤, 성복城濮의 싸움에서 진 문공晉 文公융우戎右(병거兵車의 오른쪽에 앉는 무사武士)가 되어 싸우다가 소임을 저버리고 군진을 떠나 군사들을 버리고 귀향하니, 진 문공이 그를 목 베어 나라에 조리돌렸다.
智於前하고 愚於後 何耶 虢公之禍 智者 或不能預知 至若晉文之法하야는 則雖庸人이라도 知其不可犯也
전일前日은 지혜로웠고 후일後日은 어리석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괵공의 화는 지혜로운 자도 미리 확신할 수 없는 것이나, 진 문공의 법은 보통 사람이라도 범해서는 안 됨을 안다.
舟之僑能知智者之所疑로되 而不能知庸人之所畏하니 其理果安在歟 盖恃智與恃功等耳니라
주지교는 지혜로운 자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알았으나, 보통 사람도 두려워하는 것은 알지 못하였으니, 그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는 지혜를 믿는 것과 을 믿는 것이 같아서일 뿐이다.
虢公之亡 恃其功也 舟之僑之死 恃其智也 舟之僑旣料虢公之亡하고 遂伐其智하야 自謂人莫我若이라하야 擧措任情하고
괵공虢公이 망한 것은 자기의 공을 믿어서이고, 주지교舟之僑가 죽은 것은 자기의 지혜를 믿어서이다. 주지교는 이미 괵공이 망할 것을 헤아리고 마침내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여 스스로 ‘나만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는,
猖狂妄行하야 蹈於大戮하니라 彼恃其功하고 此恃其智하니 其得禍實出一轍이라 亦何暇相是非哉
제멋대로 처신하고 미친 듯 함부로 행동하여 큰 형벌을 받았다. 괵공은 자기 공을 믿은 것이고, 주지번은 자기 지혜를 믿은 것이니, 그들이 화를 당한 것이 진실로 같은 길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겨를에 두 사람의 시비是非를 따지겠는가?
渭汭之捷 虢公方自喜其師之勝하고 而不知亡國之機已藏於一勝之中矣注+僖五年 晉侯復假道於虞 以伐虢 冬十二月丙子朔 晉滅虢
위수渭水 굽이의 싸움에서 괵공은 스스로 자기의 군대가 승리한 것만 기뻐했지 망국의 조짐이 이미 이 한 승리 안에 숨어있을 줄은 몰랐으며,注+희공僖公 5년에 진후晉侯가 다시 나라에 길을 빌려 나라를 치고, 겨울 12월 초하루인 병자일에 나라가 나라를 멸하였다.
虢公之亡 舟之僑方自喜其言之驗하고 而不知殺身之機已藏於一驗之中矣하니 其福也 所以爲禍也 其智也 所以爲愚也
괵공이 망하자 주지교는 스스로 자기의 말이 징험된 것만 기뻐하고 자신을 죽이는 조짐이 이미 이 한 징험 안에 숨어있을 줄도 몰랐다. 그 가 된 것이고, 그 지혜가 어리석음이 된 것이다.
虢公以福召禍하고 舟之僑以智召愚하니 使虢公無功之可矜하고 舟之僑無智之可負런들 則國不喪而身不殞矣리라
괵공은 복으로써 화를 부르고, 주지교는 지혜로써 어리석음을 불렀다. 가령 괵공이 자랑할 만한 공이 없었고, 주지교가 자부할 만한 지혜가 없었다면, 괵공의 나라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지번의 몸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先王功眇天下로되 而日有危亡之憂 非欲自抑也 所以居其功也 智眇天下로되 而自處於匹夫匹婦之後 非欲自晦也 所以居其智也
선왕先王의 공이 천하보다 큰데도 날마다 위망危亡할까 근심하는 것은 스스로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에 처하는 방법이고, 〈지자智者의〉 지혜가 천하보다 큰데도 스스로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뒤에 처하는 것은 스스로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지자智者가〉 그 지혜에 처하는 방법이다.
項梁勝秦而驕 宋義料其必敗러니而梁果覆其軍焉이라 當是時하야 宋義之名盖楚國하니 懷王奇其智하야 位之以上將이로되
항량項梁나라를 이기고 교만하자 송의宋義는 그가 반드시 패망하리라는 것을 알았는데, 얼마 안 되어 과연 항량의 군대가 패망하였다. 당시 송의의 명성이 초나라를 뒤덮었으니 회왕懷王이 그의 지혜로움을 기특하게 여겨 상장군上將軍으로 삼았으나,
兵未하고 酣宴驕縱이라가 竟斃於項籍之手注+項梁使羽再破秦軍 羽等輕秦 有驕色 宋義諫 梁不聽 乃使宋義於齊 道遇齊使者高陵君顯 曰 公見武信君乎 曰然 義曰 臣論武信君軍必敗 公徐行 卽免 秦果悉起兵 擊楚大破之 高陵君顯見楚懷王 曰 宋義論武信君軍必敗 數日果敗軍 未戰而先見敗徵 可謂知兵矣 王召宋義 與計事而悅之 因以爲上將軍 至安陽 羽謂宋義曰 今秦軍圍趙 疾引兵渡河 楚擊其外 趙應其內 破秦必矣 義曰 夫搏牛之蝱 不可以破蝨 今秦攻趙 戰勝則兵罷 我乘其敝 不勝則我引兵鼓行而西 必擧秦矣 故曰 不如先鬪秦趙 夫擊堅銳 我不如公 坐運籌策 公不如我 羽晨朝 卽其帳中 斬義頭하니 項梁之亡 卽虢公之亡也 宋義之死 卽舟之僑之死也로다
송의는 진나라로 진군進軍하지 않고 잔치에 빠져 교만하고 방종하다가 마침내 항적項籍(항우項羽)의 손에 죽었으니,注+항량項梁항우項羽에게 다시 나라 군대를 치게 하였는데, 항우 등이 진나라를 가볍게 보아 교만한 기색이 있었다. 송의宋義가 간하였으나 항량은 듣지 않고 〈나라를 치기 위해〉 송의를 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송의가 도중에 나라 사신인 고릉군 현高陵君 顯을 만나 말하기를 “그대는 무신군武信君(항량)을 만나러 가는가?” 하니, 고릉군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송의가 말하기를 “제가 논해보건대 무신군의 군대는 반드시 패망할 것이니 공이 천천히 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는데, 진나라가 과연 전 병력을 일으켜 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고릉군 현高陵君 顯초 회왕楚 懷王을 만나 말하기를 “송의宋義가 무신군의 군대가 반드시 패망할 것이라고 논하였는데 얼마 후 과연 패망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싸우기도 전에 미리 패망할 조짐을 알았으니 군대의 일을 잘 안다고 이를 만합니다.”라 하자, 회왕이 송의를 불러 함께 일을 의논해보고 기뻐하여 송의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았다.
안양安陽에 이르러 항우가 송의에게 말하기를 “지금 진군秦軍조왕趙王을 포위하였으니 빨리 군대를 이끌고 하수河水를 건너시오. 초나라가 밖을 공격하고 조나라가 안에서 응수하면 분명 진나라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오.” 하였다.
송의가 말하기를 “‘소에 있는 등에를 쳐도 이[]는 잡을 수 없다.’는 소리가 있다.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였으니 진나라가 이겨도 군대는 지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피폐한 틈을 타 공격하면 된다. 또 진나라가 진다면 우리는 군대를 이끌고 북을 치면서 서쪽으로 진군하면 반드시 진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진나라와 조나라를 싸우게 하는 것이 더 좋다. 무릇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공격하는 것은 내가 그대만 못하고, 앉아서 계책을 세우는 것은 그대가 나만 못하다.”라 하자, 항우는 이른 새벽에 송의의 장막 속으로 가서 그의 목을 베었다.
항량이 패망한 이유가 곧 괵공虢公이 패망한 이유이고, 송의가 죽은 이유가 곧 주지교舟之僑가 죽은 이유이다.
凡人之相非 未始有極이라 虢公之勝 舟之僑在其傍而議之로되 回視僑之傍하니 已有議之者矣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는 일은 일찍이 끝난 적이 없다. 괵공虢公이 승리하자 주지교舟之僑가 그의 곁에서 의론하였는데, 주지교의 곁을 둘러보니 이미 주지교를 의론하는 자가 있었다.
項梁之驕 宋義在其傍而議之로되 回視義之傍하니 已有議之者矣
항량項梁이 교만하자 송의宋義가 그의 곁에서 의론하였는데, 송의의 곁을 둘러보니 이미 송의를 의론하는 자가 있었다.
我方憂人 而不知人已憂我 我方料人 而不知人已料我하니 是殆可長太息也
내가 남을 걱정할 때에는 남이 이미 나를 걱정하는지 모르고, 내가 남을 가늠할 때에는 남이 이미 나를 가늠하는지 모르니, 이것이 크게 탄식할 만하다.
舟之僑宋義之失 今世皆能議之矣 議二子之失者 亦安知果無人復議其傍耶
아! 주지교와 송의의 잘못을 지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의론할 수 있을 것이나, 두 사람의 잘못을 의론하는 자 곁에 또 어찌 과연 다시 그를 의론할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無德而祿 : 虢公이 임금의 德도 없으면서 天祿을 누린다는 것은, 괵공이 戎을 패배시키고서 땅을 開拓하였으니 분명히 소득이 있었을 것이므로 이를 모두 祿이라고 한 듯하다.
역주2 敗績 : 크게 무너지는 것[大崩]을 이른다.
역주3 振旅 : 군대가 나가는 것을 ‘治兵’이라 하고, 들어오는 것을 ‘振旅’라 하는데, 여기서는 勝戰하고 돌아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4 旋踵 : 짧은 시간을 형용하는 말이다.
역주5 (却)[叩] : 저본에 ‘却’으로 되어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叩’로 바로잡았다.
역주6 〈王〉 : 저본에는 없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동래박의(2) 책은 2019.1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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