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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2)

동래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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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齊公孫無知弑襄公
나라 공손무지公孫無知양공襄公시해弑害하다
[左傳]莊八年이라 하다 하리라
장공莊公 8년, 제후齊侯연칭連稱관지보管至父를 보내어 규구葵丘를 지키게 하였다. 외가 익을 때 보내면서 “내년에 외가 익을 때 교대交代시켜주겠다.”라고 하였다.
期戍로되 하니 請代로되 弗許하다 〈故謀作亂하다
그런데 1년 동안 수자리 사는 기한이 찼는데도 제 양공齊 襄公의 명이 내려오지 않고, 교대시켜주기를 청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반란을 일으키려고 계획하였다.
僖公之母弟曰夷仲年이니 生〉公孫無知하다 有寵于僖公하여 衣服禮秩如이라 하니 二人因之以作亂하다
제 희공齊 僖公동복同腹 아우 이중년夷仲年의 아들 공손 무지公孫 無知가 희공에게 총애를 받아 의복衣服예질禮秩(대우한 등급)이 적자適子와 같았는데, 양공襄公이 즉위하여 그의 예질禮秩강등降等시켰다. 〈공손 무지가 양공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을 안〉 두 사람은 그에게 의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咎旣往者 易爲說하고 扶將傾者 難爲功이라 樂論病而憚治病하니 此人之通患也
지난 일을 꾸짖는 것은 말하기가 쉽고,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을 세우기가 어렵다. 을 논하기는 좋아하면서도 치료하기는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병폐病弊이다.
齊公孫無知之弑襄公 論者本其禍端하야 歸之僖公하니라 其說曰 國無二統이요 禮無二嫡이라
나라 공손 무지公孫 無知양공襄公시해弑害한 일에 대해 논평論評한 자는 그 원인原因을 캐어 〈를〉 희공僖公에게 돌렸다. 그 논설論說에 “나라에는 두 개의 적통嫡統이 없고, 에는 두 명의 적자嫡子가 없다.
基於衣服禮秩之微하야 而成於篡弑戕奪之酷하니 齊之禍庸非僖公爲之乎아하니
의복衣服예질禮秩이 〈제도制度를 벗어난〉 미세한 일에서 시작하여 군위君位찬탈簒奪하고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잔혹한 양성釀成하였으니, 나라의 가 어찌 희공이 만든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嗚呼 此論病也 非治病也 當僖公之時하야 獻此言可矣어늘 及襄公之時하야 始爲此言하니 何其晩耶
아! 이 말은 병을 논한 것이지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희공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이런 말을 올리는 것이 마땅하였는데, 양공襄公 때에 와서 비로소 이런 말을 하였으니, 어쩌면 그리도 늦었는가?
追論前日之失하고 而不能已今日之禍하니 君子不貴也 君子不幸而立襄公之朝 寧肯徒咎旣往하야
지난날의 잘못만 추론追論하고 오늘의 를 막지 못하는 것을 군자君子하게 여기지 않는다. 군자가 불행하게도 양공의 조정朝廷에 벼슬하였다면 어찌 한갓 지난날의 잘못만 꾸짖고,
一無規畫하고 拱手而待禍耶 天下無不可爲之時 而無不可除之患이라
하나의 계책計策도 세우지 않은 채 손을 놓고 가 닥치기를 기다렸겠는가? 천하에는 일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때가 없고, 또 제거할 수 없는 화환禍患은 없다.
未然之前 吾則有防患之術하고 已然之後 吾則有救患之術하니 唯所遇如何耳니라
화환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에게 화환을 예방預防할 방법이 있고, 화환이 일어난 뒤에는 나에게 화환을 구제할 방법이 있으니, 오직 만난 시대가 어떠한가를 볼 뿐이다.
在襄公世하야 禍患已成하니 防患之術 旣往이라 而不必論일새 請獨論救患之術하노라
양공襄公재위在位했을 때에 화환禍患이 이미 조성造成되었으니, 화환을 예방預防하는 방법은 이미 지난 일이라 논할 필요가 없으므로 나는 화환禍患을 구제하는 방법만 논하려 한다.
恩與怨 親與讐 人皆以爲不可竝也라하니 殊不知易恩者莫如怨이요 易親者莫如讐니라
사람들은 은인恩人원인怨人, 친인親人수인讐人을 똑같이 볼 수 없다고 여기니, 이는 은혜 베풀기에 가장 쉬운 대상이 원인怨人이요, 친애하기에 가장 쉬운 대상이 수인讐人이라는 것을 전혀 몰라서이다.
公孫無知雖託於公族이나 而僖公假以非分之寵하야 上偪正嫡하니 方襄公居東宮之時 以人情度之 豈能不忌且恨哉
공손 무지公孫 無知가 비록 공족公族이었지만 희공僖公과분過分총애寵愛를 내려 위로 적자를 핍박逼迫하였으니, 양공이 동궁東宮에 있을 때에 사람의 상정常情으로 헤아려보면 어찌 시기하며 원망하지 않았겠는가?
僖公 想無知之心 自知襄公必償其宿忿하야 投于廢絀疎棄之域矣리라
희공이 어느 날 갑자기 죽자, 공손 무지의 마음은 양공이 반드시 묵은 원한怨恨을 갚기 위해 자기를 폐출廢黜하여 소원疎遠한 자리로 보낼 것을 스스로 알았을 것이다.
使襄公釋然待之加厚 則無知必謂本當見怨이어늘 反得恩焉하고 本當見讐어늘 反得親焉하니 吾何以得此於彼哉
그때 가령 양공이 지난날의 원한을 풀고서 그를 더욱 후하게 대우했더라면, 공손 무지는 반드시 ‘본래 원수怨讐로 취급받는 것이 마땅한데 도리어 은혜를 입었고, 본래 수적讐敵으로 취급받는 것이 마땅한데 도리어 친애함을 얻었으니, 내 무슨 까닭으로 저 양공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인가?
始以爲虎러니 今乃吾之父 始以爲狼이러니 今乃吾之兄이라 旣得望外之施하니 亦必思望外之報矣리라
처음에는 저 양공을 호랑이로 여겼더니 이제 보니 나의 아버지와 같고, 처음에는 저 양공을 이리로 여겼더니 이제 보니 나의 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 공손 무지는 이미 기대 밖의 은혜를 입었으니 그 또한 반드시 양공에게 기대 밖의 보답을 하였을 것이다.
然則向之怨 所以彰今日之恩也 向之讐 所以彰今日之親也
그렇다면 전일의 원한이 오늘의 은혜를 드러내는 원인이 되고, 전일의 원수가 오늘의 친애를 드러내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襄公果知出此 則變無知悖逆之心爲忠義之心이니 非徒可以除患이라 抑又可以召福矣리라
양공이 과연 이렇게 할 줄 알았다면 공손 무지의 역심逆心충의忠義의 마음으로 변화시켰을 것이니, 화환을 제거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을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昔漢定陶王少而愛하고 長多材藝하니 元帝奇之하다 母昭儀又幸하야 幾代皇后太子로되
옛날에 나라 정도왕定陶王이 어려서는 총애寵愛를 받았고 장성長成해서는 재예材藝가 많으니, 원제元帝는 그를 특별히 기특하게 여겼다. 그의 모친 소의母親 昭儀도 더욱 총애하여 황후皇后태자太子를 이들로 교체交替할 뻔하였다.
成帝卽位하야 緣先帝意하야 厚遇異于他王하니라 元帝開其隙이나 而成帝能合其隙注+見漢書本傳하니
그러나 성제成帝즉위卽位하여 선제先帝의 뜻에 따라 정도왕을 다른 들보다 후하게 대우하여, 원제가 만든 불화不和의 틈을 성제가 잘 봉합縫合하였으니,注+한서漢書≫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에 보인다.
此所以有僖公之失이나 而無襄公之禍也니라 成帝之心 思吾親不可得而見하니 見吾親之所愛者 猶見吾親焉이라
이것이 바로 제 희공齊 僖公 같은 잘못이 있었으나 제 양공齊 襄公 같은 화란禍亂이 없었던 까닭이다. 성제의 마음은 ‘나의 어버이를 그리워하여도 볼 수가 없으니, 내 어버이께서 사랑하던 사람을 보면 내 어버이를 보는 것과 같다.
吾親旣沒(歿)하야 無所致其孝하니 今厚吾親之所厚 是亦厚吾親也라하야
내 어버이께서 이미 붕어崩御하시어 효심孝心표현表現할 곳이 없으니, 이제 내 어버이께서 후대厚待하시던 사람을 후대하는 것도 내 어버이를 후대하는 것이다.
愛親之心方篤하야 萬慮皆不能入其胸次하고 自親之外 無復他念하니 何暇省記吾一身之嫌隙乎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야흐로 독실하여 온갖 다른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아, 어버이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이 없으니 어느 겨를에 내 일신一身원한怨恨을 기억하겠는가?
苟微見疇昔之隙이면 必吾愛親之心已少弛矣리라 忘親之愛하고 而思己之隙하야 先己後親이면 固已墮於不孝 矧又報之乎
만약 조금이라도 지난날의 원한을 보인다면 반드시 어버이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이미 조금 줄어든 것이다. 어버이에 대한 사랑을 잊고 나의 원한을 생각하여 나를 먼저 생각하고 어버이를 뒤에 생각한다면 진실로 이미 불효不孝에 빠지는 것인데, 더구나 원한을 갚는 것이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如意之於諸呂注+初戚姬有寵於上 生趙王如意 上以太子仁弱 欲廢而立趙王 大臣爭之 及惠帝卽位 晨出射 趙王少不能早起 太后使人持酖飮之 犂(黎)明帝還 趙王已死 植之於魏注+三國魏陳思王植 以才見異 而丁儀丁楊脩等爲之羽翼 太祖狐疑 幾爲太子者數矣 文帝卽位 灌均希旨 奏植醉酒悖慢 遂貶植爲安鄕侯 誅其黨 攸之於晉注+晉齊獻王攸 才望出武帝之右 時爲文帝所寵愛 每見攸輒撫其床 呼其小字曰 此桃符座也 幾爲太子者數矣 及帝寢疾 慮攸不安 武帝叙 臨崩執攸手以授 後中書荀勗侍中馮紞疾攸 構于帝 攸知憤怨歐血而死 死亡相尋하니
조왕 여의趙王 如意여씨呂氏에 의해,注+당초에 척희戚姬(한 고조漢 高祖)에게 총애寵愛를 입어 조왕 여의趙王 如意를 낳았다. 태자太子의 사람됨이 인자仁慈하고 나약懦弱하다 하여 그를 폐출廢黜하고 조왕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대신大臣들이 간쟁諫爭하였다. 혜제惠帝즉위卽位한 뒤에 새벽에 활을 쏘러 나가면서 〈조왕도 데리고 함께 가려 하였으나〉 조왕이 어려서 일찍 일어나지 못하니, 〈혜제는 그를 놓아두고 혼자 갔다. 이 틈을 이용해〉 태후太后가 사람을 시켜 짐독酖毒을 가지고 가서 조왕에게 먹이게 하였다. 여명黎明 때 혜제가 돌아와보니 조왕은 이미 죽어있었다. 조식曹植나라에 의해,注+삼국시대 위三國時代 魏나라의 진사왕 조식陳思王 曹植은 뛰어난 재주로 〈조조曹操의〉 특별한 총애寵愛를 받았고, 정의丁儀, 정이丁廙, 양수楊脩 등이 그의 우익羽翼이었다. 태조太祖(조조曹操)가 〈태자인 조비曹丕를〉 의심하여 〈조식을〉 태자로 삼으려 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문제文帝(조비曹丕)가 즉위卽位한 뒤에 관균灌均이 문제의 뜻에 영합迎合하여 ‘조식이 술에 취해 패만悖慢한 짓을 한다.’고 아뢰니, 드디어 조식을 폄출貶黜하여 안향후安鄕侯로 삼고, 그 주살誅殺하였다. 나라에 의해注+나라 제헌왕 유齊獻王 攸재능才能명망名望무제武帝보다 높아 당시에 문제文帝총애寵愛를 받았다. 문제는 를 볼 때마다 용상龍床을 어루만지며 아명兒名을 부르면서 말하기를 “이 자리는 도부桃符(아명兒名)의 자리이다.”라고 하였고, 태자太子로 삼으려 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문제가 병이 위독해지자, 의 자리가 불안不安해질 것을 우려憂慮하여 무제에게 나라 회남왕淮南王나라 진사왕陳思王고사故事를 말해주면서 눈물을 흘렸고, 붕어崩御할 때에 미쳐서는 의 손을 잡아 무제에게 넘겨주었다. 뒤에 중서 순욱中書 荀勗시중 풍담侍中 馮紞를 미워하여 무제에게 무함誣陷하니, 는 그것을 알고서 분하고 원통하여 피를 토하고 죽었다. 계속 죽임을 당하였으니,
吾未嘗不恨惠文武三帝之愆于孝也 安得以成帝之風警之乎
나는 한 혜제漢 惠帝위 문제魏 文帝진 무제晉 武帝 등 세 황제皇帝효도孝道를 잃었으니, 어찌 한 성제漢 成帝풍도風度로 깨우칠 수 있겠느냐고 한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노라.
雖然이나 先君之所愛 從而愛之 孝也 苟愛而不制라가 馴致叔段州吁之亂注+이면 則將奈何
혹자或者가 말하였다.〉 “비록 선군先君께서 사랑하던 사람을 나도 따라서 사랑하는 것이 효도孝道이지만, 만약 그를 사랑하기만 하고 제재制裁하지 않았다가 공숙단共叔段이나 주우州吁 같은 반란叛亂을 초래하면注+1에 보인다. 장차 이를 어찌하겠는가?”
曰 愛之ㄴ댄 必欲全之 授之以權하야 而長其惡 是致之於死地也 焉得愛리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그를 보전保全시키고자 하니, 그에게 권력權力을 주어 그 조장助長하는 것은 그를 사지死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를 어찌 사랑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齊侯使連稱管至父戍葵丘 : 連稱‧管至父는 모두 齊나라 大夫이다. 戍는 지키는 것이다. 葵丘는 齊나라 땅이다. 臨淄縣 안에 지명이 葵丘란 곳이 있다.
역주2 瓜時而往曰 及瓜而代 : 외가 익을 때 그들을 수자리 살러 보내며 그들과 약속하기를 “明年에 외가 익을 때가 되면 교대할 사람을 보내겠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3 公問不至 : 問은 命이다. 수자리 산 지 12개월이 되었는데도 齊 襄公이 다른 사람에게 명하여 교대시키지 않은 것이다.
역주4 : 太子(齊 襄公)이다.
역주5 襄公絀之 : 絀은 그 恩數를 削減한 것이다.
역주6 一旦捐賓客而不立朝 : 一旦은 어느 날이고, 捐賓客은 賓客을 버린다는 말로 諸侯의 죽음을 婉曲하게 표현하는 말이고, 不立朝는 조정에 나와 王位에 서지 못함이니, 곧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조정에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역주7 〈廙〉 : 저본에는 1字 공란으로 되어있으나, ≪三國志≫ 〈魏志〉를 참조하여 ‘廙’를 보충했다.
역주8 漢淮南王魏陳思故事 : 漢 高祖의 작은 아들로 그 兄 漢 文帝에게 죽임을 당한 淮南厲王의 일과, 魏 武帝(曹操)의 작은 아들로 그 兄 魏 文帝(曹丕)에게 죽임을 당한 陳思王(曹植)의 일을 이른다.
역주9 (立)[泣] : 저본에는 ‘立’으로 되어있으나, ≪晉書≫에 의거하여 ‘泣’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空)[帝] : 저본에는 ‘空’으로 되어있으나, ≪晉書≫에 의거하여 ‘帝’로 바로잡았다.
역주11 注見一卷 : 권1의 ‘鄭莊公共叔段’과 ‘衛州吁’에 나온다.

동래박의(2) 책은 2019.1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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