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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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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 楚鬪克公子爕作亂
【左傳】 文十四年이라 子孔潘崇將襲群舒하야 使公子燮與子儀守하고 而伐하다
하고 而使賊殺子孔이나 不克而還하다
而不得志하고 公子燮求令尹而不得이라 하다
理有常然하고 而事有適然하니 因適然之事하야 而疑常然之理 智者不由也
歷數天下之事컨대 出於常然者十之九 出於適然者百之一이니 以一廢百 奚可哉리오
父子 天性也 父不以嘗有商般으로 而疑其子注+父不以嘗有商般 而疑其子:商하고 兄弟 天倫也 兄不以嘗有蔡霍으로 而疑其弟注+兄不以嘗有蔡霍 而疑其弟: 相雖有莽注+相雖有莽:이나 而古今之廊廟 未嘗無相하고 將雖有卓注+將雖有卓:이나 而古今邊閫 未嘗無將이라
苟持不必然之事하야 而奪必然之理 則物物可畏하고 人人可防이니 其心焦然하야 無須臾寧矣리라
君人者 固有常體하니 操至公以格天下호대 合此者升하고 戾此者黜하며 向此者擢하고 犯此者刑이요
初未嘗容心於其間이라 故有譴怒而無猜嫌하고 有疏斥而無疑貳
見其惡이면 投之嶺海하고 暮見其善이면 列之朝廷하니 上無永廢之人이요 下無自絶之志 此固君人者之常體也
險薄之徒 乃謂已疏者不可再親이요 已遠者不可再近이라하야 一經擯辱이면 卽爲仇怨이라
如鬪克公子燮之於楚 特以結秦成이나 而功不酬하고 求令尹이나 而請不遂 伺間投隙하야 卒成大變이어든 況於罹投放竄殛之刑者乎
故吾不廢之則已어니와 旣廢則使不能復興 可也 吾不退之則已어니와 旣退則使不能復進 可也
是說旣行 世主之心術始蠱矣로다
抑不知二子之變 蓋出常理之外 南嚮而治 一日萬機하니 賞未直功하고 爵未滿志者 巧歷有所不能計
苟皆如二子之爲 則滔滔四顧 孰非君之讐乎 推而下之 則嘗笞之僕 不可荷囊槖이요 嘗叱之狗 不可衛門闌也 世寧有是理耶
自古及今 挈於鼎鑊하고 起於碪質하며 釋於囹圄하야之寄로대 閎大博碩하고 震耀 代不乏人하니 盍條陳彙擧하야 以開廣主意
不當獨摘二子之亂하야 敗其君恢然之度也 二子之亂 固不可以常理論이라
彼楚莊命之居守 待以不疑 無負於二子어늘 而二子則負之하니 無乃有君人之度乎
是不然이라 守國 重事也 非臨大節不可奪者 莫能也 令尹 非可求之官이니 而臣之有勞於國이라도 亦豈當如市人計物取直哉
二子之浮淺躁露如是하니 雖守一障이라도 猶難之 況委之空宮而授之鑰乎
吾見楚莊無君人之明이요 而未見其全君人之度也케라
信如是說인댄 則人君號爲度有餘而實不足者 必將濟之以察歟ㄴ저 曰 是非兩物也
道學不講하야 蔽者遂謂恢厚純誠 不足以御末世之變이라하야 於是 揣摩以鉤人之隱하고 臆度以料人之情하니 日求而日疏
曾不知天理洞然하야 本無不燭이어늘 而吾乃揣摩以汨之하고 臆度以撓之하야 溷亂方寸하야 使之舛錯하니 其所以自智者 乃所以自昏也
揣摩臆度之私盡이면 則是非美惡之理彰이라 至明之地 本在恢厚純誠中이어늘 世俗乃捨之하고 而競求於譎詐辨慧之際하니
爾欲察이면 毋厭昬하고 爾欲巧 毋厭拙하라


나라의 투극鬪克공자公子 이 변란을 일으키다
문공文公 14년, 장왕莊王이 즉위하자, 자공子孔(영윤令尹 성가成嘉)과 반숭潘崇군서群舒를 습격하기 위해 공자公子 자의子儀(투극鬪克)에게 나라를 지키게 하고는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서료舒蓼(군서群舒)를 토벌하였다.
楚 莊王楚 莊王
〈그런데 공자公子 자의子儀〉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에 성을 쌓고서 자객刺客[]을 보내어 자공子孔을 죽이게 하였으나 성공成功[]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8월에 두 사람이 초자楚子를 데리고 국도國都를 나와 상밀商密로 가려 하니, 여집려廬戢黎숙균叔麇이 그들을 유인하여 드디어 투극鬪克공자公子 을 죽였다.
당초에 투극鬪克나라에 수금囚禁되어 있을 때에 나라가 효산殽山의 전쟁에서 나라에 패배하였다. 그러므로 나라는 투극鬪克나라로 돌려보내어 나라에 화평和平을 구하게 하였다.
투극鬪克은 두 나라의 화평을 성사成事시켰으나 뜻을 얻지 못하였고, 공자公子 영윤令尹이 되기를 구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치에는 상연常然(변함없이 항상 그러함)이 있고, 일에는 적연適然(우연)이 있다. 적연適然의 일을 인하여 상연常然의 이치를 의심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은 하지 않는다.
 群弟流言圖 罪人斯得圖 群弟流言圖 罪人斯得圖
천하의 일을 일일이 세어보면 상연常然에서 나온 것이 열에 아홉이고 적연適然에서 나온 것이 백에 하나이니 하나(적연適然)로써 백(상연常然)을 폐기하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부자父子천성天性이기 때문에 〈천하의〉 아비들은 상신商臣채반蔡般이 있었다 하여 자기 아들을 의심하지 않고,注+楚나라 太子 商臣과 蔡나라 태자 般을 이른다. 형제兄弟천륜天倫이기 때문에 〈천하의〉 이 된 자들은 채숙蔡叔곽숙霍叔이 있었다 하여 자기 아우를 의심하지 않는다.注+〈周公 아우인〉 蔡叔과 霍叔을 이른다. 재상 중에 비록 왕망王莽 같은 자가 있었으나注+〈前漢 말의 宰相〉 王莽을 이른다. 고금의 조정에 재상이 없었던 적이 없고, 장군 중에 동탁董卓 같은 자가 있었으나注+〈後漢 말의 將帥〉 董卓을 이른다. 고금의 변방에 장군이 없었던 적이 없다.
만일 필연이 아닌 일을 가지고 필연의 이치를 빼앗는다면 일마다 두려워해야 하고 사람마다 방비해야 할 것이니, 그 마음이 초조해서 잠시도 편안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인민人民을 다스리는 국군國君은 본래 상체常體(불변의 준칙準則)가 있으니, 지극히 공평한 마음을 가지고 천하를 감화[감격感格]시켜 준칙에 부합하는 자는 등용하고 거스르는 자는 퇴출하며, 준칙을 지향하는 자는 발탁하고 침범하는 자는 처벌한다.
애초에 그 사이에 사사로운 감정을 개재시킨 적이 없으므로 견책하여 꾸짖어도 〈신하는〉 혐오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소원하게 대하며 배척해도 〈신하는〉 의혹하거나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아침에 신하의 악행을 발견하면 〈즉시 내쫓아〉 험지險地로 유배하고 저녁에 선행을 발견하면 〈즉시 불러들여〉 조정의 반열에 세우니, 임금[]은 영원히 버리는 사람이 없고, 신하[]는 스스로 단절하려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본래 인민을 다스리는 군주가 된 자의 상체常體이다.
그러나 사악한 무리들은 도리어 이미 소원해진 자는 다시 친해질 수 없고, 이미 멀리한 자는 다시 가까워질 수 없다고 하여, 한번 배척하는 치욕을 받으면 즉시 원수가 된다.
예컨대 투극鬪克공자公子 나라에 대하여, 〈투극鬪克은〉 나라와의 우호를 성립시켰으되 을 보상받지 못하고, 〈공자公子 은〉 영윤令尹이 되기를 구하였으되 청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노려 마침내 큰 변란을 일으켰는데, 하물며 내쫓기고 유배당하는 형벌을 받은 자이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사람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폐기하였다면 다시 일어날 수 없게 함이 마땅하고, 나는 사람을 퇴출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퇴출하였다면 다시 나올 수 없게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널리 퍼진 뒤로 세상 군주들의 심술心術(심보)이 비로소 미혹되었다.
그러나 이는 두 사람의 변란이 상리常理 밖에서 나온 것임을 모른 것이다. 임금이 남향해 앉아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매일 처리하는 정무가 번다하고 바쁘니, 〈그로 인해〉 포상褒賞에 맞지 않고 작위가 뜻에 만족스럽지 못한 자가 수없이 많아[騈肩交蹠] 산수算數에 뛰어난 자도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만약 그 사람들이 모두 두 사람처럼 변란을 일으킨다면 넓은 세상에 사방을 둘러보아도 임금의 원수 아닌 자가 누구이겠는가? 아래로 미루어 비유하면 일찍이 매를 친 노복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꾸짖은 개에게 다시 문을 지키게 하지 않는 것이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이치가 있는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팽형烹刑을 하는 가마솥에서 발탁하기도 하고, 참수대에서 기용하기도 하고, 감옥에서 석방하기도 하여 군왕君王을 보좌하는 중대한 직임을 맡긴 적이 있으니, 〈이들이〉 위대하고 뜻깊은 〈행위를〉 하여 이정彛鼎(제기祭器)에 새겨지는 빛나는 큰 공적을 세운 경우가 대대로 끊이지 않았다. 어찌 이런 사람들의 사례를 모아 조목조목 진술하여 군주의 마음을 넓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독 이 두 사람(투극鬪克공자公子 )의 변란만을 추려 군주의 넓은 도량을 망가뜨려서는 안 되니, 두 사람의 변란은 본래 상리常理논단論斷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 장왕莊王이 〈서료舒蓼을 치기 위해 출정할 때 두 사람에게〉 남아서 나라를 지키게 한 것은 의심 없이 대우하여 두 사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인데, 두 사람은 장왕莊王을 저버렸으니 이것이 바로 〈 장왕莊王에게〉 군주의 도량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옳지 않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니 사생존망死生存亡관두關頭에서도 절개를 빼앗을 수 없는 자가 아니면 그 일을 담당할 수 없으며, 영윤令尹은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관직이 아니다. 신하가 나라에 공로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상인이 물건을 계산하여 값을 받듯이 하겠는가?
두 사람의 경박하고 조급함이 이와 같으니 하나의 보루를 지키는 것도 어려울 것인데 하물며 빈 궁성을 맡기고서 열쇠를 쥐어준다는 말인가?
나는 장왕莊王에게 군주로서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눈이 없음만을 보겠고, 군주로서의 도량이 온전함은 보지 못하겠다.
진실로 이 말과 같다면, 임금으로서 도량은 넉넉하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눈이 사실상 부족하다고 일컬어지는 자는 반드시 밝게 살핌으로써 보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도량[]’과 ‘밝음[]’은 서로 다른 두 건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학道學(성리학性理學)을 강명講明하지 않아 어리석은 자들이 마침내 관후寬厚하고 순박한 정성으로는 말세의 변란을 다스리기 부족하다 하여, 이에 멋대로 마음속으로 헤아려[췌마揣摩] 남의 비밀을 짐작하고, 멋대로 억측[억탁臆度]하여 남의 생각을 가늠하니, 날마다 추측해 탐구할수록 더욱 사실과 멀어진다.
이는 곧 천리天理는 매우 밝아서 본래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데, 내가 도리어 마음속으로 헤아려 천리를 인멸湮滅시키고 멋대로 억측해 천리를 어지럽혀 스스로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하니, 스스로 지혜롭게 한다는 것이 도리어 스스로를 혼매昏昧하게 함을 알지 못한다.
헤아리고 억측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다 버리면 시비미악是非美惡의 이치가 밝아진다. 지극히 밝은 경지는 본래 관후하고 순박한 정성 가운데 있는데 세속 사람들은 도리어 이것을 버리고서 앞다퉈 간사한 속임수와 교활한 변론 사이에서 찾으니,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유세객들이〉 오늘은 나라를 팔아먹고 내일은 나라를 도륙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대가 밝게 살피고자 한다면 혼매함을 싫어하지 말고 그대가 공교工巧해지고자 한다면 졸렬함을 싫어하지 말지어다.


역주
역주1 : 穆王의 아들이다.〈杜注〉
역주2 : 바로 群舒이다.〈杜注〉
역주3 : 楚나라의 首都 郢에 먼저 성을 쌓은 것이다.〈附注〉
역주4 : ≪國語≫ 〈楚語〉에 蔡聲子가 “楚 莊王이 바야흐로 幼弱하니 子儀를 太師로, 王子 燮을 太傅로 삼으라.”고 하였다.〈杜注〉 楚나라의 領土인 商密邑으로 가려 한 것이다.〈附注〉
역주5 : 廬는 지금의 襄陽 中廬縣이다. 戢黎는 廬邑의 大夫이고, 叔麇은 그의 補佐이고, 鬪克은 子儀이다.〈杜注〉
역주6 : 일이 僖公 25년에 있었다.〈杜注〉
역주7 : 일이 僖公 33년에 있었다.〈杜注〉
역주8 : 秦나라가 晉나라에 敗北하였기 때문에 鬪克으로 하여금 楚나라로 돌아가서 和平을 요구하게 한 것이다.〈附注〉
역주9 : 저본에는 ‘成’이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0 : 傳의 말은, 楚나라는 莊王이 幼弱하여 國內가 混亂하였기 때문에 晉나라와 覇權을 다투지 못하였다는 말이다.〈杜注〉
역주11 : 저본에는 ‘人’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하여 ‘臣’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2 : 商臣은 楚 穆王으로 太子 자리를 위협받게 되자 아버지 成王을 시해하였고, 蔡般은 蔡 靈侯로 아버지 蔡 景侯가 자신을 위해 楚나라에서 맞이해온 여인과 간통하는 것에 분개하여 景侯를 시해하였다.
역주13 : 이들은 周나라 武王의 아들로, 周公이 장차 成王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紂의 아들 武庚을 도와 반란을 일으켰다가 周公에게 살해되었다.
역주14 : 字는 巨君이며 濟南 東平陵 출신으로, 前漢을 멸망시키고 新나라를 건국하였다. 어려서 불우하였으나 伯父 王鳳의 신임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王氏가 外戚으로 漢나라 정권을 좌우할 때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漢 平帝를 독살한 후 宣帝의 玄孫 劉嬰을 세웠다가 폐위하고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漢 光武帝에게 멸망당하여 죽었다.
역주15 : 字는 仲穎이며, 隴西 지역 臨洮 출신이다. 凉州에서 羌族를 토벌하며 군세를 키우다가, 漢 昭帝 昭寧 원년(189)에 외척 何進이 환관 十常侍를 토벌하기 위해 군벌을 모집할 때 호응하여 洛陽에 진출했다. 昭帝를 폐위하고 獻帝를 옹립하여 권력을 잡았으며, 袁紹를 맹주로 한 토벌군의 압박에 못 이겨 長安으로 천도하였다가 司徒 王允이 놓은 美人計에 걸려 呂布에게 살해당했다.
역주16 : 저본에는 ‘朝’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旦’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7 : 騈肩은 서로 어깨를 바싹 붙이고 나란히 있는 것이고, 交蹠은 서로의 발자국을 밟으며 걸어가는 것이니, 모두 그 수가 매우 많음을 형용하는 말이다.
역주18 : 다리와 팔, 가슴과 등뼈를 이르는데, 좌우에서 보필하는 중요한 신하를 비유한다. ≪書經≫ 〈君牙〉에 “지금 그대에게 명하노니, 그대는 나를 도와 나의 다리와 팔, 심장과 脊骨이 되라.[今命爾 予翼 作股肱心膂]”는 말이 보인다.
역주19 : 宗廟에 쓰는 술그릇과 솥이다. 고인들은 큰 공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 彛鼎에 그 공적을 새겨 길이 기렸다.
역주20 : 저본에는 ‘名’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의거하여 ‘明’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1 : 賈楚屠燕는 南轅北轍과 같은 뜻이다. 남쪽으로 가려다가 북쪽으로 간다는 말로, 하던 일이 목적과는 반대됨을 이른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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