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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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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楚范巫矞似 謂成王子玉子西皆强死
【左傳】 文十年이라 楚范巫 하리다 故使止子玉曰 하고
하야 將入郢 이라가 하니 曰 臣免於死 又有讒言하야 謂臣將逃라하니 니이다 하니
凡人之情 厭常而嗜怪하고 駭正而從僞하니 此古今之通病也
奮臂大呼 不足以動一旅로되 而狐鳴魚腹之詐 不移晷而成軍注+ 不移晷而成軍:見陳勝傳하고 徒步獻書 不足以取一官이로되 而祭竈闘棊之誕 不終朝而胙土注+ 不終朝而胙土:漢郊祀志하니 久矣로다 夫人之嗜怪而從僞也
天下之常道 惟恐人之不嗜 至於怪하야는 則惟恐嗜之太深하고 天下之正理 惟恐人之不從이나 至於僞하야는 則惟恐從之太過 巫覡之說 怪僞之尤者也로다
楚巫矞似謂成王子玉子西호되 皆將强死라하니 三人者銘其說於心하니라
至於城濮之敗하야 成王汲汲赦子西子玉之罪하니 惟恐巫言之或驗이라
旣而子玉果不及止而死注+至於城濮之敗……旣而子玉果不及止而死:하니 是巫言旣一中矣
有神妖之說誘之於前하고 有子玉之死堅之於後로되 爲成王者 尙不知戒하고 溺愛奪嫡이라가 取熊(蟠)[蹯]之禍注+爲成王者……取熊:文하니 是巫言旣再中矣
巫言其三而中其二하고 惟子西惸然孑立하야 顧影獨存하니 是宜朝警夕戒하고 擇地而行하야 深圖自免之術이어늘 乃顯行逆亂하야 以殺其身이라
巫者 人之所甚信이요 死者 人之所甚畏어늘 不信人之所信하고 不畏人之所畏하니 子西豈與人異情哉리오 盖所以信巫者 私心也 所以作亂者 亦私心也ㄹ새니라
私心之生 乍發乍止 上無所蔕 下無所根이니 烏能持久而不變耶리오
始怵於妖而信之하고 終怵於利而忘之 以私奪私하야 互爲消長이니 無惑乎子西之遽忽其所信也로다
世衰道微하야 邪說暴行有作하고 張詭幻禍福之說하야 以誑脅愚俗하니 是亦巫覡類耳어늘
儒者或以陰助敎化許之하야 遽謂 未必眞有 要可以引人爲善 未必眞有 要可以止人爲惡이라 所示者虛 所得者實이니負於天下耶
抑不知牆之始築 有一鍤之虛 則其頹敗 必見於風雨之時하고 念之始發 有一毫之虛 則其渝毁 必見於事變之日이라
人之始信禍福之說이면 固已失其本心矣 以誑而趨善 非本欲爲善也 以脅而避惡 非本不爲惡也
是心本無로되 暫爲禍福虛說之所誑脅爾 他日復爲利害所誑脅이면 安得不變而之他耶리오
此亦一誑脅也 彼亦一誑脅也 亦何分輕重於其間哉리오
有實理然後有實心하고 有實心然後有實事하니 豈有借虛說而能收實效者耶
如成王子西 其始信矞似之說 至堅至篤이로되 曾未幾何 蔑棄而不顧하니 則詭幻禍福之說 不能久使人信明矣로다
其始之銳 固可以占知其終之怠 其始之執 固可以占知其終之移
本心不堅 事物攻之者 四面而至 固可以拱手而俟其敗리니 何必親與之角哉리오 故吾始憂異端之難攻이나 而終知異端之不足攻也


나라 범읍范邑의 무당 율사矞似성왕成王자옥子玉자서子西는 모두 비명非命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다
문공文公 10년, 당초에 나라 범읍范邑의 무당 율사矞似성왕成王자옥子玉자서子西에게 “세 분께서는 장차 모두 비명非命에 죽을[强死] 것입니다.”라고 예언하였다. 성복城濮의 전쟁 때 성왕成王은 〈무당의 이 말을〉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자옥子玉자살自殺을 저지하기 위해 사자使者를 보내며 “죽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자서子西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자살을 저지하게 하였다. 자서子西는 목을 매었으나 끈이 끊어졌는데 마침 그때 사자使者가 와서 마침내 그의 자살을 막고서 그를 상읍商邑()으로 삼았다.
자서子西한수漢水를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장강長江을 거슬러 올라가서 나라의 국도國都 으로 들어가려 할 때 성왕成王저궁渚宮에 있다가 내려와서 자서子西를 만나니, 자서子西는 겁이 나서 변명하기를 “신이 죽음을 면하였으나 또 이 도망가려 한다는 참언讒言이 있으니, 신은 사패司敗(형관刑官)에게 가서 죽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성왕成王은 그를 공윤工尹으로 삼았다.
〈뒤에 그는〉 또 자가子家와 함께 목왕穆王시해弑害하려고 음모하니, 목왕穆王이 그 음모陰謀를 듣고서 5월에 투의신鬪宜申(자서子西)과 중귀仲歸를 죽였다.
무릇 사람의 상정常情은 평범한 것을 싫어하고 괴이한 것을 좋아하며, 바른 것을 두려워하고 거짓을 따르니, 이것이 고금의 공통된 병폐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큰 소리로 호통 치는 것으로는 한 여단의 군대를 감동시킬 수 없지만, 여우 울음소리와 물고기 뱃속에 글을 넣는 속임수로는 하루가 못되어 대군을 조성組成하였으며,注+≪史記≫ 〈陳涉世家〉에 보인다. 걸어가서 글을 바치는 것으로는 관직 하나를 얻기에도 부족했지만, 조신竈神에게 제사 지내고 바둑알을 튕기는 허탄한 짓으로는 한나절이 되기 전에 봉지封地를 받았으니,注+≪漢書≫ 〈郊祀志〉에 보인다. 오래되었도다! 사람들이 괴이한 것을 좋아하고 거짓을 따름이여!
천하天下상도常道는 오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두렵지만 괴이怪異는 오직 너무 심하게 좋아할까 두려우며, 천하의 정리正理는 오직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까 두렵지만 거짓은 오직 너무 심하게 따를까 두려우니, 무당의 말은 괴이하고 거짓됨이 더욱 심한 것이다.
나라 무당 율사矞似성왕成王자옥子玉자서子西에게 “〈세 분께서는〉 장차 모두 비명非命에 죽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하니, 세 사람은 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성복城濮의 전쟁에 패전함에 미쳐 성왕成王은 서둘러 자서子西자옥子玉의 패전한 죄를 사면하였으니 이는 오직 무당의 예언이 혹시라도 들어맞을까 두려워서였다.
얼마 후 자옥子玉의 자살을 미처 저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자옥子玉이 죽었으니注+僖公 28년의 일이다. 이는 무당의 예언이 이미 한 사람에게 적중한 것이다.
신묘하고 요사스런 말이 앞에서 유혹하고 자옥子玉의 죽음이 뒤에서 확정되었는데도 성왕成王은 오히려 경계할 줄 모르고 〈서자庶子의〉 사랑에 빠져 태자를 바꾸려다가 웅번熊蹯를 당했으니注+文公 원년의 일이다. 이는 무당의 예언이 이미 두 사람에게 적중한 것이다.
무당이 예언한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은 적중했고 자서子西만이 외로이 홀로 서서 그 자신만 남았으니, 아침저녁으로 경계하고 처지를 가려 행동하여 죽음을 면할 방법을 깊이 도모함이 마땅한데, 도리어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켜 제 몸을 죽이는 화를 자초하였다.
무당은 사람들이 깊이 믿는 바이고 죽음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는 바인데,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자서子西가 어찌 사람들과 심정이 달라서이겠는가? 이는 아마 무당의 예언을 믿은 것도 사심私心이고 난을 일으킨 것도 사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심이 생기는 것이 갑자기 발작하였다가 갑자기 정지하는 것은 위로 매달릴 꼭지가 없고 아래로 내릴 뿌리가 없기 때문이니, 어찌 오래 지속되고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요망한 말에 유혹되어[怵] 믿고, 끝에는 이익에 유혹되어 잊는 것은 사심으로 사심을 빼앗아 서로 소장消長하기 때문이니, 자서子西가 믿었던 것을 갑자기 잊은 것에 대해 의심할 게 없도다.
세상의 풍속이 쇠퇴하고 도덕이 미약해지자 사특한 언론과 포학한 행위가 일어나서 터무니없이 허황된 화복의 을 과장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고 위협하니, 이들 또한 무당과 같은 무리일 뿐이다.
〈그런데〉 유자儒者 중에는 간혹 〈이들의 이〉 남몰래 교화를 돕는다고 칭찬하면서, 대뜸 말하기를 ‘저들이 예궁蘂宮이니 금지金地니 하는 것은 반드시 참으로 〈천당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이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 데에 있고, 풍도酆都이리泥犁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은 반드시 참으로 〈지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이 사람들의 악행을 저지할 수 있는 데에 있다. 제시하는 것은 허구이고 얻는 것은 실재이니, 이 또한 어찌 천하天下 사람들을 저버리는 것이겠는가.’라고 한다.
그러나 〈무당의 말을 믿는 것은〉 담장을 처음 쌓을 때에 한 삽이라도 허술한 곳이 있으면 담장이 무너지는 것이 반드시 비바람이 칠 때에 드러나고, 생각이 처음 일어날 때에 터럭만치라도 허탄함이 있으면 생각이 바뀌는 것이 반드시 사변이 발생하는 날에 드러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 화복의 설을 믿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이미 그 본심을 상실한 것이다. 속임으로 인해 을 추구하는 것은 선을 하고자 하는 본심이 아니고, 위협으로 인해 악을 피하는 것은 악을 하지 않으려는 본심이 아니다.
본래 이런 〈선을 추구하고 악을 피하는〉 마음이 없는데 잠시 허황된 화복의 설에 속고 위협되어서일 뿐이니, 만약 다른 날에 다시 이해利害에 속고 위협되면 어찌 변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도 하나의 속임과 위협이고, 저것도 하나의 속임과 위협이니 또한 그 사이에 무엇으로 경중을 분별하겠는가.
진실한 도리가 있은 뒤에 진실한 마음이 있고, 진실한 마음이 있은 뒤에 진실한 일이 있으니 어찌 허탄한 말을 빌려 실제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예컨대 성왕成王자서子西는 처음에 율사矞似의 예언을 믿은 것이 매우 견고하고 독실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무시해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궤탄하고 허망한 화복의 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 믿게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처음에 예민한 것은 진실로 종극에는 무뎌짐을 알 수 있고, 처음에 굳게 지키는 것은 진실로 종극에는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심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에게 공격하는 사물이 사방에서 이르면 본래 손을 놓고서 패망을 기다릴 것이니, 무엇 때문에 그와 직접 쟁투爭鬪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처음에는 이단을 공격하기 어려울까 우려했더니 종극에는 이단은 공격할 가치도 없음을 알았다.


역주
역주1 : 矞似는 范邑의 무당이다.〈杜注〉
역주2 : 세 사람 모두 壽命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다.〈附注〉
역주3 : 成王이 非命으로 죽는다는 范巫의 말을 생각한 것이다.〈附注〉
역주4 : 子玉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附注〉
역주5 : 저본에는 ‘子西’가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6 : 이 일은 僖公 28년에 있었다.〈杜注〉
역주7 : 商은 楚나라 邑으로 지금의 上雒 商縣이다.〈杜注〉 楚나라는 王의 名號를 僭稱하였기 때문에 그 縣의 尹(長)을 모두 ‘公’이라 칭하였다. 子西를 商邑의 公으로 삼은 것이다.〈附注〉
역주8 : 沿은 물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고, 泝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杜注〉
역주9 : 작은 모래톱을 ‘渚’라 한다.〈杜注〉
역주10 : 成王이 내려와서 子西를 만난 것이다.〈附注〉
역주11 : 子西가 갑자기 成王을 보고는 겁이 나서 변명으로 成王에게 사죄한 것이다.〈附注〉
역주12 : 陳나라와 楚나라는 司寇를 司敗라고 하였다. 子西는 讒言이 두려워 감히 商邑으로 가지 못한 것이다.〈杜注〉 “임금님의 은덕으로 죽음을 면하였으나, 臣이 만약 外方인 商邑으로 간다면 사람들은 ‘臣이 장차 王을 배반하고 도망갈 것’이라고 참소할 것이니, 外方으로 가서 배반해 도망갈 것이라는 惡名을 얻기보다 차라리 司敗에게 가서 刑官에게 목을 바치겠다.”는 말이다.
역주13 : 子西가 商邑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에 商公으로 임명한 것을 취소하고 工尹에 임명한 것이다. 工尹은 百工을 맡아 다스리는 관직이다.
역주14 : 여기부터 文公 10년의 일에 해당한다. 이 이상은 僖公 28년의 일이다. 宜申은 子西이다.
역주15 : ≪史記≫ 〈陳涉世家〉에 의하면, 秦 二世 원년에 陳勝과 吳廣이 군사를 일으켜 秦나라를 배반하려고 할 때, 대중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은밀히 ‘陳勝王’이라는 세 글자를 써서 물고기 뱃속에 넣어두고서 군졸이 발견하게 하였다. 또 吳廣으로 하여금 밤중에 軍營 근처의 樹林 가운데 있는 神廟로 가서 등을 달아놓고 마치 여우의 울음인양 ‘大楚興 陳勝王’이라는 소리를 내게 하였다. 그러자 이를 보고 들은 군사들이 모두 陳勝을 주목했다고 한다.
역주16 : 祭竈는 竈神에게 제사를 지내면 늙음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 方士 李少君의 誕說을 이르고, 闘棊는 丁義가 漢 武帝에게 천거한 方士 欒大가, 武帝의 신임을 얻기 위해 바둑돌에 자석을 붙여 서로 부딪치게 한 속임수를 이른다. 이 두 일은 모두 ≪史記≫ 〈武帝本紀〉에 보인다.
역주17 : 이 해에 晉 文公과 楚 成王의 城濮의 전쟁이 있었다.
역주18 : 저본에는 ‘蟠’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蹯’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9 : 楚子(成王)가 商臣(훗날 穆王)을 태자로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王子 職을 태자로 세우고 태자 商臣을 廢黜하려고 하자, 商臣은 태자궁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成王을 포위하였다. 王이 熊蹯(熊掌)을 먹고 죽기를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으니 왕이 목을 매 자살하였다.
역주20 : 저본에는 ‘六’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元’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1 : 蘂宮은 道家의 경전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궁전이다. 金地는 佛寺를 가리킨다. 印度의 須達長者가 釋迦의 설법을 듣고 매우 경모한 나머지, 精舍를 세워주려고 祇陀太子의 園林을 구매하려 하자, 태자가 장난삼아 “황금을 이 땅에 가득 깔면 팔겠다.”라고 하였는데, 須達長者가 실제로 집에 있는 황금을 코끼리에 싣고 와서 그 땅에 가득 깔았다. 이에 태자가 감동하여 땅을 매도하는 한편, 자기도 園中의 林木을 喜捨하여 마침내 최초의 불교 사원인 祇園精舍를 건립했다고 한다.(≪大唐西域記≫ 卷6)
역주22 : 酆都와 泥犁는 모두 佛家의 말로 지옥을 뜻한다.
역주23 : 저본에는 ‘可’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何’로 바로잡았다.
역주24 : 저본에는 ‘持’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特’으로 바로잡았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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