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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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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01 趙孟立公子雍
【左傳】 文六年이라 八月 晉襄公卒하다 靈公少하니 하다
하리라 好善而長하고 先君愛之 하니 置善則固하고 事長則順하고 立愛則孝하고 結舊則安이라 爲難故 故欲인댄 有此四德者라야 리라
賈季曰 이라 하니 立其子 民必安之리라
趙孟曰 하니 리오 母淫子辟하니 無威 陳小而遠하니 無援이라 將何安焉이리오
杜祁以君故하고 以狄故 하니라 先君是以愛其子하야 而仕諸秦하야 이라
秦大而近하니 足以爲援이요 하니 足以威民이라 立之 不亦可乎
17-06-02 趙孟背先蔑而立靈公
17-06-03 齊景公使國惠子高昭子立荼
【左傳】 哀五年이라 齊燕姬生子러니 하다 諸子鬻姒之하니 諸大夫恐其爲太子也하야 言於公曰 君之齒長矣로되 未有太子하니 若之何 公曰 二三子間於憂虞 則有疾疢이니 亦姑謀樂이요
齊景公卒하다 冬十月 公子嘉公子駒公子黔奔衛하고 하다
萊人歌之曰 景公死乎不與埋하고 三軍之事乎不與謀하니
17-06-04 陳乞逐高國
【左傳】 哀六年이라 하야 每朝 必驂乘焉하다 하니 將棄子之命하리라 皆曰 이면 必偪我리니 盍去諸
하니 子早圖之하라 圖之ㄴ댄 莫如盡滅之니라 事之下也라하고
又謂諸大夫曰 得君而欲謀二三子하야 曰 國之多難 貴寵之由 盡去之而後 君定이라하야 旣成謀矣 作而後悔라도 亦無及也리라 大夫從之하다
夏六月戊辰 陳乞鮑牧及諸大夫以甲入于公宮하니 昭子聞之하고 與惠子乘하야 如公하야 戰于莊타가하다 國人追之하니 國夏奔莒하다
17-06-05 陳僖子立公子陽生
【左傳】 哀이라 陳僖子使召公子陽生하니 陽生駕而見南郭且于曰 하노니 請與子乘之하노라하고 出萊門而告之故하다
闞止知之하고 先待諸外한대 公子曰 事未可知하야 與壬也處하라 戒之하고 遂行하다 逮夜하야 至於齊하니 國人知之하다
僖子使子士之母養之하고 與饋者皆入하다
冬十月丁卯 立之하다
一國之惡 易以義奪이나 一夫之惡 難以義爭이라 一國 至衆也 一夫 至寡也 義可以勝衆이나 而不可以勝寡 何也 公與私之異也
有公惡하고 有私惡하니 惡出於公이면 雖衆易奪이어니와 惡出於私 雖寡難爭이라 故君子之論難易 不施諸衆寡之間하고 而施諸公私之際니라
廢立 大惡也어늘 晉人欲立長君하야 捨靈公而迎公子雍하고 齊陳乞欲立長君하야 廢荼而召陽生하니 其惡同也
然公子雍之謀 一國之所共이니 宜若難奪이나 而穆嬴之弱으로 反能以義奪之하고 陽生之謀 一夫之所專이니 宜若易爭이나 而鮑牧之強으로도 反不能以義爭之하니라
障稽天之浸이로되 而不能遏畎澮之流하고 掃燎原之焰이로되 而不能息束縕之火하니 抑有由矣
晉人之迎公子雍하야 舍冢嗣而外求君 視置君如奕棋이니 其爲惡固不待言이라
然其情非以私己也 非以求利也 非以危國也 欲得長君以靖難耳 是固晉人之所同欲也 事則惡이나 而心則公也
其心旣公이라 故迎子雍 其事未嘗不出於公焉이라 卿士合謀하니 公之也 支庶竝擇하니 公之也 兩使如秦하니 公之也 三軍竝迎하니 公之也
擧國之人雖陷於惡逆이나 其心猶誤以爲公하야 一言一動 皆明白簡直하고 未嘗有纎毫覆匿掩蔽之意하니 豈非公心尙存
雖一國銳欲立雍하야 有排山倒海之勢 穆嬴一女子 動之以義하니 而一國之人 怵迫焦灼하야 如負芒刺하고 如中刀槊하고 如臥薄氷하야 不畏秦師之銳鋒하고 而畏穆嬴之涕泣하야 亟棄雍而立靈公 不啻如反掌之速하니
吾是以知惡出於公者 雖衆而易奪也
至於陳乞之立陽生하야는 雖以齊國有憂 少君不可爲名하야 自附於晉人之義 然其意實貪策立之功하야 以爲簒齊之資耳
心私則事私 故其援立陽生 自始至末 無非相與爲私焉이라 僞參乗而事高國者 乞以私而除陽生之害也 託習馬而出魯境者 陽生以私而應乞之召也
乞之召陽生 其始固已相與爲私 故投暮夜之隙하야 以隱其歸하고 混饋者之中하야 以匿其迹하야 惴惴然若狗偷鼠竊之爲者하니라
其擅置廢立 雖與晉人同이나 然陳乞則畏人之知하고 晉人則不畏人之知하며 陳乞畏事之泄이나 晉人則不畏事之泄하니 是晉人以公自處하고 而陳乞以私自處也
陳乞先以私自處 故雖聞鮑牧至公之義 邈然如風之歷耳하니 盖乞之心 自絶於義久矣 故使百人搖之로되 猶不能少槪其心이어든 況一鮑牧哉
惡出於公이면 則其根淺而易搖 故雖一國之勢라도 弱女子勝之而有餘어니와 惡出於私 則其根深而難拔이라 故雖一夫之謀라도 強大夫排之而不足이라
百圍之木 根不附土 未終朝而可仆어니와 拱把樸樕이라도 蟠根繞蔓於九泉之下 雖千夫未易動也
故君子能受萬人之公毁언정 而不願受一人之私讐하며 寧救萬人之公過언정 而不能救一人之私慝이니라


조맹趙孟공자公子 을 세우다
문공文公 6년, 8월에 양공襄公하였다. 〈그 태자太子영공靈公이 아직 어리니 진인晉人은 〈환난患難을 우려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조맹趙孟이 말하였다. “공자公子 을 세워야 한다. 그는 을 좋아하고 나이가 많은 데다가 선군先君(문공文公)이 총애하였으며 또 나라와 친근하니 나라는 우리의 오랜 우호국友好國이다. 한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면 나라가 공고해지고, 나이 많은 사람을 임금으로 섬기면 순리順理가 되고, 선군이 사랑한 사람을 세우면 효도가 되고, 오랜 우호국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세우면 나라가 편안해진다. 환난 때문에 나이 많은 임금을 세우고자 한다면 이러한 네 가지 덕이 있는 사람을 세워야만 반드시 환난이 제거될 것이다.”
가계賈季가 말하였다. “공자公子 을 세우는 것만 못하다. 신영辰嬴이 두 임금(회공懷公문공文公)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그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면 백성들이 반드시 안정될 것이다.”
조맹趙孟이 말하였다. “신영辰嬴은 신분이 미천하여 부인夫人 중에 서열序列이 아홉 번째이니 그 아들이 무슨 위엄威嚴이 있겠는가? 그리고 또 두 임금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음탕淫蕩해서이고, 선군의 아들이 되어 대국大國으로 가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작은 나라로 가서 있으니 〈성정性情이 편벽되고 식견識見이〉 고루固陋(벽루僻陋)해서이다. 어미는 음탕하고 아들은 벽루僻陋하니 위엄이 없고, 나라는 작은 나라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우리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인데, 장차 무엇으로 백성을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두기杜祁양공襄公 때문에 핍길偪姞에게 서열序列을 사양하여 자기의 위가 되게 하고, 적인狄人 때문에 계외季隗에게 서열을 사양하고 자기는 그 다음이 되었다. 그러므로 서열이 네 번째가 된 것이다. 선군께서 이 때문에 그 아들을 총애하여 나라로 보내 벼슬시켜 아경亞卿이 되게 하셨다.
나라는 큰 나라로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충분히 우리의 도움이 될 수 있고, 어머니는 의롭고 아들은 선군의 총애를 받았으니 충분히 백성을 위복威服시킬 수 있다. 그를 세우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선멸先蔑사회士會를 보내어 나라로 가서 공자公子 을 맞이해오게 하였다.
조맹趙孟선멸先蔑을 배신하고 영공靈公을 세우다
문공文公 7년, 강공康公공자公子 나라로 보낼 적에 “문공文公나라로 들어갈 때는 호위護衛가 없었기 때문에 여생呂甥극예郤芮의 난리가 일어난 것이다.”고 하고서 호위하는 군졸軍卒을 많이 주었다.
이때 목영穆嬴은 날마다 태자太子를 안고 조정朝廷에서 울면서 말하기를 “선군先君에게 무슨 죄가 있고 그 사자嗣子에겐 또 무슨 죄가 있는가? 사자嗣子를 버리고 임금으로 세우지 않고서 밖에서 임금을 찾고 있으니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하려는 것인가?”라 하고서,
조정을 나와서는 태자太子를 안고서 조씨趙氏의 집으로 가서 선자宣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선군先君께서 이 아이를 안고서 그대에게 부탁하며 말씀하기를 ‘이 아이를 임금의 재목材木으로 키워준다면 나는 그대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여기겠지만, 그런 재목으로 키우지 못한다면 나는 그대만을 원망할 것이다.’고 하셨소. 지금 선군先君은 비록 훙서薨逝하셨지만 그 말씀은 아직 귓가에 남아 있을 것인데, 이 아이를 버리려 하니 장차 〈이 아이를〉 어찌하려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선자宣子와 여러 대부大夫는 모두 목영穆嬴을 걱정하고 또 국인國人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이에 〈공자公子 을 맞으려고 나라로 간〉 선멸先蔑배신背信하고 영공靈公을 세우고서 〈군대를 일으켜 공자公子 호위護衛해오는〉 진군秦軍을 막았다.
경공景公국혜자國惠子고소자高昭子를 시켜 를 세우게 하다
애공哀公 5년, 나라 연희燕姬가 아들을 낳았으나 성년成年이 되기 전에 죽었다. 〈 경공景公이〉 제자諸子(제첩諸妾) 중의 하나인 육사鬻姒가 낳은 아들 를 사랑하니, 대부大夫들은 그가 태자太子가 될까 두려워하여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임금님의 연세가 높으신데 아직 태자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니, 경공景公이 말하기를 “그대들의 마음에 우려가 끼어들면 질병이 생길 것이니,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할 것이지 임금 없는 것을 걱정할 게 뭐 있소.”라고 하였다.
경공景公이 위독해지자 국혜자國惠子고소자高昭子로 하여금 를 태자로 세우고, 모든 공자公子들을 안치安置하게 하였다.
가을에 경공景公하였다. 겨울 10월에 공자公子 , 공자公子 , 공자公子 나라로 도망가고, 공자公子 , 공자公子 양생陽生나라로 도망해왔다.
내인萊人이 노래하기를 “경공景公이 죽었는데도 매장埋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삼군三軍의 일에도 참여해 모의하지 못하였으니, 공자公子들이여! 공자公子들이여! 장차 어디로 가실 것인가?” 하였다.
진걸陳乞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를 축출하다
애공哀公 6년, 나라 진걸陳乞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를 섬기는 것처럼 위장하여 조정朝廷으로 나아갈 때마다 반드시 참승驂乘(동승同乘)하였고, 수종隨從할 때마다 반드시 대부大夫들을 무함誣陷해 말하기를 “저들은 모두 교만하니 장차 당신의 을 버릴 것입니다. 저들은 모두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가 임금의 총애를 얻으면 반드시 우리를 핍박할 것이니, 어찌 저들을 제거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저들은 본래부터 두 분을 해치려고 획책劃策하였으니 두 분께서도 조기에 계책을 세우십시오. 계책을 세우신다면 저들을 다 죽이는 것이 좋습니다. 망설이며 결단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가장 낮은 계책입니다.”고 하고,
조정朝廷에 당도하여서는 말하기를 “저들은 호랑虎狼입니다. 제가 두 분 곁에 있는 것을 보면 당장 저를 죽이려 할 것이니, 제가 저들의 자리로 가도록 허락하시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대부大夫들에게 가서 또 말하기를 “저 두 사람이 화란禍亂을 일으키려 합니다. 임금의 총애를 믿고서 여러분을 모해謀害하고자 하여, ‘국가에 화란이 많은 것은 귀총貴寵들 때문이니, 저들을 다 제거한 뒤에야 임금님의 자리가 안정될 것이다.’라고 말하고서 이미 계획을 정하였으니, 어찌 저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움직이지 않으십니까? 저들이 움직인 뒤에는 후회해도 미칠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대부大夫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
여름 6월 무신일戊辰日진걸陳乞포목鮑牧대부大夫들과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공궁公宮으로 들어갔다. 소자昭子가 이 소식을 듣고서 혜자惠子와 함께 수레를 타고 공궁公宮으로 가서 에서 교전交戰하다가 패배하였다. 국인國人이 추격하니 국하國夏나라로 달아났다.
진희자陳僖子공자公子 양생陽生을 세우다
애공哀公 6년, 진희자陳僖子가 사람을 보내어 공자公子 양생陽生을 부르자, 양생陽生이 수레에 말을 메워 타고 가서 남곽차우南郭且于를 보고 말하기를 “전에 계손季孫에게 말을 헌상獻上한 적이 있었으나, 그 말이 상등마上等馬에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이 말을 바치는 바이니 그대와 함께 타고서 〈이 말이 어떤지 시험해보기를〉 청합니다.”고 하고서, 내문萊門을 나와서 그 사실을 고하였다.
이때 감지闞止가 그 사실을 알고서 먼저 나와 밖에서 기다리자, 공자公子가 말하기를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너는 돌아가서 과 함께 있으라.”고 하고서, 〈누설하지 말도록〉 경계하고 드디어 길을 떠났다. 밤에 에 이르니 국인國人들이 모두 그가 돌아온 것을 알았다.
희자僖子자사子士의 모친을 보내어 양생陽生을 봉양하게 하고 그에게 음식을 올리는 자들도 모두 들여보냈다.
겨울 10월 정묘일에 양생陽生을 세웠다.
한 나라의 공공公共악념惡念은 의리로써 빼앗기 쉽지만 한 개인의 〈사적인〉 악념惡念은 의리로써 빼앗기[爭] 어렵다. 한 나라는 사람의 수가 매우 많고 한 개인은 수가 매우 적다. 의리가 많은 수의 사람은 이기지만 적은 수의 사람은 이기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가 다르기 때문이다.
에는〉 공악公惡이 있고 사오私惡이 있으니, 악념惡念공심公心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빼앗기가 쉽지만 악념이 사심私心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람의 수가 아무리 적어도 빼앗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어렵고 쉬움을 논평함에 있어 〈논점을〉 인수人數중과衆寡에 두지 않고 마음의 공사公私에 둔다.
〈멋대로〉 임금을 폐립廢立하는 것은 더없이 큰 악행惡行이다. 그런데 진인晉人(조맹趙孟)은 나이 많은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우기 위해 영공靈公을 버리고 공자公子 을 맞이해 세우려 하였고, 나라 진걸陳乞은 나이 많은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우기 위해 태자太子 폐출廢黜하고 양생陽生을 불러들여 임금으로 세웠으니 그 악행이 동일하다.
그러나 공자公子 을 맞이해 세우고자 한 계모計謀는 온 나라 사람들의 공공公共의 생각이었으니 빼앗기 어려울 것 같았으되 연약한 목영穆嬴도 도리어 의리로써 빼앗았고, 양생陽生을 불러들여 임금으로 세운 계모는 한 개인이 멋대로 결정한 일이니 빼앗기 쉬울 것 같았으되 강력한 포목鮑牧도 도리어 의리로써 빼앗지 못하였다.
하늘에 닿을 큰물은 막았으면서 봇도랑에 흐르는 작은 물을 막지 못하고, 들판을 태우는 큰불은 껐으면서 한 뭉치의 솜에 붙은 불씨를 끄지 못한 데에는 아마도 까닭이 있을 것이다.
진인晉人공자公子 을 맞이하여 〈임금으로 세우고자〉 적장자를 버리고 밖에서 사군嗣君을 구한 일은 임금 세우는 것을 마치 바둑돌 놓는 것처럼 본 것이니 그것이 악행이 되는 것은 본래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은 일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며 이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며 국가를 위해危害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나이 많은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워 국난國難을 평정하고자 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는 본래 나라 사람들이 공동으로 원한 바이니 벌린 일은 악행이었으나 마음은 공심公心이었다.
그 마음이 이미 공심이었기 때문에 공자公子 을 맞이해 임금으로 세우려 할 때에 계모計謀한 일이 공심에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경사卿士가 공동으로 모의하였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고, 서자庶子를 선택하였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으며, 두 사자使者나라에 보냈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고, 삼군三軍이 함께 맞이하였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다.
온 나라 사람이 비록 악역惡逆에 빠지기는 하였으나 그 마음은 오히려 공심公心으로 오인誤認하여, 말과 행동이 모두 명백하고 솔직하였으며 일찍이 조금도 숨기거나 은폐하려는 뜻이 없었으니, 어찌 공심이 여전히 존재한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온 나라 사람들이 공자公子 을 세우고자 하는 기세가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뒤집을 듯이 강력하였으나 목영穆嬴이 한 여자女子로서 사람들을 의리로 감동시키자, 온 나라 사람들이 두렵고 초조해하며 등에 가시를 진 듯, 칼을 맞은 듯,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하여, 진군秦軍의 예봉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영穆嬴의 흐느낌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공자公子 을 버리고 영공靈公을 세우기를 손바닥을 뒤집듯이 신속하게 할 뿐이 아니었다.
나는 이로써 악념惡念공공公共에서 나온 것은 아무리 사람의 수가 많아도 빼앗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진걸陳乞양생陽生을 세운 것으로 말하면, 나라에 우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어린 임금은 〈우환을 극복할 계획을〉 모의할 수 없는 것으로 명분을 삼아 〈연장자를 임금으로 세우는〉 나라의 의리를 따르려 했으나, 그러나 그 의도는 실로 임금을 세운 공을 탐하여 〈장래에〉 나라를 찬탈簒奪할 구실로 삼으려 한 것뿐이다.
용심用心이 사사로우면 행사行事도 사사롭다. 그러므로 그가 양생陽生을 도와 임금으로 세운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사심을 가지고 상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참승參乗을 위장해 고소자高昭子국혜자國惠子를 섬긴 것은 진걸陳乞이 사심을 품고 〈두 사람을 섬겨〉 양생陽生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기 위함이었고, 말을 길들인다는 핑계로 나라 국경을 몰래 빠져나온 것은 양생陽生이 사심을 품고 진걸陳乞의 부름에 호응하기 위함이었다.
진걸陳乞양생陽生을 부른 것이 그 시작부터 이미[固已] 서로 사심으로 상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두운 밤 시간에 맞추어 오게 하여 돌아온 것을 숨기고, 밥을 나르는 사람들 속에 끼어 있게 하여 그 종적을 숨기고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함이 마치 개와 쥐가 물건을 훔치는 꼴과 같았다.
그(진걸陳乞)가 멋대로 임금을 폐립廢立한 것이 비록 〈형세는〉 진인晉人(조맹趙孟)과 같았으나, 진걸陳乞은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였고 진인晉人은 남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진걸陳乞은 일이 누설되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진인晉人은 일이 누설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이는 진인晉人공심公心으로 자처自處하고 진걸陳乞사심私心으로 자처하였기 때문이다.
진걸陳乞이 먼저 사심으로 자처하였기 때문에 비록 포목鮑牧이 말한 지극히 공정한 의리를 듣고도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니, 이는 진걸陳乞의 마음이 스스로 의리를 끊은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을 시켜 그의 마음을 뒤흔들게 하여도 오히려 그 마음을 조금도 감동[]시킬 수 없는데, 하물며 한 포목鮑牧이겠는가.
대체로 악념惡念공심公心에서 나왔으면 그 뿌리가 얕아서 쉽게 흔들린다. 그러므로 비록 한 나라의 강대한 기세라 하더라도 연약한 여자가 여유 있게 이길 수 있지만, 악념惡念사심私心에서 나왔으면 그 뿌리가 깊어서 뽑아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비록 한 개인의 음모陰謀라 하더라도 강한 대부大夫배제排除하기에 힘이 부족하다.
백 아름의 나무라도 뿌리가 땅에 박히지 않았으면 아침이 가기 전에 넘어뜨릴 수 있지만, 한 줌 굵기의 복속樸樕(잡목雜木)이라도 뿌리가 땅속 깊이 서려 있으면 비록 천 사람의 힘으로도 쉽게 흔들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만인萬人공훼公毁(공공의 헐뜯음)는 받을지언정 한 사람의 사수私讐(개인의 원수로 여김)는 받기를 원치 않으며, 차라리 만인의 공과公過(공공의 허물)를 바로잡을지언정 한 개인의 악념惡念은 바로잡을 수 없다.


역주
역주1 : 어린 임금을 세우면 난리가 날 것을 우려한 것이다.〈杜注〉
역주2 : 趙孟은 趙盾이다. 公子 雍은 文公의 아들이고, 襄公의 庶弟이고 杜祁의 아들이다.〈杜注〉
역주3 : 이때 公子 雍은 秦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었고, 晉나라에서 秦나라까지의 거리가 가깝다는 말이 아니라 晉나라와 秦나라의 관계가 親近하다는 말이다.
역주4 : 秦나라는 晉나라와 舅甥 사이로 오랜 友好가 있다는 말이다.〈附注〉
역주5 : 저본에는 ‘長立’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立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 抒는 除이다.〈杜注〉
역주7 : 公子 樂은 文公의 아들이다.〈杜注〉
역주8 : 辰嬴은 懷嬴이다. 두 임금은 懷公과 文公이다.〈杜注〉
역주9 : 班은 位次이다.〈杜注〉 嫡夫人으로부터 序列이 아홉 번째라는 말이다.〈附注〉
역주10 : 震은 威이다.〈杜注〉
역주11 : 두 임금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淫蕩[淫邪]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附注〉
역주12 : 文公의 아들로서 大國으로 가서 벼슬을 구하지 않고 小國인 陳나라에 벼슬한 것은 僻陋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附注〉
역주13 : 저본에는 ‘福’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偪’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 杜祁는 杜伯의 후손으로 祁姓이다. 偪姞은 姞姓의 여자인데, 그가 낳은 아들 晉 襄公이 世子가 되었기 때문에 杜祁가 그에게 序列을 사양하여 자기의 위가 되게 한 것이다.〈杜注〉
역주15 : 季隗는 文公이 狄에 依託해 있을 때의 아내였기 때문에 다시 서열을 양보한 것이다. 그렇다면 杜祁의 본래의 서열은 두 번째이다.〈杜注〉
역주16 : 亞는 버금[次]이다. 그가 어질기 때문에 지위가 높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杜注〉
역주17 : 偪姞에게 사양하고 季隗를 섬겼기 때문에 ‘母義’라고 한 것이고, 先君이 그 아들을 총애하였기 때문에 ‘子愛’라고 한 것이다.〈附注〉
역주18 : 先蔑은 士伯이고, 士會는 隨季이다.〈杜注〉
역주19 : 僖公 24년에 晉 文公이 晉나라로 들어갔다.〈杜注〉
역주20 : 穆嬴은 襄公의 夫人이고, 靈公의 어머니이다.〈杜注〉
역주21 : 夫人이 朝廷에서 울고 나와서는 또 太子를 안고 宣子의 집으로 간 것이다.〈附注〉
역주22 : 宣子에게 太子를 敎訓시키도록 한 것이다.〈杜注〉
역주23 : 宣子의 귀에 남아 있다는 말이다.〈杜注〉
역주24 : 國人이 大義를 앞세워 자기를 핍박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杜注〉
역주25 : 당초에 先蔑에게 公子 雍을 맞이해오게 하였기 때문에 ‘先蔑을 背信하고 靈公을 세웠다.’고 한 것이다. 靈公은 太子 夷皐이다. 이때 秦나라가 군대로써 公子 雍을 護送해오는 중이기 때문에 ‘秦軍을 막았다.’고 한 것이다.〈附注〉
역주26 : 燕姬는 景公의 夫人이다. 不成은 冠禮를 하지 않은 것이다.〈杜注〉
역주27 : 저본에는 ‘子’가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8 : 諸子는 庶公子이다. 鬻姒는 景公의 妾이다. 荼는 安孺子이다.〈杜注〉 ≪春秋左氏傳≫ 襄公 19년 傳 〈杜注〉에 “諸子는 姓이 子인 여러 妾이다.”고 하였다.
역주29 : 景公이 荼를 太子로 세우고자 생각하였으나, 아직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말로 大夫들의 請을 막은 것이다.〈杜注〉 모든 大夫들이 국가에 우환이 없고 일이 한가한 때를 당하면 질병이 생겨서 즐거운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지금 질병이 없으니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할 것이지 어찌 임금이 없을 것을 걱정하느냐는 말이다.〈附注〉
역주30 : 惠子는 國夏이고, 昭子는 高張이다.〈杜注〉
역주31 : 萊는 齊나라 동쪽 변방의 邑이다.〈杜注〉
역주32 : 모두 景公의 아들로 萊에 있던 자들이다.〈杜注〉
역주33 : 師는 衆이고, 黨은 所이고, 之는 往이다. 景公이란 諡號를 칭한 것으로 보아 葬後에 이 노래를 지어 公子들이 處所를 잃은 것을 슬퍼한 것인 듯하다.〈杜注〉
역주34 : 高張과 國夏가 景公의 命을 받고서 荼를 임금으로 세웠다. 陳乞은 이들을 殺害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섬기는 것처럼 먼저 僞裝한 것이다.〈杜注〉
역주35 : 大夫들의 罪過를 말한 것이다.〈杜注〉 隨行할 때마다 반드시 大夫들의 罪過를 말한 것이다.〈附注〉
역주36 : 偃蹇은 驕敖이다.〈杜注〉 彼는 大夫들을 이른다.〈附注〉
역주37 : 임금의 寵愛를 얻는 것이다.〈杜注〉
역주38 : 만약 大夫들은 처지가 安固해지면 장차 두 사람을 해치려고 계획할 것이라는 말이다.〈附注〉
역주39 :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고 기다림[遲疑須待]이다.(≪左氏會箋≫)
역주40 : 諸大夫들과 함께 高氏와 國氏의 제거를 謀議하고자 하였으므로 大夫들의 자리로 가도록 허락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杜注〉
역주41 : 二子는 高氏와 國氏이다. 禍矣는 장차 禍亂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이다.〈楊注〉
역주42 : 저본에는 ‘其’가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43 : 저들이 일을 벌이기에 앞서 먼저 저들을 제거하라는 말이다.〈附注〉
역주44 : 저본에는 ‘六’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45 : 저본에는 ‘六’이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6 : 저본에는 ‘八月’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춘추좌씨전≫ 哀公 6년에서 ‘八月’은 해당 傳보다 앞에 위치한 ‘齊邴意玆來奔(齊나라 邴意玆가 魯나라로 도망해왔다.)’에 붙어 있다. 이에 대하여 〈杜注〉에서 “〈陳僖子가 公子 陽生을〉 부른 일이 7월에 있었는데, 지금 8월 아래에 기록한 것은 일의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召在七月 今在八月下 記事之次]”라고 하였으므로, 저본에 ‘八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실제와 맞지 않는다.
역주47 : 季康子에게 말을 바쳤으나 그 말이 좋지 못하여 上等馬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이 말을 바치고자 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附注〉
역주48 : 四庫全書本과 三民書局本에는 ‘惟’로 되어 있다.
역주49 : 저본에는 1자 빈칸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訪’을 보충하였다.
역주50 : 저본에는 ‘抵’가 없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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