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人之疾에 能仰而不能俯를 謂之籧篨요 能俯而不能仰을 謂之戚施라 二者均疾也라 彼之不能仰이 猶此之不能俯하니 其疾豈有深淺之辨哉아
形而有疾이면 心亦有疾이라 可貴而不可賤者는 籧篨之類也니 厥疾之證이 有餘於節廉而不足於勞苦하고 可賤而不可貴者는 戚施之類也니 厥疾之證이 有餘於勞苦而不足於節廉이라 證雖不同이나 同於爲疾而已矣라
世俗乃喜其一而惡其一하야 能貴而不能賤者則謂之高라하고 能賤而不能貴者則謂之卑라
是說旣行에 狷介之士가 競以高亢自喜하야 聞金穀米鹽之語면 則傲晲而不聽하고 視鞭扑箠楚之事면 則嘔噦而不觀이라
方無事時
하얀 非不可喜也
나 一
納之於
之場
하고 投之於迫急顛頓之地
면 則艴然駭
하고 怵然懼
리라
雖輿臺皁隷
로 平昔屛息避道仰望之於泥塗之下者
라도 皆得而靳侮之
리라 前日之高
는 乃所以爲今日之卑
니 豈非世俗之說誤之乎
아
以籧篨之所有로 易戚施之所無면 是謂無疾之人이요 以貴者之所有로 易賤者之所無면 是謂無偏之士니 烏可喜其一而惡其一哉아
晉人稱隨會者前後相望이나 獨郤成子能賤而有恥一語가 非特可以見隨會之全德이라 亦可以起後世一偏之疾이니 此吾所以三復其言而不厭也라
負於途
하고 販於肆
하고 耕於野
가 하니 所謂賤者
가 天下豈少哉
리오 然彼皆當賤者
니 非能賤者也
라
以隨會之雅量曠識
으로 乃
不厭
하야 下親勞苦之事
하니 宜廊廟而安閭閻
이라 是以謂之能賤
이요 宜圭組而安布韋
라 是以謂之能賤
이요 宜
而安
라 是以謂之能賤
이라
者之勞苦
하고 而復去賤者之卑汚
하야 全人之所不能全
하니 斯其所以爲全德歟
ㄴ저
想隨會身親賤事之時
에 趨則皆趨
하고 役則皆役
하니 一
也
라
至於臨之以利
하고 迫之以害
하야는 則勁厲之節
이 하고 하며
隨會無賤者之所短하고 賤者無隨會之所長하니 其獨稱全人於晉國이 有以也哉ㄴ저
抑嘗深味郤成子之語컨대 能賤者固難於有恥라 然所以無恥者는 實由乎不能賤也라
公卿大臣
이 出入禁門
하며 에 一有失節
이면 則天下之責
이 四面而至
라 彼豈不知爲可恥哉
리오
其所以忍愧負辱하야 徘徊而不敢發者는 正所以能貴而不能賤也ㄹ새니라
彼其心以謂一
忤旨
면 譴責隨至
하야 冕服褫矣
요 徒馭散矣
요 賓客落矣
라
一聞其語라도 猶心悸而神泣이온 況身履之耶아 此所以寧受恥而不顧也라
向使其貴而能賤
이면 則安能鬱鬱坐受天下之譙責耶
아 故郤成子之語
는 又當以
之說終之
라
수회隨會가
비천卑賤한 지위에 잘 처신하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다
注+≪春秋左氏傳≫에 대한 本註는 본서 20권 제3편에 보인다.
무릇 사람들의 질병에 위를 볼 수 있으나 아래를 볼 수 없는 것을 앞 꼽추[거저籧篨]라 하고, 아래를 볼 수 있으나 위를 볼 수 없는 것을 뒷 꼽추[척이戚施]라 한다. 이 두 가지는 균등한 질병으로 앞 꼽추가 위를 볼 수 없는 것이 뒷 꼽추가 아래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그 질병에 어찌 심천深淺의 구별이 있겠는가?
사람의 신체에 질병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도 질병이 있게 마련이다. 존귀尊貴를 좋아하고 비천卑賤을 싫어하는 것은 〈위만 보는〉 앞 꼽추와 비슷하니, 그 병의 증상은 절렴節廉(고결하고 청렴함)은 넉넉하지만 노고勞苦(힘들고 수고로움)는 부족하다. 비천을 편히 여기고 존귀를 편히 여기지 않는 것은 〈아래만 보는〉 뒷 꼽추와 비슷하니, 그 병의 증상은 노고勞苦는 넉넉하나 절렴節廉은 부족하다. 증상을 비록 다르지만 병을 앓는 것은 같다.
〈그런데〉 세속 사람들은 그중의 하나(존귀尊貴)는 좋아하고 하나(비천卑賤)는 싫어하여, 존귀에 잘 거처하고 비천에 잘 거처하지 못하는 자를 고상하다 이르고, 비천에 잘 거처하고 존귀에 잘 거처하지 못하는 자를 비루하다 이른다.
이런 말이 세상에 퍼진 뒤로 강직한 선비들은 경쟁하듯이
고항高亢(뜻을 높이 가져 남에게 굽히지 않음)만을 좋아하여, 사람들이 돈, 곡식, 쌀, 소금 등에 대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오만하게 흘겨보고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사람이
태형笞刑을 당하는 일을 보면 구역질을 하면서 보려 하지 않는다.
洪崖道士
〈스스로 자신을〉 청고淸高하고 광활하며 유유자적하는 호방한 사람으로 여겨, 상고上古의 대정씨大庭氏․존려씨尊廬氏를 꿈꾸고, 부구도사浮丘道士와 홍애도사洪崖道士 사이를 오가며 어울리기를 생각한다.
태평무사泰平無事할 때에는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기쁘지 않을 것이 없겠으나, 하루아침에 그를 크게 약탈이 벌어지는 번잡한[叢劇] 장소에 들여보내고, 절박하고 위급하여 실패하고 좌절하는 환경에 던져 넣으면 얼굴빛을 바꾸며 놀라고 두려워하여 〈고항高亢했던 기개氣槪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비록 흙으로 된 바닥에서 평소에 숨을 죽이고 길을 피해 엎드려 우러러보던 노복과 하인들도 모두 비웃으며 그를 모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전일의 고항高亢이 바로 오늘의 비굴卑屈을 만든 원인이니, 어찌 세속 사람들의 말이 그르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몸에는 아래만 보거나 위만 볼 수 있는 질병[꼽추]이 있으나 질병에는 심천深淺의 구별이 없고, 〈마음의〉 질병에는 저마다 존귀하고 비천하게 여기는 증상이 있으나 병명病名에는 고비高卑의 차이가 없다.
앞 꼽추가 가진 것을 뒷 꼽추에게 없는 것과 바꾼다면 이를 병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고, 〈세속의 사람들이〉 존귀하다 여기는 것을 비천하다 여기는 것과 바꾼다면 이를 치우침이 없는 인사人士라고 이를 수 있으니, 어찌 그중의 하나만을 좋아하고 하나는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진晉나라 사람으로 수회隨會를 칭찬한 사람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잇달았으나, 유독 “비천한 지위에 잘 처신하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 극성자郤成子의 한 마디 말이 수회隨會의 온전한 덕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후세 사람들을 한쪽으로 치우친 병에서 낫게 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그 말을 세 번 반복해 외며 싫어하지 않는 까닭이다.
길에서 짐을 지고, 저자에서 물건을 팔고, 들에서 밭을 가는 사람이 수없이 많으니, 이른바 비천한 사람의 수가 천하에 어찌 적겠는가? 그러나 저들은 모두 〈종사하는 일이〉 비천함에 해당하는 자들이고, 비천에 잘 거처한 자들이 아니다.
수회隨會의 넓은 도량과 공전空前의 식견으로 개의介意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서 몸소 노고勞苦에 종사하였으니, 낭묘廊廟(고위高位)에 있음이 마땅한데 여염閭閻(향리鄕里)을 편히 여겼다. 그러므로 그를 ‘능천能賤’이라 이른 것이고, 규조圭組(인수印綬)를 차는 것이 마땅한데 포위布韋(빈한한 선비의 복식服飾)를 편히 여겼다. 그러므로 그를 ‘능천能賤’이라 이른 것이고, 종명정식鐘鳴鼎食함이 마땅한데 단사표음簞食瓢飮을 편히 여겼다. 그러므로 그를 ‘능천能賤’이라 이른 것이다.
이미 빈천자의 노고를 감수甘受하고 다시 빈천자의 비굴과 더러움을 제거하여, 사람들이 온전히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온전히 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온전한 덕을 갖추게 된 까닭이다.
생각건대 수회隨會가 몸소 비천한 일을 할 때에 급히 달려갈 일에는 모두 달려갔고, 노역勞役할 일에는 모두 노역하였으니, 초조해하는 모습이 마치 용보庸保(머슴) 같았다.
그러다가 이해의 갈림길에 다다라서는 강하고 굳센 기절氣節이 서로 배제排擠하며 쟁탈爭奪하는 가운데 엄숙하게 드러나고,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맑은 바람이 어두컴컴한 세상 밖에서 솔솔 불었다.
〈기개氣槪는〉 하늘 높이 우뚝 솟고 〈계모計謀는〉 샘이 솟아 넘치듯이 끊임없어 무리에서 뛰어났으니, 이는 엄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수회隨會에게는 비천한 자들에게 있는 결점이 없고, 비천한 자들에게는 수회가 가진 장점이 없었으니, 그만을 홀로 진晉나라의 온전한 사람이라고 칭찬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내 일찍이 극성자郤成子의 말을 깊이 음미한 적이 있는데, 비천에 잘 처신하는 것이 본래 수치심을 가지기보다 어렵다. 그러나 수치심이 없는 것은 실로 비천에 잘 처신하지 못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공경대신公卿大臣이 궁중의 금문禁門에 출입하며 제왕帝王이 계시는 조정朝廷에서 원대한 계책을 세울 때에 조금이라도 절도節度를 잃음이 있으면 천하의 책망이 사방에서 이른다. 저 사람인들 어찌 〈절도를 잃음이〉 치욕이 된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치욕恥辱을 참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망설이고[배회徘徊] 감히 떠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존귀에는 잘 처신하고 비천에는 잘 처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루아침에 임금의 뜻을 거스르면 견책이 뒤따라서 면복冕服(관모官帽와 관복官服)이 벗겨지고, 부리는 하인下人들이 흩어지고, 빈객이 끊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번 이런 말을 들어도 오히려 심신心神이 두려워 눈물이 나올 지경인데 하물며 몸소 그런 일을 당한 경우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차라리 치욕을 받을지언정 〈체면을〉 돌아보지 않는 까닭이다.
전에 가령 그가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 비천에 잘 처신하였다면 어찌 답답하게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서 천하 사람들의 꾸짖음을 받는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극성자郤成子의 말은 또 마문연馬文淵(마원馬援)의 설說로 종결함이 마땅하다.