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十三年
이라 하다 史曰 利於民而不利於君
이라한대 邾子曰 苟利於民
이면 孤之利也
라 天生民而樹之君
은 以利之也
니 民旣利矣
면 孤必與焉
하리라
理之未明은 君子責也니 置是責而不憂면 其責固不可逭이라 惴惴然不勝其責하야 而亟求理之明이면 則天下之患이 必自此始라
自夫人之有
也
로 始求說於理之外
하야 姑借世俗之所共信者
하야 以明吾理
라
樂其說之易行하고 忘其害之終及이니 夫豈知今日之快가 乃所以召他日之患耶아
囂淫妖祥之說은 執左道以迷民者也라 辭而闢之를 不責之君子하고 將誰責가
然君子任是責者가 不亟於明理하고 而急於辨誣하니 謂以理告人이면 喻者十三이요 以事告人이면 喻者十九니 蚩蚩之氓은 難以是非動이요 易以禍福回라
於是
에 俯取禍福之說
하야 卽其共信者而曉之
라 武王不避往亡而勝商
注+武王不避而勝商:하고 明帝不避反支而隆漢
注+明帝不避反支而隆漢:하며 太宗不避辰日而興唐
注+太宗不避而興唐:이라
汝謂必凶이면 我反得吉하고 汝謂必否면 我反得亨이니 借是事以明是理면 向之溺於囂淫妖祥之說者가 果何辭而對耶아
說以事立하고 亦以事隳하며 人以事信하고 亦以事疑라 君子所恃以闢囂淫妖祥之說者는 理在焉故也라
苟捨吾理하고 而屑屑然較事之中否면 則人雖今日以事而信吾說이라도 他日亦必以事而攻吾說矣리라
自古及今히 囂淫妖祥之說에 其不驗固衆이라 然幸而偶合者도 亦不乏也라 我專擧其不驗者하고 彼專擧其偶驗者하야 萬一彼之事多於吾之事면 則吾不戰而自屈矣라
至正之理는 不與事對어늘 今吾以欲亟之故로 捨理就事하야 下與異端竝立於爭奪之場하야 而僥倖於一勝하니 危矣哉라
善夫
라 左氏之論邾文公也
여 文公卜遷于繹
에 以爲不利
나 文公不從其言
이라
賀遷者在門이어늘 弔喪者在閭하니 此固瞽史得以藉口요 而闢其說者之所諱避而不敢稱也라
今左氏不諱不避하야 明著之書하고 又從而以知命許之하니 獨何歟오 蓋左氏所主者가 在理不在事ㄹ새라 事之偶驗도 不足爲吾說之助요 其偶不驗도 亦不足爲吾說之疵也라
有是理然後有是驗
이니 布筭以步
면 星有是理也
라 故驗不驗之說生焉
하고 以視
면 日有是理也
라 故驗不驗之說生焉
이라
乃若壽夭死生之正命
과 囂淫妖祥之邪說
은 判爲二途
하야 邈不相涉
하니 安得以彼命之壽不壽
로 爲此說之驗
哉
아
當文公之旣死에 指以爲瞽史之驗者는 固不足論이어니와 當文公之未死에 指以爲瞽史之不驗者도 亦不免捨理就事也라
左氏所以發知命之言於文公旣死之後者는 良以事雖偶合이나 理本不然이라
違卜而終이 旣不足以損文公之明이니 則言卜而驗者가 豈足以增瞽史之重哉아
吁
라 瞽史所以能
一世者
는 不
幸其事之驗耳
라 自左氏知命之言立
으로 則事雖偶驗
이라도 人不復言
이니 瞽史之技至是而窮矣
라
傳
문공 13년, 주문공邾文公이 〈태사太史에게〉 역繹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이 어떤지 점을 치게 하였다. 태사太史가 말하기를 “백성에게는 이로우나 임금님께는 불리합니다.”라고 하자, 주자邾子가 말하기를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다면 바로 나의 이로움이다. 하늘이 백성을 내고서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니, 백성이 이미 이롭다면 나도 반드시 그 이로움에 동참同參[여與]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좌우左右가 말하기를 “〈천도遷都하지 않으면〉 임금님의 수명壽命을 연장할 수 있는데 임금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니, 주자邾子가 말하기를 “임금의 사명使命은 백성을 양육養育하는 데 있고, 수명壽命[사死]의 장단長短은 운명運命[시時]이다. 백성에게 진실로 이롭다면 천도할 것이다. 이보다 더한 길吉은 없다.”고 하고서 드디어 역繹으로 천도하였다.
5월에 주문공邾文公이 졸卒하였다. 군자君子는 “주문공邾文公이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하였다.
이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은 군자의 책임이니, 이 책임을 방치하고 우려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이치를 밝히기를 구한다면 천하의 근심이 반드시 이로부터 비롯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 급히 서두르는 마음[亟心]이 있음으로부터 비로소 이치에 벗어난 것에서 변명거리를 찾아, 우선 세속이 함께 믿는 것을 빌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치를 밝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말이 쉽게 행해지는 것만을 즐거워하고 끝내 그 화가 미칠 것은 잊는 것이니, 어찌 오늘의 쾌락이 곧 훗날의 환란을 부르는 원인이 됨을 알겠는가?
〈세속에서〉 지나치게 떠벌리는 길조니 흉조니 하는 학설들은 사도邪道를 가지고 백성을 미혹시키는 것이니, 논리를 세워 반박하고 배척하는 일을 군자에게 요구하지 않고 누구에게 요구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책임을 맡은 군자가 이치를 밝힘에는 서두르지 않고 무고를 변명하는 일에만 급급하니, 이는 〈옳고 그름의〉 이치로써 일러주면 깨닫는 자가 열에 셋이고, 〈화복禍福의〉 일로써 일러주면 깨닫는 자가 열에 아홉이니 어리석은 백성은 ‘옳고 그름의 이치로써 감동시키기는 어렵고, 화복의 일로써 마음을 돌리기는 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깨닫기 쉬운〉 화복의 설을 취하여 백성들이 함께 믿는 일을 가지고 밝게 일러준 것이니, 예컨대
주周 무왕武王은 출정할 때
왕망일往亡日을 피하지 않았으되
상商나라를 이겼고,
注+≪北史≫ 〈魏本紀〉에 보인다. 한漢 명제明帝는
반지일反支日을 피하지 않았으되
한漢나라를 융성하게 하였으며,
注+≪後漢書≫ 〈本紀〉에 보인다. 당唐 태종太宗은
진일辰日을 피하지 않았으되
당唐나라를 흥성하게 한 따위이다.
注+≪唐書≫ 〈張公謹傳〉에 보인다.
저들이 반드시 흉하다고 하면 나는 반대로 길함을 얻고, 저들이 반드시 비색否塞하다고 하면 나는 반대로 형통亨通함을 얻으니, 이 일을 빌려서 이 이치를 밝히면 앞서 세속에서 떠벌리는 길조니 흉조니 하는 요설妖說에 빠진 자들이 과연 무슨 말로 대답하겠는가?
아! 이는 한갓 말하기 쉬운 것만을 생각하고 그 화가 미칠 것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설은 일로 인해 확립되기도 하고 일로 인해 무너지기도 하며, 사람은 일로 인해 신임을 받기도 하고 일로 인해 의심을 받기도 한다. 군자가 자부하면서 지나치게 떠벌리는 길조니 흉조니 하는 학설을 배척하는 이유는 진리眞理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진리를 버리고 급급하게 사실에 맞느냐의 여부만 따진다면 사람들이 비록 오늘은 일로 인해 나의 학설을 믿을지라도 후일에는 또한 반드시 일로 인해 나의 학설을 공격할 것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나치게 떠벌리는 길조니 흉조니 하는 학설 가운데 들어맞지 않은 일이 진실로 많으나, 우연히 들어맞은 것도 적지 않다. 나는 오로지 들어맞지 않은 일만을 거론하고, 상대는 오로지 우연히 들어맞은 일만을 거론하여 만에 하나라도 상대가 거론한 사례가 내가 거론한 사례보다 많다면, 나는 싸우지 않고 스스로 굴복한다.
지극히 바른 진리는 일과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것인데, 지금 나는 급히 〈이치를 밝히고자〉 하기 때문에 이치를 버리고 일에 나아가, 아래로 이단과 쟁탈하는 마당에 나란히 서서 요행히 한번 이기기를 바라니 위태롭다.
훌륭하다, 좌씨左氏가 주문공邾文公을 논평한 말이여! 문공文公이 역繹으로 천도하는 것이 길吉한 지의 여부를 점칠 적에 고사瞽史가 〈임금에게는〉 불리不利하다고 하였으나 문공文公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천도를 경하慶賀하는 자들이 아직 궁문宮門 안에 있는데 주문공邾文公의 죽음을 조문하는 사자使者가 이미 국경 안에 당도하였으니, 이런 일이 발생함으로 인해 고사瞽史는 당연히 이를 구실로 삼게 되었으나, 고사瞽史의 설을 배척하는 자들은 이를 기휘忌諱하여 감히 거론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좌씨左氏는 꺼리지도 피하지도 않고 책 속에 분명히 기재하고, 또 이어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문공文公을 칭찬하였으니 유독 어째서인가? 대체로 좌씨左氏가 주장하는 바는 이치에 있고 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 우연히 징험된 것도 나의 설에 도움이 되지 않고, 일이 우연히 징험되지 않은 것도 나의 설에 흠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치가 있은 뒤에야 이런 징험이 있는 것이니, 산가지를 펼쳐 〈천체天體를〉 추보推步(계산)하면 성좌星座(별자리)에도 일정한 이치가 있다. 그러므로 징험되고 징험되지 않은 학설이 생겨나고, 규표圭表로 측량하여 〈가는 해의 그림자를〉 관찰하면 해에도 일정한 이치가 있다. 그러므로 징험되고 징험되지 않은 학설이 생겨난 것이다.
장수하고 요절하며 죽고 사는 정명正命과 지나치게 떠벌리며 길조니 흉조니 하는 사설邪說은 두 길로 갈리어 아득히 멀어 서로 관련이 없으니, 어찌 주문공邾文公의 수명의 장단長短을 가지고 이 설의 징험 여부를 따지겠는가?
주문공邾文公이 이미 죽은 뒤에 이 일을 가리켜 고사瞽史의 말이 징험되었다고 하는 것도 진실로 거론할 가치가 없지만, 주문공邾文公이 〈이 일로 인해〉 죽지 않았는데 이 일을 가리켜 고사瞽史의 말이 징험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 또한 이치를 버리고 일에 나아간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좌씨左氏가 ‘천명天命을 알았다’는 칭찬을 주문공邾文公이 죽은 뒤에 말한 것은 진실로 일은 비록 〈점에〉 우연히 들어맞았으나 이치는 본래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점을 어기고 생을 마친 것이 이미 주문공邾文公의 현명함을 깎아내릴 만한 것이 되기에 부족하다면, 점을 쳐서 징험된 것이 어찌 고사瞽史의 중임重任에 보탬이 되겠는가?
아! 고사瞽史는 듣기 좋은 말만을 하여 온 세상을 미혹하는 자인데, 요행히 그 일이 징험된 데 불과할 뿐이다. 좌씨左氏가 ‘천명天命을 알았다’는 말을 한 뒤로부터 일이 비록 우연히 징험되더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이것을 말하지 않았으니, 고사瞽史의 기술이 이에 이르러 궁색해졌다.
〈좌씨左氏의 설이 고사瞽史의 간사한〉 뿌리를 쳐서 끊어버리고 근원을 막아 흐르지 못하게 한 것이니, 좌씨左氏는 입론立論에 뛰어난 자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