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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1)

동래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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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03 魯及齊師戰于奚
나라와 나라 군대가 에서 싸우다
【左傳】桓十七年이라 及齊師戰于奚하니
환공桓公 17년, 여름 5월에 나라 군대와 에서 전쟁하였으니, 이는 국경國境 분쟁紛爭이었다.
於是齊人侵魯疆하니 疆吏來告한대
이때 제인齊人나라의 국경을 침범하니, 국경을 지키는 관리官吏가 와서 고하였다.
公曰 疆埸之事 하야 而備其不虞하고 姑盡所備焉이라가 事至而戰이니 又何謁焉
그러자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강역疆埸의 일은 우리 쪽 경계境界를 조심해 지켜 불의不意사태事態대비對備하고, 우선 대비에 힘을 다하였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전쟁하는 것이니, 무엇 때문에 와서 지시指示를 청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하였다.
邊境 非有國者所當憂也
변방의 일은 나라를 소유한 자가 근심할 일이 아니다.
民之死生 國之安危 皆繫於邊境하니 聞其有警하고 焉得而不憂리오
백성의 생사生死와 국가의 안위安危가 모두 변경邊境에 달려 있으니 그 경보를 듣고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嗚呼
아!
是所以不當憂也니라
이것은 근심할 일이 아니다.
民之死生 國之安危 皆繫于邊境한대 聞其有警而始憂之 則未有警之前 所講者何事耶
백성의 생사와 국가의 안위가 모두 변경에 달려있는데, 그 경보를 듣고서 비로소 근심한다면 경보가 있기 전에 강구한 것은 무슨 일이었는가?
平居暇日 審形勢하고 定規模하며 簡將帥하고 明斥候者 爲此時也 烽擧塵起 按吾素定之畫하야 次第而行之 何憂之有리오
평소 한가할 때에 형세形勢를 살피고 규모規模를 정하며 장수를 선발하고 척후병을 보내어 적의 사정에 밝은 것은 이때를 위해서이니, 봉화가 올려지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우리가 평소 정한 계획에 따라 차례로 대비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是故聞警而憂者 可以占知其無備也 聞警而不憂者 可以占知其有備也니라
그러므로 경보를 듣고 근심하는 것은 변방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음을 알 수 있고, 경보를 듣고도 근심하지 않는 것은 변방에 대한 대비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漢丙吉爲相 其馭吏見驛騎持하고 知虜入雲中代郡하고
나라 병길丙吉이 승상이었을 때에, 그의 마부가 역참驛站기병騎兵이 붉고 흰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오랑캐가 운중雲中대군代郡에 쳐들어왔음을 알았다.
遂歸府白吉 恐虜所入邊郡 長吏有老病不任兵馬者하니 宜可豫視라한대 吉善其言하야 召東曹注+見漢丙吉傳科條其人하니
마침내 승상부로 돌아가 병길에게 아뢰기를 “적이 침입한 변방 고을에 장리長吏들이 늙고 병들어 병마兵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우니 미리 살펴야 할 듯합니다.”라고 하였는데, 병길이 그 말을 옳게 여겨 동조東曹를 불러 법령에 따라 관리를 처벌하게 하였다.
병길은 이로 인해 변방을 근심하고 직분을 염려한 일로 포상을 받았다注+한서漢書》 〈병길전丙吉傳〉에 보인다..
當是時하야 吉爲相久矣 邊吏之壯老材否 謾不加省이라가 見驛騎羽檄之來하고 始科條其人하니 一何晩耶
이때에 병길이 승상이 된 지 오래되었는데, 변방의 관리가 건장한지 늙었는지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살피지 않다가, 역참의 기병이 보내온 격문檄文을 보고서야 비로소 관리들을 법령에 따라 처벌하게 하였으니 끝내 어쩌면 그리도 늦는가?
自雲中至長安 凡幾里 自虜入至聞警 凡幾日
운중에서 장안長安까지가 모두 몇 리이며 오랑캐가 침입한 때로부터 경보가 알려진 때까지 모두 며칠인가?
兩陣相望 呼吸勝敗로다
양쪽 진영이 서로 대치하면 순식간에 승패가 갈리게 된다.
使果有老病不任兵馬者 吾恐汰斥之詔未下 而覆敗之報已聞矣리니 雖憂亦奚以爲善乎리오
이때에 가령 늙고 병들어 병마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죄인을 척결하라는 조서가 내려지기도 전에 패전했다는 보고가 이미 올라오게 될까 두려우니, 비록 변경을 근심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겠는가?
魯威公之言曰 疆之事 謹守其一하야 而備其不虞하야 姑盡所備焉이라가 事至而戰이니
환공桓公의 말에 이르기를 “변경의 일은 삼가 우리 쪽 한쪽을 잘 지켜서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니, 우선 대비할 것을 다 갖추고 있다가 일이 닥치면 싸우는 것이다.
又何謁焉가하니
무엇 때문에 알현하는가?”라고 하였다.
威公之意 以謂爲備當在于無事之時
환공의 뜻은 ‘대비하는 일은 무사할 때에 해야 한다.
苟事之已至 汝雖謁之하고 吾雖憂之라도 城戍保障 非一日二日所能築也
만일 일이 이미 닥친 뒤에는 네가 비록 나를 알현하고, 내가 비록 그 일을 걱정한다 하더라도 성곽과 성루를 하루 이틀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矛戟車徒 非一日二日所能繕也 餽餉芻茭 非一日二日所能儲也
무기와 병사를 하루 이틀에 정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군량과 마초를 하루 이틀에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亦不過拱手待斃而已
또한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威公之責成疆吏亦嚴矣 猶有說焉하니 威公之責疆吏則是어니와 而所任以守疆埸者 不知其何人也
환공桓公이 변경의 관리에게 책임 지운 것이 또한 엄격하였으나 그래도 나는 할 말이 있으니, 환공이 변경의 관리에게 책임 지운 것은 옳았지만 강역疆埸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자가 어떤 자인지는 몰랐다.
賢耶ᄂ댄 其責成固宜어니와 不賢耶ᄂ댄 徒委其責而不問 吾懼其階禍也
강역을 지키는 일을 맡은 자가 현명하다면 그 책임을 맡긴 것이 진실로 마땅하지만, 현명하지 않다면 한갓 그 책임만 맡겨놓고 뒷일을 묻지 않는 것이 나는 재앙의 계제가 될까 두렵다.
付吳起以西河 則魏不知有秦注+吳起 魏文侯時 爲將 擊秦拔五城 文侯以起善用兵 乃以爲西河守以拒秦하고 付李廣以北平 則漢不知有狄注+漢李廣爲右北平太守 匈奴號曰飛將軍 避之 數歲不敢入하며 付羊以襄陽 則晉不知有吳注+晉武帝有滅吳之志 以羊祜鎭 祜綏懷遠近 甚得江漢之心하니라
오기吳起에게 서하西河를 맡기자 나라는 나라가 있는 줄을 몰랐고注+오기吳起 문후文侯 때에 장군이 되어 나라를 공격하여 다섯 성을 함락하니, 문후는 오기가 용병을 잘한다고 하여 곧 서하태수西河太守로 삼아 나라를 막게 하였다., 이광李廣에게 북평北平을 맡기자 나라는 이 있는 줄을 몰랐으며注+나라 이광李廣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가 되자 흉노는 그를 비장군飛將軍이라 호칭하고, 그를 피하여 여러 해 동안 감히 침입하지 못하였다., 양호羊祜에게 양양襄陽을 맡기자 나라는 나라가 있는 줄을 몰랐다注+ 무제武帝나라를 멸할 뜻이 있어 양호羊祜양양진무사襄陽鎭撫使로 삼으니, 양호는 원근을 회유하여 강한江漢 지역의 인심을 얻었다..
是數公者 固不以邊警煩君父하니 爲其君者 亦可以委其責而高枕矣
이 몇 사람은 진실로 변경의 경보를 보고하여 임금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고, 임금도 책임을 맡기고 아무런 근심 없이 편안히 있을 수 있었다.
人非數公이요 而苟弛其御轡이면注+僖三十二年 註見十一卷內리라 此又人君之當戒니라
보통 사람의 능력은 이 몇 사람과 같지 않은데 만일 통제를 느슨히 한다면, 북문北門의 열쇠를 가진 자가 적을 불러 흔단釁端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니注+희공僖公 32년의 일이다. 본서의 권21의 《춘추좌씨전》 인용문에 보인다., 이것이 또한 임금이 크게 경계할 일이다.
역주
역주1 [역주] 疆事 : 境界를 다툰 것이다.
역주2 [역주] 愼守其一 : 삼가 일정한 경계를 지키는 것이다.
역주3 [역주] 〈曰〉 : 저본에는 없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曰’자를 보충하였다.
역주4 [역주] 東曹 : 《後漢書》 〈百官志〉에 의하면 二千石 長吏의 昇進과 除授를 맡은 관리이다.
역주5 [역주] 赤白囊 : 변방에서 위급한 사태를 조정에 보고하기 위하여 급히 올려보내는 문서를 넣는 주머니이다.
역주6 [역주] (場)[埸] : 저본에 ‘場’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埸’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역주] (衰)[襄] : 저본에는 ‘衰’로 되어 있으나, 《晉書》에 의거하여 ‘襄’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역주] (祐)[祜] : 저본에는 ‘祐’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祜’로 바로잡았다.
역주9 [역주] (三)[二] : 저본에는 ‘三’으로 되어 있으나,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10 [역주] 掌北門之管者 未必不召寇而起釁 : 魯 僖公 30년에 秦 穆公이 大夫인 杞子를 파견하여 鄭나라를 지키게 하였는데, 기자가 정나라에서 秦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鄭人이 우리에게 北門의 열쇠를 맡겼으니 은밀히 군대를 이끌고 오면 정나라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하니, 秦나라 군대가 정나라를 쳤다.

동래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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