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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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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박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0-02-01 隨會料晉師
【左傳】 文十二年이라 秦爲 秦伯伐晉하야 取羈馬하다 晉人禦之할새 以從秦師于河曲하다 臾騈曰 秦不能久리니 하소서 從之하다
秦人欲戰하야 對曰 趙氏新出其屬曰이니 必實爲此謀하야 將以老我師也니이다 니이다 하고 好勇而狂하며 且惡臾騈之佐上軍也하니 리이다 하다
秦軍掩晉上軍하니 하다하야 怒曰 어늘 敵至不擊하고 將何俟焉 軍吏曰 니이다 穿曰 我不知謀하니 將獨出이라하고 乃以其屬出하다
宣子曰 秦以勝歸 我何以報오하고 하다
曰 兩軍之士 皆未憖也 明日請相見也하노라 臾騈曰 將遁矣 必敗之리이다
胥甲趙穿當軍門呼曰 死傷未收而棄之 不惠也 不待期而薄人於險 無勇也라하니 하다 秦師夜遁하다
復侵晉하야 入瑕하다
20-02-02 吳將伐魯 問叔孫輒公山不狃
【左傳】 哀八年이라 吳爲邾故 將伐魯하야 한대 叔孫輒對曰 하니 伐之 必得志焉하리라하고 한대
見一事而得一理 非善觀事者也 聞一語而得一意 非善聽語者也 理本無間하니 一事通則萬事皆通하고 意本無窮하니 一意解則千語皆解
一編耳 尺簡寸牘 所載幾何 豈能盡括車壘輿地之形하야 預數之難哉
然子房得之하니하고 覘影知形하야 迎閲而群策鋒起하고 隨諷而衆機叢生하니 此所以能用有限之書 對無窮之變也
如使子房見一事而滯於一事하고 聞一語而滯於一語 則雖盡納九州之圖於胸中이라도 倉卒造次 亦必有書之所不能該者矣리라
書已盡이라야 變方出하고 書已陳이라야 變方新하니 非告往知來者 殆未足與議也리라
盖嘗以左氏所載論之 隨會自晉奔秦注+隨會自晉奔秦:文六年하야 而爲秦謀晉 說者秪以爲隨會之過耳 公山不狃自魯奔吳注+公山不狃自魯奔吳:定十二年하야 而不爲吳謀魯 說者祗以爲公山不狃之善耳
過在隨會 於我何損이며 善在不狃 於我何加리오 政使能體之於身이면 則所懲者 特謀宗國之一過
天下之過 果盡於此乎 所法者特全宗國之一善이나 天下之善 果盡於此乎 惟擧一隅而反三隅 則因二子得失之迹하야 固可爲吾身無窮之用焉이리라
隨會有謀晉之過로되 而不失爲良大夫하니 吾是以知素行之不可無 公山不狃有全魯之善이로되 而不免爲叛人하니 吾是以知小節之不足恃
以隨會之賢으로 而忽有謀晉之過하니 吾是以知惡念之難防이요 以不狃之不肖 而忽有全魯之善하니 吾是以知善念之易發이라
使隨會事事皆若謀晉이면 則隨會將轉而爲不狃 使不狃事事皆若全魯 則不狃將轉而爲隨會리니 吾是以知治己者必長其善而絶其過
以終身論이면 則隨會爲君子 不狃爲小人이며 以一事論이면 則隨會爲小人이요 不狃爲君子 吾是以知論人者必略其暫而待其終이라
自兩端而推之 可慕可懲 可遵可戒 擧集其中이라 然其用猶未窮也리라
抑又有大可論者焉이라 隨會 晉之良也 其言於晉國無隱情 其祝史陳信於鬼神 無愧辭也하니 必非賣宗國以求和者也
其意以一心可以事百君이나 百心不可以事一君이니 在晉則當忠於晉하고 在秦則當忠於秦이라 苟於秦伯之問 而不以實對 明則有隱於秦伯이요 幽則有愧於鬼神矣
抑不知子爲父隱하고 臣爲君隱이니 在他人則以直이요 在君父則以隱爲直이라 今隨會視君父如他人하야 盡發宗國之情하야 以資寇讐하니
惜夫 隨會後太公而生하야 不聞反葬之義注+隨會後太公而生 不聞反葬之義:하고 先夫子而沒하야 不見遲行之風注+不見遲行之風:이라 故其視父母之國 恝然無情하야 意在爲直이나 卒陷於不直이라 吾是以知善之難擇이요 而是之難審也
至於公山不狃所以眷眷宗國하야 藹然忠厚 盖以剽聞闕里洙泗之餘敎而然耳 然自隨會而觀不狃 則厚薄有間이요
若格之以吾聖人之法이면 則不狃之所自處者 亦未得爲盡善也 不狃對叔孫之辭正矣로되 至於使之爲하얀 乃導而之險하야 以困吳師하니 惜其始正而終入於詐也
魯國當隱하고 吳亦不當欺 不狃苟未忘宗國이면 則辭於吳子하야 弗與伐魯之役이니 旣不負於舊君하고 亦不負於新主하야 義聲將徹於吳魯之間矣리라
今身爲吳帥하야 而心爲魯用이니 懷二心而事人이라 庸非聖門之罪人乎
吾是以益知善未易擇이니 愈擇愈差하고 是未易審이니 愈審愈謬 君子之於學 其可以易心處之哉
讀隨會不狃之事者 不過以爲兩事而止耳 類而通之하고 區而別之하야 直而推之하고 曲而暢之 見層出하고 衆理輻湊리니


수회隨會나라 군대의 정황을 예측하다
문공文公 12년, 나라는 영호令狐에서의 싸움에서 패배한 이유로 겨울에 진백秦伯나라를 토벌해 기마羈馬하였다. 진인晉人진군秦軍을 방어하여 하곡河曲에서 진군秦軍을 맞아 싸웠다. 유병臾騈이 “진군秦軍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니 보루堡壘를 높이 쌓고 군진軍陣의 경비를 단단히 하고서 기다리소서.”라고 하니, 그의 말을 따랐다.
진인秦人교전交戰하고자 하여 진백秦伯사회士會(수회隨會)에게 “어떻게 하면 전쟁할 수 있겠는가?”고 물으니, 사회士會가 대답하였다. “조씨趙氏가 새로 유병臾騈이라는 부하[]를 발탁[]하였는데, 실로 이 자가 이런 계책計策을 꾸며 우리 군대를 지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조씨趙氏에게는 穿이라는 측실側室이 있는데 진군晉君의 사위로 총애를 받고 있으나 나이가 어려 군사軍事를 알지 못하고 용맹을 좋아하여 함부로 잘난 체하며[], 또 유병臾騈상군上軍가 된 것을 미워하니, 경예병輕銳兵을 시켜 한번 공격하고는 즉시 후퇴後退하게 한다면 전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백秦伯옥벽玉璧황하黃河에 던져 전쟁의 승리를 빌었다.
진군秦軍나라 상군上軍을 습격하니 조천趙穿진군秦軍을 뒤쫓았으나 따라잡지 못하였다. 조천趙穿은 돌아와서 화를 내며 말하였다. “양식糧食을 싸서 메고 갑옷을 입은 채 앉아 있는 것은 진실로 을 잡기 위해서인데 지금 이 왔는데도 추격하지 않고 장차 무엇을 기다린다는 말인가?” 군리軍吏가 “아마 기다리는 바가 있어서일 것입니다.”고 하니, 조천趙穿이 말하기를 “나는 계모計謀를 모르니 혼자라도 나가서 싸우려 한다.”고 하고서 그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갔다.
그러자 선자宣子가 말하기를 “진군秦軍조천趙穿을 잡는다면 우리나라의 한 을 잡는 것이니, 진군秦軍이 승리하고 돌아간다면 우리는 〈우리나라의 부로父老들에게〉 무어라고 보고報告하겠는가?”라고 하고서 전군全軍을 거느리고 나가 싸우다가 양군兩軍이 동시에 퇴각하였다.
나라의 행인行人(사자使者)이 밤에 진군晉軍에 가서 하기를 “양국兩國 군대軍隊에 모두 결손缺損[]이 없으니 내일 전장戰場에서 서로 만나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유병臾騈이 말하기를 “사자使者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움직이고 말소리가 침착하지 않으니,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장차 도망치려는 것이니 저들을 황하黃河로 몰아붙이면 반드시 패배敗北시킬 수 있습니다.”고 하자,
서갑胥甲조천趙穿군문軍門을 막아서서 큰소리로 말하기를 “사상자死傷者를 수습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은혜롭지 않은 짓이고, 약속한 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진인秦人을 험한 곳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용맹이 없는 짓이다.”고 하니 진군晉軍은 추격을 정지停止하였다. 진군秦軍은 밤을 이용해 도망하였다.
〈뒤에 진군秦軍은〉 또 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로 쳐들어갔다.
나라가 나라를 치고자 하여 숙손첩叔孫輒공산불뉴公山不狃에게 묻다
애공哀公 8년, 나라가 나라를 위한 이유로 나라를 치고자 하여 숙손첩叔孫輒에게 묻자, 숙손첩叔孫輒이 대답하기를 “나라는 이름만 있고 실상이 없으니, 토벌하면 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고서 물러와서 공산불뉴公山不狃에게 고하였다.
그러자 공산불뉴公山不狃가 말하였다. “〈당신께서 이렇게 말한 것은〉 가 아닙니다. 군자君子는 본국을 떠나 외국外國으로 망명亡命하는 경우에도 원수怨讐의 나라로 가지 않고, 〈도망간 나라의〉 신하가 되기 전에 그 나라가 본국本國을 치는 일이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가서〉 임금의 명을 받고 달려가 싸우다가 죽어야 하고, 이미 그 나라에 몸을 의탁依託하였으면 〈그 토벌에 참여하지 않고〉 몸을 숨겨야 합니다. 그리고 또 군자가 자기 나라를 떠난 경우에도 원한怨恨으로 인해 고향故鄕을 버리지 않는 것인데, 지금 당신께서는 작은 원한으로 조국을 전복顚覆시키고자 하시니 어렵지 않겠습니까?”
한 가지 일을 보고 하나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은 일을 잘 관찰하는 자가 아니고, 한 마디 말을 듣고 하나의 뜻을 터득하는 것은 말을 잘 알아듣는 자가 아니다. 이치는 본래 차이가 없으니 한 가지 일에 통달하면 온갖 일에 모두 통달할 수 있으며, 뜻은 본래 다함이 없으니 한 마디 말의 뜻을 이해하면 천 마디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장량張良이〉 흙다리 위[圯上]에서 받은 서책은 한 권의 병서兵書일 뿐이니, 작은 간독에 실린 것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런데 어찌 거마車馬와 보루와 지리의 형세를 다 포괄하여 영정嬴政항우項羽한신韓信팽월彭越의 성패[]를 예측할 수 있었는가?
黃石公과 張良黃石公과 張良
그러나 자방子房(장량張良)이 이 책을 얻고는 양 값을 물어 말 값을 알게 되고, 그림자를 보고 형체를 알게 되어, 실린 글을 열독閱讀하면 온갖 책략이 벌떼처럼 일어났고, 풍간을 들으면 온갖 기모機謀가 무더기로 생겨났다. 이것이 〈자방子房이〉 유한有限한 병서로 무궁無窮한 변화에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가령 자방子房이 한 가지 일을 보고 한 가지 일에 구애되고 한 마디 말을 듣고 한 마디 말에 구애되었다면, 비록 구주九州의 지도를 가슴속에 모두 담았다고 하더라도 총망중에 반드시 병서 속에 기재되지 않은 일을 만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책이 다 닳아 없어져야 바야흐로 변화에 응대할 방법이 생기고, 책이 누더기가 되어야 바야흐로 새로운 방법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간 것을 일러주면 올 것을 아는 자가 아니라면, 더불어 의논할 만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일찍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바로써 의론한 적이 있다. 수회隨會나라에서 나라로 망명하여注+≪春秋左氏傳≫ 文公 6년에 보인다. 나라를 위해 나라를 공격하기를 계획한 것에 대해 논평한 자는 이것을 단지 수회隨會의 과실로 여겼을 뿐이고, 공산불뉴公山不狃나라에서 나라로 망명하여注+≪春秋左氏傳≫ 定公 12년에 보인다. 나라를 위해 나라를 공격하기를 계획하지 않은 것에 대해 논평한 자는 이것을 단지 공산불뉴公山不狃의 선행으로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논평하는 자의 말대로라면〉 과실이 수회隨會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 무슨 손해가 되고 선행이 공산불뉴公山不狃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가령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징계할 것은 다만 조국을 모해謀害한 한 가지 과실 뿐이다.
그러나 천하의 과실이 과연 여기에서 다 끝나는 것인가? 본받을 것은 다만 조국을 보전한 한 가지 선행뿐이다. 그러나 천하의 선행이 과연 여기에서 다 끝나는 것인가? 오직 한 모퉁이를 들어 세 모퉁이를 반증할 수 있다면 이 두 사람의 잘잘못을 이용해 반드시 내 몸의 무궁한 쓰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수회隨會나라를 모해한 과실이 있었으나 어진 대부가 됨을 잃지 않았으니 나는 이로써 평소에 조행操行이 없어서는 안 됨을 알았고, 공산불뉴公山不狃나라를 보전한 선행이 있었으나 반역자가 됨을 면하지 못했으니 나는 이로써 작은 절개는 믿을 것이 못됨을 알았다.
수회隨會의 어짊으로도 갑자기 나라를 모해하는 과실이 있었으니 나는 이로써 악념惡念은 막기 어려움을 알았고, 공산불뉴公山不狃의 불초함으로도 갑자기 나라를 보전하는 선행이 있었으니 나는 이로써 선념善念은 일어나기 쉬움을 알았다.
가령 수회隨會가 행한 일마다 모두 나라를 모해한 일과 같았다면 수회隨會가 바뀌어 공산불뉴公山不狃가 되었을 것이고, 가령 공산불뉴公山不狃가 행한 일마다 모두 나라를 보전한 일과 같았다면 공산불뉴公山不狃가 바뀌어 수회隨會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로써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반드시 자기의 선념善念을 키우고 과실을 단절함을 알았다.
종신終身행사行事로 논하면 수회隨會군자君子이고 공산불뉴公山不狃소인小人이며, 한 가지 일로 논하면 수회隨會는 소인이고 공산불뉴公山不狃는 군자이다. 나는 이로써 사람을 논평하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일시의 행사는 놔두고 그 사람의 일생의 행사를 갖춰야 함을 알았다.
이 두 가지로부터 미루어나가면 사모할 만하고 징계할 만하고 준수할 만하고 계구戒懼할 만한 것이 모두 그 안에 모일 것이다. 그러나 그 쓰임은 오히려 무궁할 것이다.
또 크게 논할 만한 것이 있다. 수회隨會나라의 어진 대부이다. 그가 나라 정세를 분석한 말에 조금의 숨김도 없으니, 축사祝史귀신鬼神에게 신임을 취하는 기도의 말로 써도 부끄러울 말이 없다. 그는 결코 조국을 팔아 화해를 구한 자가 아니다.
그의 속마음은 아래와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한 마음으로 여러 군주를 섬길 수는 있지만 여러 마음으로 한 군주를 섬길 수 없으니, 나라에 있을 때에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야 하고, 나라에 있을 때에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만일 진백秦伯의 물음에 진실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살아서는 진백秦伯에게 숨김이 있는 것이고, 죽어서는 귀신鬼神에게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식은 아비를 위해 숨겨주는 것이 도리이고 신하는 군주를 위해 숨겨주는 것이 도리이니, 타인에게 있어서는 정직을 정직으로 여기고, 군부君父에게 있어서는 숨김을 정직으로 여기는 것이 도리임을 모른 것이다. 지금 수회隨會군부君父 보기를 타인 보듯이 해서 조국의 실정을 다 드러내어 원수를 도왔으니, 이는 양을 훔친 아비를 고발한 자식과 같은 무리일 뿐이다.
아! 애석하다. 수회隨會태공太公보다 뒤에 태어나서 반장反葬하는 의리를 듣지 못하고,注+≪史記≫에 보인다. 공자孔子보다 먼저 죽어서 지행遲行하신 풍도를 보지 못했음이여!注+≪孟子≫에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부모父母의 나라를 냉담하게 보고 정이 없어서 정직하게 행동하는 데 뜻이 있었으나 끝내 정직하지 못한 죄에 빠졌으니, 나는 이로써 선악善惡을 선택하기 어렵고 시비是非를 살피기 어려움을 알았다.
공산불뉴公山不狃에게 조국을 잊지 못해 연연해하며 따사로운 충후忠厚의 마음이 있었던 것은 궐리闕里에서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전해 들었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회隨會의 〈부직不直을〉 공산불뉴公山不狃의 〈충후忠厚와〉 비교해보면 두 사람의 후박厚薄(선악善惡)에 차이가 있다.
만일 우리 성인의 법도로 추구해보면 공산불뉴公山不狃가 스스로 처신한 것 또한 진선盡善함이 될 수 없다. 공산불뉴公山不狃숙손叔孫에게 대답한 말은 정직했으나 오왕吳王이 그를 원수로 삼음에 미쳐서는 도리어 오군吳軍을 인도해 험난한 길로 행군하게 하여 오군吳軍을 곤란하게 하였으니, 그가 처음에는 정직했고 끝내는 속임에 이른 것이 애석하다.
나라를 위해서 숨김이 있었던 것이 당연하지만 나라에 대해서도 속임이 있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공산불뉴公山不狃가 진실로 조국을 잊지 않았다면 오왕吳王에게 사절하고서 나라를 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어야 하니, 〈그렇게 했다면〉 이미 옛 임금도 저버리지 않고 또 새 임금도 저버리지 않아 충의롭다는 명성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퍼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몸은 나라의 장수가 되었으면서 마음은 나라를 위해 연연해하였다. 이는 두 마음을 품고 남을 섬긴 것이니 어찌 성문聖門의 죄인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로써 선악善惡은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서 선택할수록 더욱 실수가 생기고, 시비是非는 쉽게 살필 수가 없어서 살필수록 더욱 잘못된다는 것을 알았다. 군자가 학문을 함에 있어 어찌 경솔한 마음으로 처리해서야 되겠는가.
수회隨會공산불뉴公山不狃의 일을 읽는 자들은 〈이를 서로 관계없는〉 두 가지 일로 여기는데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종류별로 모아 공통점을 찾고 서로 다른 점을 구별하여, 곧은 일은 미루어 넓히고 굽은 일은 잘 펴서 통하게 한다면, 식견이 층층이 쌓이고 각종 사리가 모두 모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항陳亢이 한 가지를 물어 세 가지를 알게 된 방법이며, 안자顔子가 하나를 듣고 열을 안 방법이며, 대순大舜이 한 선언善言을 듣고 한 선행善行을 봄에 미쳐서는 마치 강하江河를 터놓은 것 같아 그 성대한 기세를 막을 수 없게 된 방법이다.
顔回顔回


역주
역주1 : 令狐의 전쟁은 文公 7년에 있었다. 羈馬는 晉나라 邑이다.〈杜注〉
역주2 : 深壘는 高壘이다. 해자가 깊으면 堡壘가 높아지는 것이다. ‘固軍’은 군대가 머문 곳에 경비를 견고히 하는 것이다. ‘待之’는 저들과 전쟁하지 않고, 저들 스스로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附注〉
역주3 : 晉나라의 士會가 文公 7년에 秦나라로 도망갔다.〈杜注〉 士會는 隨武子로 士蔿(晉나라 대부)의 손자이다. 士會는 晉 文公 사후 후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일이 잘못되어 할 수 없이 先蔑을 좇아 秦나라로 망명하지만 晉나라를 저버린 것이 아니었다. 秦나라에 있으면서도 先蔑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이는 晉나라에 있을 때 先蔑이 正卿으로서 잘못을 諫하여 바로잡지 못한 죄를 책망하는 뜻과, 또 함께 出奔하였기 때문에 黨을 짓는다는 비난을 싫어하는 뜻에서 만나지 않은 것이라고 〈杜注〉에 밝히고 있다. 士會는 文公 13년에 晉나라로 돌아온다.
역주4 : 臾騈은 趙盾의 屬大夫로 새로 進出하여 上軍의 佐가 되었다.〈杜注〉
역주5 : 側室은 支子이다. 穿은 趙夙의 庶孫이다.〈杜注〉
역주6 : 弱은 年少한 것이다. 또 전쟁을 겪은 적이 없어 軍事를 모른다는 말이다.〈杜注〉
역주7 : 肆는 갔다가 즉시 後退하는 것이다.〈杜注〉 輕銳兵을 시켜 잠시 가서 공격하고는 속히 후퇴하게 하여 趙穿을 激怒시킨다면 一戰할 수 있다는 말이다.〈附注〉
역주8 : 승리를 祈求한 것이다.〈杜注〉
역주9 : 上軍은 움직이지 않고 趙穿이 혼자 추격한 것이다.〈杜注〉
역주10 : 坐甲은 戰士들이 갑옷을 입으면 다시 누울 수 없기 때문에 앉아서 敵을 기다리는 것이다.〈附注〉
역주11 : 공격할 시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다.〈杜注〉
역주12 : 僖公 33년에 晉侯가 一命으로 郤缺을 임명하여 卿으로 삼고도 軍帥의 數에는 넣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晉나라에는 본래부터 이름만 있고 實職이 없는[散位] 卿이 있었다.〈杜注〉
역주13 : 司馬法에 “옛날에는 도망가는 敵을 멀리까지 추격하지 않고, 후퇴하는[綏] 적을 따라잡지 않았다. 도망가는 적을 멀리 추격하지 않으면 敵이 우리를 유인하기 어렵고, 후퇴하는 적을 따라잡지 않으면 적이 우리의 城을 함락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옛날에는 退軍하는 것을 ‘綏’라고 한 것이다. 晉과 秦 두 나라는 전쟁하려는 뜻이 굳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기를 서로 마주치기도 전에 兩軍이 앞다투어 퇴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交綏(兩軍이 동시에 퇴각하였다)’라고 한 것이다.〈杜注〉
역주14 : 交戰하는 사이에도 使者는 왕래하기 때문에 秦나라가 밤에 行人을 晉軍으로 보내어 교전할 시기를 약속하게 한 것이다.〈附注〉
역주15 : 目動은 마음이 불안한 것이고, 言肆는 소리가 放恣하여 常度를 잃은 것이다.〈杜注〉
역주16 : 薄은 逼迫이다.〈杜注〉
역주17 : 晉軍이 秦軍을 黃河로 몰아붙이는 일을 停止한 것이다. 宣公 원년에 胥甲을 추방한 傳의 배경이다.〈杜注〉
역주18 : 討伐해도 될지를 물은 것이다. 輒은 본래 魯나라 사람이다.〈杜注〉
역주19 : 大國이란 이름만 있고, 그에 걸맞은 실상이 없다는 말이다.〈杜注〉
역주20 : 公山不狃도 본래 魯나라 사람이다.〈杜注〉
역주21 : 故國를 대하는 禮가 아니라는 말이다.〈附注〉
역주22 : 違는 故國을 떠나 他國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論語≫ 〈公冶長〉에 “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棄而違之(崔子가 齊나라 임금을 시해했을 때 陳文子에게 말 10乘이 있었으나 陳文子는 재산을 포기하고 齊나라를 떠났다.)”란 말이 보인다.
역주23 : 도망간 나라의 신하가 되기 전에 만약 本國을 토벌하는 일이 있으면, 돌아와서 임금의 명을 받고 달려가 싸우다가 그 禍難에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杜注〉
역주24 : 일찍이 依託한 바가 있으면 故國을 위하여 나쁜 점을 숨긴다는 말이다.〈杜注〉 몸을 의탁하였으면 그 토벌에 참여하지 않고 몸을 숨기는 것이다.〈楊注〉
역주25 : 夫人은 君子를 가리킨다. 군자가 자기 나라를 떠나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附注〉
역주26 : 개인의 원한[怨惡]으로 옛 鄕黨의 友好를 폐기하지 않는 것이다.〈杜注〉
역주27 : 叔孫輒은 魯나라 公族이다. 그러므로 魯나라를 宗國(祖國)이라 한 것이다.〈杜注〉
역주28 : 본편의 ≪春秋左氏傳≫ 인용은 여기까지이나, 본문의 이해를 위하여 아래 글을 첨부한다. 아래는 吳王과 公山不狃의 대화이다.
吳王이 子洩에게 묻자, 子洩(公山不狃)이 대답하기를 “魯나라에 비록 나라를 함께 부흥시킬 사람은 없으나 반드시 함께 죽을 사람은 있습니다. 諸侯가 救援하려 할 것이니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晉나라가 齊나라․楚나라와 함께 魯나라를 돕는다면 이 나라들이 吳나라의 네 怨讐國이 될 것입니다. 저 魯나라는 齊나라와 晉나라의 입술입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려지는 것은 임금님께서도 아시는 바이니, 저 齊나라와 楚나라가 魯나라를 구원하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王問於子洩 對曰 魯雖無與立 必有與斃 諸侯將救之 未可以得志焉 晉與齊楚輔之 是四讐也 夫魯 齊晉之脣 脣亡齒寒 君所知也 不救何爲]
역주29 : 漢 高祖 劉邦의 謀臣인 張良이 일찍이 下邳의 ‘흙다리 위[圯上]’에서 黃石公을 만났는데, 黃石公이 짐짓 다리 밑으로 떨어뜨린 신을 주워다가 그의 명에 따라 공손히 꿇어앉아서 신겨 주었다. 그러자 黃石公은 닷새 뒤 새벽에 여기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張良이 약속한 날 새벽에 그곳으로 가 보니 黃石公이 벌써 나와 있었다. 黃石公이 늙은이와 약속하고 늦게 왔다고 꾸짖으며 다시 닷새 뒤에 일찍 나오라고 하였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한 다음에야 太公의 兵書를 받았다. 張良이 이를 숙독하고 익혀 漢 高祖를 보좌해서 마침내 秦나라를 멸하고 漢나라를 세웠다.(≪史記≫ 〈留侯世家〉)
역주30 : 秦나라의 姓이 嬴이다. 嬴은 嬴政으로 秦 始皇을 가리키며, 項은 漢 高祖 劉邦과 접전을 벌였던 項羽이고, 韓彭은 楚漢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던 장군인 韓信․彭越을 가리킨다.
역주31 : ‘問羊知馬’는 곁을 따라 에둘러 조사함으로써 事情의 眞相을 명백하게 아는 것을 의미한다. ≪漢書≫ 〈趙廣漢傳〉에 “가령 말의 값을 알고자 하면 먼저 개 값부터 묻고 다음에 양 값을 묻으며, 또 소 값을 물어본 다음에 말 값에 미쳐야 한다. 그 값을 삼삼오오 따져서 비슷한 것들끼리 서로 기준이 되게 하면 말의 좋고 나쁨을 알게 되어 실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鉤距者 設欲知馬賈 則先問狗 已問羊 又問牛 然後及馬 參伍其賈 以類相準 則知馬之貴賤不失實矣]”라고 하였다.
역주32 : 저본에는 ‘謂’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爲’로 바로잡았다.
역주33 : 저본에는 ‘爲直’이 없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4 : 攘羊은 ≪論語≫ 〈子路〉에 “아비가 양을 훔치자 그 자식이 고발했다.[其父攘羊 其子證之]”에서 따온 말로, 지나치게 곧아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함을 뜻한다.
역주35 : ≪史記≫에는 보이지 않는다. ≪禮記≫ 〈檀弓 上〉에 의하면 太公이 營丘[齊]에 봉해진 뒤에도 5대 동안 周나라에 反葬하였다고 한다. 反葬은 고향을 잊지 못해 타향에서 죽은 사람을 그 고향으로 옮겨다가 장사지냄이다.
역주36 : 遲行은 孔子가 고국인 魯나라를 떠날 때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천천히 걸은 것을 이른다. ≪孟子≫ 〈萬章 下〉에 “孔子之去魯 曰 遲遲 吾行也(孔子께서 魯나라를 떠나실 적에는 ‘더디고 더디다, 내 걸음이여!’라고 하셨다.)”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37 : 저본에는 ‘師’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帥’로 바로잡았다. ≪春秋左氏傳≫ 哀公 8년에 “若使子率(만약 吳나라가 당신께 군대를 거느리고 가라 한다면)”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帥’는 ‘率’의 뜻이다. 〈附注〉에 “吳王은 반드시 나에게 군대를 거느리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帥’는 단지 군대의 앞에서 길을 인도하며 무리를 이끌고 가는 것을 이르며, 군대의 將帥는 아니다.
역주38 : 저본에는 ‘間’으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聞’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9 : ≪論語≫ 〈季氏〉에 보인다. “陳亢이 물러나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하나를 물어서 셋을 알았으니, 詩를 듣고 禮를 들었으며, 또 君子가 그 아들을 멀리하는 것을 들었노라.’[陳亢 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역주40 : 저본에는 ‘之’가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41 : ≪論語≫ 〈公冶長〉에 보인다. “子貢이 대답하기를 ‘제가 어떻게 감히 顔回를 바라보겠습니까? 顔回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하였다.[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 聞一以知十 賜也 聞一以知二]”
역주42 : ≪孟子≫ 〈盡心 上〉에 보이는 孟子의 말이다. “舜임금이 깊은 산중에 거처하실 적에는 나무, 돌과 함께 거처하시며, 사슴, 멧돼지와 함께 노시니, 깊은 산중의 야인과 다른 점이 드물었는데, 한 善言을 듣고 한 善行을 봄에 미쳐서는 마치 강하를 터놓은 것 같아 그 성대한 기세를 막을 수 없으셨다.[舜之居深山之中 與木石居 與鹿豕遊 其所以異於深山之野人者幾希 及其聞一善言 見一善行 若決江河 沛然莫之能禦也]”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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