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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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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 楚太子商臣弑成王
【左傳】 文元年이라 楚子將以商臣爲太子하야 訪諸令尹子上한대 子上曰 니이다
恒在少者니이다 且是人也 蜂目而豺聲이니 不可立也니이다 弗聽하다
하고 而黜太子商臣하다 이라 告其師潘崇曰 若之何而察之 潘崇曰 享江]하라
從之하다 江(芊)[羋]怒曰 宜君王之欲殺女而立職也로다
告潘崇曰 信矣 潘崇曰 曰 不能이라 曰 不能이라 曰 能이라
冬十月 하다 한대 弗聽하다 丁未 王縊하다
이라하니 不暝하고 曰成이라하니 乃暝하다
天下之言 察於利害未驗之前 人皆以爲難하고 察於利害旣驗之後 人皆以爲易
鯀能欺四岳於九載之初 而不能欺比屋於九載之後注+鯀能欺四嶽於九載之初 而不能欺比屋於九載之後:하니 非比屋果智於四岳也 未驗之與已驗 其難易固不同也ㄹ새니라
少正卯能欺子貢於兩觀方誅之始 而不能欺市人於兩觀旣誅之餘注+少正卯能欺子貢於兩觀方誅之始 而不能欺市人於兩觀旣誅之餘:하니 非市人果智於子貢也 未驗之與已驗 其難易固不同也ㄹ새니라
未見汨陳之禍 而能察鯀之策이면 則天下皆堯矣 未見僞辨之慝 而能察少正卯之言이면 則天下皆孔子矣로되 如必待旣驗而後察之 特比屋市人之智耳
是故出夏癸於南巢하얀 則必思伊尹不可再留 起商辛於牧野하얀 則必思祖伊不可再用注+是故出夏癸於南巢……則必思祖伊不可再用:이며 脫夫差於姑蘇하얀 則必思子胥不可再生注+脫夫差於姑蘇 則必思子胥不可再生:이라
當利害旣驗之後 雖至愚極暴之人이라도 猶知其可從而悔其不從也
然則天下之言 當利害未驗之時察之 安得不謂之難乎 自利害旣驗之後察之 安得不謂之易乎
吾獨以爲利害之未驗 察言者若難而實易하고 利害之旣驗 察言者若易而實難이라하노라
吾非樂與說者反也 所謂正言似反者也
利害未驗之前 利未見利하고 害未見害 吾心未爲利害之所分하니 則所用以察言者 皆心之正也ㄹ새니라
以吾心之正으로 而察天下之言이면 其善其惡 其邪其正 畢陳于前而莫能遁이니 非難而易耶
至於利害旣驗之後하야 吾見其言之驗이면 則竊意其言之可從이니 是以事信之 而非以心信之也 吾見其言之不驗이면 則竊意其言之不可從이니 是以事疑之 而非以心疑之也
信與疑不出於心하고 而出於事 其弊可勝旣耶
人臣之以是諫非者 君從之則有利하고 君不從之則有害하니 後世因其事之驗하야 而信其言之驗 可也어니와 抑不知天下固有以非諫非者하니 雖能知君之過라도 而己之諫亦不免於過하며 雖能擧君之失이라도 而己之諫亦不免於失이라
君不從其言이면 固有害也 君從其言이라도 亦有害也 後世徒見其君不從其言之害 而不見從其言之害하야 溺其事之驗하고 而忘其理之差하야 爭拾其遺說而襲之하니 盖有亂亡相尋而不悟者矣
此吾所謂若易而實難者也 楚子上之事是已
子上諫楚成王之立商臣이러니 旣中楚成之非矣 而子上之所以諫者 亦未免於非也
旣曰君之齒未也 而又多愛하니 黜乃亂也라하고 又曰楚國之擧 常在少者라하니 此二說者 實萬世禍亂之權輿
使楚成從其前之說이면 則國本不建하야 儲位久虛 得無起覬覦之姦乎
使楚成從其後之說이면 則嫡庶不明하고 長幼失序 得無開簒奪之萌乎
此二禍者 吾未知與熊蹯之變孰先孰後也로라
後世徒見子上料商臣之驗하고 遂信其言而納於禍
有以立嗣爲諱하야 如唐宣宗者注+如唐宣宗者: 實子上齒未之言誤之也 有以庶孼奪宗하야 如隋文帝者 實子上擧少之言誤之也
其餘以此隊命隕姓者 未易枚擧하니 豈非樂已驗之言而蹈未見之禍乎
彼商臣之惡 有非梟鴟其心者 皆知疾趨而避之하니 其禍後世 殆未若子上之烈也
張角不足爲漢禍 而討張角者乃爲漢禍注+而討張角者乃爲漢禍: 盧循不足爲晉禍 而滅盧循者乃爲晉禍注+而滅盧循者乃爲晉禍: 商臣不足爲萬世禍 而排商臣者乃爲萬世禍
天下之禍 固有機於此而動於彼者矣 夫豈始慮所及耶


나라 태자太子 상신商臣성왕成王을 시해하다
문공文公 원년, 당초에 초자楚子(성왕成王)가 상신商臣태자太子로 삼으려고 영윤令尹 자상子上에게 의견을 물으니, 자상子上이 말하였다. “임금님의 나이가 아직 젊으시고 또 사랑하는 아들이 많으니, 〈만약 그를 태자로 세웠다가 뒤에 다시〉 그를 폐출廢黜하게 된다면 화란禍亂이 생길 것입니다.
상신商臣은 나이가 많으니〉 나라에 태자로 세워진 분은 항상 나이가 어린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사람은 눈은 벌 눈과 같고 목소리는 늑대소리 같으니 잔인한 사람입니다. 세워서는 안 됩니다.” 초자楚子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상신商臣을 태자로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왕成王은 또 왕자王子 을 태자로 세우고 태자 상신商臣폐출廢黜하고자 하였다. 상신商臣은 그 소문을 들었으나 분명치 않아서, 그 스승 반숭潘崇에게 “어떻게 하면 분명히 알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반숭潘崇이 “강미江羋를 초대해 접대하되 존경하지 말라.”고 하였다.
상신商臣이 그의 말을 따라 그대로 하니, 강미江羋가 노하여 “아, 미천한 놈아[역부役夫]! 군왕君王께서 너를 죽이고 을 태자로 세우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상신商臣반숭潘崇에게 “그 소문이 사실이다.”고 고하니, 반숭潘崇이 “그대가 을 섬길 수 있는가?”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섬길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반숭潘崇이 다시 “출분出奔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반숭潘崇이 “그렇다면 대사大事를 거행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楚나라 商臣이 궁에 들어가 아버지를 시해하다[楚商臣入宮弑父]楚나라 商臣이 궁에 들어가 아버지를 시해하다[楚商臣入宮弑父]
겨울 10월에 상신商臣궁갑宮甲을 거느리고 가서 성왕成王을 포위하였다. 성왕成王웅번熊蹯(웅장熊掌)을 먹고 죽기를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으니 정미일丁未日에 왕이 목매어 죽었다.
를 ‘’이라 하니 〈성왕成王의 시신이〉 눈을 감지 않고, 다시 ‘’이라 하니 그제야 눈을 감았다.
천하의 말을 이해利害험증驗證되기 전에 밝게 살피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어렵게 여기고, 이해가 이미 험증된 뒤에 밝게 살피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쉽게 여긴다.
(하우씨夏禹氏의 아버지)이 9년 동안 홍수洪水를 다스리던 초기에는 사악四岳을 속일 수 있었으나 9년이 지난 뒤에는注+≪尙書≫에 보인다. 평범한 이웃[비옥比屋]도 속일 수 없었으니, 이는 비옥比屋이 과연 사악四岳보다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험증되기 이전과 이후의 살피기 어려움과 쉬움이 본래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소정묘少正卯양관兩觀 아래에서 주살誅殺되기 전에는 자공子貢도 속일 수 있었으나 양관兩觀 아래에서 주살된 뒤에는注+≪孔子家語≫에 보인다. 시인市人들도 속일 수 없었으니, 이는 시인市人이 과연 자공子貢보다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험증되기 이전과 이후의 살피기 어려움과 쉬움이 본래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이 안배한 오행五行의 운행규율을 어지럽혀〉 홍수洪水재화災禍를 당하기 전에 치수책治水策이 실패할 것을 밝게 살폈다면 천하 사람이 모두 제요帝堯가 되었을 것이고, 궤변詭辯하는 사악함이 드러나기 전에 소정묘少正卯의 말이 틀렸음을 살폈다면 천하 사람이 모두 공자孔子가 되었을 것이지만, 만약 반드시 이미 험증되기를 기다린 뒤에 살핀다면 다만 비옥比屋시인市人의 지혜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걸夏桀[하계夏癸]이 남소南巢로 추방된 뒤에는 반드시 이윤伊尹을 다시 만류해 임용할 방법이 없음을 생각했을 것이고, 상신商辛목야牧野에서 기사회생起死回生하였다면 반드시 조이祖伊를 다시 임용할 방법이 없음을 생각했을 것이며,注+모두 ≪尙書≫에 보인다. 부차夫差고소성姑蘇城에서 탈출하였다면 반드시 오자서伍子胥가 이미 죽어 다시 살릴 수 없음을 생각했을 것이다.注+≪史記≫ 〈吳世家〉에 보인다.
이해利害가 이미 험증된 뒤에는 비록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포학한 사람이라도 오히려 〈신하들의 충언忠言을〉 따라야 함을 알아서 당초에 따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그렇다면 천하 사람들의 말을 이해가 험증되기 전에 살피는 것을 어찌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천하 사람들의 말을 이미 이해가 험증된 뒤로부터 살피는 것을 어찌 쉽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홀로 이해利害가 험증되기 전에 말을 살피는 것이 어려운 것 같으나 사실은 쉽고, 이해가 험증된 뒤에 말을 살피는 것이 쉬운 것 같으나 사실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말하는 자들에 반대하고자 함을 즐겨서가 아니니, 이른바 바른 말이 반대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해가 험증되기 전에는 이로워도 이로운 줄을 모르고 해로워도 해로운 줄을 모르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 이해에 분란紛亂[]되지 않아서이니 마음을 써서 이해를 살피는 것이 모두 마음의 정리正理이기 때문이다.
나의 바른 마음으로 천하의 말을 살피면 선한 말, 악한 말, 간사한 말, 정직한 말이 모두 내 앞에 펼쳐져 도망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어려운 것 같으나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닌가?
이해가 험증된 뒤에 이르러, 내가 그 말(예언)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을 보면 속으로 그 말을 따를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니 이는 〈발생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지 마음을 믿는 것이 아니며, 내가 그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속으로 그 말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니 이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이지 마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의심이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발생하는〉 일에서 나온다면 그 폐해弊害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인신人臣이 바른 말로 임금의 잘못을 간쟁하는 경우 임금이 그 간언을 따르면 유리하고, 임금이 따르지 않으면 유해有害하였으니, 후세 사람들은 그 일이 험증된 것으로 인해 그 말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믿는 것은 괜찮지만, 천하天下에는 본래 옳지 않은 마음으로 임금의 잘못을 간하는 자도 있음을 알지 못하니, 〈그 이유는〉 신하가 비록 임금의 과오를 안다 하더라도 자기가 진간進諫하면 과오를 면할 수 없으며, 비록 임금의 잘못을 거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진간하면 과실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 간언을 따르지 않으면 당연히 환해患害가 있겠지만 임금이 간언을 따르더라도 환해가 있을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은 다만 임금이 간언을 따르지 않으므로 인해 생기는 환해만을 보았고, 간언을 따름으로 인해 생기는 환해는 보지 못하여 그 일이 험증된 것에 빠져 그 이치가 어그러진 것은 잊고서 경쟁적으로 그 유설遺說들을 주워 모아 인습하니, 대체로 이것이 난망亂亡이 계속되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것이 내가 말한 쉬운 것 같으나 사실은 어렵다는 것이니, 나라 자상子上의 일이 바로 이러하다.
자상子上 성왕成王상신商臣태자太子로 세우려는 것을 하였더니, 얼마 뒤에 성왕成王의 잘못을 정확히 맞추었으나 자상子上이 간한 방법 또한 잘못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미 “임금님의 나이가 아직 젊으시고, 또 사랑하는 아들이 많으니, 〈만약 그를 태자로 세웠다가 뒤에 다시〉 그를 폐출廢黜하게 된다면 화란禍亂이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고, 또 “나라에 태자로 세워진 분은 항상 나이가 어린 분이었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두 종류의 말은 실로 만세 화난禍難의 시초이다.
가령 성왕成王자상子上전설前說을 따랐다면 국본國本을 세우지 않아 태자의 자리가 오래 비었을 것이니 어찌 분수 밖의 자리를 넘보는 간계姦計가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가령 성왕成王자상子上후설後說을 따랐다면 적서嫡庶가 분명치 않고 장유長幼가 순서를 잃었을 것이니 어찌 찬탈의 가 싹트지 않았겠는가.
나는 이 두 가지 화가 웅장熊掌의 변란과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뒤였을지 모르겠다.
후세에는 상신商臣시역弑逆할 것이라고 예언한 자상子上의 말이 험증된 것을 보고서 드디어 그 말을 믿었다가 화란에 빠진 자가 있다.
선종宣宗처럼注+≪新唐書≫ 〈本紀〉에 보인다. 후사後嗣를 세우는 일에 기휘忌諱한 것은 실로 “임금님의 나이가 아직 젊으십니다.[齒未]”라고 한 자상子上의 말이 그르친 것이고, 문제文帝처럼 서얼庶孽적자嫡子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실로 “태자로 세워진 분은 항상 나이가 어린 분이었습니다.[擧少]”라고 한 자상子上의 말이 그르친 것이다.
그 밖에도 이로 인해 성명性命을 상실한 자를 일일이 열거하기가 쉽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이미 험증된 말을 즐겼다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화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
상신商臣의 죄악으로 말하면 〈제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의 심보를 가진 자가 아니라면 모두 급히 피할 것이니, 〈그 말이〉 후세에 화를 끼치는 것이 아마도 자상子上의 말만큼 혹독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장각張角나라를 망칠 화수禍首가 될 만하지 못하고 장각張角을 토벌한 자가 도리어 나라를 망친 화수이며,注+魏나라 曹操를 이른다. 노순盧循나라를 망칠 화수가 될 만하지 못하고 노순盧循격멸擊滅한 자가 도리어 나라를 망친 화수이며,注+宋나라 劉裕를 이른다. 상신商臣이 만세의 화수가 될 만하지 못하고 상신商臣을 배척한 자가 도리어 만세의 화수이다.
천하의 화환禍患은 본래 조짐은 여기에서 일어나지만 결과는 저기에 나타나는 것이니, 어찌 〈화환이 시작될〉 초기에 미리 헤아림으로써 〈그 결과를〉 알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 齒는 나이이다. 아직 젊다는 말이다.〈杜注〉
역주2 : 또 寵愛하는 아들이 많으니 만약 그를 태자로 세웠다가 다시 그를 廢黜하면 禍亂을 취하는 길이 된다는 말이다.〈附注〉
역주3 : 擧는 세우는 것이다.〈杜注〉
역주4 : 잔인하게 不義를 행할 것이라는 말이다.〈杜注〉
역주5 : 職은 商臣의 庶弟이다.〈杜注〉
역주6 : 그 일을 희미하게 들었으나 사실 여부를 분변하지 못한 것이다.〈附注〉
역주7 : 저본에는 ‘芊’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羋’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역주8 : 江羋는 成王의 누이이니 江나라로 出嫁한 여자이다.〈杜注〉
역주9 : 呼는 發聲이다. 役夫는 賤者의 呼稱이다.〈杜注〉
역주10 : 職을 섬길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杜注〉
역주11 : 또 出奔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附注〉
역주12 : 大事는 임금을 弑害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杜注〉
역주13 : 宮甲은 太子宮의 甲士(兵士)로 僖公 28년에 楚王이 子玉에게 딸려 보냈던 東宮의 兵卒이다. 商臣이 이 宮甲을 가지고 王을 포위한 듯하다.〈杜注〉
역주14 : 熊掌은 익히기가 어려우니, 시간을 오래 끌면 장차 외부의 구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杜注〉
역주15 : 商臣의 잔인함이 심함을 말한 것이다. 斂도 하기 전에 惡諡부터 올린 것이다.〈杜注〉
역주16 : 鯀은 堯임금의 신하로 禹王의 아버지이다. 堯임금 때에 9년의 홍수가 있어 鯀에게 다스리게 하였는데 9년이 되어도 공적을 이루지 못하니, 舜임금이 섭정을 할 때 鯀을 羽山으로 귀양 보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禹를 등용하였는데, 禹는 물의 순리를 알아 홍수를 잘 다스렸다. ≪書經≫ 〈堯典〉에 “帝堯가 ‘가서 공경히 임무를 수행하라.’ 하였는데, 9년이 되도록 공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帝曰 往欽哉 九載 績用 弗成]” 하였고, 〈舜典〉에 “鯀을 羽山으로 귀양 보냈다.[殛鯀于羽山]” 하였다.
역주17 : ≪孔子家語≫ 〈始誅〉에 의하면, 孔子가 魯나라의 司寇가 되어 재상의 일을 攝行한 지 7일째 되는 날에 정사를 문란케 한 少正卯를 兩觀 아래에서 죽이고 3일 동안 그 시신을 진열하여 사람들에게 보였다. 이에 제자인 子貢이 孔子에게 魯나라의 名士를 죽인 이유를 묻자, 孔子는 少正卯가 “첫째 마음은 일에 통달했으나 음험하고, 둘째 행실이 편벽되면서 굳세고, 셋째 거짓을 말하면서 말재주가 좋고, 넷째 기괴한 일을 널리 기억하고, 다섯째 잘못을 따르면서 꾸민다.[一曰心達而險 二曰行辟而堅 三曰言僞而辯 四曰記醜而博 五曰順非而澤]”는 다섯 가지가 그 죄목이라고 설명하고, 少正卯는 이 다섯 가지 모두를 지니고 있으니 사람 중의 奸雄인 만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兩觀은 궁궐 앞 양쪽에 세운 높은 망루로 고대에 이곳에 법률을 게시해놓았다. 孔子가 少正卯를 양관 아래에서 처형하였다고 하여 나라의 공공연한 처벌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역주18 : ≪書經≫ 〈仲虺之誥〉에 “成湯이 夏桀을 南巢에 유폐시켰다.[成湯 放桀于南巢]”라고 하였으니 ‘南巢’는 桀이 망하였음을 상징하는 지명이고, ≪書經≫ 〈牧誓〉에 “武王이 아침에 商나라의 郊外인 牧野에 이르러 군사에게 맹세하였다.[王 朝至于商郊牧野 乃誓]”라고 하였으니 ‘牧野’는 紂王이 멸한 곳이다. 본래 伊尹은 有莘의 들에서 농사짓고 있었는데 湯王이 세 번이나 招聘하여 마침내 出仕하였다. 처음에 湯이 伊尹을 등용하여 桀에게 보냈으나, 桀이 등용하지 않아 湯에게 돌아오기를 다섯 번을 하고서야 伊尹이 湯을 도와 桀을 추방하였다.
역주19 : 春秋時代 越王 句踐은 吳王 夫差에게 會稽山에서 크게 패한 후 쓸개를 씹으며 복수할 것을 꾀하다가 미인 西施를 夫差에게 바쳤다. 夫差는 그의 미모에 혹하여 姑蘇臺를 크게 짓고는 날마다 遊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이것을 간하는 충신 伍子胥를 죽였다. 이 때문에 결국 吳나라는 越나라에게 멸망을 당했다.
역주20 : 唐 宣宗(李沈)은 말년에 작은아들인 夔王 李滋를 총애하여 그를 황태자로 삼고자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에 부딪혀 오랫동안 태자를 결정하지 못한 채 죽었으므로 나라가 크게 혼란해졌다.
역주21 : 張角은 東漢 말 黃巾賊의 수령이다. 黃老를 신봉하여 요망한 方術로 사람을 가르치면서 太平道라 호칭하고 呪符水(주술을 가한 부적을 태운 물)로 병을 치료하니, 따르는 무리들이 모두 그를 神明이라 여겼으며, 10여 년 사이에 信徒가 수십만 명에 이르렀는데, 皇甫嵩과 曹操에 의해 평정되었다.
역주22 : 盧循은 東晉 사람이다. 孫恩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孫恩이 반란을 일으키자 通謀하였으며, 孫恩이 죽은 뒤 그 남은 무리들의 추대로 두목이 되었다. 뒤에 劉裕의 공격을 받아 대패하였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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